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씨이야기] 더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한 조건


“당신이 나를 더 좋은 사람이 되고 싶게 했어.”


1997년작 영화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에서 심한 결벽증과 강박증 증세가 있는 소설가 멜빈 유달(잭 니콜슨 분)이 캐롤 코넬리(헬렌헌트 분)에게 한 말이다. 중년의 나이가 될 때까지 마음에 들지 않으면 사람과 사물을 가리지 않고 냉소적으로 바라보던 멜빈은 어쩌다 이런 멋진 말을 하게 되었을까? 아니, 어쩌다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을까?


 우리는 살아가면서 항상 더 좋은 사람이 될 것인지 아니면 좋지 않은 사람이 될 것인지에 대한 갈등에 처하곤 한다. 만원 지하철에서 노약자에게 자리를 양보하는 더 좋은 사람이 될 것인지 아니면 자는 척 하는 좋지 않은 사람이 될 것인지로 하루를 시작한다. 직장 동료의 도움 요청에 응하는 더 좋은 사람이 될 것인지 일찍 퇴근하기 위해 적당히 거절하는 좋지 않은 사람이 될 것인지도 고민한다. 퇴근 후 가족들을 위해 집안일을 마무리하는 더 좋은 사람이 될 것인지 피곤하다며 TV를 보다 잠이 드는 좋지 않은 사람이 될 것인지를 갈등하며 하루를 마감하는 삶을 살아간다.


 보통의 경우 일상생활 속에서 더 좋은 사람이 될 것인지 아닌지는 나 자신이 스스로 내리는 결정임에도 불구하고 항상 두 가지를 놓고 갈등하기 마련이다. 더 좋은 사람이 되면 좋지만 막상 더 좋은 사람이 되려면 대체로 내 몸이 불편하기 때문이다. 아니면 내가 가지고 있는 것 중 무엇인가를 내어주거나 포기해야 하는 일종의 ‘손해’를 보아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 손해를 스스로 용인할 수 있는지 없는지를 판단해 더 좋은 사람이 될지 좋지 않은 사람이 될지를 결정하게 된다. 그런데 오로지 자신의 생각에만 빠져 살아온 독선가 멜빈은 어째서 캐롤을 통해 자신이 더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을까?


 극 중에서는 낙천적인 캐롤이 독설가이자 강박증이 있는 멜빈의 말에 상처를 입고 그것을 덮어 잊을 수 있도록 칭찬을 해달라는 요청을 하게 된다. 멜빈은 그에 대해 자신이 증오할 정도로 싫어하는 강박증 완화제 성분의 약을 먹게 된다. 그 약을 먹게 된 이유는 바로 캐롤이 그 동안의 괴팍했던 자신을 변화시켜 더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이를 차근차근 설명하듯 고백하는 장면에서 나온 대사 “당신이 나를 더 좋은 사람이 되고 싶게 했어.” 캐롤의 낙천적인 매력에 빠져들면서 스스로의 단점을 변화시켜야겠다는 마음을 먹게 된 멜빈. 이 대사는 그를 위해 세상에서 가장 하고 싶지 않았던 강박증 완화제를 복용하게 만든 칭찬이었던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더 좋은 사람이 될 수 있는 방법을 스스로가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못한 경우가 많다. 방법을 모를뿐더러 자신의 생활에서 애초에 배제시켜 자신과 무관하게 만드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특히 내가 모르는 타인을 위해 더 좋은 사람이 되고자 하는 생각은 더욱 배제되기 마련이다. 하지만 우리 주변에는 이와 반대로 자신의 손해에 아랑곳하지 않고 항상 더 좋은 사람이 되어 있는 채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다. 심지어 이런 사람들은 손해를 희생으로 키우면서까지 좋은 사람이 되어버리는 경우도 많다.


 우리나라에 있는 수많은 단체와 기관에서 어려운 사람들을 돕는 자원활동을 하거나 아니면 기부를 통해 자신이 가진 것을 나누는 사람들이 많다. 혹은 자신이 가진 재능을 아낌없이 나누는 사람들도 수를 셀 수 없을 정도로 많다. 이들은 자신의 손해와 희생으로 스스로 더 좋은 사람이 되어 다른 사람들을 돕는 일에 중독되어 헤어나오질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야말로 착하고 보람찬 누구에게나 즐거운 중독이다. 그런데 이런 사람들은 어떻게 더 좋은 사람이 될 수 있었을까? 처음에는 자신들이 해야 할 좋은 일을 어떻게 시작하고 어디에서 할 수 있는지도 몰랐던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심지어 자신이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하는지 아닌지에 대한 생각도 하지 못했다가 빠져들게 된 사람들이 많다. 이렇게 좋은 사람이 되는 첫 인연 중 가장 많은 경우가 바로 ‘기부’로부터 시작된다.


 기부를 하면서 기부하는 기관에 관심을 갖게 되고 그 관심이 방문으로 이어지게 되는 경우가 많다. 기관에 방문해 기관이 하는 일에 대한 설명을 듣고 그에 대한 수혜자들의 모습을 전해 듣게 된다. 그때부터 그 동안 마음 속 어딘가에 잠재되어 있던 착한 마음 세포들이 마구 되살아나 스스로를 주체하지 못하는 지경까지 이르게 된다. 그 뒤로는 결국 본인이 스스로 기부하던 기관과 좋은 일을 함께 하게 된다. 뿐만 아니라 자신이 해준 좋은 일에 행복해하는 수혜자를 보며 그에 몇 곱절되는 행복과 보람을 느끼게 되니 중독되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다.


 결국 자신이 기부해온 단체나 기관으로부터 더 좋은 사람이 되는 방법을 배우게 되는 셈이다. 이렇게 좋은 일에 중독되면 누구나 비슷한 증세를 보이는데 그것이 바로 좋은 일을 함에 있어서 점점 더 아낌없이 나눈다는 것이다. 대체로 이미 기부를 하고 있는 사람들의 경우 여러군데의 단체나 기관으로 기부를 늘려가는 사람들이 많다. 또한 자원활동도 조금씩 빈도 수를 늘리거나 생활이 가능한 한도 내에서 활동 영역을 넓히는 경우가 많다.


 그야말로 멜빈의 마음을 움직인 캐롤의 사랑스러운 매력보다 더 큰 나눔과 봉사의 매력을 스스로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좋은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좋은 일들로 우리 사회는 따뜻함을 스스로 채워가고 있다. 7~80년대 초고속 성장으로 생긴 취약계층과 그에 대한 국가 복지정책의 수많은 빈틈을 우리 주변의 더 좋은 사람들이 자생적으로 메꾸어 가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 정부와 정치권은 이러한 빈틈을 채워나가기 위해 무엇을 하고 있을까? 온당히 세금을 걷어 나라 살림을 하는 정부와 정치권이 풀어 나가야 할 일을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행하고 있는 와중에 과연 그들은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일까?


 


 우리 국민을 잘 보살피고 지켜줘야 하는 책무를 맡고 있음에도 번번히 구호만 외치거나 포장만 그럴듯하게 보여주는 헛다리를 짚는 정부와 정치권. 부실 정책만 내놓으면서 관리도 제대로 안하는 그들을 더 좋은 정부와 정치권이 되고 싶게 만들 수 있는 방법은 없는 것일까?


어쩌면 우리 정부와 정치권이 더 좋게 바뀌고 싶다는 마음을 갖게 하기 위해선 웬만한 것들은 모두 이해해주며 지켜봐주는 캐롤보다 잘못된 점은 따갑게 지적하는 독설가로서의 멜빈이 필요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해본다.


*글= 한순웅 실장 (대외사업실)

*사진= 영화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 캡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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