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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속 장애인 ‘한 사람’을 만나고 싶다

류미례(다큐멘터리 감독)

<말아톤>의 성공 이후 장애인이 출연하는 영화가 늘어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조금만 주의를 가지고 살펴보면
<말아톤>이전에도 영화는 끊임없이 장애인 캐릭터들을 등장시켜왔다. 영화 속 세상은 온전히 감독이 만들어낸 인공적인 세상이다.그 안에 장애인이 등장할 때, 그 행위는 특별한 의미로 읽혀질 수 있다. 여전히 소수자로 존재감 없이 살아가는 장애인이 대부분인 현실을 감안할 때, 주류미디어에 등장하는 장애인들은 아주 특별한 임무를 띠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비장애인의 감수성, 비장애인의 고정관념으로 구현된 장애인 캐릭터는 장애인식의 현재를 비춰보는 거울이 될 수 있다.

그 거울은 영화를 만든 문화생산자들의 인권감수성을 비출 뿐 아니라 우리들 각자의 내면에 자리 잡고 있는 오해와 차별의 얇은 막들까지 비춰준다. 그 얇은 막들은 영화 속 대사나 장면에 불편함을 느끼거나 공감의 눈물을 흘릴 때 서걱이며 그 존재감을 알린다. 그 지점을 포착하는 일, 그것이 바로 장애코드로 영화읽기이다

장애가 상징하는 것들

대부분의 장애인 영화들은 장르화된 채 비슷한 공식으로 전개된다. 장애인 영화로 유명한 <제8요일>이나 <레인맨>의
경우, 감동의 물결을 걷어내고서 그 구조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형식상으로는 투톱(두 명의 주인공)을 내세웠지만 장애인 주인공들의 역할은 극히 제한되어 있다. 다운증후군 조지와 천재적인 자폐 레이몬드의 파트너들은 모두 곤란한 상황에 처해있다. 아리는 잘나가는 성공학 강사지만 가정의
파탄으로 하루하루를 버티기 힘들 정도로 영혼이 피폐해져 있고, 찰리는 거친 성격에 돈만 밝히는 비열한 인간이다. 그러나 우여곡절 끝에 영화가 끝나고 나면 비장애인 아리와 찰리는 인간적으로 변해있다. 착한 장애인 주인공들이 세파에 찌들었거나 타락한 비장애인들을 순수한 영혼으로 구원했기 때문이다. 우리 영화 <맨발의 기봉이>나 <웰컴 투 동막골>, <우리 형>, <오! 브라더스>의 장애인들이 바로 그렇다.장애인이 등장하는 영화를 선택하는 비장애인들의 기대 또한 크게 다르지 않다. 일단 그들은 자신들과는 ‘다른’ 장애인들을 본다.

장애인들은 다르기 때문에 불쌍해 보이기도 하고 또 다르기 때문에 위대해보이기도 한다. 어떤 경우 “(저들에 비하면) 나는 얼마나 행복한가?”와 같은 깨달음을 얻으며 자신의 삶에 충실할 수 있는 에너지를 얻어가기도 하고 또 어떤 경우에는 장애를 극복하는 인간승리의 전 과정을 가슴 벅찬 감동으로 지켜보며 “나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기도 한다. 결국 장애인은 나와 다른 사람이다. 그 전제에서 감동도 오는 것이다.
장애는 구체적인 인물의 여러 특성 중의 하나임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들의 장애인 캐릭터들에서는 ‘사람’보다는 ‘장애’가 도드라져 보인다.

장애인 영화의 또 다른 경향은 장애가 하나의 상징으로 치환되는 경우이다. <후아유>와 에서 여자주인공들의
장애는 상처나 콤플렉스를 상징한다. 인주와 민아는 보청기나 장갑으로 장애를 가리고 씩씩한 척, 무심한 척 세상을 살아가지만 결국은 외롭다.

그러나 믿을 수 있는 한 사람을 만난 후 그녀들은 세상에 마음의 문을 연다. 그녀들이 장애를 수용하는 과정은 누구나 하나씩은 가지고 있는 상처나 콤플렉스의 치유과정과 동일하다. 장애가 상징으로 상승됨으로써 장애라는 상황은 누구나 갖고 있는 ‘그늘’로 대체 가능하다. 그리하여 보편적인 공감은 끌어낼 수 있지만 장애에 대한 이해를 통해 공감하는 길은 포기된다. ‘장애’는 사라져버리는 것이다.

<말아톤>, 진화의 시작

<말아톤>은 성공한 영화이다. 그 성공의 의미는 흥행에만 있지 않다. <말아톤>은 배형진 군의 실화에서 영감을 얻었지만 장애극복의 신화를 답습하지 않는다. 초원이는 자폐이지만 <레인맨>이나 <큐브>, <카드로 만든 집>의 천재들과 격이 다르다. 그는 복잡한 숫자연산을 묻는 감독의 호기심을 하품으로 한 방에 날려버린 채 그저 열심히 달리는 노력형 인간이고, 그의 성취는 써브 쓰리나 철인5종 경기 완주에 있는 게 아니라 진정 하고 싶은 일을 찾았다는 데 있다. 그렇기 때문에 영화의 클라이맥스는 결승점에 도달하는 시점이 아니라 초코파이(그것이 상징하는 어머니의 기대)를 초월한 채 자신의 마음으로 달리며 세상 사람들과 소통하는 데 있다. 장애극복의 신화가 아니라 한 청년의 독립과 홀로서기에 관한 성찰로 나아가며 <말아톤>은 그동안 보여줬던 장애인영화의 공식들을 훌쩍 뛰어넘는다.

<사랑할 때 이야기하는 것들>, <허브>로 이어지는 새로운 장애인캐릭터들은 진화하는 한국영화의 자리를 확인하게 해준다. <사랑할 때 이야기하는 것들>에서 장애인 형이 주인공 인구의 짐으로 그려지고, <허브>에서 시한부인생을 선고받은 엄마가 상은이와 함께 죽으려 하는 점들 때문에 논자들은 쉽게 ‘흔한 설정’, ‘익숙함의 답습’이라는 비판을 가한다. 그러나 이런 시선은 팔짱을 낀 채로 ‘어디 한 번 뜯어볼까?’하며 꼬투리를 잡으려는 삐딱함을 연상시킨다. 사람살이는 대체로 엇비슷하다. 모든 사람들의 삶은 태어나 살다가 죽는 기본 패턴을 갖지만 어떻게 태어나고, 어디서 누구와 함께 살다, 언제 어떻게 죽는가하는 구체적인 내용은 다 다르다.
기본 패턴과 구체 현실은 그래서 다 같이 중요하다. 여전히 비장애인 중심으로만 돌아가는 세상에서 장애를 가진 사람들의 삶은 기본 패턴을 가질 수밖에 없다.

문제는 그 기본 패턴에서 ‘구체적 인물’을 어떻게 그려내고 생생하게 살아 숨쉬게 할 것인가에 있다. 성공적으로 구축된 장애인 캐릭터는 장애인이라는 평면적 익명성을 뛰어 넘어 구체적 이름을 갖는다. 그리하여 영화를 보는 사람들에게 초원, 인섭, 상은은 ‘어떤 장애인’으로서가 아니라 ‘한 사람’으로 다가온다.

초원이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찾아서 기뻐할 때, 형 인섭이 동생과 함께 할 수 있는 미래를 꿈꿀 때, 상은이 엄마와 사랑으로부터 독립하여 자신의 직업을 찾아 나설 때, 우리는 장애를 가진 그들의 현실을 외면하지 않은 채로 그들과 마음을 나눌 수 있다. 장애를 가졌지만 장애로만 설명되지 않을 생생한 특성들, 고유의 이름을 가진 채 사랑하고 상처받으며 구체적 현실을 사는 살아있는 인물들이 우리에게 다가오는 것이다. 결국 세상에는 차별에 편승하여 편견을 부추기는 영화와, 차별을 반영하여 장애현실을 사실적으로 전해주는 영화가 있다. 문제는 차별을 반영하든, 차별에 편승하든, 또는 차별로부터 자유롭든 비장애인들의 캐릭터가 무궁무진하게 다양한 것처럼 장애인 캐릭터도 무궁무진하게 보여 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과정을 통할 때만이 우리는 장애를 가졌지만 장애로부터 규정당하지 않은 ‘한 사람’을 만날 수 있다. 차이를 인정하고 다름을 존중하는 세상, 장애와 비장애의 구분없이 함께 어울려 살아가는 세상은 신이 우리에게 약속한 아름다운 신비이다. 세상은 더디 변하더라도 머리 속 세상, 영화 속 세상에서나마 그 신비를 자주 체험할 수 있기를 바란다.

<장애인과 일터 2007년 3월초>

류미례

다큐멘터리 영상 제작 집단 ‘푸른영상’에서 다큐멘터리 감독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작품으로는 영화 ‘동강은 흐른다.'(1999, 조연출) 등이 있으며 2004년 서울여성영화제에서 본상을 수상했다. 온라인 커뮤니티 ‘장애코드로 문화읽기(http://go.jinbo.net/inmylife)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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