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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보편적인 일기 – 프랑스의 대학 교육

프랑스 대학의 1교시

프랑스에 도착하여 처음으로 어학 수업을 받게 되었습니다. 참고로 저는 페르피냥 국립대학 부속 어학당인 라는 곳에서 수업을 받고 있습니다. 당황스러운 것은 대학 첫 교시가 오전 8시라는 점입니다. 아침 6시 40분쯤 일어나 씻고 아침밥을 차리고 급히 가방을 싸고 등교하였는데, 오전 7시 30분부터 대학교 안이 바글바글합니다.

프랑스 대학

단지 대학만 그런 것은 아닙니다. 직장도 마찬가지입니다. 대학의 경우 8시부터 수업을 시작하고, 직장의 경우 8시 30분부터 업무를 시작(즉 8시 전까지 출근)합니다. 그렇게 시작해서 오후 5시 30분에서 6시면 모든 업무와 대부분의 수업이 종료됩니다.

이후로는 야근도 야간 자율학습도 없습니다. 모든 것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개인 시간입니다. 상사가 함부로 문자나 이메일을 보낼 수도 없으며 독촉할 수도 없습니다. 일과 삶이 분리되어 있는 프랑스에서 퇴근 후 업무 지시는 크나큰 실례이기 때문입니다.

프랑스 대학

이러한 유럽의 야근 없는 삶을 두고 어느 사회학자는 청교도식 개인주의 경영 환경이라 부르고, 아시아권의 경우 유교적 가족주의 경영 환경이라 부르기도 합니다.

저는 평소에 프랑스 사람들이 그다지 일을 많이 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는데, 아침을 맞이하는 것이 공식적으로는 한국보다 조금 빠르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물론 한국의 경우에도 근무시간이 9시부터라고는 해도 그 시간에 출근하는 사람은 없겠지만 말입니다.

오전 7시 30분부터 대학이 소란스러운 것은 처음 경험해봤기 때문에 놀라울 따름이었습니다. 프랑스처럼 한 시간 일찍 당겨서 저녁이 있는 삶을 살 수만 있다면 그렇게 할 텐데요. 아쉽게도 한국 역시 한 시간 일찍 시작한다고 해서 저녁이 자유로워질 것 같지는 않습니다. 아마 0교시를 만들겠죠. 이미 존재하기도 하고 말입니다.

프랑스 대학의 학식

프랑스 대학 식당

학교를 다니는 내내 여태껏 구내식당이 어디 있는 줄 몰랐습니다. 점심마다 바게트 샌드위치로 한 끼를 때우곤 했는데 오늘 처음 식당을 발견해 학식을 먹으러 왔습니다. 놀라운 점은 학식에도 에피타이저와 디저트가 따로 있다는 것입니다. 에피타이저 종류 열 가지 중 하나, 디저트 종류 열 가지 중 하나씩을 선택한 뒤 주메뉴를 다시 고르면 바게트와 감자튀김을 그 위에 함께 줍니다. 제가 고른 이번 점심 메뉴는 마요네즈샐러드, 생선구이, 호박요리, 바게트와 감자, 산딸기 아이스크림입니다. 가격은 3.25유로로, 한화로 약 4,300원 정도입니다. 물론 장애학생이 오면 식당 직원이 보조해줍니다. 꽤나 민주적이고 합리적인 식사입니다.

학력에 대하여

글을 쓰고 있는 지금, 목요일 밤도 다 지나가고 있습니다. 한국은 두 시간 뒤면 날 밝은 금요일이겠지요. 오늘은 유난히도 잠 못 든 이들이 많은지 페이스북에 술주정 글들이 심심찮게 보이고는 합니다. 아마 개강 초라 이제껏 놀다 공부하려니 마음이 심란하거나 일교차 큰 가을이 다가오기 때문에 자신도 모르게 그렇겠지요.

프랑스에 머무는 우리도 그렇습니다. 이번 주 개강을 시작으로 어학연수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습니다. 강남역에 있는 어느 프랑스어학원을 다닐 때는 프랑스어가 그토록 쉽고 재밌더니, 이곳에 와서 배워보니 너무도 어렵기 그지없습니다. 수업시간에 선생님이 무슨 말씀을 하는지 조금도 알아들을 수가 없는 노릇이니, 남들 다 웃을 때 웃지도 못하고 나 혼자 바보가 된 것만 같습니다.

특히 스페인어를 모국어로 사용했던 친구들은 어찌나 프랑스 말을 잘하는지, 배우는 것도 금방입니다. 아무래도 같은 라틴어 뿌리를 갖고 있어 유사한 문형이 많아 그런 것 같습니다. 그들의 지적, 학습 수준과는 아주 별개로 어느 아시아인들보다 프랑스어를 잘하기에 우울해지는 것은 사실입니다. 모두 새로이 배우는 어학연수라고는 하지만 아주 공평하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수업을 듣는 학생들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던 일주일을 보내고, 이제야 한숨 돌렸습니다. 부르고뉴 와인을 한 병 마시고도 성에 차지 않아, 우리 집에 놀러온 한국인 학생 손님이 선물해 준 하이네켄을 또 한 병씩 각자 마시고 한참을 대화하다가, 내심 서러운 마음도, 답답한 마음도 다 술기운에 털어버리고 잠들려는 평일 마지막 순간을 부여잡고 글을 쓰고 있습니다.

오늘 제가 하려는 얘기는 학력에 대한 것입니다. 어디까지나 제 얘기를 하고 싶어서 시작하는 얘기입니다. 저는 한국에서 남부럽지 않은 국립예술대학인 한국예술종합학교(이하 한예종)를 졸업했습니다. 예술대학으로서는 유일한 국립대였기에 아주 저렴한 학비로 다닐 수 있었으며 주변 사람들에게도 언제나 쉽게 인정받을 수 있었습니다.

학력에 대한 강박이 유독 심한 한국에서 한예종 출신이라는 점은 학력 콤플렉스로부터 벗어나기 아주 훌륭했으며, 또 적절했습니다. 딱히 일반대학과 비교당하지 않고도 그럴싸하게 인정받을만한 곳이었기 때문입니다. 인정받기 위해 학교를 다닌다는 말처럼 들리는 것 같아 거북하기도 하지만, 어디까지나 ‘학력에 대한 상대적 차별’을 중심으로 두고 하는 얘기입니다. 그렇게 한예종을 지난 4년간 다닌 끝에 학교의 모든 수업을 마친 뒤 이 곳 프랑스에 왔습니다.

프랑스에 오자마자 가장 크게 느끼는 것은, 또 한편으로 가장 무의미하다고 느끼는 것은 굳이 ‘학력에 목매달 필요 없다’는 것입니다. 제 말은, 프랑스 사회가 정말 68혁명 당시의 뜻대로, 파리 1~12 대학의 이름에 따라 완전히 학력 차별 없는 평등한 국가라는 얘기를 하고자 하는 것이 아닙니다.

프랑스는 엘리트주의적이고 학술적인 측면에 있어 굉장히 보수적인 국가 중 하나입니다. 아무리 소르본이라는 이름이 사라졌다 한들, 아직까지 이들 사이에 잠재적으로 대학 간 비교는 (물론 한국처럼 광적이진 않지만) 남아있으며, 특히 일반 대학을 넘어서, 프랑스 내 상위 10퍼센트 내외의 학생만 입학할 수 있는 그랑제꼴 출신들이 프랑스 사회에서 엘리트로 살아가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프랑스 국기

유럽 사회에 나와서 보니, 학력에 대한 집착과 한국에서의 학벌주의는 전혀 조금도 중요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경향신문에 보도된 어느 기사에서처럼 ‘헬조선’을 탈출해서 사는 것을 염두에 둔 사람이라면, 그들의 학력이 명문대이건 아니건 그것은 아무 상관없이, 다 똑같이 새로 시작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제가 다니던 학교 한예종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질문을 보았습니다. ‘한국에서 4년 동안 미대를 다녔는데, 프랑스 보자르(예술대학)에 바로 석사과정으로 입학할 수 없다는 것이 사실인가요?’ 사실이라고 합니다. 그 글을 읽으면서 왜 질문을 했는지 이해는 하지만, 한편으로는 ‘학위를 따려고 미술을 하는 것도 아닐 텐데 왜 저렇게 집착하는 것일까’ 하고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제가 한예종을 나왔던, 어느 대학을 나왔던 프랑스 보자르에서 바로 석사과정에 입학하는 것은 실력으로 증명하지 않는 한,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이 사회에 편입하려는 모든 외국인은 단지 그 어떠한 학력으로도 본인을 증명할 수 없고 능력을 증명해야만 합니다.

그렇다고 부정할 수 없는 것은, 소위 쉽게 말하는 명문대에서 양질의 교육을 받는 학생들까지 폄훼할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경험하고 있는 풍부한 교육환경은 타 대학에 재학 중인 학생들에 비해 훨씬 많은 기회를 가질 수 있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그들의 교육환경에 관한 얘기이지 학위에 관한 얘기는 아닙니다.

한국에서 재수, 삼수에 드는 비용, 편입에 드는 비용은 최소 연간 2,000만 원부터 많게는 4,000만 원까지(지방 학생이 상경해 공부할 경우) 든다는 신문 기사를 읽은 적이 있습니다. 만약 제게 자녀가 있다면 재수나 편입보다는 한국 밖으로 나가보기를 추천할 것 같습니다. 현실감각 없고 철없는 소리겠지만, 프랑스에서 1년간 체류하는 비용은 저 금액의 반밖에 들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때까지의 모든 얘기가 다 허상 혹은 망상에 지나지 않더라도, 별것 아닌 학력 때문에 한국 사회에서 아등바등 청춘을 소비해야 하는 현실이 지극히 비정상적인 것은 사실입니다. 인천국제공항 밖으로 나오는 순간, 단지 학력만이 당신을 보증해주는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글= 변재원 작가

변재원 작가는 1993년 10월 30일생으로 생후 10개월에 불의의 의료사고로 지체장애인이 되었다. 현재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예술경영을 전공하고 있으며, 장애와 관련한 다양한 주제의 칼럼들을 기고하고 있다. 마주하기 힘든 현실을 그대로 바라보고, 사회의 무게를 함께 짊어지는 책임있는 삶을 사는 것이 그의 꿈. 가장 존경하는 인물은 존레논과 아웅산 수지 여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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