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 손을 잡은 아이, 세상의 기쁨이 되다

[푸르메인연] 하민서 어린이 기부자 가족 


 


“아이의 장애가 아니었다면 평생 몰랐을 일들을 알게 되어서 참 감사해요.”


작은 숨을 내쉬는 아이, 민서(가명)는 엄마와 아빠에게 ‘가려져 있던’ 세상을 보여주었습니다. 자기처럼 장애를 가진 친구들이 많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엄마와 아빠는 아픈 아이들을 위해 가만히 있을 수 없었습니다. 우리 아이만이 아닌 수많은 다른 아이들을 품게 될 어린이재활병원 건립에 힘을 보태려고 기부를 한 것입니다.


‘기쁨’ 이름을 닮은 가족


얼마나 더 많은 치료비가 필요할지 모르는 상황에서 선뜻 기부를 결심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 사연을 듣기 위해 지난 4월 13일 민서네를 찾았습니다. 엄마 임혜인(가명) 씨가 반갑게 맞아주자 비가 금방이라도 쏟아질 것 같던 무거운 기운이 말끔히 걷혀진 듯했습니다. 임혜인 씨는 누워 있는 민서에게 방긋 웃어준 다음 태어난 지 두 달 된 둘째 아이를 안은 채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 몸을 가눌 수 없더라도 함께 자라날 친구들에게 기쁨을 나눠준 ‘어린이 기부자’ 민서가 잠시 안정을 취하고 있다.

눈을 뒤집지 않는 순간을 기다렸다가 사진 셔터를 누른다는 엄마와 아빠처럼 수십장을 촬영해 얻은 사진.


민서는 태어날 때 의료사고로 뇌병변 장애를 입게 되었습니다. 산부인과를 찾았을 당시 의사는 자리를 비웠었고, 산도에 오래 끼어있던 아이를 간호사가 무리하게 꺼내려다가 두개골이 손상되고 말았습니다. 곧바로 종합병원 중환자실로 옮겨졌으나 얼마 못 살 거라는 판정을 받았습니다. ‘왜 나한테만 이런 일이 생길까’하는 원망도 잠시, 작고 예쁜 아이가 마음으로 들어와 안겼습니다. ‘기쁨이’라는 태명처럼 사람들에게 기쁨을 주는 아이로 자라면 되지 않겠느냐는 남편 하윤혁(가명) 씨의 말이 큰 힘이 되었습니다.


한 달 반가량 중환자실 인큐베이터에 있다가 병원에서 ‘더 이상 해줄 게 없다’고 하자 남편의 직장이 있는 서울로 올라와 치료를 받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장애어린이가 치료받을 수 있는 병원은 턱없이 부족한 상황에서 한 병원에서 치료를 받기까지 대기해야 하는 시간도 1년 가까이 되었습니다. 이용할 수 있는 기간이 종료되면 또 다시 병원을 전전해야 합니다. 한참을 기다린 끝에 민서는 집에서 멀지 않은 병원과 복지관 4군데서 물리치료와 감각통합치료를 받고 있습니다.


아파도 희망은 자란다



장애아에 대한 차가운 시선이 비수처럼 꽂힐 때가 많았습니다. 햇빛에 눈이 부시거나 주변이 시끄러워도 눈을 뒤집는 아이를 빤히 쳐다보거나 콧줄은 왜 끼고 있는지 물어볼 때면 힘들어집니다. 그럴 때마다 숨고 싶었지만 살아가며 감당할 몫이라고 여기게 되었습니다. “기쁨이는 선물이에요. 지금 이 삶을 잘 감당해나가면 나중에 ‘참 잘 살았구나’하고 깨닫게 되겠죠?”


장애 자녀를 돌보는 가족들은 언제 무슨 일이 생길지 몰라 애를 태우며 살아갑니다. 민서 엄마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기관지염이나 폐렴에 자주 걸려 입술이 파래지고 호흡 곤란으로 응급실에 뛰어가는 일이 잦았습니다. 시간이 흘러 ‘노하우’가 점점 늘자 입원하는 날도 줄었습니다. “경기를 깨어있을 때 하다가 요즘에는 잠에서 깰 때만 해요. 예측할 수 있는 상태가 되어서 다행이죠.” 엄마와 아빠는 민서 곁에서 24시간 항시 대기하는 든든한 ‘주치의’이기도 합니다.


문 옆에 걸려있는 사진에는 민서가 세상의 빛을 본 날부터 가족들이 함께 기뻐했던 순간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




▲ “잘 견뎌주니 대견해요.”라며 민서를 다독이고 있는 엄마 임혜인 씨. 눈을 맞출 수도 말할 수도 없지만

그 마음을 알고 있다는 듯 가만히 바라보는 민서.


어느덧 민서는 4살이 되었지만 몸을 가눌 수도 눈을 맞추지도 못합니다. 온전히 자신의 힘으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고 병원에서도 아무런 변화가 없다고 하지만, 지금까지 잘 견뎌주고 있어서 대견하다는 엄마의 얼굴에는 미소가 번집니다. 여리고 약하지만 점점 나아질 거라는 믿음을 엿봅니다.


그러면서 임혜인 씨는 자신이 ‘열혈엄마’는 못 된다면서 손사래를 칩니다. 어느 곳이 잘하고 어떤 치료사가 잘하는지 전부 꿰뚫다 보면 아이도 가족도 힘들어질 것 같았습니다. “장기전이라고 생각해요. 일찍 지쳐버리면 안 되니까 지금 다니고 있는 곳에서 민서를 오랫동안 봐주는 선생님을 믿고 열심히 치료받고 싶어요.”


더 많은 장애어린이를 품어주세요


얼마 전 뉴스를 보던 중 마포에 국내 최초의 통합형 어린이재활병원이 생긴다는 소식을 접하고 결심이 섰습니다. 남편과 함께 아이의 장애에 대비해 들어둔 태아보험 보상금의 일부인 1,500만 원을 민서의 이름으로 기부한 것입니다. “마포는 거리상 멀어서 다닐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민서가 아니더라도 다른 장애어린이들이 제대로 된 치료를 받을 수 있게 된다니 기뻐요.” 장애아의 부모로서 병원이 지어지는 과정을 응원하고 지켜보고 있다는 엄마와 아빠. 한 가지 바람이 있다면, 어린이재활병원이 장애아를 온전히 이해하며 적절한 치료를 안내하는 길잡이가 되어주는 것입니다.


▲ 장애를 가진 친구들을 위해 손을 잡아준 민서 가족에게 전달한 기부증서.


“치료를 다니면서 민서보다 아픈 아이들을 많이 봐요. 엄마들을 통해서 위로도 많이 받아요. 온 식구가 민서를 통해서 삶의 많은 부분들에 변화를 느끼고 있습니다. 기부금이 우리와 같은 장애아이를 키우는 가족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길 희망해요.”라고 힘주어 말합니다. 가족에게 기쁨인 민서. 엄마와 아빠의 사랑으로 기쁨을 나누는 사람으로 자라날 것입니다. 또 다른 아이들을 위해 손을 잡아주어서 고맙습니다.


*글, 사진= 정담빈 간사 (커뮤니케이션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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