[여성중앙] 바퀴 달린 사나이’ 박대운 2박3일 일본 동행 취재기
바퀴 달린 사나이’ 박대운 2박3일 일본 동행 취재기
‘바퀴 달린 사나이’ 박대운 2박3일 일본 동행 취재기
“지금 필요한 건 진정한 마음의 손길, 장애인의 천국 일본에서 우리가 배운 것들”
두 다리가 없이 살아가는 세상은 참 많은 ‘특별함’을 낳는다.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늘 다르게만 받아온 사회 시선들. 박대운씨는 그가 이뤄낸 기록들에 대한 질문에 “특별한 건 아니었고”란 서두를 뗀다. ‘나와 다르다’는 무의식의 편견이 아직도 수많은 장애인들을 고개 숙이게 하는 우리네 현실. 함께했던 일본 여행길에서 그의 두 바퀴는 더욱 당당해 보였다.
취재&사진_이효정 기자 취재협조_푸르메재단(www.purme.org), 아시아나항공
2002 한일 월드컵의 성공적 개최를 위해 98년엔 유럽 5개국 2002km를 횡단하고, 99년에 4000km 한일 국토종단을 이뤄낸 강철 사나이 박대운. 건강한 두 다리로도 힘든 고난의 길을 휠체어에 앉은 몸으로 걷다니, 그를 내려다봐야하는 기자의 커버린 키가 왠지 부끄러워진다.
하지만 그는 덤덤히 말한다. 뭐 그리 특별한 건 아니었다고. 자기로 인해 밀린 차들에 대한 미안함과 따가웠던 태양이 조금 힘들었을 뿐이라고 말이다.
6살 때 교통사고로 두 다리를 잃은 뒤 온갖 역경을 이겨내며 살아온 그의 인생은 한 편의 저항시이자 이 시대 진정한 휴먼 드라마이기도 하다. 절단장애 1급의 몸으로 비장애인들과 함께 일반학교를 다니면서도 결코 자신이 열등하다는 생각은 해본 적 없었다.
‘앉은뱅이’는 그나마 손을 사용하는 일을 해야 먹고 산다며 금은세공 기술을 배우거나 그림을 그리라는 주변의 충고에도 아랑곳 않고, 보다 활동적인 일을 하고 싶은 마음에 연세대 신문방송학과에 진학했다. 장애인이라서 ‘장애에 맞는 일’을 한다는 건 그의 자존심을 누르는 일이었다.
“육체적인 고통보다 더한 건 심적인 박탈감이에요. 그동안 살던 방식과 다르게 살아가야 하는데, 그것이 보편적인 방식이 아니라는 데서 오는 막연한 두려움과 불안감…. 선택의 기회에 놓이는 모든 순간에서 나의 장애를 피할 순 없는 거죠. 늘 끊임없는 갈등과 제약이 따르니까요.”
하지만 그의 휠체어 위엔 두 다리가 채워주지 못한 꿈과 열정이 차곡차곡 쌓여갔다. 바다를 처음 보게 된 중학교 수학여행 시절, 휠체어를 타고서라도 언젠간 더 넓은 세상으로 나아가리라는 미래를 그려보았다. 불행의 씨앗에서도 싹을 틔우는 법을 가르쳐준 건 다름 아닌 어머니. 당연히 특수학교를 보내야 한다는 사람들 앞에서 ‘내 자식의 능력을 왜 낮추려느냐’며 당당히 일반학교에 문을 두드리던 분이었다. ‘당신의 아들은 저능아’라며 입학을 거부하던 학교에 대항해 구청과 시청을 오갔고, 결국엔 ‘내 아들이 바보가 아니라는 걸 3개월 안에 증명해보이고 그래도 아니면 그 때 자퇴를 시킨다’는 전제조건 하에 입학을 시키게 됐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어울려 살아가는 희망의 울타리를 꿈꾸며
“몸이 불편하다는 것 외에 학교생활의 문제는 없었어요. 다리 없는 아이를 보려고 다른 반에서 몰려와도 기죽지 않았어요. 친구들이 놀릴 때 내가 ‘놀림을 당한다’는 인상을 주면 더 놀릴 걸 알았기에, 휠체어는 내가 열등해서 타는 게 아니라 특별해서 타는 거란 걸 보여줬죠. 앞바퀴를 들어 보이는 묘기를 펼치기도 하고, 마음에 안 드는 녀석은 아예 휠체어를 만지지도 못하게 했어요. 그랬더니 나중엔 한번만 태워달라며 먹을 걸 갖고 오는 애들도 있더라고요(웃음). 어떤 상황에서든 그렇게 친구들을 주도하는 편이었죠. 아마도 장애라는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해 본능적으로 터득한 부분이지 않나 싶어요.”
교육이라는 건 사회에서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우는 것인데, 우리의 교육 현실은 그 본질을 외면하고 있다. 장애인과 함께 같은 교실에서 공부를 하면 행여나 내 아이의 입시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지 않을까 하는 이기적인 논리들. 사회는 장애인과 비장애인을 엄격하게 구분 짓고 그에 따른 영역을 나눠 왔다.
장애인들이 집밖으로 나오길 두려워하는 환경을 만들어놓은 것도 모자라, 용기를 내 세상에 문을 두드린 장애인들을 우리는 외면해왔다. 다리가 불편한 어느 여인은 횡단보도를 건너다 신호가 바뀌어, 중앙선에 선 채 앞뒤로 지나가는 차들 가운데 서있을 때가 세상에서 가장 외로운 순간이라고 말한다. 그들의 한 발 느린 걸음을 우리는 무엇이 그리 바빠 기다려주지 못했던 걸까.
불의의 교통사고로 휠체어를 타게 된 가수 강원래가 절망에 빠져 삶을 포기하려 했을 때도 박대운씨는 그에게 유일한 희망을 주는 재활 트레이너였다. 장애인으로서도 얼마든지 행복하고 즐겁게 살 수 있다는 걸 몸소 보여줬던 그는 지난 해 KBS 코미디 프로 ‘폭소클럽’에서 ‘바퀴 달린 사나이’라는 코너를 진행하며, 장애라는 소재로부터 해학과 여유를 뽑아내는 기발한 개그맨으로 활약하기도 했다. 여전히 KBS 라디오 프로그램 ‘내일은 푸른 하늘’에서 영향력 있는 방송인으로 활동 중이며 올해는 장애극복상 또한 수상했다.
지난 9월 7일, 기자는 푸르메재단의 주최로 그와 함께 일본의 재활병원 및 시설 연수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일본의 선진 재활시스템을 직접 견학하고 그들의 오랜 노하우를 체험해보는 시간으로, 재단의 이사장인 김성수 성공회대 총장과 대표 강지원 변호사도 동행. 재활병원을 비롯해 장애인과 노인의 종합복지시설로 유명한 고베의 행복촌을 방문하며 우리가 공통적으로 체감한 것은 바로 장애인을 배려하는 일본의 선진 마인드였다.
“하드웨어적인 시설 부문에선 사실 한국과의 차이가 크지 않아요. 최근 들어 한국도 장애인 시설이 점점 늘어나는 추세거든요. 하지만 장애인을 대하는 일본인들의 마인드적인 면에선 우리가 아직 따라가지 못하는 부분이 있어요. 한국에서 이 정도의 복지 시설을 갖췄다면 아마 ‘한국 최초’ ‘동양 최고’라는 호들갑을 떨법한데도, 그들은 이런 시설을 구축하는 게 특별한 것이 아닌 당연한 배려라는 공식을 갖고 있어요. 그만큼 장애인은 사회에서 소외된 계층이 아니라는 걸 확실히 보여주는 거죠. 한국의 장애인 시설들에는 왠지 모를 어두운 기운이 감도는데, 이곳엔 장애인이 있는 곳 어딜 가나 밝은 느낌이 가득하네요.”
특히 고베 행복촌에서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어울려 살아가던 모습은 가슴에 깊은 인상을 남겼다. 한국에는 장애인과 비장애인 시설이 항상 분리되어 있다. 생활의 경계가 그렇게 정해지다보니 예기치 못하게 서로에 대한 오해들이 생겨나고, 그럼으로써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벽이 자꾸만 높아지게 되는 것. 같은 공간 안에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모두 불편 없이 살아갈 만한 환경이 조성되는 지점에도 과연 차별이란 게 존재할까. 곧 태어날 아기를 기다리며 박대운씨는 요즘 여느 예비 아빠들보다 더 많은 고민을 하고 있다. 아빠의 장애가 아이의 삶에도 ‘장애’가 되진 않을까 걱정스러운 마음. 그 두려움을 헤치고 희망의 빛줄기를 퍼뜨리는 건 앞으로 사회가 해야 할 몫이다.
▲ 고베행복촌의 재활시설
▲ 의수족 보장구 회사
가와무라의지의 가와무라 사장
▲ 행복촌의 가족호텔
▲ 가와무라의지의 공장 내부 전경
▲ 모리노미아 재활병원을 방문 중인 푸르메재단 식구들.
왼쪽부터 강지원 변호사, 박대운, 백경학 상임이사
푸르메재단과 함께 한
일본의 선진 재활 시스템 2박 3일 체험기
10명 중 1명이 장애인이라는 사실을 절감하는 이는 많지 않다. 현재 한국의 장애인 수는 약 470만 명. 이 중 90% 이상이 후천적 장애인이라는 통계를 볼 때, 비장애인과 장애인의 경계는 정말 종이 한 장 차이인 것이다. 그러나 전국에 존재하는 장애인 재활병원은 신촌 세브란스 재활병원과 삼육재활병원, 국립재활원, 서울재활병원 등 4곳에 불과하며 병상을 합쳐봤자 총 4천여 개 뿐. 게다가 열악한 서비스 수준과 국가의 제도적 지원으로 장애인들이 다시 일어설 공간은 턱없이 부족한 현실이다.
비영리 재단인 푸르메재단(www.purme.org)의 백경학 상임이사는 바로 이런 문제의식에서 재단을 설립하고, 환자 중심의 쾌적한 민간재활전문병원을 짓기 위한 노력을 펼치고 있다. 그 일환으로 지난 9월 7일부터 2박3일간, 재단의 이사장인 김성수 성공회대 총장을 비롯해 대표인 강지원 변호사와 백경학 상임이사, 박대운 명예홍보대사 등 재단 식구들과 함께 일본의 선진 재활 시스템을 견학했는데 그 대표적인 3곳을 소개한다.
정부 지원 아래 효율적인 의료 연대, 모리노미야 재활병원_351개의 병상과 160명의 물리치료사를 갖춘 재활병원으로, 모든 기본 설비에 장애인을 위한 옵션이 충분히 설치돼 있다. ‘오미치회’라는 복지 그룹에서 운영하고 있는데, 병원과 연계해 예방검진과 방문간호·재활플랜을 전문으로 하는 클리닉, 각종 검사를 담당하는 연구소, 그리고 노인보건시설과 어린이집 등을 함께 운영하고 있어 의료 연대가 효율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민간법인으로서 이 정도의 시스템을 구축한 것은 상당히 성공적인 사례. 의사, 간호사, 심리치료사, 물리치료사 등 인건비가 전체 운영비의 10%를 차지해 대부분 적자에 허덕이고 있는 한국의 재활병원과 달리, 일본에서는 정부가 지원해주는 진료 보수만으로도 병원 유지가 가능해 보다 질 높은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장애인을 위한, 장애인이 일하는 곳, 의수족·보장구 회사 가와무라의지_의기, 장구, 의료기기의 설계, 개호용품의 판매, 렌털 업체로서 의기장구업계에서는 세계에서 최대 규모의 공장으로 꼽히며, 고객과의 1대1 맞춤 생산을 한다는 점에서 업계의 모범이 되고 있다. 몸의 일부처럼 민감하게 사용되는 기기들을 제조하므로, 작업과정을 세분화하고 각 파트별로 전문성을 갖춘 장인을 키워내는데 주력한다. 특히 주목할 점은 일본의 장애인 의무고용율이 1.8%인 것에 반해 이곳에선 4%가 넘는다는 것. 장애인을 위한 기기를 만드는 회사답게 장애인 고용에 관대함을 보인다.
이곳에서 36년째 일해오고 있는 사가라 테루오씨는 “내가 장애를 가지고 있는 만큼, 장애인의 입장에서 이런 걸 착용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에 더 정성스럽게 만들게 된다”고 한다. 장애인들을 주로 저임금으로 고용하는 사회 환경 탓에 아예 경제활동을 포기하고 수당에 의지하는 장애인들이 많은 한국의 현실과는 분명 거리가 멀다. “보조구를 만드는 회사가 없어져도 되는 사회를 꿈꾼다”는 가와무라 사장의 이념 또한 이들의 선진문화를 실감케 한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한마당 종합복지타운, 고베 행복촌_62만평에 이르는 장애인 및 노인을 위한 종합복지시설. 재활병원, 노인요양시설, 직업재활학교 뿐 아니라 가족호텔, 온천, 공원 등의 휴양시설이 있어 장애인이나 노인 등 주요 이용인구 외에도 일반인들이 즐겨 찾는 관광명소다. 연간 200만 명이 이용하는 대규모 종합복지타운인 행복촌은 건립 부지의 90%와 약 3천500억원에 이르는 건립비용을 고베시 재정으로 부담했다. 연간 210억원의 운영비 중 70~80% 역시 고베시가 지원하고 있으며 나머지 운영비는 시설 이용료 수익으로 충당한다.
선진국형 민간 재활전문병원 설립을 적극 지원하겠다고 밝혀놓고는 “시내에 땅이 없다”느니 “다른 민간단체와의 형평성 문제가 제기된다”는 등의 말만 되풀이하는 서울시와는 대조되는 시스템.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허물없이 하나가 되는 공간인 고베 행복촌은 장애인들에겐 천국과 같은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