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롤러코스터에 엮이다

농담하시는 아드님

내가 전생에 무슨 어여쁜 일을 해서 이승에서 홍복을 누리는 건지, 자폐장애를 갖고 있는 우리 아드님은 나날이 자가발전을 하더니 이제는 스스로 농담을 지어내기도 하는 수준에 이르렀다. 일테면 내가 “밤에 고양이들 땜에 바깥이 시끄러웠지?”라고 하면, “거기도 ○○이 같은 애가 있었나보죠.”라고 하는 식이다. ○○이는 물론 오빠에게 가끔 사납게 핀잔을 주는 동생을 가리킨다. 그 말을 듣고 동생이 “무엇이?!”라고 소리치면 짐짓 “아니, 엄마 같은 고양이었나?”라며 눙치는 표정으로 찡긋 웃는다. 놀라운 발전이다.

아들이 어렸을 때, 억지로 개그콘서트를 보라고 시켰던 적이 있었다. 그때는 그것이 마치 ‘보통사람들’의 문법을 익히는 수단이라도 된다고 여겼다. 그런데 아들이 웃는 걸 보니 슬랩스틱류의 장면에서만 웃었고, 개그를 들으면서는 남들 웃는 소리에 0.5초쯤 따라가며 웃었다. 그러니까 아들은 웃는 게 아니라 ‘웃어주는’ 것이었다. 그것도 참 얼마나 고역일까 싶어서 얼마 뒤부터는 아들을 웃는 사역에서 해방시켜 주었다. 그랬는데 이제 스스로 농담을 만드는 경지에 오다니 얼마나 엄청난 발전인지! 사실 말이지, 이렇게 조금씩 자가발전하다가 아들이 불혹쯤 될 나이가 되면 장애 등급을 영 못 받을 수도 있겠다는 개콘적 상상도 했다.(설마 그때까지 ‘등급’이라는 어처구니없는 표준이 남아있을라고, 하는 탄식은 또 그렇다 치고.)

롤러코스터가 달리는 모습
그런 우리 아드님이 얼마 전부터 놀이동산에 가자고 졸랐다. 롤러코스터 때문이다. 아들은 롤러코스터 만드는 게임도 하고, 그거 타는 동영상도 찾아보고할 만큼 좋아하는 터이지만 혼자서는 나서기를 주저해서 꼭 엄마와 같이 가자고 조르는데, 엄마는 타고난 겁쟁이에다 고소공포증이 있으니 참으로 딱한 모자가 아닐 수 없었다. 개학이 얼마 남지 않았으니 방학선물로(내게는 개학선물로!) 다 큰 아들 딸 손을 잡고 놀이동산엘 갔다. 내내 흐리고 비 오던 여름날 중에, 하필 반짝 하루 종일 땡볕이 퍼붓던 날에.

롤러코스터를 타는 아들

동물과의 교감을 은연중 가르친답시고 노골적으로 사파리로 끌고 다니다가(엄마란 못 말리는 존재다…), 드디어 롤러코스터로 보내니 아들은 날듯이 뛰어갔다. 이윽고 아들이 탄 ‘티 익스프레스’란 것이 우르르 소리를 내며 움직였다. 롤러코스터를 뒤따라 처자들의 비명소리가 까마귀 소리처럼 허공에 흩어졌다.

그런데 56미터 까마득한 높이의 롤러코스터를 올려다보며 그 꼭대기 어디쯤 지나치고 있을 아들의 자리를 가늠하다가 문득 뜬금없이 가슴이 툭 떨어졌다. 아, 내 새끼의 삶이 저러하구나…!

허공 속에 얼기설기 엮은 구조물 위 좁은 외줄궤도 위로 아들은 요란스레 흔들리며 내달리고 있다. 툭 치면 튕겨나갈 듯 빈약한 수레와 위험한 속도 속에 아들이 있었다. 나는 백척간두 위에서 아슬아슬한 질주를 하고 있는 아들이 몹시 안쓰러웠다. 세상은 아들에게 저렇듯 위험하고 외로운 것이리라, 세상은 내 새끼를 저런 거칠고 위태로운 곳에 올려놓고 야멸차게 흔들어대고 있구나…

롤러코스터를 타고 있는 사람들

폭염 속에 뜬금없이 당도한 뾰족한 우울과 청승에 빠져있는데 아들이 당황스런 얼굴로 내려왔다. 안경이 날아갔다는 것이다. 그놈의 롤러코스터 위에서 첫 번째 급강하 때 그만 안경이 휙 날아갔는데 잡을 수가 없었다는 것이다.(안 잡길 천만다행이지, 그 위에서 허둥댔을까봐 또 한 번 가슴이 철렁.) 날아간 안경에도 황당했겠지만, 그 이후 제대로 보이지도 않는 뿌연 질주를 해야 했던 아들은 얼마나 당황스러웠을까. 상상만으로도 나는 공포스러워서 주저앉을 지경이 되었다.

그런데 아들은 그런 공포니 당황이니 하는 것에는 전혀 관심이 없는 듯했다. 오직 날아간 안경을 어떻게 찾을 것인가, 누가 가서 집어다 줄 것인가를 끈질기게 묻고 또 물었다. 물론 그 위에서 겪었던 흐린 시야 속 질주의 불편함이 몹시 싫기도 했겠지만, 나중에 생각해보니까 아들은 제가 지니던 물건을 그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포기하는 게 싫기도 했었던 것 같다.

아무튼 더위와 짜증과 시달림과 불평 속에 몇 시간을 더 보내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하루를 가만히 복기하자니 여러 생각이 꼬리를 문다. 비명을 삼키며 심장이 오그라들었던 건 나였고, 오히려 아들은 56미터 꼭대기건 땅 위건 그저 안전한 설계에 대한 굳은 믿음 속에 짜릿한 속도를 즐겼을 뿐이고, 날아간 안경이 분하고 황당했을 뿐이다.

안경

그 순간에 진짜로 내가 두려웠던 것은, 그래서 가슴이 쿵하고 떨어졌던 것은 다름 아니라 바로 그 장면에서였다. 그 위에 아들을 혼자 올려놓고 쳐다만 보고 있어야 했던 그 장면 말이다. 옆에 있어주지 못한 미안함과 범벅이 되어 그 길은 더욱 위태로워 보였다. 게다가 롤러코스터야 미친 듯 내달리다 어느 순간 출발지로 돌아와 안전하게 내릴 터이지만, 실제 삶 속에서 내 새끼의 길은 미친 듯 내달리다 아무 곳에서나 휙 내동댕이치고는 무심히 사라질 수도 있는 일 아닌가. 그 곳에 어미인 내가 같이 있어주지 못한 순간이 또 올 것이다.

그 매정하고 낯선 세상 속에서 아들은 순식간에 날아가 버린 안경을 허둥지둥 찾듯이 엄마를 찾을 것이고, 엄마는 더 이상 아들 곁에 있지 않다. 그 때 세상이 아들에게 안전하기를, 그 때의 세상이 아들에게 평화롭기를, 그때의 세상이 아들에게 다정하기를 바란다. 문득 잠깐씩이야 괜찮겠지만, 언제까지건 벌판에서 아이가 황망한 시선으로 엄마를 찾지는 않기를 바란다.

여기까지 생각하다가 그만 헛웃음이 터졌다. ‘이건 또 무슨 주책맞은 감정들이람’하는 생각이 들면서 정신이 들었다. 아마도 과장되게 꾸며진 놀이동산 속에서 내 감정도 덩달아 과잉되고 증폭되었던 듯싶다.

삶이란 그렇게 함부로 무엇인가에 비유해서 재단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어떤 길도 누군가의 삶을 온전하게 비유하진 못할 것이다. 그러니 롤러코스터에 대한 감상은, 그저 아무 때건 일어날 수 있는 평범한 일에(하루에도 서넛은 안경이 날아간다고 하니), 내가 시도 때도 없이 빠져드는 그 주책맞은 우울로(그래서 나 스스로에게 외면당하는 빈약한 나의 우울로) 의미를 과잉 부여했던 것이다. 내 호들갑에 내가 지쳐서 그만 녹초가 되었으니 애들에게 미안할 일이다. 심약한 엄마를 믿고 하루 종일 놀이동산을 싸돌아다니게 했으니 딱한 노릇이었지 않은가.

누구도 혼자 강해지지 않아

엄마인 나는 얼마나 억척스럽게 건강하고, 얼마나 단단하게 살아가야 할까. 이 생전에, 이 세상에 우리 아이를 위한 거처를 마련해놓고 가야 하니 말이다. 게다가 그것이 홀로 되는 일이 아니고 여럿이 세상을 바꿔나가야 하는 것이니 세상 모든 장애를 가진 아이의 어미 된 사람들은 얼마나 힘이 세야 하는지.

나는 세상 모든 장애 자식을 둔 어미들처럼, 내 생에서 내 새끼를 위한 영역을 한 줌이라도 더 넓혀놓을 수 있기를 바란다. 여럿이 힘을 합쳐 그럴 수 있기를 바란다. 영화 <룸>에 보면 이런 장면이 나온다.

파란 나비를 손에서 놓아주고 있는 모습

허물어져 버린 엄마에게 힘을 보내려고 자기의 (힘의 원천이라고 믿는)머리카락을 자르기로 결심한 아이가 할머니에게 묻는다. “내 힘이 엄마 힘이 될 수 있을까요?” 할머니가 이렇게 대답한다. “우리 모두 남을 강하게 해준단다. 누구도 혼자 강해지지 않아. 너와 엄마나 나 모두 같은 힘을 갖고 있단다.”

나와 내 가족은 서로 강하게, 나와 내 이웃도 서로 강하게.(그러다보면 언젠가 나는 까짓 롤러코스터쯤 가볍게 올라 짜릿하게 즐길 수 있을 만큼 강해질 수 있을까.)

# 오늘도 붙이는 글

1. 시민들의 촛불로 권력을 바꿔놓아 세상을 놀라게 한 나라에서 살고 있지만, 즐거운 뉴스거리가 청와대에서 매일 쏟아지는 희한한 경험을 하면서 새로운 세상에 대한 기대를 해보지만, 여전히 장애를 위한 정책은 더디기 짝이 없고, 공약의 진정성을 의심하게까지 한다. 세상은 여전히 이미 잘 살고 있거나, 금방 잘 살게 될 사람들에게만 좋은 세상일까.

2. 실은 이 모든 게 닭 때문이다. 닭들에게 많이 미안했다. 싼 치킨프라이를 먹겠다고, 싼 달걀을 먹겠다고 닭들을 좁은 케이지 안에 넣어 땅도 못 밟고 살게 하면서 약이나 뿌려대지 않았던가. 가뜩이나 더운 여름이면 더위 타느라 알도 못 낳는 닭들에게 인간의 탐욕이 늘 미안했는데, 올 여름 닭들의 수난은 참담하기까지 하다. 세상 모든 억울한 생명들, 세상 모든 불안한 삶들에게 매 순간 감정이입이 되니, 이것도 참, 병은 병이다.

*글, 사진= 김종옥 (서울장애인부모연대 동작지회장)

김종옥 자폐성 발달장애를 가진 아들을 둔 김종옥은, 가끔 철학 인문학 관련 책을 쓰지만, 가장 쓰고 싶어 하는 SF소설은 아직 쓰지 못했다. 가끔 인문학 강의도 하고 지역 내 마을사람들 일에 두루 참견하며 바쁜 척하고 지내고 있다. 쓰임과 즐김이 있는 좌파적 삶을 살고 싶어 하며, 매일같이 세월호의 아이들을 생각한다. 지은 책으로 <철학의 시작> <처음 만나는 공자> <공자 지하철을 타다(공저)> <장자 사기를 당하다> <지구는 생명체가 살만한 곳인가>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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