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려라, 은총이

[홀씨이야기] 은총이 아버지 박지훈 씨(38)를 처음 알게 된 건 몇 년 전, TV를 통해서였습니다. 그는 이름도 생소한 6개의 희귀난치병을 가진 10살 박은총군의 아버지로 아픈 은총이를 위하여 마라톤에 도전하고 있었습니다. 그런 박지훈 씨를 우연히 푸르메재단에서 주최하는 기부자집들이 행사에서 보게 되었습니다. 실제로 만나 본 그는 조금 달라져 있었습니다. 아들 은총이를 위해 달리던 그가 이제 세상의 소외받은 이웃을 위해 달리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은총이 아버지”에서 “나눔의 아이콘”이 되어버린 박지훈 씨를 가을이 시작되던 9월의 어느 날, 또 다른 나눔을 실천하는 기부행사에서 다시 만났습니다. 한 달 뒤에 있을 철인3종 경기를 준비하고 있는 지훈 씨의 얼굴에는 쉬이 씻기지 않을 피로가 가득했지만, 여느 때와 같이 은총이 곁을 지키고 있는 그는 여전히 강하고 당당했습니다.



▲ 지난 9월 푸르메재활센터 개원을 기념해 열린 기부자집들이 행사에서 서경덕, 박지훈(은총아버지 / 가운데), 션이 “나눔”에 대해 이야기하는 장면


 그가 달리는 이유


박지훈 씨는 인생에 운동이라고는 해본 적이 없는, 그의 표현에 따르면 숨쉬기도 귀찮아하는 참으로 게으른 사람이었다고 합니다. 그런 지훈씨가 걷고, 달리고, 자전거를 타고, 또 수영을 합니다. 모든 사람이 극한의 체험이라 일컫는 철인3종 경기에 도전도 하고 말입니다.


Q. 은총이와 함께, 좀 더 정확히 은총이를 안고, 태우고, 싣고 달리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처음에는 그냥 단순한 이유였습니다. 사람들의 따가운 시선 때문에 집에만 갇혀 지내는 은총이에게 넓은 세상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세상에 말하고 싶었습니다. 은총이 같은 아이도 있다고, 그러니 너무 이상하게 쳐다보지 말아달라고 말이죠. 이렇게 은총이를 위해 달리기 시작했는데, 어느새 사람들이 이런 우리를 보며 희망을 이야기하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 부자를 통해 용기를 얻고 삶의 이유를 찾았다고 말하는 것을 보며 저에게도 또 다른 달릴 이유가 생겼습니다.”


그에게 나눔이란


사실 대한민국에서 장애아를 둔 부모는 참으로 어려움이 많습니다. 세상의 편견과 곱지 않은 시선은 물론이고, 경제적으로도 많은 부담을 안고 있기 때문입니다. 요즘 비장애아의 부모도 경제적인 이유로 아이 낳기를 꺼린다는데 장애아를 둔 부모는 그보다 수 배, 수 십 배의 비용을 감당해야하니 그에게 경제적인 어려움은 정말 심각한 문제이지요.


그런데 그런 그가 나누기 시작했습니다. 셀 수 없이 많은 수술과 치료를 앞둔 은총이를 위해 차곡차곡 모아도 모자랄 판에 나눔을 멈추지 않는 이유를 물었습니다.


 


 


 


 


Q. 도대체 왜 그렇게 나누십니까?


“그냥... 맞다고(옳다고) 생각해서요. 우리도 은총이 덕분에 얼굴도 모르는 분들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았어요. 조건 없이 받은 사랑을 또 다른 누군가에게 나누어주는 것이 당연한 것 같았습니다. 전 은총이 덕분에 나눔을 알게 되었고, 이렇게 계속 나누다 보니 좋은 분들도 만나게 되었습니다. 은총이에게 돈보다는 사람을, 그리고 이런 세상을 남겨주고 싶었어요.


물론 돈도 중요하죠. 저도 한 달 벌어 한 달 먹고 사는 사람인데 은총이의 의료비가 왜 걱정이 안 되겠어요? 그러나 계속 이렇게 나누다보면 은총이 주변에 좋은 분들이 생기고, 이 세상도 조금씩 나아지지 않겠어요?”


Q. 곧 개최될 철인3종 경기(10.14)도 또 다른 나눔을 위해 준비하신 대회라고 들었습니다.


“네. 은총이와 같은 어린이들을 돕기 위한 방법을 생각하다가 제가 잘하는 철인3종 경기를 기획하게 되었어요. 군산시의 지원을 받아 처음으로 대회를 준비하게 되었는데 우여곡절이 참 많았습니다. 역시나 쉬운 일은 없더군요. 그래도 가수 션씨, 서경덕씨 등 많은 분들이 관심을 가져주시고, 도와주셔서 무사히 대회를 준비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번 대회는 수영1.5km, 사이클40km, 마라톤10km로 구성된 올림픽코스로 3시간 30분 내 완주가 목표입니다. 보통 철인3종 경기는 500명 정도가 참가를 하는데, 이번 대회의 참가비 전액을 은총이같이 아픈 어린이들을 돕는데 쓰고 싶어요. 많은 분들이 참가하셔서 더 많은 아이들을 도울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푸르메와의 인연, 그가 꿈꾸는 병원


이렇게 나눔을 실천하는 박지훈 씨는 사실 푸르메재단의 기부자이기도 합니다. 그에게 푸르메와의 인연은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그가 꿈꾸는 병원은 어떤 모습인지 물어보았습니다.



▲ 2011년 10월, 국제평화마라톤대회에서 함께 뛰어나가는 은총이와 아버지


Q. 푸르메재단은 어떻게 알게 되셨나요?


"몇 년 전, 한국예술진흥원과 연이 닿아 다큐멘터리를 촬영하게 되었습니다. 당시 인터뷰 중에 ‘은총이가 미래에 어떤 모습이길 바라느냐’는 질문이 있었고, ‘이지선 씨처럼 밝고 당당하게 자라주었으면 좋겠다’라고 대답을 했었지요. 그걸 유심히 들은 촬영팀이 지선 씨와 우리 가족의 만남을 주선해 주었습니다. 지선 씨를 만난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치료가 된 것 같고, 참으로 큰 위로가 되었었죠. 지선 씨는 푸르메재단의 홍보대사로 활동하고 있었고, 그녀를 통해 푸르메재단과 어린이재활병원 건립에 관한 내용도 듣게 되었습니다. 그해 2010년 서울국제마라톤대회에 지선 씨와 함께 '푸르메 100인 달리미'로 참가하여 완주하기도 했었죠. 사실 그때가 저의 첫 마라톤 풀코스 완주경험이었습니다. 그때의 감동과 환희는 아직도 잊지 못합니다.”



▲ 어린이 재활병원 건립을 위해 션이 진행하는 ‘만원의 기적’ 캠페인에 동참한 은총이 가족


Q. 푸르메어린이재활병원 건립을 위해 “만원의 기적”이라는 기부캠페인에 동참하고 계십니다. 기부자로서, 그리고 장애아의 부모로서 당신이 꿈꾸는 병원은 어떤 모습인가요?



“희귀난치병을 가진 장애아이의 부모로서 무엇보다 훌륭한 선생님이 계신 병원이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여기저기 아픈 아이 들쳐 업고 이 병원, 저 병원 전전하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훌륭한 선생님이란 의술이 뛰어난 분을 말하기도 하지만, 마음이 따뜻한 분을 말하기도 합니다.


사실 은총이를 키우며 상처를 참 많이 받았어요. 의료진의 차가운 태도 때문에 가슴 졸이며 눈물 쏟는 날들이 많았거든요. 큰 수술 다음날, 진정되지 않은 아이를 데리고 무조건 퇴원하라는 바람에 병원에서 쫓겨난 적이 있었습니다. 그 후, 몇 시간 동안 경기를 일으키는 아이를 자동차에 태우고, 받아줄 병원을 찾아 울며 내달릴 때의 심정은 아무도 모를 겁니다.


푸르메어린이재활병원은 제발 그런 병원이 아니었으면 좋겠습니다. 끝을 알 수 없는 치료를 앞둔 장애아이와 부모에게는 따뜻한 위로와 격려가 긴 시간 버틸 수 있는 힘이 되거든요. 이렇게 장애아이와 부모가 눈치 안보고, 마음 편히 제대로 치료받을 수 있는 병원이 되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그의 꿈, 소망

박지훈 씨의 인생은 은총이의 탄생 전과 후로 극명히 나뉩니다. 은총이의 탄생과 함께 다른 삶을 꿈꾸게 되었다는 지훈 씨의 꿈은 무엇일지 궁금했습니다.


Q. 당신의 꿈은 무엇입니까?

“저는 은총이 아버지입니다. 제 인생에서 은총이를 떼어놓고는 생각할 수가 없어요. 제 꿈은 우리 은총이가 건강하고 씩씩하게 자라는 겁니다. 또 은총이가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드는 것입니다. 긴 시간이 걸리는 아주 어려운 일이겠지요. 그러나 혼자서는 힘들지만, 함께하면 할 수 있을 것이라 믿습니다. 저는 제 자리에서 열심히 나누며 살아갈 겁니다.”



▲ 지난 9월 푸르메재활센터 개원식에 참석한 은총이네 가족


상처를 품고 달리던 그가 이제는 희망을 안고 달립니다.

세상의 편견에 상처받았던 시린 가슴이 그 세상을 보듬고 위로합니다.


어쩌면 그의 꿈처럼 세상은 쉽게 변하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아버지 박지훈씨가 결국 세상의 높은 벽에 무릎 꿇고 말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는 비록 세상을 바꾸지 못하더라도, 그 세상 속의 사람들을 변화시킬 겁니다.

지훈씨의 나눔을 경험한 사람들이 조금씩 바뀌어가고,

이제 그들이 은총이를 지켜나갈 겁니다.

은총이의 주위에는 돈보다 강하고, 아름다운 사람들로 가득 찰 겁니다.

이거면 충분하지 않을까요?


이를 위해 은총이 부자(父子)는 오늘도 희망을 안고, 달립니다.

그 뒤에서 푸르메재단도 또 다른 ‘은총이 부자’들을 위해 열심히 달려 나가겠습니다.


*글= 백해림 후원사업팀 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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