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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으로 행복을 전하는 단이

장애어린이 미술치료 작품전시회 어린이 작가 인터뷰

 

“이 그림을 정말 7살 아이가 그렸다고? 설마, 누가 도와준 거겠지.”

(가운데) 서울시민청갤러리에 전시됐던 단이의 작품들. 하마와 여우.
(가운데) 서울시민청갤러리에 전시됐던 단이의 작품들. 하마와 여우.

지난 1월, 서울시민청갤러리에서 진행된 장애어린이 미술치료 작품전시회의 작품 중 두 개가 이런 논란(?!)을 불렀습니다. 7살 아이가 그린 작품이 분명한데 그 형태며 색의 조화가 너무 뛰어났던 탓입니다. 아이의 미술치료를 담당했던 주하나 미술치료사가 사실 확인을 해주고 나서도 다들 의심을 거두지 못하는 눈칩니다.

그림을 그린 아이는 올해 만 8살이 된 유단이. 1주일에 한 번씩 진행되는 미술치료, 푸르메재단 넥슨어린이재활병원 미술치료실에서 단이를 만날 수 있었습니다. 무엇을 그리겠냐는 질문에 고민도 없이 “소”라고 대답하더니 재료도 척척 가져옵니다. 원하는 소의 사진을 찾기 위해 태블릿PC를 휙휙 넘기는 손길에도 주저함이 없습니다. 언어 표현이 자유롭지 않지만 그림에 있어서만큼은 자신의 생각을 분명하게 전달합니다.

40분 치료시간 동안 작품 하나를 뚝딱 완성하는 단이
40분 치료시간 동안 작품 하나를 뚝딱 완성하는 단이.

마음에 드는 사진을 찾았는지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는 단이. 태도가 사뭇 진지합니다. 10분이 채 지나지 않아 소가 제 형상을 드러내는데 뿔부터 얼굴, 다리 형태까지 소의 전형적인 특징이 살아있습니다. 색연필과 붓을 이용해 색칠을 하는데 각 색들이 제 영역에서 벗어나지 않습니다. 대충 그린 것 같았는데 완성한 작품을 보니 참 근사합니다. 40분 안에 작품 하나를 뚝딱 완성한 단이는 안내판에 그림을 붙여놓고는 별 미련이 없는 듯 돌아섭니다.

행동도 재능도 남달랐던 아이

엄마인 소림 씨의 눈에 18개월이 된 단이는 여느 아이와 좀 달랐습니다. 어떤 물건이건 그냥 다가가 덥썩 만지는 법이 없었습니다. 일주일을 가만히 지켜보고 조금씩 다가가가다 익숙해졌다 싶을 때쯤 손가락 하나를 들어 살짝 건드려보면서 상황을 살폈습니다. 매우 조심스러운 아이였지요. 단이는 36개월이 됐을 때 자폐성장애 확진을 받았습니다.

단이는 소리에 민감합니다. 학교 등굣길에 흘러나오는 음악에 귀를 막으며 고통을 호소할 정도입니다. 음악을 전공한 엄마는 속상하기도 했습니다. 이 세상 아름다운 소리들을 누구보다 많이 들려주고 싶었거든요.

대신 단이는 미술 쪽에 남다른 재능을 보였습니다. “아주 어렸을 때부터 보는 사람마다 동물을 그려달라고 쫓아다녔어요. 특히 그림을 잘 그리는 아빠가 단이의 주 타깃이었지요.” 4살쯤 됐을 때 스스로 그릴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는지 그때부터 벽, 책상, 바닥 등 공간만 있으면 그림으로 채웠습니다. 동물만 그리는 단이 덕분에 집은 동물의 왕국이 됐습니다.

단이가 완성한 작품을 사진에 담는 엄마 이소림 씨.
단이가 완성한 작품을 사진에 담는 엄마 이소림 씨.

“말리지 않으면 하루 종일 그림을 그렸어요. 언어소통이 힘든 단이에게 미술은 유일한 자기표현의 수단인 셈이었죠. 더 다양한 방식으로 그림을 그릴 수 있게 되면 생각이 더 자유로워질 것이라는 생각에 미술치료를 시작하게 됐어요.”

단이는 푸르메어린이재활병원 개원 직후부터 치료를 시작한 터줏대감입니다. 처음 몇 달간은 치료가 쉽지 않았습니다. 주하나 미술치료사는 그림을 그리면서 물감이 손에 묻는 것도, 색칠을 하다가 선이 조금 삐져나가는 것도 단이에게는 견디기 힘든 일이었다고 회상합니다.

“더 이상 그림을 그릴 수 없을 정도로 울면서 손에 묻는 것을 끊임없이 닦아냈어요.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는 울면서도 그림을 끝까지 완성하더라고요.”

엄마 소림 씨가 단이의 그림으로 만든 엽서세트.
엄마 소림 씨가 단이의 그림으로 만든 엽서세트.

단이에게 선물 같았던 ‘푸르메 작품전시회’

단이의 세계가 더 넓어진 것은 자신과 친구들의 작품이 걸린 ‘장애어린이 미술치료 작품전시’를 보기 위해 시민청을 세 번이나 방문한 이후입니다. 동물만 그리던 것에서 벗어나 <잭과 콩나무> 동화를 그리고 싶다고 먼저 얘기하는가 하면 완성된 작품을 오려 각 캐릭터를 활용하는 역할놀이에도 흥미를 보였습니다. 처음으로 다른 친구들의 작품을 보고 같은 것을 그리고 싶다는 모방의 의사를 밝히기도 했습니다. 엄마 소림 씨에게도 낯선 모습이었습니다.

“손에 묻는 것을 좋아하지 않아서 조형물을 만드는 것에는 영 관심이 없었는데 전시장에서는 유독 다른 친구들의 입체작품을 유심히 살피더라고요. 그러면서 다양한 재료를 활용하게 되고 단순히 동물 외에 스토리를 그리는 등 다른 소재들에도 관심을 갖게 된 것 같아요.”

주하나 미술치료사 역시 “단이를 비롯해 전시를 참여했던 대부분의 아이들이 이후 치료시간에  자극을 더 쉽게 받아들이고 있다”며 “부모를 비롯해 다른 사람의 말과 행동을 따라하면서 성장하는 아이들에게 다른 친구를 모방하려는 욕구는 매우 긍정적인 신호”라고 설명합니다.

엄마와 함께 행복하게 웃는 단이의 모습.
엄마와 함께 행복하게 웃는 단이의 모습.

그림을 칭찬하는 엄마와 눈을 맞추며 하이파이브를 하고 자신의 그림을 사진으로 남기는 엄마 옆에 꼭 붙어있던 단이. 긴 문장을 말하지는 못하지만 엄마의 질문에 짧은 단어로 곧잘 대답하더니 마주보고 웃으며 포옹도 합니다.

엄마 소림 씨는 단이가 참 행복해 보인다는 말에 “정말 그랬으면 좋겠다”며 환하게 웃습니다. 그리고는 단이가 그린 그림으로 만든 엽서라며 한 세트를 건넵니다. 얼룩말, 펜더, 하마, 양 등 각기 다른 동물들인데 표정을 보니 하나같이 입꼬리가 올라가 있습니다. 그림에서도 단이의 행복이 전해지는 듯합니다. “건강하고 행복하기만 했으면 좋겠다”는 엄마의 소박하지만 간절한 소망이 단이에게도 전달된 걸까요?

“단이가 그림으로 무엇을 이뤘으면 하는 욕심은 없어요. 단지 좋아하는 그림을 통해 자기표현을 자유롭게 할 수 있기를 바랄 뿐이에요.”

단이의 그림에 언제까지나 행복이 묻어나왔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싶은 것도 하고 싶은 것도 많아질 단이의 앞으로가 더욱 기다려집니다.

*글·사진= 지화정 간사 (커뮤니케이션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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