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섹션

[한국일보] 장애인 부름에 늘 응답하는 병원 만들 것

아내의 교통사고… 새 인생 목표 생겨
“장애인 부름에 늘 응답하는 병원 만들 것”

<19> 기자 하다 장애인 재활병원 세운 푸르메재단 상임이사 백경학

백경학 푸르메재단 상임이사는 “장애인을 가족처럼 돌보는 재활전문병원을 반드시 세워 그들의 마음에 난 상처까지
보듬겠다”고 말했다. ●신상순기자 ssshin@hk.co.kr
“장애인에게 희망 바이러스를 전파합니다”
“누구나 장애인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해마다 30만명이 교통사고 등으로 장애인이 됩니다. 하지만 이들을 수용할 병상은 4,000여개 밖에 되지 않는 실정이에요. 비용이나 희생을 모두 개인이 부담해야 하는데, 치료기간이 길어지면 가정이 파괴되기도 하죠. 이걸 막으려면 누군가 나서 짐을 덜어줘야 합니다.”
백경학(47) 푸르메재단 상임이사는 방송ㆍ신문기자에서 국내 최초 하우스맥주 전문점 창업자를 거쳐 장애인을 위한 비영리재단인 푸르메재단 상임이사까지 다양한 직업을 거치며 다채로운 인생을 살고 있다. 잘나가던 기자에서 사업가로, 다시 사회복지운동가로 그가 변신에 변신을 거듭한 결정적인 계기는 불의의 교통사고로 다리를 잃은 아내 때문이다.
아내의 교통사고 인생을 바꿔 놓아
1996년 CBS방송 기자 시절, 가족과 함께 독일로 연수를 떠날 때만 해도 그의 목표는 ‘글 잘 쓰는 사람’이 되는 것이었다. 그런데 1998년 6월2일 귀국을 한 달 앞두고 떠난 영국 스코틀랜드 여행 길에서 부인 황혜경(44)씨가 교통사고로 왼쪽 다리를 잃으면서 그의 인생은 예기치 못한 방향으로 흘렀다.

“스코틀랜드에서 런던으로 막 접어든 길이었습니다. 2차선 산길을 운전하다 여섯 살 배기 딸아이 속옷을 갈아 입히러 잠시 자동차를 세우고 아내가 트렁크를 여는 순간 어디에선가 차 한 대가 속도를 내며 달려왔습니다. 시야가 훤히 보이는 오르막길에서 비상등까지 켠 상태였는데, 그 차는 무서운 속도로 돌진해 왔어요. 정신을 차렸을 때에는 이미 아내는 차 밑에 깔린 뒤였습니다. 아내는 피를 흥건히 흘린 채 쓰러져 있었고요. 아내는 몇 차례 수술을 받고 몇 달 동안 혼수상태에 있다가 깨어났지만 결국 왼쪽 다리를 잃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백 이사는 뜻하지 않은 사고에 절망하지 않고 새로운 인생 목표를 세웠다. 언제가 됐든 ‘환자의 부름에 늘 응답하고, 환자를 인격체로 대하는 작고 아름다운 재활병원을 세우리라’는 것이었다.

귀국 후에 그는 한겨레신문과 동아일보로 옮기면서 기자생활을 이어갔지만 부인의 계속되는 수술과 재활치료 비용을 마련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는 “기자 월급으로는 350만원이나 하는 아내 병원비조차 감당하기 힘들었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국내 최초 하우스맥주 전문점 열어

결국 그는 2002년 12년 간 이어온 기자생활을 접고, 독일에서 만난 맥주 양조학을 전공한 후배와 경제부 후배 기자와 의기 투합해 하우스맥주 전문점을 내기로 했다. 가능성을 믿어준 지인 58명이 5000만원씩 투자해 만들어준 29억원으로 서울 강남역 인근에 국내 최초의 하우스맥주 전문점인 ‘옥토버훼스트’1호점을 열었다. 다행히 사업은 대성공이었다. 1년 만에 추가로 투자를 받아 종로1가 청진동에 2호점을 내고 신촌과 마포에도 분점을 낼 정도로 번창했다.

부인의 병세도 점차 호전돼 가족의 삶도 안정을 되찾았다. 보통 생활이 안정되면 전에 했던 약속이나 맹세는 흐지부지 잊게 마련인데 그는 그러지 않았다. 오히려 애초에 목표로 하던 재활전문병원 설립의 꿈을 좀 더 빨리 펼칠 수 있게 된 것을 기뻐했다.

재활전문병원 건립 꿈꾸다

“스코틀랜드는 유럽에서 비교적 못 사는 곳이지만 재활병원 시설은 훌륭했습니다. 담당의사는 혼수상태인 아내를 죽게 내버려둘 수 없다며 저와 함께 눈물을 흘리더군요. 그런데 우리나라 재활병원은 한마디로 ‘아비규환’이었습니다. 병상이 비좁아 움직일 때마다 환자들끼리 부딪치고, 의료진은 아무리 불러도 오지 않고…”

그래서 그는 ‘제대로 된’ 재활전문
병원을 세우리라 다짐하고, 꿈을 실천하기 위해 2004년 8월 김성수 대한성공회 주교와 박원순 아름다운재단 상임이사, 강지원 변호사 등과 뜻을 모아 푸르메재단(www.purme.org, 02-720-7002)을 설립했다. 백 이사는 옥토버훼스트 사업 지분과 가해자측 보험회사에서 받은 ‘우선피해보상금’ 1억원을 몽땅 털어 넣었다. 이듬해에는 8년 간 소송 끝에 받아낸 피해 보상금 107만5,000파운드(약 20억원)의 절반마저 푸르메재단에 보탰다. 그러자 그의 재단 설립취지에 공감한 많은 이들이 성원을 보내왔다. 시간제 근무로 번 돈을 병원 건립에 보태라며 내놓은 대학생 등 전국 각지에서 2,000여명으로부터 성금이 답지했다.

이런 성원에 힘입어 2008년 12월 드디어 재활전문병원 건립의 초석을 다졌다. 경기 화성시가 3만8,000㎡의 땅을 제공했고, 병원전문설계사무소 ‘간삼 파트너스’는 최소 인건비만 받고 병원설계를 맡았다. 각계 도움으로 토지 조성까지 마쳐 병원 건립은 순조로워 보였다. 하지만 최근 경기침체로 기업들의 기부가 저조해지면서 2012년으로 예정했던 병원 건립이 늦어지고 있다. 백 이사는 “150병상을 갖춘 재활전문병원을 지으려면 450억원이 드는데, 많은 분이 십시일반으로 도와주었지만 아직 55억원밖에 모금되지 않은 상태”라며 아쉬워했다.

병원이 세워지면 그곳에는 백 이사의 철학이 고스란히 담기게 될 것이다. “우선은 환자가 주인인 병원, 둘째는 치료·간병·훈련 일체를 병원에서 책임지고 환자 가족은 생계에 전념할 수 있는 병원, 셋째는 시민기금과 지방자치단체, 기업의 경영 보전으로 가난한 사람도 누구나 입원 치료를 받을 수 있는 병원, 넷째는 유리알처럼 투명한 경영을 하는 병원이지요. 환자의 부름에 응답하는, 환자를 위한 병원을 만드는 게 꿈입니다.” 


재활전문병원을 추진하는 와중에도 그의 발걸음은 멈추지 않았다. 2007년 7월에는 서울 종로구 신교동에 장애인 전용 푸르메나눔치과와 어린이한방센터를 세우고, 전국에서 오는 장애인 환자를 아주 저렴한 비용으로 치료해 주고 있다. 최근에는 서울시 종로구청과 함께 서울 종로구 신교동에 푸르메어린이재활센터 및 종로장애인복지관을 짓기로 하고 구체적인 협의를 진행하고 있다.
백 이사는 본명보다 ‘구텐(독일어로 ‘선한, 좋은’)백’이라는 닉네임으로 유명하다. ‘차이가 차별이 되지 않는 세상을 위해’ 일한다는 그에게 맞춤옷처럼 꼭 맞는 닉네임이다.
백경학 이사가 말하는 ‘행복하게 사는 법’
백경학(왼쪽) 푸르메재단 상임이사와 산악인 엄홍길(왼쪽에서 네 번째) 재단 홍보대사가 2008년 5월 장애청소년들과 백두산 천지에 올랐다. ●푸르메재단 제공
성공하는 사람의 성공습관은 무엇일까? 일찍 일어나기, 긍정적 사고, 메모하는 습관, 자신감, 철저한 시간관리, 독서, 다이어트, 금연 등 매우 다양하다.

백경학 푸르메재단 이사는 “나눔과 기부가 성공하는 삶을 만들 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 행복하게 만드는 가장 쉽고
유용한 방법”이라고 말한다.

“단군 이래 우리 사회가 이렇게 물질적으로 풍요로웠던 때가 있었던가요? 우리 중산층 사람들은 영국 여왕보다 더 잘 먹고 잘 살지만 물질적 풍요 속에 마음은 늘 허기지고 가난하지요. 돈이 쌓일수록 상대적인 빈곤감은 더해갑니다.” 백 이사는 물질적 풍요가 결코 행복을 가져다 줄 수 없다는 걸 깨달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허기지고 가난한 마음을 풍요하게 만들고 행복해질 수 있을까? 백 이사는 “내가 가진 것, 내게 넘치는 것을 기꺼이 나누는 것”이라고 단언한다.  “나눔을 실천하는 분 가운데에는 부자도 간혹 있지만 월급으로 살아가거나 먹고 살기가 빠듯한 분이 대부분 나눔에 동참하고 있습니다. 매달 33만원을 지원받는 장애인 수급자 아주머니가 기부금을 내놓고, 홀로 되신 할머니가 인천 땅 500평을 가난한 장애어린이를 위해 써달라고 쾌척했지요.”

‘무엇이 행복한 삶인가?’라는 질문에 그는 중국 속담을 인용했다. ‘한 시간 행복하려면 낮잠을 자고, 하루 행복하려면 낚시를 하고, 한 달 행복하려면 결혼을 하고, 일년 행복하려면 유산을 받아라. 그리고 평생 행복하려면 네 주위의 가난한 사람을 도우라’는 것이다. 한 번쯤 음미해 볼만 한 말이다.

권대익기자 dkwon@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