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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봇다리 수영선수 김세진, 또 해냈다!

‘로봇다리 수영선수’로 이름이 널리 알려진 김세진 군. ‘선천성 무형성장애’로 인해 무릎 아래가 없고 오른손은 손가락이 두 개 뿐인 장애아로 태어나 벌써 15살이 됐습니다. 결코 걸을 수 없다고 누구나 고개를 내저었던 아이가 의젓한 어린이로 자랐습니다. 더는 할 수 없을 것 같은 때에도 부단히 노력해왔습니다. 이제는 ‘편견의 벽’을 넘은 희망의 아이콘입니다.

▲ 2012년 12월 21일 푸르메재활센터에서 열린 푸르메어린이음악회에 참석한 김세진 군.

지난 2009년부터 푸르메재단 홍보대사로 함께하고 있는 세진군. 국내외 수영대회에서 우수한 성적으로 좋은 소식을 전해주던 세진군이 이번에 또 해냈습니다. 체육특기생으로 2013학년도 성균관대 스포츠과학과 수시전형에 합격했습니다! 이 대학 역사상 최연소 합격자라고 합니다.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사람이 되고 싶다”며 꿈을 향해 노력해 나가는 세진군이 맺은 결실을 여러분과 함께 축하하고 싶습니다.

2012-12-25 [조선일보]
‘로봇다리 수영선수’ 15세 김세진군 성균관대 스포츠과학과 수시 합격

장애인으론 처음, 최연소 입학… 김군 입양한 어머니 양정숙씨
온갖 궂은일하며 뒷바라지

  ‘로봇 다리 수영선수’ 김세진(15)군이 성균관대 스포츠과학과 수시 전형에 최종 합격했다. 이 대학에 체육특기자로 합격한 최초의 장애인이다.

‘선천성 무형성장애’를 가진 김군은 오른쪽 다리는 무릎 아래가, 왼쪽 다리는 발목 아래가 없다. 오른손은 엄지와 약지 손가락만 있다. 하지만 그는 2009년 런던 세계장애인수영선수권대회에서 접영 50m, 자유형 150m, 개인 혼영 200m 금메달을 따 3관왕에 올랐다. 독일산 티타늄 의족을 쓰는 그에게 ‘로봇 다리 수영선수’라는 별명이 붙었다.

김군은 만 15세로, 성균관대 최연소 입학 기록도 세웠다. 검정고시로 하루 네 시간씩 1년 만에 중·고교 과정을 마쳤다. 어머니 양정숙(44)씨는 “체육 시간에 축구 드리블 시험을 보면 0점을 받고, 해외 시합으로 시험을 못 보면 불이익을 받았다”며 “제도권 학교에선 세진이에 대한 배려가 없어 검정고시를 봤다”고 말했다.

김군은 9세 때 10㎞ 마라톤 완주와 미국 로키산맥 등반에 성공했다. 수영은 재활 치료를 위해 시작했지만 지금은 한국 장애인 수영의 기대주로 꼽힌다.

김군의 인간 승리 이야기는 초등학교 교과서에도 실렸다. 김군은 “물속에서 의족을 빼는 순간만큼은 자유를 느낀다”고 말했다.

성균관대 스포츠과학과 수시 전형에 최종 합격한

김세진군과 어머니 양정숙씨.

/성균관대 제공

김군의 이런 도전 뒤에는 어머니 양정숙씨의 헌신이 있었다. 양씨는 1998년 자원봉사를 하던 보육원에서 생후 6개월인 김군을 만나 다음해 입양했다. 양씨는 베이비시터, 대리운전, 심리상담 강사 등을 하며 아들을 돌봤다. 김군은 “2016년 브라질장애인올림픽 400m 자유형에서 메달을 따고, 스포츠 마케터나 스포츠 심리학자가 돼 IOC(국제올림픽위원회) 위원이 되는 것이 꿈”이라고 말했다.

허자경 기자

 

2012-12-26 [동아일보]
[사설] ‘로봇다리’ 김세진 군이 만든 기적

8세 때 의족으로 단축 마라톤을 완주하고 9세 때 미국 로키산맥 등정에 성공했다. 2009년 19세 미만 세계장애인수영선수권대회에선 3관왕을 차지했다. 선천성 장애로 두 다리가 없고 오른손은 엄지와 약지만 있는 김세진 군(15)이 이룬 위업이다. 한국 장애인 수영의 기대주인 김 군은 검정고시로 중고교 과정을 마친 뒤 최근 성균관대 스포츠학과 체육특기자 수시모집에 합격했다. 이 대학의 역대 최연소 합격자다.

‘로봇다리 수영선수’란 별명을 가진 김 군의 도전기는 초등학교 교과서에도 실렸다. 그는 5세 때 다리 기형 때문에 등뼈가 휘는 척추측만증을 치료하기 위해 수영을 시작했다. 땅에서 불편한 몸이 물속에서는 자유로웠다. 하지만 그를 반겨주는 수영장은 찾기 힘들었다. 장애인에 대해 편견을 가진 사람들이 “왜 여기 와서 수영하냐”고 핀잔을 주거나 수영장 측에 “수질검사를 다시 해달라”는 어이없는 요구를 했다. 김 군은 ‘세상에 기대하지 말고 세상이 기대하는 사람이 되자’라는 좌우명을 되새기며 꿋꿋하게 살아 오늘의 결실을 일궜다.

김 군의 기적 뒤에는 그를 가슴으로 낳은 어머니가 있었다. 어머니 양정숙 씨(44)는 1998년 자원봉사를 하던 대전의 한 보육원에서 생후 6개월의 아기를 만나 이듬해 입양했다. 장애아 입양이라는 가시밭길을 선택한 어머니는 사회의 편견에 당당히 맞설 수 있도록 강한 아들을 키워냈다. 말을 배울 즈음부터 ‘병신’ ‘바보’ 같은 험한 소리를 견디는 법을 가르쳤다. 의족을 한 채 넘어져도 크게 다치지 않게 일부러 밀어서 넘어뜨리는 훈련도 수천 번 되풀이했다. 그가 아들에게 보낸 편지에는 장애, 비장애를 막론하고 우리 모두가 되새겨야 할 구절이 담겨 있다. ‘아들아! 너의 몸이 똑바로 서있으면 너의 그림자가 흔들리지 않는단다. 너의 귀한 몸으로 노력하면 무엇이든 만들 수 있단다.’

3년 전 김 군에게는 세 가지 소원이 있었다. 박태환 선수를 만나는 것, 세계장애인선수권대회에 참가하는 것, 국가대표 선수가 되는 것. 차근차근 소망을 모두 이룬 그는 새로운 목표를 세웠다.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 장애인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고, 25세에 스포츠심리학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이 되는 것이다. 꿈을 이루기 위한 김 군의 무한도전은 비(非)장애인도 배울 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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