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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눔의 미덕

얼마 전 뉴스를 들으니 해남의 어느 마을에서 장애인 일가족 3명이 잠자다 불이나 두 내외는 현장에서 질식사하고,아들은 겨우 빠져 나와 목숨을 구했으나 중태라고 한다.사고 원인은 어처구니없게도 한전(韓電)에서 밀린 전기료 10만원을 납부하지 않았다고 단전 조치를 하는 바람에 냉방에서 전기장판하나 없이 잠을 자다 그런 변을 당했다.한전에서는 그들이 장애인 가족인줄 몰랐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행정적으로는 잘못한 것이 없지만 결과적으로 잘못됐다’고 사과했다고 한다.뉴스를 듣고 마음이 편치 않았다.
이 장애인 가족은 그 동안 월 50여 만원의 정부 보조금으로 근근이 생활해 왔다.힘든 일을 할 수 없기 때문에 주로 폐휴지를 주워 생활비를 보탰다고 한다.그런데 모아논 폐휴지에 불이 붙으면서 숨진 것이었다.이런 소식을 접할 때면 우리나라의 너무도 취약한 사회 안전망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다.

 

우리나라에는 IMF전만해도 중산층에 속한다고 생각했던 사람들이 70%에 달했다.그런데 환란을 겪은 후 스스로를 중산층에 속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급격히 줄어들고 그 자리를 서민층이 메꿨다.얼마 전 한 설문기관에서 발표한 내용에 따르면 ‘당신은 중산층이라고 생각하는가?’하는 질문에 응답자의 40%이상이 ‘아니다.서민층이다’라고 대답했으며 이 수치는 IMF이전에 비하면 무려 30%나 증가한 것이라고 한다.

IMF이전에 극빈층이 약 200만 정도였으니까,지금은 거의 갑절이 된다는 말이다.꼭 생활고 탓만 할 수 없다.최근에 일어난 일련의 끔찍한 사건들은 어느 정도 기초생활의 어려움과 연관이 있다고 생각된다.도박을 하거나 주식투자를 하거나 빚 보증을 잘못 서서 갑자기 어려워진 사람들이 이성을 잃고 가족을 버리고, 아내 마저 보험금을 노려 살해하고 있다,이것은 중산층이었던 사람들이 서서히 극빈층으로 몰리면서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결과이다.그들이 선택한 방법을 이해하기 힘들지만 당사자의 절박성과 고통도 미루어 짐작이 된다.

한 신문에 ‘한국 30대 재벌의 결혼관계’를 다룬 기사가 실린 적이 있다.모두 이름만 대도 알만한 국내 굴지의 기업 집안이다. 결혼으로 맺어진 관계는 재계,정계,교육 문화계,언론계에 그물망처럼 이어지고 있어 충격적이었다.그것도 한번이 아닌 겹사돈을 맺고 있는 경우가 허다했다.한마디로 ‘그들만의 세계’를 구축하고 있었고 계급제도는 무너졌지만 그들은 너무 완고한 계급 사회의 단면을 형성하고 있었다. 이 혼맥관계를 조사한 연구소의 발표 내용을 보면 전에는 이들 재벌들이 정계인사와 혼인한 비중이 높았는데,최근에는 대기업 끼리 혼인이 많아지고 있다고 한다.이들 결혼을 무조건 잘못된 것이라고 비난하는 것은 아니지만,자신들의 사회적 지위에 걸 맞는 도덕적,사회적 의무를 다하고 있는지 묻지 않을 수가 없다.상대적으로 높은 사회적 지위를 누리고 있다면 마땅히 우리 사회에 기여하는 것도 많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어려운 환경에서 목숨 마저 위태로운 상황에 있는 사회적 약자들을 생각하다 보면 새삼 비감한 생각이 든다.남보다 더 많은 혜택과 재산을 가지고 태어나 사회적으로 높은 지위를 누리고 있는 사람들이 먼저 변해야 하기 때문이다.가진 사람,배운 사람이 먼저 못 가진 사람,배우지 못한 사람들에게 손을 내밀어야 하지 않을까.그래서 배려와 나눔이 필요하다.

결혼관계로 똘똘 뭉친 사람들과 전기료 조차 내지 못해 냉방에서 죽어간 한 장애인 가족의 삶을 비교하면서 우리사회의 한 단면을 보는 것 같아 씁쓸하다.“부자로 죽는 것 만큼 부끄러운 것은 없다”고 말한 강철왕 앤드류 카네기의 말이 가슴을 때린다.사회적 지도층의 의무를 강조한 ‘노블레스 오블리제’의 의미가 새삼 절실하다.

백은영/푸르메재단 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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