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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면 기분 좋아지는 치과

지적장애와 간질을 앓고 있는 한빛이는 경기(발작)가 심하다. 늘 신경을 쓴다지만 순식간에 일어나는 일이다 보니 어른들의 손이 닿기도 전에 사고로 이어지기 일쑤다. 한빛이는 온몸이 멍투성이인, 한 순간도 눈을 뗄 수 없는 ‘요주의 인물’이다.

하지만 한빛이는 절대 아프면 안 되는 존재다. 병원이라면 지긋지긋하게 여기기 때문이다. 12살이면서 12년간 병원생활을 하다 보니 의사 선생님의 흰색 가운만 봐도 얼굴색이 변하면서 떼를 쓰기 시작한다. 기운도 좋아 한 번 버둥거리면 서너 명이 달려들어서 팔과 다리를 잡아야 겨우 진료를 받을 수 있을 정도다.

이옥란
복합장애 1급

한빛이 어머니

그런 녀석이 경기를 하면서 넘어져 앞니가 통으로 뽑히는 일이 생겼다. 부랴부랴 서둘러 큰 병원으로 달려가 진료를 받았고, 결국 제 자리에 그대로 꽂아 넣긴 했다. 종합병원의 장점은 한 곳에 다 모여 있어 언제라도 어떤 진료든 가능하다는 점이겠지만, 단점은 애타는 부모의 심정과는 달리 너무 슬렁슬렁 한다는 점이다.

당시 무슨 세미나 운운하면서 치료를 미루기에 하도 부아가 치밀어 결국 응급실에서 큰 소리를 질러야만 했다. 우여곡절 끝에 응급처치를 마치긴 했지만, 꾸준히 진료를 받아야 한다는 말에 막막함이 밀려왔다.

장애인전문치과병원이 개원한다는 소식을 접한 것은 바로 이 때였다. 더 기다릴 것도 없었다. 고사떡에 김이 식기도 전에 달려갔다. 그런데 진료를 받으려니 진료가 안 된단다. 막 개원을 해서 부족한 것이 많으니 여유를 두고 다시 오라면서 “우선은 헛걸음 하느니 한 번 보기라도 하자”며 기본적인 사항들을 체크한다.

너무나 반가운 마음에 무턱대고 들이댄 것도 있지만, 속으로 ‘이렇게 하려면 좀 더 있다가 개원을 하지’하며 진료비를 계산하려는데 그냥 가란다. “그래도 진료비는 내야하지 않냐”고 다시 물어보자 아직 전산작업이 마무리 되지 않아 처리가 안 되니 개원기념으로 여기시라며 한사코 받기를 거부한다. ‘공짜라면 양잿물도 마신다’는 말이 있듯이 섭섭한 마음이 사라지고 웃음이 흐른다. 아이는 눈물에 콧물에 범벅이 돼 짜증을 내고 있어도 기분은 마냥 좋다.

그렇게 인연을 맺고서 열심히 다니고 있는 중이다. 그곳에 가면 좋은 일이 있을 것 같다는 느낌을 주는 장소가 있다. 푸르메나눔치과에 가면 기분이 좋아진다. 우선은 치과 사람들의 얼굴이 그렇다. 감정표현이 가장 솔직하게 드러나는 부분이 얼굴 아닌가. 여기는 사람들의 표정들이 밝다. 얼굴 가득 웃음이 환하고, 의사와 환자로서가 아니라 그냥 아는 사람을 만난 것 같아 기분이 좋아 진다.

두 번째는 말이다. ‘치과는 무섭고 아픈 곳’이라는 선입견을 주는 게 보통인데 이곳은 오가는 말들이 부드럽고 가벼워 좋다. 여느 병원에서 맛볼 수 없는 ‘농담을 쉽게 할 수 있는 분위기’. 이곳에서는 자연스런 현상이다.

세 번째는 행동이다. 자원봉사로 구성된 운영방식이 자칫 봉사자와 이용자 상호간의 짜증으로 이어지기 쉬운데 여기서는 그런 것을 볼 수 없다. 물씬 풍겨오는 사람 냄새 덕분에 기계소리에 주눅 들지 않고 편안하게 보고 들을 수 있다.

아쉬움이라면 치과병원 본래의 기능을 하려면 아직 시간이 더 필요하다는 점이다. 한빛이는 수면마취를 해야 신경치료가 가능한데 여기는 아직 미비하다면서 큰 병원을 권한다. 걱정이 스멀스멀 피어오른다. 친절과 담을 쌓고 있는 곳은 제대로 설비가 갖추어져 있고, 벽을 허물어 마음으로 대하는 곳은 진료환경이 그러하지 못하다니 큰 아쉬움이다.

한빛이 진료는 어떤 종류의 것이든 모두들 힘들게 진행을 한다. 특히 치과치료는 입도 안 벌리려 들고, 온 몸으로 저항(?)을 하는 통에 더 힘들다. 그런 녀석을 어르고 달래면서 어떻게든 해보려고 애를 쓰면서도 웃음을 잃지 않는 나눔치과 사람들. 장애라는 것을 머리로 이해하고 대하는 것이 아니라 가슴으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얘기다.

장애를 가진 사람들이 갈 수 있는 병원은 그리 흔하지 않다. 그런 중에 장애인전문치과가 생겼다는 것은 더없이 반가운 일이다. 더군다나 수익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의료 사각지대의 사람들을 위해 두 팔을 걷고 나섰다는 사실에 반가움은 두 배가 된다. 그래서, 몇 푼 되냐고 코웃음 칠 사람도 있겠지만, 우리는 한빛이를 위해 애써주는 사람들을 위해 기꺼이 후원자가 되기로 했다. 할인을 받는 대신 더 많은 푸르메나눔치과가 전국 곳곳에 생겨나기를 기대하는 작은 바람으로 개인후원을 하기로 한 것이다.

나눔이라는 것은 개인들이 작은 것을 모아 태산을 만들어 가는 과정이라고 하지 않는가. 낙숫물이 바위에 구멍을 내는 것처럼 한 사람이 나서고, 다시 또 한 사람이 나서다보면 이 땅에서 소외받는 사람들이 그만큼 줄어 들 것이라는 믿음으로 작은 정성을 보탠다. 기분 좋은 일이다. 나도 안성기라는 유명한 사람과 (물론 액수의 차이는 굉장하지만) ‘동급’이라는 사실은.

※글을 쓴 이옥란님은 복합장애 1급인 한빛이 어머니입니다. 한빛이가 푸르메나눔치과에서 진료받은 것이 인연이 되어 푸르메재단에 후원신청을 해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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