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으로부터 벗어날 자유

아, 지독한 감기에 걸렸다. 낭만적인 4월 중순에는 단지 벚꽃만이 오고 가지 않는다. 마음을 심란하게 흩트려놓는 감기도 부쩍 찾아오는 계절이다. 나 또한 감기 때문에 이 원고를 쓰기까지 얼마나 콜록대며 분투했는지 모른다. 미세먼지가 도시를 뿌옇게 뒤덮은 한국에서의 외출이 걱정되면서도 이곳의 상황이 아주 좋지는 않다.


지난 4월에는 미국과 독일, 프랑스, 벨기에 그리고 스페인까지 5개의 국가를 들렸었는데 스페인을 제외한 4개 국가에서는 아직도 눈이나 우박이 내리기도 했다. 그중 미국 보스턴에는 도로에 눈이 쌓여있었다. 독일의 4월은 옛 속담에서와 같이 알다가도 모를 변덕이 심한 날씨인지라 어김없는 환절기였다. 벨기에 브뤼셀에는 지난 달 테러의 여파로 가뜩이나 무겁고 우울한 공기가 더해져 한파와도 같은 칼바람이 불고 있었다. 4월은 어째서인지 어느 곳에서나 썩 위험하게 느껴지는 달인 듯하다.


털모자를 쓴 사람


열흘 전부터 지독한 감기에 시달리고 있다. 베를린에서 시작된 감기는 독일 여행 노선을 따라 함부르크를, 프랑크푸르트를, 쾰른을 타고 기어이 벨기에 국경을 넘어 나의 작은 프랑스 집까지도 따라왔다. 나의 여자친구는 여행 막바지에 결국 감기가 옮아 지금 옆자리에서 콜록거리고 있다. 일주일이 넘도록 병든 나를 보살핀다고 그렇게 고생하던 이가 같은 처지에 놓여 아파하고 있으니, 보는 내 마음이 미안하고 또 스스로 원망스러워 가슴이 시리도록 아프다. 그녀가 힘에 겨워 잠들어 있는 모습을 보고만 있어도 눈물이 그렁그렁해진다.


머리맡에 잠들어있는 그녀를 보며 그런 생각을 한다. 여자친구가 내 곁에 없었더라면, 이렇게 외국에서 공부를 하고 여행을 다닐 수 있었을까 하는 고민 말이다. 동반자라는 존재는 누구에게나 언제나 고귀한 인연이지만, 보다 현실적으로 장애인인 내게 동반자는 나의 불가능함을 가능하게 하는 실로 감사한 존재이다. 성인 장애인의 대다수가 가족에게 활동보조를 의지해야 하는 것이 현실이다. 밖에서 인연을 찾는 것은 보통 힘든 일이 아니다. 옷깃만 한 번 닿아도 인연이라지만, 옷깃이라도 한 번 스치려면 외출을 해야 하는데 당장 그 외출마저 자유롭지 못한 실정이니 말이다.


그래서인지 해외에서 여자친구의 도움을 받아 함께 유학하고 있는 나는 이러한 일상을 두고 더욱 그런 생각이 드는 것이다. 그녀에 대한 고마움과 그녀가 내게 주는 사랑을 단지 ‘도움’으로 표현하고 싶지만은 않다. 그럼에도 긴 시간 동안 내 곁에 함께 있어줘서 고마운 그 마음을 전하고 싶다.


비행기 안에서 본 창밖


처음 프랑스에 나오게 된 것도 순전히 여자친구 덕분이었다. 작년까지만 해도 대학졸업을 앞두고 진로에 대한 고민이 한창이었다. 해외에서 공부를 한다는 것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우리 부모님께서 장애인 자녀를 혼자 외국에 보낼 리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었고, 나 또한 마찬가지로 나 혼자서 살아갈 수 있을지 두려웠기 때문이다.


그러한 내게 여자친구가 해외로 나가 함께 공부하기를 처음으로 권유했다. 한국과는 또 다른 세상을 볼 수 있다는 이유로, 특히 장애인들에게 훨씬 더 평등한 기회가 주어지는 세상을 볼 수 있다는 이유로 말이다. 조금 가난하게나마 같이 절약해 살아갈 수 있고, 비록 외국일지라도 서로를 의지하면서 돕고 살면 어떤 장벽이 있어도 못할 것이 없다고 설득하면서까지 말이다. 그래서 그녀 덕분에 이곳에 나와 살아볼 수 있었던 것이고 이 유럽에서의 긴 일상을 더욱 소중하다고 느끼는 이유이다.


나의 사례처럼 적지 않은 장애인들이 자신의 동반자를 만나며 새로운 경험의 기회를 얻기도 하고, 상대와 자신의 일상을 합쳐가며 삶이 완전히 달라지는 경험을 한다. 이러한 행복감 속에서 여전히 적응되지 않아 힘든 것은 동행을 할 때마다 느끼는 시선과의 싸움이다.


예컨대 장애인 커플끼리 평범한 길거리를 다니거나 음식점에서 식사를 할 때 주변의 시선을 한 몸에 받고 때로는 듣고 싶지 않은 수군거림도 듣게 된다. 내가 아는 최악의 경우는 서로 어떻게 사랑을 표현하고 스킨십을 하는지를 상상하며 수군대는 것을 들었다는 한 지인 커플의 말이었다. 비장애인과 장애인이 커플인 경우에도 시선의 폭력은 여전히 유효하다. ‘장애인과 연애를 하는 상대방도 어딘가에 장애가 있을 것’이라고 판단하는 사람이 일부 있다는 것이 그 폭력의 선입견 중 하나이다.


하얀색 종이배와 빨간색 종이배


나의 동반자인 가연이와 함께 국내에 있을 때나 해외에 있을 때도 여전히 그 시선을 느끼며 살아간다. 아무리 시설과 복지가 잘 되어 있는 어느 선진국가라 하더라도, 조그마한 아시아 여성 한 명과 목발을 짚은 남성 한 명이 길거리를 지나다니고 있으면, 신기해서 쳐다보는 사람들부터 때로는 위협적으로 바라보는 이들까지, 타지에서도 우리는 폭력적인 시선의 불쾌감을 여전히 느끼며 살아간다. 이러한 상황이 닥쳐올 때면 동반자에게 미안한 마음을 갖게 된다. 나와 함께 다녀서 그녀도 세간의 오해를 받는 것은 아닌지, 때로는 느끼지 않아도 될 두려움을 함께 느끼는 것은 아닌지 하는 걱정이 든다.


세상에 바라는 것이 있다면 장애인과 그 배우자에게 주변의 시선으로부터 벗어날 자유를 허락하는 것이다. 아무리 우리가 낯설게 느껴지더라도, 우리를 뚫어져라 쳐다보지 않고, 그저 평범하게 인식하고 지나쳐주었으면 좋겠다. 너무나도 간단한 일인데 존중받기 어려운 일이다.


손잡고 걸어가는 커플


글을 쓰고 있는 침대 머리맡에서 콜록거리며 잠들어 있는 나의 동반자를 보며 생각한다. 그녀 덕분에 새로운 세상을 알게 되었고 경험하게 되었는데, 그녀는 나 때문에 장애에 대한 견디기 힘든 오해와 시선을 분담하는 역할을 자처하게 된 것은 아닐까 하고 말이다. 이러한 것을 원고를 통해 말하고 싶었다. 당신이 오늘 길거리를 지나다니며 무심코 뚫어져라 본 어느 장애인은 생각이 복잡해져 집에 돌아와 잠들기 전까지, 그 동반자를 두고 남몰래 심각한 마음고생을 하고 있다는 것을 말이다.


감기에 고생하며 누워 있는 나의 동반자에게 지난 1년간의 여행에 대한 감사함을, 그리고 이틀 뒤 다가오는 생일에 대한 축하함을 남몰래 전하며, 앞으로도 우리 잘 살아보자고, 좀 더 담담해져보자고, 그리고 무엇보다 폭력적인 시선과 오해를 함께 걷어내자고 조용히 다짐해본다.


*글= 변재원 작가










변재원 변재원 작가는 1993년 10월 30일생으로 생후 10개월에 불의의 의료사고로 지체장애인이 되었다.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예술경영을 전공했고 장애와 관련한 다양한 주제의 칼럼들을 기고하고 있다. 마주하기 힘든 현실을 그대로 바라보고, 사회의 무게를 함께 짊어지는 책임있는 삶을 사는 것이 그의 꿈. 가장 존경하는 인물은 존레논과 아웅산 수지 여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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