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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나 죽어도 돼?

이정식 (CBS 사장)

박지훈. 2005년 올해 10살. 널리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2004년 말, CBS TV 시청자들과 많은 네티즌들을 몹시도 안타깝게 했던 어린이다.

나는 2005년 2월 2일 오전, TV본부 취재팀과 함께 인하대 병원에 입원해 있는 박지훈 군을 찾아갔다. 그 동안 많은 시청자들과 네티즌들이 보내준 성금을 전달하고 지훈 군을 위로, 격려하기 위해서였다.

병실에 들어서니 자그맣고 가냘픈 체구의 지훈이가 병상에 앉은 채 허리를 굽혀 이마를 베개에 기대고 있었다. 병상을 지키고 있던 지훈이의 부모는 아이가 힘이 들어 그런 모양을 하고 있다고 했다. 지훈이는 말도 조금씩 하고, 일으켜 세우면 잠시 일어설 만큼 병세가 호전되어 있었다. 아이가 힘들어 하여 몇 마디 나누지는 못했지만, 짧은 말 속에서도 영리하고 똑똑한 아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함께 병원에 간 TV본부 직원들이 파란 운동화를 지훈이에게 선물했다. 지훈이가 평소 갖고 싶어한 것이라고 했다. 어서 빨리 나아서 힘차게 뛰어 놀라는 뜻이 담긴 선물이기도 하다. 지훈이의 어머니 신정숙 씨가 말라서 앙상해진 지훈이의 발에 운동화를 신겨주니 지훈이가 손가락으로 두 눈꺼풀을 힘겹게 들어올려 내려다 보고는 모처럼 밝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지훈이는 고열로 각막을 상해 시력이 많이 떨어진데다 제대로 눈을 뜨지 못하는 상태였다.

▲ 2004년 12월 박지훈 어린이 치료 장면

그동안 모금된 성금은 3억 800여만 원. 이 가운데 ARS 수수료 등을 제외하면 실모금액은 2억 9100여만 원이다. 이날 지훈이 부모에게 전해진 성금은 그 절반인 1억 4천여만 원이었다. 지훈이의 부모가 모금액의 절반을 질병으로 고통받는 다른 아이들을 위해 써달라고 내놓았기 때문이다.지훈이의 아버지 박재현 씨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가족회의를 했어요. 우리 아이가 아프니까 평소에는 잘 보이지 않던 주위의 아픈 어린이들이 많이 보이더라구요. 부모 마음은 다 같을 텐데… 그들에게도 작은 도움이 됐으면 좋겠어요.”

박지훈 군의 사연을 소개한 CBS TV의 프로그램 《수호천사, 사랑의 달란트를 나눕시다》 팀은 지훈 군 부모의 뜻대로 후원금 운영위원회를 통해 남은 성금의 사용처를 결정할 계획이다.

박지훈 군의 사연이 CBS TV와 인터넷 ‘노컷뉴스’를 통해 사회에 알려진 것은 2004년 12월.

12월 6일 TV로 방영예정이던 지훈이의 안타까운 이야기를 CBS 보도국 노컷뉴스부의 송경선 인턴기자가 “엄마, 이만큼 아팠으면 나 죽어도 돼?”라는 제목으로 2004년 12월 3일자 인터넷 ‘노컷뉴스’에 먼저 실었다. 이런 내용이었다.

“엄마, 나 이만큼 아팠으니 죽어도 돼? 나 그만 하늘 나라로 가게 해 줘…” 희귀병을 앓고 있는 박지훈 군(9살, 초등학교 2학년)은 오늘도 울면서 엄마에게 고통을 호소한다. 죽고 싶다는 말이 겨우 9살 짜리 아이의 입에서 나온 것이라고는 믿겨지지 않는다. 끔찍하게 일그러진 아이의 얼굴은 화상을 당한 것처럼 빨갛게 익어 진물이 줄줄 흐르고 귀까지 뭉그러져 보는 이들로 하여금 안타까움을 사고 있다.

▲ 건강할 때의 박지훈 어린이와 형의 사진

지훈군이 앓고 있는 병은 국내 최초로 발견된 희귀질환 ‘스티븐 존슨 증후군’. 이 병은 알레르기를 일으키는 물질로 인한 피부혈관의 이상 반응을 말한다. 40도의 고열로 입안에 수포가 생겨 음식을 먹을 수도 없고, 출혈성 발진이 나타나 화상환자같이 피부가 벗겨지는 병이다.

지훈이가 이 병에 걸린 것은 2004년 9월말 추석 즈음이다. 그 후로 두달이 지난 지금, 지훈이는 살아있는 자체가 기적이라고 할 만큼 세계적으로 이례적인 케이스라는 것이 의료진의 설명이다.

지훈이가 중환자실에서 먹을 수 있는 것은 오직 물 뿐. 그것도 조금씩 나눠 주사기를 통해 먹고 있지만 삼키는 일조차 지훈이에게는 버겁다.

‘노컷뉴스’에 처음 실린 이 기사는 이내 ‘네이버’ , ‘다음’ , ‘야후’ 등 인터넷 포털 사이트에서 릴레이 보도를 하면서 접속자 수가 폭발적으로 늘었다. 그리고 성금이 밀려들기 시작했다. 기사가 나간 지 하루 만에 성금이 1억 원을 훌쩍 넘더니 TV에 방영되면서 불과 며칠 만에 3억 원을 넘어섰다. 보도된 첫날 네티즌들의 어마어마한 반응과 성금답지 상황을 전화로 보고하는 허미숙 TV본부장의 음성이 흥분으로 약간 떨리고 있었다. 주위에서는 이런 종류의 단일 사안으로 이처럼 엄청난 반응을 이끌어 낸 것은 유례가 드문 것이라고 했다. 메마르지 않은 우리 사회의 온정의 실체를 확인한 사건이었다.

매주 월요일 방영되는 CBS TV의 《수호천사, 사랑의 달란트를 나눕시다》는 2003년 12월부터 시작된 것으로서 이웃돕기 실천운동을 정규 프로그램화 한 것이다. 단순히 한차례의 소개로 도움을 주는데 그치지 않고, 어려운 이웃들을 찾아내어 인근의 교회나 병원, 자선의사회, 사회복지단체 등에 연결시켜주고 있다. 수호천사를 찾아 지속적인 도움을 주기 위해서이다.

지훈이의 경우는 제작진이 어느 교회 전도사의 소개로 사연을 접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지훈이의 병이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는 것을 우려해 가족들이 취재를 거절했으나, 제작진의 진심어린 설득으로 응하게 되었다고 한다

▲ 2005년 2월 성금 전달 장면

그날 인하대 병원으로 지훈이를 만나러 가기 전에 인천시청으로 안상수 시장을 잠시 방문하여 지훈 군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기독교인인 안 시장이 이런 이야기를 했다.

“장애인을 보거나 딱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하나님이 왜 어떤 이들에게는 그런 장애나 어려움을 주셨을까’ 하고 의문을 갖습니다. 그런데 한편 생각해 보면, 우리들에게 그런 사람들을 돌보라는 뜻이 아닐까요.”

우리 일행이 다녀갈 당시 지훈이의 스티븐 존슨 증후군은 크게 호전된 상태였다. 어려운 고비는 일단 넘겼다는 것이다.

수호천사의 힘이 죽을 고비의 지훈이를 살렸다고 생각한다.지훈이의 수호천사는 지훈이 가족이 출석하는 주은평교회는 물론이고 부평 평강교회를 비롯한 몇 개의 지역교회이다. 이들 교회는 지훈이의 쾌유를 바라는 기도를 드리며, 지훈이 가족을 지속적으로 돕고 있다. 지훈이의 케이스는 교회들에 더해 전국의 CBS TV 시청자와 네티즌들이 수호천사이다.

수호천사는 바로 너와 나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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