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섹시한 장애인이라는 기제(機制)에 대해

‘Making disability sexier.’ 이 문구는 장애인의 이동권과 여가생활(특히 관광)을 보장하기 위한 프로젝트 무의(無意)팀의 슬로건이다. 최근 장애인에게 있어 섹시함을 소유하고자 하는 욕망은 단지 이 프로젝트뿐만이 아니라 다양한 장애인 개인으로부터 발현되고 있다. 평소 도전해보지 않았던 옷을 입는다거나 클러빙(clubbing, 클럽에서 춤추기)을 한다거나 하는 형식으로 말이다. 하지만 내가 이 글에 한해 정확히 요구하고 싶은 것은 일종의 자유 그리고 해방감과 섹시함을 명확히 구분해보자는 것이다. 정리하자면, 오늘날 장애인이 갈망하는 섹시함을 은유적인 의미로서, 사회 전반의 터프함 혹은 쿨함을 상징하지 않고, 원초적인 관념에 따라 ‘섹스어필을 위한 섹시함’에 대해 얘기해보고 싶은 것이다.

SEX 라고 쓰여진 알파벳 블록 조각

내가 가장 많은 장애인 친구들과 친해질 수 있었던 경험은 2년 전 한국장애인재활협회에서 드림팀이라는 프로젝트를 진행했을 때이다. 당시 외부 인사 초청 강연을 진행하기 위해 몇 차례 회의가 소집되곤 했는데 언제나 제시되던 안건은 ‘장애인과 성’이었다. 회의 참석자의 8할 가까이가 장애와 관련한 단 하나의 강연으로 주저 없이 ‘성’에 관한 얘기를 듣고 싶다고 응답한 것이다. 이들의 당연한 호기심에 놀라기도 했고, 나 역시 다른 어떤 장애 안건보다 가장 우선적이며 생산적일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돌이켜봤을 때 그 강연이 진행되었더라면 어떤 방식의 성교육이 되었을지 모르겠으나, 기껏해야 섹스의 방식을 설명해주다 끝나지는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충분한 애무 후에 콘돔을 끼고 삽입해야 한다는 정도의 간단한 말을 조금 더 즐겁게 전해주는 정도가 아니었을까 한다.

장애인이 정말 성적인 섹시함을 얻기 위해서는 무엇이 가장 시급할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사랑하는 사람 또는 배우자의 충분한 이해이다. 이해라는 말은 사회에 만연하게 쓰여, 마치 지금 내 말이 상대방의 장애를 이해하고 그 너머를 보아 달라는 공익광고의 슬로건처럼 들리지만, 그보다 더 진실된 이해가 필요하다. 그 또는 그녀의 사정을 정확히 알아야 된다는 것이다. 상호 간에 숨김이 없는 성적 유희는 그 다음에 비로소 진행되는 것이다. 이 얘기를 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당신이 장애인을 전혀 모르기 때문이다. 성적 흥분을 제어하는 일은 본래 말초신경과 유사하게 관계를 갖고 있다. 대부분의 지체장애인 당사자가 척추/척수를 다쳐 하반신을 사용하지 못하거나 그 외의 근육병에 시달리는 경우 생리현상과 성생활에 있어 동시에 장애를 갖고 있을 수 있다. 장애인 애인 혹은 배우자의 외관상 장애와 속사정(그 안의 장애-특히 신경계와 관련한)은 완전히 다를 수 있다는 것이다.

새끼손가락을 서로 걸고 있는 두 사람

보다 직접적으로 말하자면, 당신의 파트너가 섹스를 위해 사전에 도뇨를 해야 할 수도 있고, 섹스의 절정에 치달았을 때 사정을 하지 못하고 끝낼 수도 있다는 것이다. 신경 손상으로 인해 제어하지 못하는 생리현상은 장애인 당사자들의 성적 욕망을 실현하는 데 있어 가장 커다란 장벽이다. 어릴 적부터 오줌을 싸면 잘못했다고 소금을 구해오라고 하질 않나, 최근 들어서는 아무렇지도 않게 감탄사로 ‘지렸다’고 말하는 폭력적인 한국사회에서, 실제로 요실금을 겪는 장애인들이 스스로 얼마나 수치심을 느끼고 있는지는 쉽게 알 수 있다. 또 분명히 정해진 성역할, 특히 섹스에서의 공과 수의 관계가 남녀 장애인 모두에게 심리적 부담감을 느끼게 만들며, 서로 다른 두려움의 근원을 이유로 섹스 혹은 연애를 거부한다. 그/그녀가 사랑하는 상대방이 잠자리 중 만족하지 못해 도망갈까 상상하기까지 한다. 베일에 싸여 신비롭기까지 한, 장애인과의 섹스 현실은 사실 이 정도로 난처한 수준이다.

말을 정리하자면 이렇다. 더 많은 장애인이 성적 섹시함을 쟁취하기 위해서는 장애인 당사자의 쿨해보이려는 노력과 별개로 스스로 밝히고 싶어 하지 않는 장애 그 전부를 상대방에게 보여줘야만 하고, 상대방은 이해가 가능해야 한다. 이것이 가장 선험적인 전제조건이다. 그러나 이것이 일방적인 신앙고백이 되지 않으려면, 장애인과의 연애를 기대하는 비장애인이 우선적으로 이해하고자 노력하고, 또 알아야만 하는데, 지금으로서는 알 턱이 없다. 휠체어에서 침대로 옮기고 말고의 편의적 문제보다 더 중요한 것은 섹스 전에 도뇨를 진행해야 할 것인지와 같은 생리적 문제이다. 결국 비장애인에게 있어 섹시한 장애인과 밤을 보낸다는 것은 앞서 설명한 모든 절차가 단지 고난이 아니라 당연하다고 여겨져야 하는 전제가 필요하다.

결국은 이와 관련한 정보가 요구된다. 아직 지식이 모자라 자세한 의학적 설명이 부연되기는 힘들겠으나, 장애인 당사자의 입장으로서 또 때로는 아내의 도움을 받아 비장애인 파트너의 입장으로서 각각 섹스와 관련해 알아두고 준비해야 할 중요한 문제 등을 알려주고자 하는 계획을 갖고 있다. 앞으로 얘기하려는 것은 어떤 장애인에게는 본인의 치부라고 생각되는 민감한 문제일 수 있다. 나는 그들의 장애를 강제로 세상에 알리는 데 흥미가 있는 것이 아니다. 장애인의 파트너들이 현실에 닥치고서야 준비를 하고, 어려움을 겪는 과정 혹은 섹스를 거부하는 과정을 보며, 사전에 꼭 알았으면 대비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예상되는 정보와 이해를 구하기 위해서이다. 섹시함을 겹겹이 메우는 것은 단지 옷과 조금 쿨한 성격 혹은 말투가 전부는 아니다. 각자 상대방에게 죄 짓는 기분을 갖지 않고, 서로가 만족하는 섹스를 위한 충분한 준비가 섹스어필을 채우는 것이다.

휠체어를 탄 두 명의 이용자가 교감하고 있는 픽토그램

첫 번째로 파트너 모두 장애를 이해하는 것이 가장 중요했다면 두 번째로는 부모님을 포함한 주변 사람들의 이해가 필요하다. 자녀의 안전한 성생활을 위해 부모 세대가 성교육을 받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얘기이다. 특히 연애 이전까지 장애인 당사자가 경험해보지 않은 사안이기에 이후 자녀에게 사랑하는 사람이 생겼을 때 어떠한 면에서 장애를 컨트롤해야 할지를 알려줄 수 있으면 더욱 좋다. 결국 보호자로서의 신분으로 주치의와 더 자주 만나본 부모가 당사자보다 장애의 정도를 더 잘 파악하고 있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주변 장애인 친구로부터 장애인-섹스와 관련한 부모의 반응을 들을 수 있었다. 첫 번째로는 자녀가 사춘기에 접어듦에 따라 연애를 비롯한 위 사안에 대해 궁금해하고 관심을 갖는 부모의 반응이었다. 관심을 갖는 부모일수록 자연스럽게 자녀를 위해 무엇을 어디까지 도와줘야 할지 고민하게 된다. 이러한 부모의 호기심과 고민만으로도 큰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 더 나아가 연애 관계까지 개입한다면 문제가 될 수 있겠지만, 어느 정도의 장애인 자녀를 위한 코칭, 특히 성교육적 관점에서 털어놓고 얘기할 수 있는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고 본다.

이와 반대로 자녀가 사춘기에 접어들었을 때 도통 적응하지 못하는 부모님들이 있다. 요새 왜 이러냐는 둥의 시비부터 시작해 심할 경우에는 “변한 네가 징그럽다”고 말하는 부모도 있었으며, 더러는 “너는 연애하지 말아라. 남에게 폐 끼치지 않고 혼자 사는 것이 좋다”고 말하는 부모도 있었다. 이러한 부모의 보수적인 태도가 일으키는 가장 큰 문제는 장애인 자녀의 자신감을 위축시키는 데 있다. 나를 제외하고 나의 장애에 대해 가장 잘 아는 ‘가족’이 자신에게 연애와 관련해 혐오 혹은 반대의 표현을 보인다면 그들 인생에 있어 어느새 사랑은 ‘자신이 해서는 안 될’ 일종의 트라우마가 되어버릴 수도 있다.

이처럼 장애인에게 성적 매력이 더해지기 위해서는 연인을 비롯한 부모님까지 주변 사람들의 전폭적인 이해와 지지하는 자세가 요구된다. 결국 다시 말해, 장애인을 대상으로 하는 성교육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단지 생리학적 성교육의 범위를 벗어나 심리적 카운슬링까지 장애인 당사자와 그 주변인들에게 ‘장애와 신체’ 그 전범위에 걸친 재활교육이 필요하다. 이 칼럼을 통해 독자 분들께 다시 한 번 고민할 수 있는 시간이 주어질 수 있기를 희망한다. 미래 당신의 장애인 자녀가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연애를 하고, 가정을 이루는 단계에서 당신은 전폭적으로 지지하고 응원할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는지, 또 성생활에 있어 현실적으로 어떻게 조언해주어야 할지 충분한 배경지식은 준비가 되었는지 말이다.

*글= 변재원 작가

변재원 작가는 1993년 10월 30일생으로 생후 10개월에 불의의 의료사고로 지체장애인이 되었다.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예술경영을 전공했고 장애와 관련한 다양한 주제의 칼럼들을 기고하고 있다. 마주하기 힘든 현실을 그대로 바라보고, 사회의 무게를 함께 짊어지는 책임있는 삶을 사는 것이 그의 꿈. 가장 존경하는 인물은 존레논과 아웅산 수지 여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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