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브리핑] ‘작은 정부’ 금과옥조 아니다

‘작은 정부’ 금과옥조 아니다

[국정브리핑 2006-09-28 08:39]

한국에선…재활 필요 장애인 2만 3000명에 병상수 4200개

장애인들이 입원할 수 있는 재활 병·의원의 병상 수는 15개 병원 4200여 병상으로 장애 인구의 18%에 불과하다. 국내에서 전문 장애인 시설은 국립재활원이 유일하다. 

일본의 선진 복지시스템에 관한 동아일보 기사 화면

푸르메재단 김성수 이사장은 "재활치료의 경우 환자 1인당 치료시간이 길어 치료사 1인이 치료할 수 있는 환자 수가 제한적이고 수가도 낮기 때문에 의료기관이 재활 시설을 갖추는 것을 기피한다”며 “민간 차원에서도 추진하는 재활병원을 정부가 지원하는 등 인프라 구축에 힘써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동아일보 9월25일자 ‘日 종합복지시설 고베 ‘행복촌’을 가보니’>

장애인 재활치료나 노인 병수발을 수지타산 따지는 민간 의료기관에 모두 맡기는 것은 애초부터 무리다. 돈 보다 공공성이 앞서는 일은 당연히 정부 몫이다. 사회적 약자에게 부활의 기회를 주기 위해서라도 정부의 역할과 지원은 강조될 수 밖에 없다.

‘일본 고베 시 행복촌은 장애인과 고령자의 낙원이다. 하지만 한국 장애인들은 재활 병실마저 부족해 고통을 겪고 있다.’ 일본 고베시의 선진 복지시스템을 부러워한 이 신문은 같은 날 정부의 ‘사회서비스 좋은 일자리 창출 전략’을 비판하면서 “사회서비스 사업을 왜 정부가 벌이려 하는지가 궁금하다. 사회서비스 공급이 부족하다면 정부는 관련 규제를 풀어 놓고 뒤로 물러나면 된다. 민간이 자기 책임 아래 사업을 벌이고 고용도 정부 목표 이상으로 늘릴 것이다”라며 정반대의 주장을 늘어놓았다. 민간, 즉 시장에 맡겨두면 될 일을 왜 정부가 나서서 하느냐고 따지고 있다.

정부 규모보다 국민서비스가 핵심

특정 언론 뿐만 아니다. 기업과 가계, 개인이 정부라는 경제주체에 대해 갖는 인식은 이렇게 이중적이다. 아니 이율배반적이다. “정부의 대책이 시급하다.” 사회 경제적 문제를 다루는 대부분 신문기사나 방송보도, 각종 시민단체는 물론 경제연구소의 연구 보고서의 끝 문장은 이렇게 끝을 맺는다.

시장의 자율에 맡기라라고 얘기하다가도 문제가 터지면 정부는 왜 이를 방치했느냐고 호통친다. 규제를 풀어라고 말하다가도 문제가 생기면 왜 이런 규제를 만들지 않았느냐고 눈을 부라린다. 고용서비스와 치안 보육 교육 등 사회서비스 업무에 종사하는 공무원수를 늘린다고 상세히 설명해도 무조건 총숫자가 늘었다고 싸잡아 비난한다. 중요한 것은 정부규모가 아니라 국민들에게 어떤 서비스를 얼마나 효율적으로 제공하느냐에 달려 있는데도 이를 따지기보다 정부규모만 이분법적으로 이야기한다.

정부 역할이 중요한 이유-효율적 정부가 성장을 촉진한다

“그게 돈이 될까?”
시장과 민간의 1차 관심사는 수익성이다. 당장 돈이 되거나 명백한 상업적 이익이 눈에 보이지 않으면 투자하지 않는다. 최근 통신 종주국 미국에까지 진출한 한국적 원천기술 와이브로(휴대인터넷)도 처음 몇 년은 국책연구기관에서 국민의 세금으로 연구를 시작했다. 그만큼 즉각적인 수익이 손에 쥐어지지 않는 기초과학 연구 분야나 사회적 인프라는 정부의 역할이 중요하다.

물론 시장은 경제성장의 주춧돌이다. 하지만 시장만능주의가 모든 것을 해결해주지는 않는다. 시장은 강력하기는 하지만 그 자체로 사회에 바람직한 수준의 교육과 훈련에 대한 투자를 이끌어내지 못한다. 기업들이 퇴직자들의 재취업 교육훈련까지 해준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하지만 기업에 그것을 기대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시장이 하지 않는 것, 민간에 맡겨서는 효율성이 떨어지는 분야에 정부가 적절히 투자해야 한다. 효율적인 정부의 역할을 통해 시장의 기능을 보완해야만 모든 계층을 포괄하는 지속가능한 성장을 할 수 있다. 비전2030은 바로 이러한 효율적인 정부의 역할을 체계화하는 첫 작업이다.

시장 만능으로 생긴 문제를 시장기능으로 풀수 없어

보건소 직원들이 노인정을 찾아 무료 이동진료를 하고 있다

특히 사회서비스는 이윤 극대화를 추구하는 민간에 맡겨서는 적절한 효과를 낼 수 없다. 구조적 저성장과 양극화, 세계화, 저출산 고령화 등 우리가 직면한 도전과제들은 일정 부분 이익극대화·효율 극대화의 거대한 조류 속에 필연적으로 생긴 문제들이다. 말하자면 시장 중심적인 구조조정으로 생긴 문제를 해결하는데 시장만능에 맡겨둘 수는 없는 일이다.

우리 사회가 다양한 사회적 약자들에게 사회안전망을 제대로 제공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작은 정부라는 미명으로 정부 역할 축소 주장에 휩쓸려가다가는 이들을 방치하게 되거나 더 양산할 수 는 없는 일이다.

더욱이 시장 만능의 정글적 상황을 그대로 둔다면 이후 사회 전체가 치뤄야 할 비용이 너무 크다. 세계적 연구기관들도 한결같이 국가경쟁력의 기준을 "지속적 경제성장과 장기적인 번영을 가능하게 하는 정책과 제도 등 제반요소"로 정의하고 있을 정도다

과거 정부와의 차이-정부 역할에 대한 잘못된 인식

혹자는 우리의 지난 역사 경험에서 거대 정부가 특정한 국가적 목표아래 국민의 자유를 억압하고 사적 공간에까지 개입하면서 경제적으로도 불합리한 선택을 가져온다는 우려를 제기할 수 있다. 또 그런 탓에 국민들은 ‘큰 정부’ 라는 말에 왠지 거부감을 나타낸다.

그러나 과거 큰 정부의 내용을 들여다보면 이러한 우려가 부질없다. 과거 정부는 규제에서 큰 정부였고 서비스에서는 작은 정부였기 때문이다.

사실 규제를 통해 권력을 행사했던 과거 정부에서는 인적 수요가 많이 필요하지 않다. 그러나 우리 사회가 직면한 양극화와 고령화라는 새로운 도전과제를 해결하기 위한 일 손이 많이 필요하다. 오늘날 정부는 보이지 않는 손으로 국민의 사회적 삶에 개입하고 조정하고 있는 거대자본의 그림자로부터 국민들을 보호해야 하는 숙제를 안고 있다.

이제 큰 정부이냐 작은 정부이냐는 논란을 넘어서 국민의 민주적 삶은 확대하면서 국민의 생활을 세밀하게 보살피고 사회 내부갈등을 두루 조정해내는 정부, 할 일을 하는 능력있는 정부에 대해 진지하게 논의해 봐야 한다.

큰 정부의 허상과 객관적 증거

객관적 지표로 볼 때 우리 정부는 큰 정부라고 할 수 없다. 정부의 재정지출 규모(2004년기준 27.3%)는 OECD 국가 평균(40.8%)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다. 작은 정부를 추구한다는 일본(37.6%) 미국(36.0%)과 비교해도 훨씬 낮은 수준이다.

국민소득이 우리보다 많은 국가들과 단순 비교하지 않고 1인당 국민소득이 1만 5,000달러를 달성했을 때를 기준으로 해도 우리나라의 GDP 대비 재정규모는 28.1%(2004년)로 1983년 당시 미국(37.0%)이나 1986년 일본(32.2%)보다 크게 낮은 수준이다.

정부가 국민들에게 제공하는 서비스를 담당하는 공무원 수도 OECD 국가 중 최저 수준이다. 인구 1,000명 당 우리나라 공무원 수는 24.1명으로 미국(65.3명)이나 프랑스(73.4명)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고 일본(32.9명)보다도 낮다.

특히 우리 경제규모나 삶의 질 수준을 감안할 때 보건의료나 소방 경찰 복지 고용안정 교육 등 사회서비스 분야 공공인력은 더 부족하다. 우리나라 사회복지사와 같은 복지 분야 공무원 한 사람이 담당하는 인구는 3,919명으로 영국(286명)이나 미국(806명)은 물론 일본(2,066명)보다 많다.

이는 우리 공무원이 영국 공무원보다 13배 많은, 일본보다는 1.9배 많은 국민을 상대로 서비스를 해야 한다는 의미다. 그 만큼 국민 개개인의 피부에 와 닿는 서비스가 어려워질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가 된다.

소방관 한 사람이 담당하는 인구는 1,667명으로 일본(819명)의 두배이고 초등학교 교사 한 명이 담당하는 학생수도 30.2명으로 일본(19.9명)보다 훨씬 많다. 충남의 경우 구급대원 수요가 600명이지만 300명 밖에 없다.

언론에서는 이러한 사회서비스 분야에 공백이 발생하거나 사고가 나면 이를 보도하면서 정부의 역할을 요구한다. 그런데 공공기관의 사회 서비스 분야 인력이 늘어 갑자기 큰 정부라고 덮어씌운다. 정부가 조직을 바꾸고 공무원수가 늘었다고 하지만 대부분 이같은 교육과 치안 보건서비스 식품위생 분야다.  인권과 개인의 사생활이 관련된 이같은 기능을 민간이 잘 할 수 있을지 냉철하게 살펴봐야 한다.

할 일은 하는 효과적 정부로 나가야

결국 정부의 규모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현재의 우리 국민들의 삶에 필요한 공공서비스를 제공하고 미래를 설계하기 위한 정부의 역할이 중요해진다. 나라마다 각각의 다른 발전단계와 재정의 역할이 있는데 이를 무시하고 정부의 규모를 줄이는 것이 무조건 선이라고 할 수는 없다.

낭비 요인 없이 할 일은 하는 정부, 재정의 효율적 운영과 더불어 성장을 촉진할 수 있는 부문에 대한 투자자적 역할이 중요하다. 우리 정부가 재정사업을 심층적으로 평가하고 타당성 재검증 제도를 도입해 사업 우선순위가 낮은 사업에 대한 지출구조조정을 하는 등 전략적 재원배분과 지출 효율화, 제도혁신에 적극 나서는 것도 이 때문이다.

특히 중국 인도 등이 글로벌 경제에 편입되면서 더욱 치열해진 국제경쟁에 적응하기 위해서는 성장촉진부문에 대한 투자확대가 필수적이다. 이를 위해서는 기초과학 및 R&D 사회 인프라 투자 등 시장의 실패가 발생하는 분야, 시장의 원리대로 움직이지 않는 분야에 대한 공공의 역할이 강화돼야 한다. 내년 예산 편성에서 증가율이 가장 높은 분야 역시 R&D이다.

경제성장을 가장 잘 수행해 나가기 위해 정부는 끊임없이 효율성을 추구하고, 변화하는 환경에 맞는 역할을 재발견해나가야 한다. 정부가 변화하는 시대의 요구에 맞게 유연하게 대처해 나갈 수 있는 능력이 있으면, 국가자원이 효율적으로 사용되고 생산성 향상도 이뤄지게 된다.
UN가버넌스센터의 아시아지역 혁신포럼에 참가한 각국 고위공무원 대표들이 한국 정부의 혁신홍보관을 관람하고 있다.

더 이상 '작은 정부'가 국가운영의 금과옥조가 아니다. 정부 역할에 대한 진지한 성찰이 필요한 때다. 이는 책 속의 탁상공론도, 뚝딱 만들어서 선거에 쓰고 버리는 일회용품도 아니다. 국민들은 일을 제대로 하는 정부를 요구할 권리가 있고, 정부는 공공서비스 제공과 효율성·생산성 향상·혁신을 통해 모든 계층을 포괄하는 성장을 이뤄가야 한다. 비전2030이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한 국민적 대토론을 제안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