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가 인류에게 던지는 한마디 "같이 살자!"

[푸르메인연] 이정모 서대문자연사박물관장


 


“멸종이야말로 지구에서 생명이 끊임없이 이어지게 해준 결정적인 힘이죠.”


‘위기’라는 단어와 함께 언급되던 ‘멸종’이란 단어. 이정모 서대문자연사박물관장의 입을 통해 발화되는 순간 전혀 다른 창조성을 지닌 단어로 바뀝니다. 머릿속에선 장대한 지구의 역사 층층이 멸종된 생물들이 보존되어 있는 공간에서 무엇을 배워야 하는지 반짝 전구가 켜집니다. 즐겁게 틀을 깨는 접근으로 광활한 과학의 세계로 안내하는 이정모 관장을 만났습니다.


▲ 이정모 서대문자연사박물관장이 관장실 공룡 모형 옆에서 포즈를 취했다.
▲ 이정모 서대문자연사박물관장이 관장실 공룡 모형 옆에서 포즈를 취했다.

살이있는 박물관을 꿈꾸다    


서대문 안산자락길 초입에 위치한 서대문자연사박물관은 우리나라 최초로 지방자치단체가 만든 자연사박물관으로 유명합니다. 전 세계에서 수집한 공룡 화석과 광물, 동식물 표본 등 3만여 점이 넘는 전시물을 볼 수 있습니다. 올해로 5년째 수장으로 일하는 이정모 관장은 박물관을 “모두에게 열려 있고 시끌벅적하며 깨달음을 주는 공간”으로 만들고 있습니다. 과학과 음악을 함께 즐기는 콘서트, 학예사들이 직접 학교로 찾아가는 강연 프로그램, 공룡 화석 밑에서 잠자는 체험까지. ‘박물관’하면 떠오르는 고리타분한 분위기를 벗어던지기 위해 노력하는 이곳은 늘 문전성시를 이룹니다.


서대문자연사박물관이 ‘아이들 천국’이 된 배경에는 과학을 대중에게 널리 알리려는 이 관장의 왕성한 활동과 맞닿아 있습니다. 최근에 펴낸 <공생 멸종 진화>를 비롯해 과학을 보다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다양한 저술활동과 칼럼을 기고하며 전국으로 강연을 다닙니다. 생화학과 화학을 전공한 이 관장에게는 당연히 ‘과학자’라는 타이틀이 어울리지만, 오히려 자신은 ‘사이언스 커뮤니케이터’에 가깝다고 설명합니다. “과학을 대중에게 연결하는 거간꾼인 셈이죠. 과학도 쉬워져야 하지만 대중도 지식을 쌓으면서 올라와야 해요. 서로 만날 수 있도록 그 간격을 메워주는 게 저의 역할입니다.” 서류 더미들로 수북한 책상에 집필 중임을 알리는 컴퓨터 화면이 깜빡대는 관장실은 그 역할을 증명하듯 생동감이 넘칩니다.


‘멸종’에서 ‘공존’을 외치는 이유


서대문자연사박물관의 관전 포인트를 알려달라고 하니 “찬란한 역사를 갖고 있었던 생물들은 모두 멸종했어요. 멸종을 통해서 무엇을 배워야 할까요? 언젠가 멸종할 인류의 생존을 조금이라도 더 지속시키기 위해서는 지구 환경과 어울려 살아가는 공생의 노력이 필요해요.”라고 강조합니다.



공생을 위해서 인간이 가져야 할 자세는 다름 아닌 겸손함. 다른 생명들과 어울려 살려면 자신과는 다른 계층과 취향을 가진 사람들과 잘 지내는 연습이 우선돼야 한다고 덧붙입니다. “주변 사람들과도 잘 못 지내면서 동물이랑 잘 지내 수는 없는 법이죠. 청소하는 아주머니들에게 쉴 공간 하나 못 내주면서 다른 생명의 터전을 생각할 수 있을까요?”


지구의 탄생에서 생명의 진화 그리고 우리 주변의 환경까지를 아우르는 방대한 자연사가 빼곡이 담겨 있는 박물관. 과학은 함께 살아가는 사회와 동떨어진 영역이 아닌 것입니다. 한 시대를 지배했던 육중한 공룡들의 이름을 암기시험이라도 치르듯 외우느라 정작 중요한 의미들을 다 놓치고 있었는지 모르겠습니다. 38억 년 전 지구에 최초의 생명체가 등장한 후, 긴 시간의 흐름 끝에 탄생한 인간이 빠른 속도로 다른 생명들을 멸종시키고 있다는 사실은 머리카락을 쭈뼛 서게 합니다.


놀이하듯 재미있는 나눔 안내자


이 관장은 흥미로운 전시 해설만큼 나눔의 방식도 재미있게 만듭니다. 서대문자연사박물관에 푸르메재단의 회오리 레이싱 동전모금함을 비치해 어린이들이 장애를 가진 또래 친구들을 위해 쉽게 나눌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한 것입니다. 아이들이 수차례 동전을 바꿔가는 바람에 주변 상점들의 동전이 바닥날 정도. 동전들이 어마어마하게 쌓인 모금함을 수거할 때마다 ‘고사리손’의 위력을 실감합니다. “어린이재활병원 건립은 정말 멋진 일이에요. 나라에서 하지 못하는 일을 푸르메재단이 주도해서 하고 있으니까요. 어떤 잡음 없이 기금을 투명하게 운용한다는 생각에 힘이 닿는 한 계속 돕고 싶어요.” 4년째 정기기부로 함께해주는 이 관장의 그 한마디에 힘이 펄펄 납니다.



더 많은 장애인들이 박물관에 자유롭게 접근할 수 있는 가능성이 넓어지길 바란다는 이 관장. 청각장애인 가족을 초청해 수화통역 서비스를 통한 체험 프로그램을 열기도 합니다. 과학의 세부적인 내용을 일일이 표현할 수 있는 수화와 촉각으로 표본을 이해할 수 있는 교육 도구를 개발하는 등 무엇을 할 수 있을지 끊임없이 고민하는 중입니다. “장애어린이들이 박물관을 자주 찾았으면 좋겠어요. 서대문자연사박물관이 장애어린이와 비장애어린이가 함께 어울릴 수 있는 친근한 공간이 되길 기대합니다.”


과학이 궁금한 많은 사람들의 호기심을 충족시켜온 이 관장은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과학을 영유할 수 있기를 꿈꿉니다. “과학은 하나의 진리로 고정되어 있지 않고 계속 바뀌어 갑니다. 끊임없는 실패를 통해 세상과 사물을 바라보는 합리적인 태도를 갖게 해주죠. 어릴 적 과학 수업을 넘어 성인이 되어서도 사유하는 힘이 되어야 하는 이유입니다.” 그동안 과학과 담을 쌓고 지내왔다면 그 부담을 내려놔도 될 것 같습니다. 새해를 맞아 서대문자연사박물관을 찬찬히 둘러봐야겠습니다. 지구에서 숨 쉬는 온 생명들과 더불어 잘 살아 보자는 다짐을 품고서 말입니다.


*글, 사진= 정담빈 간사 (커뮤니케이션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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