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의 장애인 주택, 코러스 아파트
<장애인 복지, 캐나다에서 길을 찾다>
장애인이 ‘보통의 삶’을 누릴 수 있는 사회, 어떻게 가능할까. 올해 창립 20주년을 맞은 푸르메재단 조사단이 그 실마리를 찾아 장애인 복지 선진국 캐나다로 떠났다. 장애인의 노후를 위해 국가가 함께 저축하는 세계 유일의 장애인 적금(RDSP) 제도, 돌봄 제공자와 집을 공유하며 새로운 가족을 형성하는 홈쉐어 제도, 발달장애인을 위한 사회통합형 임대주택 ‘코러스 아파트’ 등 캐나다의 복지 현장을 살펴보고, 진정한 장애인 복지 선진국을 향한 이정표를 제시한다.
<2편>
“스스로 삶을 결정하며 살아갈 수 있는 자립 공간”
캐나다의 장애인 주택, 코러스 아파트
“안녕하세요. 제 집에 오신 걸 환영해요.”
캐나다 BC주 써리(Surrey) 지역에 자리한 코러스 아파트(Chorus Apartment). 이곳 입주자인 케이티 존슨(Katie Johnson) 씨가 밝게 웃으며 우리를 맞았다. 단정하면서도 아기자기하게 꾸민 거실 한쪽은 운동하는 케이티 씨의 사진과 트로피로 가득했다. “이건 제가 속한 야구팀 사진이에요. 야구, 볼링, 수영, 킥복싱 등 여러 가지 운동을 해요.” 발달장애를 가진 그는 부모와 함께 살다가 2016년 독립해 이곳에 입주했다. 그의 집은 침실, 거실, 주방, 욕실이 갖춰진 형태다. 우리나라로 치면, 약 12평(39㎡) 크기의 분리형 원룸과 유사하다. 가장 잘 보이는 거실벽엔 친척까지 모두 담긴 커다란 가족사진이 걸렸다. “집안은 전부 제가 꾸몄어요. 가구, 작은 소품까지 직접 골랐어요. 그중 거실을 가장 좋아하고요. 나만의 공간이 있다는 게 정말 좋아요.”
코러스 아파트 입주민 케이티 존슨 씨가 자신의 집을 소개하고 있다.
‘장애인의 삶의 질’을 최우선으로 계획
케이티 씨가 사는 코러스 아파트는 캐나다의 비영리단체 ‘유니티(Uniti)’가 2016년 건립한 사회통합형 주거 모델이다. 총 71세대 규모의 임대주택으로 발달장애인 20세대와 비장애인(저소득 및 중간 소득 가구, 노인, 필수 노동자, 학생 등) 51세대가 함께 거주한다. 장애인 세대와 비장애인 세대가 분리되지 않으며, 모든 입주자가 이용할 수 있는 공동 편의 공간이 마련되어 있다. 캐나다 내에서도 모범적인 주거 지원 모델로 손꼽힌다.
코러스 아파트 내외부 모습
코러스 아파트에 대한 아이디어가 처음 나온 것은 2003년이었다. 유니티가 개최한 세미나에서 발달장애인 당사자와 가족들이 “전통적인 그룹홈과 달리 반독립적인 아파트 생활을 원한다”는 의견을 낸 것이 계기였다. 이후 유니티는 후속 논의를 이어가고 토지 등을 매입하며 코러스 아파트 건립을 추진했다. 2015년 착공해 2016년 완공하고, 같은 해 첫 입주자를 맞았다. 총건립비는 1,535만 캐나다달러(한화 약 154억 원). 유니티 자산 435만캐나다달러(토지 및 현금 지분), 모기지(mortgage・부동산담보대출) 950만 캐나다달러 등이 투입됐다.
눈여겨볼 점은 유니티가 착공 전인 2009년부터 2014년까지 발달장애인, 그 가족들과 협의를 지속했다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독립에 관심 가진 140여 명의 발달장애인을 만났다. 유니티 CEO인 더그 태넌트(Doug Tennant) 씨는 “깊은 상담을 통해 발달장애인 당사자 개개인의 삶을 면밀히 들여다보고 그 가족들과도 오랜 기간 소통했다”며 “이 내용을 바탕으로 적합한 입주자를 선정했다”고 밝혔다. 또 아파트가 지어지는 동안(2015~2016년)에는 발달장애인 입주자와 그 가족을 위한 독립 준비 과정을 진행했다. “입주자에게 어떤 지원이 필요한지 등에 대해 장애 당사자 및 가족들과 자주 대화했습니다. 가족들에게 발달장애가 있는 가족구성원이 독립적으로 생활할 준비가 되었는지도 평가하게 했어요. 저녁 시간에 혼자 집에 있게 하거나, 집안일을 시켜보는 식으로요.”
장애인이 삶의 주인으로 성장하는 ‘내 집’
이곳에 사는 장애인 입주자들은 하루 평균 2시간 정도 최소한의 지원만을 받는다. 요리나 쇼핑 같은 일상적인 도움이다. 그마저도 본인이 원치 않으면 언제든 거부할 수 있다. 세입자들은 기관이 짜준 프로그램에 의존하는 대신, 정부에서 나오는 지원금을 활용해 스스로 계획해서 원하는 지역사회 활동에 활발히 참여한다. 존슨 씨가 하는 다양한 운동 역시 본인이 선택한 프로그램이다. 이런 노력 덕분에 코러스 아파트 입주민의 만족도는 매우 높다. 유니티 측의 설명에 따르면, ‘삶의 질’을 묻는 조사 결과 코러스 아파트에 사는 장애인 입주민 평균 점수는 8.1로, BC주의 장애인 평균(7.4)이나 비장애인 평균(7.9)보다 훨씬 높았다.
독립생활을 하면서 발달장애인 입주자에게 많은 변화가 나타났다. 요리, 장보기, 빨래, 청구서 지불 등 혼자서도 많은 일을 할 수 있게 됐으며, 구직에도 더 적극적으로 나서게 됐다. 이곳을 관리하는 직원 재스퍼(Jasper) 씨는 “발달장애인이 직접 임대 계약을 맺고 일해서 얻은 소득과 정부 지원금으로 임대료와 관리비를 내게 한다”며 “이를 통해 발달장애인 입주자들은 책임감을 갖게 된다”고 했다. 어느 집이 장애인 세대인지 구별할 수 없도록 섞여 사는 환경에서 자연스러운 ‘소셜믹스’도 나타난다. “이곳에서는 다양한 사람이 자연스럽게 어울려 살아요. 장애인이라고 해서 ‘도움이 필요한 사람’으로만 여기지도 않습니다. 얼마 전에는 한밤중에 화재 알람이 울렸는데 장애인 입주자가 방마다 다니며 대피 안내를 했어요. 단순히 혼자서 살아가는 것을 넘어 다른 사람을 위해 기꺼이 나서는 삶의 태도까지 가진 것이지요.”
유니티는 코러스 아파트의 성공에 힘입어 지난해 하모니 아파트(Harmony Apartments)도 착공했다. 하모니 아파트는 총 91세대 규모의 임대아파트로 2028년 완공될 예정이다.
도움받는 존재에서 기여하는 존재로 거듭나는 곳
푸르메재단은 2016년에 푸르메재단 넥슨어린이재활병원(건립비 430억 원)을, 2022년에 푸르메소셜팜(건립비 150억 원)을 건립했다. 그 경험에 비춰볼 때 코러스 아파트와 하모니 아파트 건립 사업은 쉽지 않았을 것이다. 실제로 시 회의에서 건설 계획이 부결되는 등 여러 가지 난관에 부딪혔다. 코러스 아파트가 논의부터 착공까지 10년 이상이 걸린 것만 봐도 잘 알 수 있다. 힘든 사업을 끝내 성공시킨 근원적 힘은 바로 ‘장애인 당사자의 목소리’였다.
유니티의 자기옹호 그룹 회원인 발달장애인 크리스타 밀네 씨는 푸르메재단 연수단에 유니티 활동을 직접 소개하고,
코러스 아파트에 있는 자신의 집(오른쪽 사진)도 안내했다.
유니티는 발달장애인 당사자로 구성된 자기옹호(당사자가 스스로의 권익과 이해관계를 대변하는 것을 뜻함) 그룹을 운영한다. 이들은 다양한 지역 행사, 정치 모임 등에 직접 참여해 장애인의 권리를 보호하고, 장애인에 대한 인식을 개선하는 데 앞장서고 있다. 푸르메재단 연수단에게 유니티를 소개한 사람도 이 그룹에 소속된 크리스타 밀네(Krista Milne) 씨였다. 더그 태넌트 CEO는 “코러스와 하모니 아파트 건설 계획이 시의회에서 부결되었을 때, 자기옹호 그룹 회원들은 직접 시장과 시의원을 만나 자신들에게 이 집이 왜 필요한지, 이곳에서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를 설명하고 설득했다”고 전했다.
코러스 아파트와 유니티는 ‘집’과 ‘자립’의 의미를 우리에게 다시 생각하게 한다. 외형적으로 좋은 집을 짓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그 집에 살게 될 당사자들이 목소리를 내고 개발 과정과 실제 생활의 주인이 될 때, 비로소 그 집은 발달장애인에게 진정한 의미의 ‘보금자리’가 된다. 또 진정한 ‘자립’이란 누군가의 도움을 전혀 받지 않고 사는 것이 아니라, ‘필요한 만큼의 지원(just enough support)’을 스스로 선택하고 통제하며 살아가는 것임을 알려줬다. 발달장애 청년을 위한 일자리 마련을 넘어 자립과 주거 문제를 고민하는 푸르메재단이 나아갈 방향을 짚어준 시간이었다.
한국의 사회적 주택은…
LH 다다름하우스, 여기가 등 다양한 시도
서울 은평구에 있는 한국토지주택공사(LH)의 매입임대주택 ‘다다름하우스’. 발달장애인과 자립 준비 청년 등이 거주하고 있다. 유튜브 채널 LH 캡처
한국에서도 코러스 아파트와 비슷한 주거 지원 사업이 시도되고 있다. 서울 은평구에 있는 한국토지주택공사(LH)의 매입임대주택 ‘다다름하우스’가 대표적이다. 지하 2층·지상 5층짜리 다세대주택인 다다름하우스는 2022년 준공돼 입주민을 맞았다. 6월 기준 발달장애인 19가구와 자립 준비 청년 5가구를 비롯해 총 53가구가 살고 있다. 카페, 공유세탁소, 라운지, 창작공간 등 다양한 공용 공간을 갖춰 입주민이 각자 독립된 주거 공간에서 생활하면서도 다양한 집단 프로그램을 함께 기획할 수 있도록 설계됐다.
6월에는 경기 김포시 양촌읍에 소셜믹스(Social Mix: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어우러져 살아가는 것) 특화형 임대주택 ‘여기가(家)’가 준공됐다. 사회복지법인 프리웰이 건립한 곳으로, 장애인 12가구, 미·비혼 아동 양육 8가구, 1인 8가구를 더해 총 28가구가 거주한다. 여기가는 나이, 성별, 언어, 장애 유무는 물론 개인 능력이나 개성의 차이와 상관없이 누구나 사용하기 편리한 환경을 구현하는 ‘유니버설 디자인’을 기반으로 설계됐다. 장애인이 이동하는 데 불편함이 없도록 바닥 높낮이 차이를 없앴고, 출입문과 각 방문은 휠체어가 통과할 수 있을 만큼 크게 만들었다. 화장실 또한 전동휠체어가 회전하거나 샤워용 침대를 둘 수 있을 정도로 넓다. 여기가 면적과 구조는 장애인 거주 공간의 이상적 모델을 제시하고 있다.
글=오선영 푸르메재단 마케팅팀 부장
사진=푸르메재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