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방의인(八方義人)] 이란 걸음마 같은 것


아무리 의학기술이 좋아진 요즘 세상이라지만 외국사례에 비교하자면 우리나라 의료적 현실은 아직도 발끝 수준에만 미치고 있는 것 같아 절로 한숨이 나올 때가 있습니다. 더 나아가서 재활치료는 환자의 신체기능을 회복시키고 유지시키면서 활동을 영위해 나아갈 수 있는 중요한 치료단계 중 하나입니다. 하지만 일반사람들은 재활치료의 중요성에 대해 얼마나 인지하고 있을까요. 영국에서 교통사고를 당한 뒤 한 쪽 다리를 잃고 귀국해 우리나라 재활병원에서 치료를 받으며 국내 장애인 재활시설의 열악함을 뼈저리게 느끼고 재활병원 건립에 초석을 다진 분이 있습니다. 8년 동안의 소송 끝에 받은 피해보상금 10억 원을 푸르메재단에 기부해 어린이재활병원건립의 희망을 열어주신 황혜경 기부자님을 만나보았습니다.


 


 장애, 삶의 걸림돌이 돼선 안되죠


황혜경씨는 언론사에 다니던 남편 백경학(현 푸르메재단 상임이사)씨와 함께 지난 1996년 독일로 해외연수를 갔습니다. 1998년 6월 귀국을 앞두고 영국 스코틀랜드로 자동차 여행을 떠났다가 글래스고 인근에서 교통사고를 당했습니다. 자동차 트렁크에서 물건을 꺼내던 황혜경씨를, 두통약을 지나치게 많이 먹은 채 운전하다가 정신을 잃은 운전자가 차량을 들이받은 것입니다. 다행히 목숨은 건졌지만 그녀는 이 사고로 두 달 반 동안 혼수상태에 빠졌고, 세 번에 걸친 대수술 끝에 왼쪽 다리를 절단해야만 했습니다. 그녀는 한 쪽 다리는 잃었지만 삶의 의지와 희망까지 버리진 않았습니다. 독일 병원으로 이송되어 1년 동안 꾸준한 재활치료를 받으며 차츰 사고 당시의 후유증을 극복해냈습니다. 1999년 말 귀국해 국내 재활병원에서 치료를 받으며 자신보다 더 어려운 사람들을 돌아볼 수 있는 여유도 조금씩 되찾을 수 있었습니다. 그때 당시 악몽 같았던 시간들을 견뎌내야 했고, 당사자가 아니고서는 이루 말할 수 없었던 고충들을 들어보았습니다.


 “그때로부터 벌써 14년이 지났네요. 옛날 일이라 잊었는데도, 생각하면 참 속상한 일이 많아요. 사고 이후로 발음이 부정확해지다 보니 전화로 누구와 얘기하는 걸 참 싫어하게 됐어요. 발음이 정확하지 않으니까 사람들이 자꾸 이것저것 물어보기도 하고요. 어떻게 보면 전화통화 하는 것도 시선인데… 시선이라는 게 그래요. 휠체어라도 타고 나가는 날이면 다들 쳐다보니까 주목 받는 다는 게 힘들어요.”


그들이 바라보는 시선뿐만 아니라 일반적인 편견에 대해서도 빼놓을 수 없었습니다.

“사람들은 대부분 ’나’ 자신이 생각하는 ‘나’에 대한 정체성이 아니라 또 다른 식의 ‘정체성’으로 짜맞추어 생각하니까, 개개인이 어떻게 생각하는지 자세하게는 몰라도 분명 별로 좋지 않은 ‘정체성’으로 받아들인 다는걸 알죠.”


 한 아이의 ‘엄마’로써 장애를 가진 뒤의 ‘엄마’ 역할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제 아이가 학교도 다니기 전, 어렸을 적에 사고를 당했거든요. 그 아이가 초등학교에 들어갈 때만 해도 엄마들이 한 달에 한 번씩 학교에 가서 식사당번을 하고, 청소해주는 게 있었어요. 그런데 안 나오면 이상하고 안 되는 분위기인 거에요. 그때는 친정 어머니가 대신 가서 해주고 그랬는데, 학교뿐만이 아니라 어디를 같이 데려가 준다던 지, 데리고 온다던 지, 그런걸 같이 해주지 못해서 마음이 아팠죠. 남편도 모임이 있으면 같이 가줘야 할 때가 있는데 못 가주고, 못 해주잖아요. 나 자신도 속상한 게 많은데 자신뿐만 아니라 우리 남편, 우리 딸에게 부인으로써, 엄마로써의 역할을 제대로 해줄 수 없어서 참 슬펐어요.”


 호수와 숲으로 어우러진 재활병원을 위해…


교통사고 후 수술을 받고 독일에서 1년 동안 재활치료를 받고 귀국한 황혜경씨는 국내 재활병원의 열악한 환경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고 했습니다. “외국은 국내와는 달리 길거리에 장애인들이 많이 보여요. 한 번은 서울의 명동 같은 번화가에 나간 적이 있었어요. 날씨가 좋을 때 나갔더니 장애인들이 휠체어를 타고 엄청 많이 나와서 무슨 일이 생긴 줄 알았었죠. 단지 바람을 쐬기 위해 밖으로 나온 거였어요. 외국은 햇볕이 있으면 사람들이 전부 밖으로 나가는데 장애인도 예외일 수 없었어요.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거에요. 정말 우리나라 명동이었다면 상상도 못할 일이었을 거에요. 목을 못 가누는 사람, 휠체어를 탄 사람 등 별별 사람들이 다 있었어요. 다른 사람들은 전혀 이상하지 않은데 나만 이상하게 느낀 거였죠.”


외국병원과 우리나라 병원의 차이점은 정말 비교할 수 없어요. 일단, 시설을 떠나서 우리나라는 한 사람이 입원을 하면 간병인도 한 명 붙잖아요. 그래서 한 명이 입원한 게 아니라 두 명이 입원한 것 같이 되는 거죠. 예를 들어 2인실이면 4명이 생활을 해야 하고, 5인실이면 10명이 생활을 해야 하는 거에요. 조그마한 방의 밀도 자체가 다른 거죠. 그러다 보니 우리나라는 개인 프라이버시 같은 것도 없고요. 외국에서는 간호사가 다 해주는데, 우리나라는 간병인이나 환자 가족들이 돌봐줘야 하니까 그런 부분이 가장 불편했고, 고쳐졌으면 했어요.”


 


 보상금을 기부금으로 내기까지…


황혜경씨는 가해자가 가입한 보험회사로부터 전동 휠체어와 의족 등의 구입비용으로 우선 지급받은 보상금 1억 원을 2005년 초 푸르메재단에 기부했습니다. 당시 그녀는 “국내 재활병원은 가난과 장애라는 이중적인 어려움을 겪는 환자들이 마음 놓고 치료를 받기에 부족한 점이 많다. 장애환자들이 안심하고 치료를 받을 수 있는 병원이 하루 빨리 세워지기를 바라며, 일반시민은 물론 기업이 이들의 고통에 동참하길 바란다”며 8년간의 소송을 통해 받은 보상금 절반인 9억여 원도 민간 재활전문병원 건립을 위해 내주었습니다. 남편이 푸르메재단을 설립하는데 기본적인 마음을 가지게 된 원인이었고, 역경과 고난 끝에 받은 보험금의 절반을 재단 기본금으로 기부한다는 게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 텐데 어떻게 마음을 먹게 되었는지 들어보았습니다.


 “처음에는 재단을 세울 생각이 전혀 없었어요. 보상 자체가 힘들었거든요. 사고가 난 뒤 보상 받는데 5년 이상이 걸렸어요. 한 달에 한 번씩 정신적인 보고서와 육체적인 보고서를 내라 하고, 상태가 어떠한지에 대해서도 보고서를 매일 내야 했으니까. 그걸 준비할 때면 내가 어떻게 사고를 당했는지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되어서 잊고 싶어도 잊을 수 없는 상황이었죠. 보상금을 받으면 재활병원 설립을 추진하는 다른 단체에 일부를 내놓을 생각이었어요. 그런데 아이 아빠가 직접 해보겠다는 거에요. 평소 추진력이 있는 남편이라 믿음이 갔고, 그렇게 시작이 되었어요. 일이 커진 거죠.”


 장애인이 아닌 한 인격체의 사람으로써 살아가기 위한 디딤


“재활치료는 끝이 없는 힘겨운 싸움이에요. 심리적 안정이 가장 중요하죠. 환자가 다시 삶을 시작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져야 하거든요.” 황혜경씨의 마음 속에는 높지 않은 단층 짜리 건물에, 사방은 숲으로 둘러싸여 있고, 앞에는 호수가 있는 예쁜 병원이 세워져 있습니다. 그곳에서는 절망에 빠진 환자들이 아름다운 자연을 보면서 저절로 다시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합니다.


“어린이 병원도 참 중요해요. 저는 중도 장애인이라서 잘 못 느끼는데, 처음부터 장애인이었던 분들을 만나보면 하나같이 말해요. 어릴 때 재활을 잘 하면 어른이 되어서도 혼자 충분히 많은 부분을 해낼 수 있는데, 그걸 하지 못했다고요. 태어나서부터 혹은 어렸을 때부터 장애였던 분들은 어린이 재활병원에 대해서 많이 느끼고, 또 재활병원 건립을 해야 한다고 말해요. 본인들이 정말 하고 싶은 일이 어린이 병원건립이라는 걸 많이 말씀하죠. 나중에서야 ‘그런 게 정말 필요하구나’하고 느꼈는데 병원이 지어 진다면 어린이 병원도 있었으면 해요.”


 장애인이 사회구성원으로 올곧게 자립할 수 있는 첫걸음은 재활입니다. 재활은 의료, 사회심리, 교육, 직업 등 여러 방면이 있지만 이 가운데서도 의료재활이 가장 먼저입니다. 하지만 그 절박함에 비해 현실은 너무나 척박합니다. 후천적 장애인들에게 항상 따라붙는 갖가지 합병증 치료도 장애인 재활병원이 아닌 일반병원에서 하려면 여간 불편한 게 아닙니다. 의족을 하고 나면 재활훈련을 받아야 하는 게 당연한데 시설이 부족해서 훈련을 못 받고 걸을 수 조차 없게 되는 게 우리나라 의료재활의 현실입니다.


“무엇보다 제일 중요한 것은 외관상으로만 보여지는 것이 아니라, 그곳에 직접 입원하거나 치료를 받으러 다니는 사람들의 입장에서 건물이 지어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들을 위해 도와준답시고 휠체어를 밀어주는 그런 것들이 아니라 장애인의 입장에서 뭐가 필요한지를, 그들의 자리에서 생각하는 게 제일 중요한 것 같아요.”


▲ 황혜경(좌)씨와 백경학이사(우)부부


현재 재활병원은 의사, 간호사, 심리치료사, 물리치료사 등 여러 사람들이 필요하며 인건비가 전체 운영비의 10%를 차지하고 의료 수가가 낮아 대부분 적자에 허덕이고 있습니다. 국가의 제도적 지원이 절실한 이유 중 하나인 것입니다. ‘누군가’가 아니라 ‘누구나’ 장애인이 될 수 있으므로 재활병원 건립에 심혈을 기울이는 푸르메재단은 다수를 위한 영어마을을 만들 듯 소수의 장애인을 위한 재활마을을 꿈꾸며 한발자국 더 나아가고자 합니다.


*글/사진 = 신유정 모금사업팀 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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