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내딛는 걸음, 앞으로

신용카드사회공헌재단 지원사업 어린이


 


‘고함스병’. 폐에 물이 차고 뼈가 녹아내리는 희귀난치질환으로 전 세계에 300명 미만의 환자들이 앓고 있습니다. 승재도 고함스병에 맞서 5년째 투병하고 있습니다. 생사를 넘나들며 가픈 숨을 몰아쉬던 아이는 이제 순박한 웃음을 띤 채 세상과 천천히 호흡하고 있습니다.


희귀난치질환인 ‘고함스병’과 투병 중인 승재와 엄마 임희진 씨
희귀난치질환인 ‘고함스병’과 투병 중인 승재와 엄마 임희진 씨

어느 날 찾아온 ‘고통’


승재는 초등학교 2학년 때 고함스병을 진단받았습니다. 옆구리가 좀 뻐근했을 뿐 그때만 해도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중학교 입학을 앞둔 겨울방학, 평소와는 달리 숨을 내쉬기가 무척 힘들었습니다. 대학병원을 찾으니 양쪽 폐에 물이 가득 찼다고 했습니다. 폐에 차오른 물과 혈액 등을 수시로 빼내고 영양소를 공급해야 하는 상황. 꼬박 2년을 병원에 입원해야 했습니다.


2년간 입원했을 때 생사의 고비를 넘나들던 승재 (KBS 가정의 달 특집 다큐멘터리)
2년간 입원했을 때 생사의 고비를 넘나들던 승재 (KBS 가정의 달 특집 다큐멘터리)

양쪽에 호스를 끼고 있느라 똑바로 누울 수 없어 잠은 앉아서 잤고 밥 대신 유동식을 먹었습니다. 호흡을 위해 목 부위를 절개한 탓에 하루에도 몇 번씩 가래를 빼냈습니다. 급기야 전신패혈증으로 중환자실에 머물면서 병세가 나빠졌습니다. 24시간 아들 곁을 지키던 엄마 임희진 씨는 “검사와 시술, 치료의 연속에 쉴 틈이 없던 승재가 너무 힘들어 보였어요. 하루는 자기를 내버려달라고 하더군요”라며 당시를 떠올립니다.


그러다 장기입원 환아들에 대한 방송 프로그램에 출연하면서 해외에서 사용하는 고함스병 치료제를 알게 됐습니다. 두 달 간의 기다림 끝에 약을 복용하자 기적 같은 일이 벌어졌습니다. 폐에 더 이상 물이 차지 않았고, 휠체어를 타는 대신 걸을 수 있게 된 것입니다. 매일 생사의 고비를 넘기던 승재에게 꿈만 같던 퇴원을 했습니다.


다시 걸을 수 있게 된 기적


승재는 신용카드사회공헌재단의 지원으로 약을 꾸준히 복용하고 있습니다. 가족여행과 동생 교육비도 지원받았습니다. 각종 병원비를 감당하기 버거웠던 가족에게 한줄기 빛이 된 것입니다. 하루가 다르게 크는 또래 친구들에 비해 성장 속도는 더디지만, “편하게 누워 잘 수 있고 제 힘으로 걸을 수 있어서 좋아요”라며 이전보다 달라진 몸의 변화를 얘기합니다.


신용카드사회공헌재단의 지원으로 꾸준히 복용하게 된 치료제
신용카드사회공헌재단의 지원으로 꾸준히 복용하게 된 치료제

이제 등하교도 혼자서 합니다. 매일 가파른 언덕을 오르내리느라 몇 번씩 숨을 골라야 하지만 유일한 운동 삼아 거뜬히 해냅니다. 중학교를 거의 다니지 못해 친구를 사귈 기회가 없었던 승재는 고등학생이 되면서 같이 점심밥 먹는 소중한 친구가 생겼습니다. “이제 조금 적응한 것 같아요”라며 수줍은 미소를 짓습니다.


가족들과 함께 떠난 제주여행
가족들과 함께 떠난 제주여행 (푸르메재단 DB)

몸이 불편해 엄두를 내지 못했던 여행. 얼마 전, 온 가족이 함께 제주도를 다녀왔습니다. “가족들이랑 오랜만에 가니까 아쿠아리움도 박물관도 식물원도 전부 다 재밌었어요.” 혹여 무리할까봐서 숙소에서 쉬라는 엄마의 만류에도 기어이 한 바퀴 더 돌며 제주 풍경을 만끽했습니다. 자신의 병이 남에게 폐가 될까봐 번번이 수학여행과 소풍 등 단체 활동에 참석하지 않았던 승재에게 더없이 특별한 추억입니다.


승재의 중학생 동생은 영어학원에 다니게 됐습니다. “둘째가 우리 형편을 아니까 학원 다니고 싶다는 말을 못 했어요. 재단의 지원으로 학원을 다니더니 영어에 흥미가 생겼대요. 여력이 없어서 못 해줬지만 다 해주고 싶어요.” 아픈 아이를 돌보느라 미처 가닿지 못한 부모의 마음이 느껴집니다.


병원에서 싹튼 예술가의 꿈


오랜 입원생활 동안 환자와 가족의 마음을 보듬는 완화의료팀을 통해 미술을 배운 승재는 예술적 재능을 뽐냈습니다. “하루 종일 스케치북에 그림을 실컷 그리고 나노블록과 건담을 조립했어요. 여기에 집중하는 동안만큼은 숨도 안 차고 아프지 않았죠.” 얼마나 푹 빠졌던지 중환자실에서 산소호흡기를 낀 채로 손을 부지런히 움직였습니다. 애니메이션 작가의 꿈을 가슴에 담아둔 채로 말입니다.


승재가 그린 그림
승재가 그린 그림 (임희진 씨 제공)

엄마는 불과 몇 개월 전만 해도 매 순간 고통에 힘겨워하다 조금씩 나아지는 승재의 모습을 보면서 작은 희망을 그려봅니다. “아픈 아이라도 삶은 계속되잖아요. 집에만 있을 순 없지요. 기초과정이 부족한 승재에게 계속 배우고 성장할 수 있는 기회가 필요해요. 승재가 꿈을 꾸며 나아갈 수 있도록 같은 아픔을 경험한 형‧누나가 멘토가 되어주면 좋겠어요.” 승재의 어깨를 다독여줄 ‘선배’의 존재가 절실합니다.


병원 검진을 받고서 활짝 웃고 있는 승재
병원 검진을 받고서 활짝 웃고 있는 승재

퇴원 뒤, 두 달에 한 번 찾는 병원 진료 날. 담당 의사가 지난 번 검사 결과가 좋다고 하자 긴장감이 역력했던 모자의 표정이 금세 환해집니다. 엄마는 “아이가 너무 아팠기 때문에 혼자 움직일 수 있는 몸 상태가 유지된다면 더 바랄 게 없어요”라며 지금 이 순간이 행복하다고 말합니다. 엄마의 손을 꼭 쥔 승재의 발걸음이 오늘따라 한결 가벼워 보입니다.


*글, 사진= 정담빈 선임간사 (커뮤니케이션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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