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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을 새김질하는 무우수인(無右手人) 조규현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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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청 광장 건너편의 덕수궁 돌담길을 지나갈 때면 항상 마주치게 되는 사나이가 있다. 스스로를 무우수인(無右手人)이라고 부르는 전각가(篆刻家)조규현 씨다. 1990년대 중반부터 그 자리에서 새김질을 해오셨다니 조씨를 보며 덕수궁 돌담길을 함께 거닐다가 헤어진 커플이 그동안 얼마나 많았을까. 사람과 차가 쉼없이 지나가는 한 폭의 풍경화, 그 배경이 되어 세월을 새김질하는 모습이 흡사 도인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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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작품을 분별할 만한 식견은 없는 나지만 정말 감탄사가 절로 나올 만큼 작품이 아름답고 정교했다. 정성이 많이 들어갔다는 것을 한 눈에 알 수 있었다. 작품마다 낙관을 새기는데 그가 지은 글에는 서(書)라고 쓴다. 직접 붓글씨를 쓴 경우에는 필(筆)이라는 글자를 덧붙인다. 모든 작품에 해당되겠지만 직접 새길 경우에는 조(彫)를 덧붙인다. 자신을 나타내는 말인 무우수인(無右手人)에 필(筆), 조(彫)를 함께 쓴 경우가 가장 많았다. 대부분의 글은 작자미상인데 세간에 흘러다니는 좋은 글들을 가져온 것이 많다. 성경, 불경의 구절이나 ‘가화만사성(家和萬事成)’이나 ‘보람된 노후’같은 글까지 다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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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르메재단 직원으로 특별히 그에게 관심이 간 이유는 그의 오른팔이 멀리서 보기에도 특별해 보였기 때문이다. 사진에 보이듯이 팔이 잘린 부분에 망치를 대고 붕대로 칭칭 감아놓았다. “어쩌다 그렇게 되셨느냐?”는 질문에 그는 “10살 때 언덕에 세워져 있던 군용트럭이 굴러 내려오면서 사람들을 덮쳐 어른 한 명과 친구는 즉사하고 자신도 머리 등을 크게 다쳤다”는 얘기를 덤덤하게 풀어낸다. 결국 목숨은 부지할 수 있었지만 오른손이 잘려 장애인으로 살게 됐다.

죽을 뻔한 큰 사고 이후에 든 생각은 ‘그렇게 큰 고비를 넘기고 살 수 있게 된 것은 아마 필연적인 이유가 있을 것이다, 내가 앞으로 해야 할 일이 무언가 있을 것이다’라는 것이었고 그것을 찾다보니 지금 새김질의 길에 서 있게 됐다.

그가 처음부터 새김질을 한 것은 아니었다. 처음엔 장애 때문에 거칠어지는 성격을 순화시키기 위해 붓글씨를 배웠다. 왼손으로 쓰기도 하고 오른팔에 끼우고 붕대로 감아서 쓰기도 했다. 학원을 제대로 다닐 형편이 아니어서 18세 때부터 10년 정도를 독학을 통해 붓글씨를 익혔다. 1년 정도는 고암(孤巖)이라는 호를 가진 스승으로부터 사사를 받았다.

사사받는 기간 동안 우연히 목격한 스승님의 새김질. 그 순간 머리가 무엇인가에 맞은 듯 울리고 요즘 말로 ‘필이 꽂혔다’고 한다. 그리고 또 10년, 이번에는 새김질을 잘하기 위한 고독한 공부가 시작되었다.

그러나 일반인들도 예술에만 매진하기 힘든 법이다. 그 또한 공부를 하기 위해 돈을 벌어야 했다. 오라는 곳이 있어도 막상 가서 그의 오른팔을 보면 돌려보내거나 고용을 하더라도 며칠 안가서 돌려보냈다. 결국 그가 갈 곳은 일용직 사업장, 일명 노가다 판이었다. 그렇지만 타고난 미술적 감각 때문에 목수나 실내 인테리어 일을 많이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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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역설한다. “한국에 팔 없는 장애인이 서각한 역사가 없어요. 아마 서양에도 없을 걸요.” 장애인이 비장애인만큼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는 것이 그의 즐거움이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작품을 만드는 것이 그의 사명이라는 점이다. 국보급, 보물급 작품을 만들어서 국가에 이바지하고 싶단다. 이쯤되면 장애나 비장애가 의미없는 영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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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꿈이 있다면요?” 국가가 설립하는 장애인 종합복지대학이다. 감사하게도 거기에 푸르메재단에서 추진하는 재활병원도 들어가는 형식이 좋을 것이라는 고견을 내놓았다. 기숙사는 3교대하는 자원봉사자들과 학생들이 모두 들어갈 수 있을 만큼 커야 하고 가르칠 것이 있는 장애인들은 가르치고 배울 이들은 배우는 아름다운 곳이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이명박 전 시장에게 3번이나 얘기를 하셨고 전 시장이 꼭 그렇게 하겠다고 약속했다고 하니 혹시 이 전 시장이 대통령이 된다면 그 약속을 지킬 지 지켜보는 것도 재미있겠다.

이 투박한 나무에는 오스카 쉰들러와 달마대사 등이 함께 전각되어 있다. 자신이 기리는 인물들을 위패로 만들어 둔 것이다. 쉰들러는 쉰들러 리스트의 그 쉰들러일 거고 유일한 박사님은 유한양행을 설립하신 분일 거다. 이 분들이 자신의 멘토 역할을 해왔다고, 죽어서 무덤에 들어갈 때는 꼭 가져가야 한다고 반들반들한 나무를 어루만진다. 작업할 때마다 꼭 옆에 두고 마음을 다잡는다고 하는 얘기를 들으면서 ‘이 분이 전각을 통해 영원을 순간에 새기려 하는 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작품들만 놓고 보면 그 누구도 팔이 잘린 장애인이 새긴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할 것 같다. 이 정도가 되기까지 그동안 얼마나 뼈를 깎는 고통을 이겨냈을까? 실제로 망치를 붕대에 감아서 나무를 깎는 작업은 망치가 팔꿈치 뼈를 깎아낼 정도로 아프게 하였고 피부를 찢어서 피가 나게 했고, 결국에는 피부가 굳은살로 변하여 힘있게 망치를 받칠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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깎는다는 것은 그런 의미가 있는 것 같다. 불교에서는 스님이 되기 위해서 먼저 머리를 깎아야 하고, 불상을 만들기 위해서는 수없이 많은 나무를 깎아내야 한다. 조씨는 인터뷰 내내 시종일관 밝고 힘이 있었다. 뼈를 깎으면서 동시에 나무를 깎아온 10여 년의 인생이 그의 마음도 굳게 만들었나 보다.

우리가 추워한다고 다리 사이에 놓는 난로를 내어주기도 하고, 식사는 어떻게 해결하느냐는 질문에 말없이 도시락을 꺼내놓으며 김밥(진정 김과 밥으로만 이루어진)을 집어서 건네주었다. 바람은 추웠지만 진정한 훈남(훈훈한 남자)를 만나서 즐거운 하루였다.

<글, 사진/ 성용욱 행사기획담당 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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