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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내 손이 되어줄 수 있나요?

오사나이 미치코

*오사나이 미치코는 53살 된 뇌성마비장애인으로 손과 발을 사용할 수 없고 언어장애가 있는, 20살 된 아들을 둔 엄마입니다

27살 때 부모에게서 떨어져 독신생활을 시작하던 시절, 제일 곤란한 문제는 화장실이었다. 자원봉사자가 저녁8시에 돌아가면 방안에는 나 혼자만 남는다. 이루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편안하고 기분이 좋다. 음악을 듣고, 술을 마시고 수채화를 그렸다. 약간 취하면 발가락 힘이 빠져 그림 그리기가 힘들어진다. 하지만 아무리 편안하고 기분이 좋아도 내 머리 속에서 ‘화장실’이란 세 글자는 없어지지 않았다.

출산 전까지는 발을 지탱할 수 있었기에 화장실 벽에 내 허리 높이 보다 10cm 내려간 위치에 모자걸이를 거꾸로 달아 붙였다. 나는 시간이 걸리더라도 벽에 기대어 이 모자걸이에 바지와 팬티고무를 걸어서 벗곤 했다. 소변을 너무 참은 상태에서 이런 식으로 바지를 벗으면 시간이 너무 걸려 소변을 참을 수 없어 몇 번인가 실패한 적이 있다. 그래서 소변 양을 줄이기 위해 위스키를 물에 타지 않고 마셨다. 저녁 6시 이후의 물은 머리 속에서 언제나 계산하며 마셨다. 누군가 함께 자고 갈 때는 마음껏 맥주를 마실 수 있어 행복했다.

대변은 되도록 핼퍼나 캐어사가 있을 때 보려고 하는데, 잠시 후면 도와줄 사람이 없게 된다는 생각이 들면 갑자기 화장실에 가고 싶어진다. ‘사람의 몸이란 전부 신경으로 만들어져 있구나’ 하고 나는 경험적으로 느낀다.

내가 독신생활을 할 때는 온수세정 비데가 일상 생활용품으로 인정되어 무상으로 받았다. 하지만 생리를 할 때는 온수세정 비데만으로는 깨끗하게 처리되지 않아 변기 위에 타월을 놓고 허리를 앞뒤로 움직여 엉덩이를 닦았다. 더러워진 타월은 안 보이도록 싸서 세탁기에 넣어 두었다. 배탈 설사가 나서 실수로 대변이 나와 버려 묻혔을 때는 진땀이 났다. 아무도 발견하지 못하도록 팬티와 바지를 변기 속에서 씻은 적도 있다.

먹는 일과 옷 갈아입는 것은 한번 정도 거른다고 해도 살 수 있다. 하지만 밑으로 나오는 것은 절대로 참을 수 없다. 로봇이 얼굴을 보고 초상화를 그릴 정도까지 되었는데, 바지를 올리고 내리는 정도는 기계로 할 수 있지 않을까? 용변 보기, 코풀기, 돌아눕기 이 세 가지만 해결되면 독신생활도 간단한 일이다. 그 다음은 정해진 시간에 캐어를 받으면 불편할 것이 없다.

▲ 15세 아들이 지망하는 학교에 합격한 기념 사진

감기에 걸려 콧물이 계속 나올 때도 난처하다. 좀 더러운 얘기지만 혀로 핥거나 마신 적도 있다. 테이블이나 세탁기에 젖은 타월을 두고 그걸로 닦는 경우도 있다. 잠든 후에도 콧물이 멈추지 않아 온 얼굴이 콧물범벅이 된 적도 있다. 눈썹이 콧물로 굳어 버려 눈을 뜨지 못한 적도 있다.

돌아눕는 동작은 지금은 다리로 할 수 있기 때문에 아직까지 별로 불편하지 않다. 하지만 목 수술을 받았을 때는 돌아누울 수 없어 매 시간마다 한번, 간호사 두 명이 와서 몸의 방향을 바꿔주었다. 기분 좋게 자고 있을 때에도 깨웠기 때문에 언제나 수면부족이었다. 머리와 등이 아파 오고 침대가 철판처럼 느껴졌다. 잠결에 발 근처에 있던 너스콜(nurse call,간호사를 부르는 벨-편집자주)을 누른 적도 있다. 돌아눕지 못하는 고통을 알지 못했는데 목 수술을 하고 나서 근육 디스트로피에 걸린 친구의 고통을 잘 알게 되었다.

한 마디로 장애인이라고는 해도 걸을 수 있는 사람은 걷지 못하는 사람의 심정을 모른다. 손을 쓸 수 있는 장애인은 콧물이 공포의 대상이 된다는 것을 알지 못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손발을 쓰지 못하고 말까지 못하는 사람은 많은 장애인의 고통을 알고 있으며 캐어를 가르칠 수 있는 최고의 선생이다.

▲ 자립생활이 가능하다는 것을 관공서에 보여주기 위해 자원봉사자의 도움을 받아 요리를 만들고 있는 장면. 이 실험생활이 홋카이도의 자립생활운동을 성공시켜준 계기가 되었다(왼쪽). 아들을 어르면서 육아일기를 쓰고 있는 모습. 장애가 있어도 여성으로서 사는 것이 당연하다는 것을 호소하고 싶었다는 오사나이 미치코.

스물 일곱 살이나 먹었으면서 대변을 묻힌다면 아무리 백년사랑이라도 대번에 싸늘하게 식어 버릴 것이다. 우리 장애인의 자유란 마음껏 물을 마시고 가고 싶을 때 화장실에 가는 것 ㅡ 그 첫걸음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너무나 슬픈 일이지만 나는 아직 그 첫걸음을 손에 쥐지 못하고 있다. 장애가 더 심해져 이젠 혼자 바지마저 내릴 수 없다. 혼자 오랫동안 지내는 날은 되도록 차를 안 마시도록 애쓰고 있다. 언제 어디서든 마음껏 차를 마실 수 있는 날이 오면 그 때는 일본도 선진국이라 불러도 될 것이다.

어릴 적 시설에 있을 때는 간호사가 엉덩이를 닦아주는 방식이 아주 형편없었다. 그에 비하면 보모들은 잘 하는 사람이 많았다. 왜 일까? 캐어하는 손에 성의가 빠졌을 때는 미움마저 느낀다는 걸 알기 바란다. 지금이라면 ‘좀 더 세게, 한번 더’ 라고 몇 번이라도 말 할수 있지만 아이들은 그렇게 하지 못한다. 아직 말을 하지 못하는 아기들도 분명, 좀 더 엉덩이를 깨끗하게 닦아달라고 외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캐어와 육아에는 공통되는 점이 많다

아이는 감성이 뛰어나도 말을 잘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것을 어른이 어떻게 읽어낼 것인가가 비결이다. 나도 어릴 적에 수많은 말을 참았다, 말하면 혼날 것 같아 몹시도 두려웠다. 그래서 지금 이렇게 수다쟁이가 된 것일까. 노망이 든 노인도 어쩌면 노망이든 척하는 것인지 모른다. 그렇게 하는 것이 살기 편할 때가 있다. 시설의 직원들이 어머니를 헐뜯고 있을 때도, 부모님이 말다툼을 할 때도 나는 아무것도 모르는 척 , 헤헤 웃고 있을 것이다. 그렇게 하는 것이 편했기 때문이다.

내가 별로 자랑할 만한 일은 없지만 딱 한 가지는 있다. 그것은 소변을 오랬 동안 참을 수 있다는 점이다. 하지만 임신 했을 때는 자궁이 팽창해 방광이 눌리기 때문에 화장실을 자주 갔다. 그럴 때는 스스로가 미울 정도였다 . 내 친구 중에는 소변 참는 선수가 있는데 아랫배가 전부 방광이 되어 버릴 정도였다. 의사조차도 의아하게 여겼다고 한다. 사람은 단련하면 끝없이 발달하는가 보다. 하지만 참기대회는 자랑할 만한 일이 아니다. 부끄러워해야 할 현실이다.

▲ 관공서에 가서 오사나이 미치코가 한 공무원과 논쟁하고 있는 모습. 그녀는 이렇게 사회 속에서 일하고 있을 때가 가장 즐거운 때라고 말한다.

 

퀴즈 프로그램에서 대변 냄새를 없애는 약을 묻는 질문이 나왔는데, 그걸 복용할 것인지 안 할 것인지 에 대한 토론이 있었다. 대변은 원래 냄새가 나야 정상이므로 인간다운 면을 잃어버린다는 대답까지 있었다. 어떤 사람은 자신이 누워 일어나지 못하는 노인이 되면 먹겠다는 대답도 있었다. 나는 아직 내 대답을 정하지 않았다. 하지만 누워 일어나지 못하게 되고 종이기저귀를 사용해야 할 날이 오면 그 약을 복용하고 싶다. 몸에 해가 되지 않는다면 말이다.

수세식화장실에서 대변을 볼 때는 아무도 보지 못하게 물내림 손잡이에 긴 끈을 달아 발로 잡아당길 수 있게 해놓았다. 대변의 모양에 대해서는 나의 프라이버시를 지키고 싶다. 하지만 일어나지 못하게 되고 기저귀를 차게 되면 그 프라이버시마저 버려야 한다.

변비에 걸려 몇 번이나 화장실에 가면 어머니는, “설사니, 안 나오니, 딱딱하니?”라며 묻는다. 어머니는 악의 없이 하는 말이지만, 40세도 넘은 여성에게 대변이 나왔는지 안 나왔는지 묻는 일에는 인내심의 한계를 넘어 버릴 때도 있다. 심한 장애아를 가진 어머니는 아이의 몸이 자기 몸의 일부라고 생각하는 것일까? “ 너와 나는 별개의 인간, 다른 인생 길을 가야 해”라고 할 수있는 어머니가 한 명이라도 늘어나기를 바란다.

내 어머니의 엉덩이 닦는 법은 백 점인데 엉덩이를 닦은 감촉으로 대변의 굳은 정도를 아는 것 같다. 딱딱할 때에는 저녁 식탁에 섬유질 음식이 잔뜩 올라온다. 고맙기도 하고 안 고맙기도 하고……. 대변의 굳은 정도까지 어머니에게 보이고 싶지 않다. 이런 점이 아이를 떠나보내지 못하는 어머니가 될 위험성을 암시한다.

자유란 무엇인가? 변기 위에 앉아 힘주며 생각한다.

글은 오사나이 미치코(小山內 美智子) 원저 의 한국어 번역판 <당신은 내 손이 되어 줄 수 있나요?>(깊은자유 발행/변은숙 옮김)의 일부를 발췌한 것입니다.

오사나이 미치코. 1953년 홋카이도 출생. 1977년 <삿포로 이치코 모임> 결성. 1981년 <발가락으로 쓴 스웨덴 일기> 출판. 현재는 구술 기록에 의한 집필 활동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2000년 6월 한국을 방문해 전국을 돌며 강연을 했습니다. 주요 저서로 <휠체어에서 윙크>, <아픔 속에서 찾은 행복> 등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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