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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패와 고난은 인생의 보약

[박원순/ 희망제작소 상임이사]

1975년 개나리.진달래가 흐드러지게 핀 관악산에서 생긴 일

“불행은 혼자 오지 않는다”는 말이 있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슬프고 힘들고 억울한 일들이 연속으로 일어나는 때가 있다. 왜 나만 이렇게 불행할까, 왜 하필이면 이 고난이 나에게만 올까 하는 말이 저절로 나오기도 한다. 하느님이 무심하고 때로는 밉기조차 하다. 온 세상의 종말이 온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세상을 살다보면 어느 누구나 이런 일들이 한두번은 있기 마련이다.

나는 비교적 젊은 나이에 그런 순간이 왔다. 대학 입학한지 얼마되지 않을 때였다. 신입생으로서의 특권을 누리며 하루 하루가 즐거웠다. 뉴스위크를 끼고 다니며 영어공부에 취미를 들였고 1주일에 두어 차레는 여대생들과의 미팅을 즐기기도 했다. 사회학 개론 공부가 그렇게 재미있어 이런 저런 자료를 마구 찾아보고 원서를 읽어댔다.

그러던 어느날이었다. 개나리와 진달래가 서울대 관악산 캠퍼스를 화려하게 장식한 오후였다. 저녁에는 이화여대생과의 미팅이 잡혀 있어 아주 즐거운 마음으로 콧노래까지 흥얼대며 도서관 한 모퉁이에서 공부를 하고 있었다. 한참 후에 바깥이 하도 소란스러워 아래를 내려다 보았더니 한참 데모가 벌어지고 있었다. 그런데 경찰이 너무 잔혹하게 진압하여 학생들이 피투성이가 되고 잡혀가고 야단이었다. 어린 마음에 도저히 참을 수가 없어 나도 나가 다른 학우들과 함께 경찰을 교문밖으로 밀어내고 거기서 한동안 대치선이 이루어졌다. 이윽고 훨씬 더 증강된 병력으로 경찰이 밀어닥쳤고 앞에 섰던 수백명의 학생들은 체포되었다. 내가 그 안에 끼어 있었던 것이다. 물론 주동자들은 이미 도망친 후였다.

완벽한 면학분위기가 조성된 영등포구치소

동양 최대라고 하는 남부경찰서에 연행되었다. 잠깐 데모에 참여한 것 뿐이니 곧 나올 수 있으리라고 생각한 예측은 빗나갔다. 긴급조치 9호가 선포된 직후여서 당국의 조치는 엄했다. 나는 구속되었고 학교에서도 제적되었다.

남부경찰서로 면회를 오신 부모님의 얼굴을 뵐 용기가 나지 않았다. 서울대 합격했다고 동네잔치까지 한 마당에 그 몇 달도 지나지 않아 그 자식이 반정부데모로 감옥에 갔으니 우리집은 바로 초상집으로 변하고 말았다. 시골에서 농사를 짓던 부모님이 땀흘려 지은 농산물을 팔아 겨우 자식을 서울로 보내 공부를 시켰는데 이런 꼴을 보자고 그렇게 생고생을 하셨단 말인가.

남부경찰서 유치장의 첫날을 나는 잊지 못한다. 그날 경찰관들이 보다 남은 신문 한 조각을 옆에서 훔쳐보니 독산동에서 강도살인 사건이 일어났다는 보도가 있었다. 그런데 하필이면 그 강도살해범이 바로 우리 유치장 방에 들어온 것이다. 혹시나 그 놈이 내 옆에서 자다가 내 목을 졸라 죽이면 어떡하나 하는 생각이 들어 나는 내 잠자리를 멀리 일찌감치 잡아놓고 있었다. 이런 생활을 한달쯤 하다가 다시 영등포구치소로 옮겨갔다.

  

 

 

 

 

 

 

두어달쯤 지나가니 적응이 되어가기 시작하였다. 무엇보다도 행복한 것은 영치되는 책을 읽을 수 있는 일이었다. 한창 상상력이 약동하는 시기에 감옥안에서 읽는 책의 내용은 그대로 살이 되고 피가 되는 느낌이었다. 이 때 읽었던 헤겔의 철학서들, 마르쿠제의 <이성과 혁명>, 리스먼의 <고독한 군중> 등의 책은 지금도 기억에 생생하게 남아 있다. 끙끙대며 읽었지만 사회과학적 용어와 문장에 친해지는 기간이기도 하였다. 그 외에도 다양한 소설과 에세이 등이 큰 감명을 주었다. 성경도 꼼꼼하게 묵상하며 읽었고 그 시대적 배경을 기반으로 한 김동길의 <사반의 십자가>나 헤세의 <싯다르타>등도 종교적 열정과 번민을 안겨 주었다. 아마도 감옥을 가지 않았더라면 대학시절 4년 내내 합쳐도 못읽었을 책들을 그 4개월만에 다 읽었다. 감옥은 그야말로 완벽한 면학분위기가 조성된 곳이었다.

어디 책 뿐이었겠는가. 미성년자방에 있으며 들락날락한 동시대의 동년배 비행 청소년들과 많은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처음에는 험악하고 무서울 줄 알았던 이들의 심성은 오히려 너무나 단순하고 착하기만 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징역보따리에 치약, 비누 등을 가득 모아가지고 실형이 확정되면 그것을 짊어지고 새벽녘 김천소년교도소 등으로 멀리 떠날 때 쯤이면 언제 다시 만날 수 있을지 서로 부여잡고 눈물을 흘리기도 하였다.

돈으로도 사지 못할 귀한 체험

이영희 선생은 어느 책에서 “모든 판검사는 0.75평짜리 감옥에 살아보아야 한다”고 일갈하셨다. 그런 생활을 해 보지 않고서는 자신이 구형하고 선고하는 형량의 의미를 진정으로 알기 어렵다는 것이다. 행복하게도 나는 일찌감치 그런 체험을 하였다. 법조인으로서, 사회운동가로서 나는 젊은 시절, 인생의 막다른 골목에서 만났던 수많은 불행한 삶들을 느끼고 이해하고 함께 할 수 있었던 것이다. 돈을 주고도 살 수 없었던 귀한 체험을 내가 할 수 있었다.

4개월쯤 후 석방될 수 있었지만 제적상태는 쉽게 풀리지 않았다. 계속 많은 고난이 지속되었지만 나는 인내력을 이미 터득한 후였다. 출옥후 방황생활과 이어진 고시공부 역시 나에게 많은 경험을 주었다. 나는 검사생활도 했고 인권변호사 활동도 했다. 해외에서 2년간의 유학생활도 가졌다. 마침내 시민운동가가 되어 참여연대 사무처장, 아름다운재단, 아름다운가게 상임이사로서 한국의 시민사회에 발을 디뎌 이런 저런 역할도 해 낼 수 있었다. 그리고 재작년부터 희망제작소를 만들어 한국사회의 한단계 업그레이드를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다.

 

 

 

 

 

 

고난은 쓰지만 인생을 위한 보약

이 모든 과정에서 나의 젊은 시절 감옥생활은 늘 나에게 용기와 격려가 되었다. 어린 시절 이미 나는 산전 수전을 다 겪었으니 나머지 두려운 것이 없었다. 억지이기는 하였지만 시대의 한가운데로 밀려가 우리 시대의 중심적 과제가 무엇인지, 내가 할 역할이 무엇인지를 알게 되었다. 가끔은 상상해 본다. 내가 감옥을 가지 않았더라면 하고 말이다. 그러나 나는 감옥의 경험없는 내 인생을 상상하기 어렵다. 감옥을 가지 않았다면 오늘의 내가 없었을 것이다. 아마도 나는 사법고시에 합격해서 검사가 되어 지금쯤은 검사장이 되어 있었을지도 모른다. 때로는 정직하고 의로운 사람을 억울하게 구속했을지도 모르고 누군가의 로비를 받고 떡값을 받았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감옥을 경험하였고 갇힌자가 되었으며 약자와 함께 보낸 추억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늘 인생에서 나는 약자의 편이 되고자 하였고 바른 생각을 하고자 노력하게 되었으며 역사의 중심에서 세상의 변화를 꿈꾸고 실천하게 되었다. 감옥의 고통과 고난은 이렇게 나에게 영원히 마르지 않고 영감과 결의와 열정을 샘솟게 해 주는 즐겁고 아름다운 추억이 되었다. 고난은 쓰지만 인생에게는 좋은 보약이다.

청년이여, 도전하라! 고난과 고통을 향해

 요즘 청년들이 공무원시험과 교사시험에 매달린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가장 안정된 직업이기 때문이라는 말을 듣고 나는 참 실망을 금할 수 없었다, 아니 나라의 장래에 대해 큰 걱정이 들었다. 패기만만하고 도전의식으로 가득차 있어야 할 젊은이들이 벌써 안정된 직장이나 찾고 있다니!

실패와 절망을 두려워하지 않는 도전의식과 세상을 집어삼키겠다는 이상과 열정이 젊은이들의 자산이다. 실패와 시행착오는 늘 좋은 경험과 지혜를 제공하기 마련이다. 실패와 그것이 가져올 고난에 대해 두려워하지 말라. 젊어서는 사서라도 고생하라는 선인들의 조언은 결코 틀린 말이 아니다.

 젊어서 겪은 고난이야말로 인생에 두고 두고 도움이 되는 보약이다. 도전과 실패, 고난과 좌절 – 그것은 우리의 삶을 훨씬 아름답고 보람차게 만드는 필수불가결인 요소이다. 그러므로 청년들이여, 도전하라! 고난과 고통을 넘어 도전의 세계를 향하여!

박원순 님은 경남 창녕 두메산골에서 태어나 서울대 법대에
입학했으나 민주화 시위로 제적돼 옥고를 치렀습니다. 사법시험에 합격해 검사생활을 하다 대표적인 인권변호사로 1980~1990년대를 보냈습니다.
참여연대 사무처장을 거쳐 2002년부터 ‘아름다운재단’, ‘아름다운가게’를 세워 기부문화와 재활용운동을 우리 사회에 정착시켰습니다.
2006년에는 ‘희망제작소’를 설립해 국민들의 다양한 소망을 정책적인 대안으로 마련하는 시민운동에 전력하고
있습니다.

[책소개] 푸르메재단에서 엮은 '네가 있어 다행이야'에 실린 글입니다. 안성기, 김창완, 홍세화, 정호승, 장영희 외 여러 저자분이 우리나라에 턱없이 부족한 재활전문병원을 짓기 위해 인세 전액을 좋은 뜻으로 기부하여 만든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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