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연

[이청자/ 서대문장애인종합복지관장]


푸른 봄날에 푸르메재단의 전화는 받기만 해도 기분이 상쾌해집니다. 그래서 무리한 부탁도 선선히 받아들이게 됩니다. 글을 부탁한다는 재단 간사의 말에 주저 없이 답해놓고 스케줄을 확인하니 앞이 컴컴해졌습니다. 큰 행사가 두 개나 잡혀 있고, 주제 발표할 원고를 다음 주까지 작성해야하니까요. 순간 머리가 멍해왔지만 왜 그렇게 행동했을까를 생각하니 절로 웃음이 나왔습니다. 그 이유는 좋아하는 사람에 대한 인간의 순수함과 단순함 때문이었습니다. “열 길 물 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는 속담이 있고, 심리학에서는 인간 심리가 미로 같이 대단히 복잡한 그물망으로 엮여있다고 보지만 가만 생각해보면 인간관계는 참 간단한 것 같습니다. 좋으면 순수하고 단순해지고, 싫으면 복잡다단한 계산을 하게 되니 말입니다.



이청자 관장(왼쪽)

오늘 이 경험을 통해서 장애인 인식개선과 ‘인연’이라는 글을 몇 자 적으려 합니다. 1970-80년대 장애인복지사업이 본격적으로 전개되기 시작하면서 장애인에 대한 인식개선을 위해 노력하는 주체는 장애인 당사자가 아닌 소위 말하는 전문가들이었습니다. 이들은 장애는 어떻고, 누구나 장애인이 될 수 있고, 장애인을 이해해달라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1990년대에는 전문가는 뒤에 서고 장애어린이의 부모들이 앞으로 나섰습니다. 용기 있는 부모들이 자신의 자녀들을 당당하게 이웃에게 노출시키고 장애어린이 부모들도 떳떳이 살고 있음을 보여 주며 지역사회와 소통하기 위한 노력을 했습니다. 그러다 2000년대로 접어들면서 사회의 변화를 강요하기 보다는 장애인 당사자들이 사회의 변화를 이끌어내기 위한 주체로 나서기 시작했습니다. 당당히 사회로 나아가 사회의 일원이 되기 위해 노력한 것이죠. 장애인에 대한 인식개선을 위한 노력은 이러한 단계를 거치며 각 단계별로 많은 발전을 이끌어 냈습니다.내가 푸르메재단을 사랑하는 이유는 푸르메재단을 생각하면 ‘백경학’이 연상되기 때문입니다. 백경학 상임이사에게 어떻게 나를 알았느냐고 물었더니, 아동문학 작가 고정욱 선생으로부터 소개를 받았다고 했고, 고정욱 선생은 내가 장애 인식 개선을 위한 책자를 만들려고 이희아 씨를 만나면서 인연을 맺게 되었습니다. 백경학 상임이사와는 단둘이 차 한 잔 마신적도 없지만, 그 이상의 정이 가는 분입니다. 이번에 발간한 에세이 집 <효자동 구텐 백>을 단숨에 읽고 그 감동을 다른 사람에게도 전하고 싶어 직원들에게 권했더니 딱 한 번 우리 복지관을 방문하셔서 장애인복지관 운영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을 때 백경학 상임이사의 해맑은 미소에 반했었는지, 책 내용과 모습이 일치한다고 장황하게 설명하더군요.


개인적으로, 이러한 노력에 더해졌으면 하고 바라는 것은 좋은 ‘인연맺기’입니다. 장애인이 사회에 섞이되 사회구성원과 아름다운 인연을 만든다면 인간관계에서 발생할 수 있는 여러 문제들이 의외로 쉽게 용납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제 장애인 당사자들의 당당함에 다른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부드러움이 더해진다면 금상첨화일 것입니다. 푸르메재단의 아름다운 취지와 열정이 알려져 어려운 장애인들을 위해 수 많은 사업을 하게 되시길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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