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긍정의 씨앗을 심는 신발

박미리 (서강대학교 수학과 3학년)

3월이 시작될 때 샀던 신발이 3주 만에 다 닳았다. 학교 수업을 위해 건물 이곳 저곳을 다니느라 신발이 혹사를 당했을 것이다.

걸을 때 발 전체가 바닥에 닿지 않아 힘이 발의 특정 부분으로만 몰리게 되어 신발이 쉽게 닳는 것이다. 3개월이면 신발에 구멍이 날 정도이니, 몇 년을 신어도 신발에 구멍이 나진 않는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어떻게 그럴 수가 있을까 의아하곤 한다. 산 지 얼마 되지 않은 신발이 벌써 닳기 시작했다니 어떻게 새 신발을 찾을지 걱정이 앞선다.

지체장애가 있는 나는 걷는데 불편함이 있어 걷는 방법과 발 모양이 다른 사람들과 좀 다르다. 장애 때문에 몸의 균형을 잡는 데 어려움이 있고, 근육이 유연하지 않아 발목을 굽히는 것이 어렵다. 또한 어려서부터 까치발보행을 하다 보니 발의 앞부분이 보다 많이 발달하고 뒤꿈치 부분은 잘 발달하지 않아 발의 모양이 달라진 것 같다. 이렇게 보행형태가 다를 뿐 아니라 발의 모양도 달라서 신을 수 있는 신발을 찾으려면 매번 신발매장을 한참이나 돌아다녀야 한다.

글쓴이 박미리씨
내가 찾은 그 곳은 지하철 사고로 오른팔을 잃어 남은 왼팔 하나로 장애인을 위한 구두를 제작하며 두 번째 삶을 살아가고 계신다는 남궁정부 할아버지의 가게였다. 생각보다 작은 가게였지만 계속해서 사람들이 찾아왔다. 사실 가게를 찾기 전까지 정형 신발을 신는 것이 어떤 도움이 될 수 있는지 잘 몰랐다. 그런데 발의 크기와 서 있을 때 발에 가해지는 힘 등 여러 가지를 측정하시더니, 서 있을 때 한 곳으로 집중되어 있는 힘을 발바닥 전체로 분산시켜 더 편하게 걸을 수 있고 발목이 더 굳는 것을 막을 수 있다는 설명을 해주셨다. 신발 하나가 이렇게 많은 기능을 할 수 있다니 놀라웠다. 단지 신발을 구매할 때 고려해야 하는 많은 것들로 인한 스트레스에서 좀 벗어나보고자 정형 신발을 찾았던 나는 생각지 못한 가능성을 발견한 것 같았다.신발 생각을 비롯해 이런 저런 생각이 머리를 가득 채운 채 시간을 보내다가 ‘정형 신발’을 맞춰 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어 컴퓨터 앞에 앉았다. 사실 정형 신발을 맞춰볼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오래 전부터 해왔지만 그 생각이 행동으로 이어지지 못하고 있었는데, 무슨 일인지 빨리 그 생각을 행동으로 옮겨야겠다고 생각한 것이다. 인터넷 기사를 통해서도 알려지고 TV에도 출연해 눈여겨보고 있었던 정형구두연구소를 찾았다. 그런데 그 곳은 놀랍게도 내가 살고 있는 동네에 있었다. 왜 그 동안 찾아보지도 않고 멀리 있을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던 걸까? 너무 많은 생각은 행동을 어렵게 한다는 것을 다시 한 번 느꼈다.

측정과 석고제작을 위한 본을 뜨는 일, 그리고 신발의 형태를 선택하고 난 후에야 그때까지 나를 보고만 계시던 남궁정부 할아버지께서 말씀을 하셨다.

“발의 앞부분을 높이고 발목이 굽혀진 채로 서 있는 운동을 하면 아킬레스건이 늘어나서 더 잘 걸을 수 있어. 언젠가는 그 지팡이를 놓아야지. 부모님이 언제까지나 살아계시는 게 아니잖아. 이제는 자립한다는 마음으로 운동을 해야 된다고. 좀 귀찮지만 귀찮아도 그건 해야 돼. 지금 편한 게 편한 게 아니야. 나중을 생각해야지. 여기 지팡이 두 개 짚고 들어왔던 사람도 다 놓고 나간 사람이 있어. 의지의 문제야. 1년 고생해서 10년이 편할 수 있다면 그건 좋은 거 아니겠어?”

장애인 구두를 제작하며 두 번째 삶을 살고 계신 남궁정부 할아버지
학교에서는 지식을 얻고 정신적인 면의 발전을 위해 노력하는데, 몸의 기능을 발전시키려는 생각은 ‘불가능’이라는 틀에 스스로 갇혀서 생각조차 하지 않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누군가 ‘장애는 극복의 대상이 아니라 내 삶에 부과된 일종의 ‘규칙’이다.’라는 말을 했던 것이 기억난다. 그렇다. 극복의 대상이라면 무언가 내가 가진 장애를 부정해야 할 것 같은 느낌이 들지만 규칙을 부과하는 것이라면 재활운동을 하는 것 또한 하나의 살아가는 규칙이 되어 즐거운 삶을 만드는 데 기여하는 것이 될 것이다.운동이라면 질색을 하는 내 마음을 쿡 찌르는 말씀을 하신다. 분명 운동을 해야 하는 건 맞는데 왜 이렇게 귀찮다는 마음이 먼저 드는 걸까? 어쩌면 재활운동이 가진 부정적인 것들에만 마음을 두고 있어서 긍정적인 것을 보지 못하기 때문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모든 일들은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면을 함께 가지고 있다. 심지어 아주 괴롭고 고통스러운 일조차 시간이 흐른 뒤에는 그것으로부터 많은 것을 얻게 되는 것 같다. 재활운동도 그처럼 양면을 모두 가지고 있을 것이다. 장기적인 변화를 위한 것이기에 꾸준함이 필요하고 고통이 따르지만, 그와 함께 더 많은 기능을 할 수 있게 된다는 긍정적인 면이 있는 것이다. 미래의 언젠가는 더 활발하게 활동을 하고, 지금 원하는 일을 더 자유롭게 할 수 있게 하는 투자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생각이 ‘긍정적인’ 것에 미치자 지금보다 좀 더 걷는 일에 자신감을 갖고 사는 미래의 모습을 상상하는 즐거움을 얻게 되었다.

글쓴이 박미리씨와 남궁정부 할아버지

글쓴이 이야기

박미리씨는 서강대학교 수학과에 재학 중이며 상담심리에 관심이 많아 심리학을 함께 공부하고 있다. 뇌성마비로 인해 지체장애를 가지고 있지만 장애인의 삶에 대해 알고 싶어서 푸르메재단의 청년인턴에 지원했고, 지금은 청년인턴으로 푸르메재단을 만나는 행복을 누리고 있다.
모두가 긍정의 힘을 지니고 있다고 믿으며, 그로 인해 발전적인 변화를 이루어낼 수 있다고 믿는다. 푸르메재단에서의 인턴활동을 통해 스스로의 긍정적인 변화를 꿈꾸는 사람!

장애인을 위한 정형 신발을 만들며 살아가시는 남궁정부 할아버지는 잃어버린 오른팔을 통해 왼팔의 가능성을 발견하셨다. 그렇듯, 하루하루의 삶에서 불가능보다는 가능성을 이야기할 수 있다면, 인생은 축제와 같이 즐거운 나날이 되지 않을까? 마음속에서 불가능을 이야기하는 목소리를 떨쳐내고 스스로 자신의 희망제작소가 된다면, 지금의 10배, 100배까지도 변화할 수 있는 씨앗이 자라날 것이라는 행복한 상상을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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