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방의인(八方義人)] 장애를 넘어 세대에게 영감을


Inspiring a Generation beyond disability


2012년 여름, 타는 듯한 불볕더위와 함께 세계인의 축제, 올림픽이 진행됐습니다. 연일 전력수요 최대치를 경신하는 폭염에도 저 멀리 런던에서 신나게 승전고를 울려주는 대한민국 국가대표가 있어 우리는 더위를 견딜 수 있었습니다.


 끝이 보이지 않던 무더위의 기세가 한풀 꺾이고, 지구촌을 들썩이게 했던 런던올림픽의 성화도 꺼졌지만, 또 다시 세상을 밝힐 작은 불꽃이 우리 앞에 남아있습니다. 바로 8월 29일부터 시작된 런던패럴림픽(런던장애인올림픽)의 불꽃입니다. 굵은 땀방울로 지난 4년을 묵묵히 견뎌 온 장애인 국가대표들은 조용히, 그러나 누구보다 강하고 뜨겁게 이 불꽃을 태우고 있습니다. 12일간 이들이 태워나갈 불꽃이 무관심과 냉대에 쉬이 사그라지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며 참가하는 모든 선수들의 선전을 기원합니다.


 


지금 여기, 이들과는 별개로 대한민국 국가대표 장애인이라 불리는 또 다른 이가 있습니다.  휠체어육상의 간판스타 홍석만 선수처럼 멋진 근육과 빠른 스피드를 뽐내진 않지만, 굳건한 의지와 불타는 열정으로 본인의 자리에서 묵묵히 기적을 만들어내는 사람, 바로 국립재활원 재활연구소의 김종배 박사입니다.


 갑작스러운 장애, 장애는 갖는 것이 아닌 겪는 것


 김종배 박사는 한국과학기술원(KAIST) 산업공학 석사과정 중이던 1985년(만24세)에 추락으로 인한 경추손상을 입게 됐습니다. 이 사고로 목 아래의 신체를 사용할 수 없게 된 그는 퇴원 후 5년간을 꼼짝없이 집에서 지내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그에게 한줄기 희망이 된 것이 바로 전동휠체어와 PC였습니다. 전동휠체어는 그의 새로운 발이 되었고, PC는 세상과 소통하는 눈과 귀가 되었습니다.


 


▲ 국립재활원 재활공학연구소에서 연구 중인 김종배 박사


그 후, 국내의 IT와 재활공학 분야에서 10여년 간 활동하며 선진 재활공학기술 도입의 필요성을 절감하게 되었고, 전문적으로 재활공학을 공부하기 위하여 2001년, 미국 유학길에 올랐습니다. 40세의 조금은 늦은 나이에 미국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한 그는 미국 정부로부터 연구 및 일상생활에 필요한 맞춤형 휠체어의 구입비용과 자동차, 집 등의 개조비용을 지원받게 됐습니다. 이를 바탕으로 재활공학연구에 매진할 수 있었고, 7년 후인 2008년에 피츠버그대학교 재활과학기술과 교수로 임명 됐습니다.


85년 사고 이후, 인생의 절반을 장애인으로 살아오며 한국과 미국의 시스템을 고루 경험한 그는 힘주어 말합니다. 장애는 갖는 것이 아니라 겪는 것이라고 말이죠.

“사람들은 흔히 장애를 ‘갖는다’ 라고 표현을 해요. 그건 장애의 의료적인 측면만을 부각시킨 것입니다. 저 같은 경우, 장애로 인해 느끼는 불편함이 미국에서 30%라면 한국에서는 80%예요. 이렇게 사회와 환경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 바로 장애입니다. 장애는 ‘갖는 것’이 아닌 ‘겪는 것’이라는 표현이 정확한 거죠”


다시 고국의 품으로, 한국 장애인재활복지에 이바지 하고파...


미국에서 승승장구하던 그는 2009년, 돌연 한국행을 선언했습니다. 미국에서의 안정된 생활을 뒤로 하고, 다시 한국으로 돌아온다는 것이 결코 쉬운 결정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2001년, 처음 미국유학을 떠날 때 결심한 것이 있었습니다. 미국에서 제대로 공부해서 한국 현실에 맞는 재활공학을 연구하자는 것이었죠. 부족하나마 제가 받은 많은 것들을 함께 나눠서 한국 장애인재활복지에 이바지하고 싶었거든요. 그래서 국립재활원으로부터 제의가 왔을 때 제안을 받아들이고 한국행을 결정했습니다. 물론 포기해야 할 것들이 많았죠. 미국에 남는다면 지원받을 수 있는 많은 것들을 한국에서는 받을 수 없게 되니까요. 하지만 처음의 뜻을 굽힐 수는 없었습니다.”



▲ 중증장애인용 핸드바이크를 작동시키고 있는 김종배 박사,


현재 김박사는 핸드바이크를 이용한 중증장애인용 실내 운동기기를 연구 중이다


한국으로 돌아온 그는 현재 국립재활원 재활공학연구소에서 국내 장애인을 위한 재활공학기기의 연구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한국의 문화와 환경의 특성을 반영하여 한국인에게 적합한 재활공학기기를 연구하는 그는 중증장애인을 위한 식사보조 로봇과 전동이젤 등 수십여 개의 보조공학기기를 개발하였고, 그 기여를 인정받아 2012년 서울시 복지상 대상을 수상하게 됐습니다.


푸르메와의 인연, 누구나 원하는 삶을 살 수 있기를...


비록 사지의 사용이 자유롭진 않지만 그는 지금, 국내에서 가장 인정받는 재활공학자가 되었고, 매해 수차례 한국과 미국을 오가며 불철주야 연구에 매진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조금씩 기적을 만들어나가는 그에게 앞으로의 바람을 물었습니다.


“한국의 중증장애인들이 자신에게 꼭 필요한 재활공학기기를 지원받아 원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돕고 싶습니다. 지금 한국에는 괜찮은 제품이 있어도 장애인 개인이 부담해야 할 비용이 너무 커서 실생활에서 사용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저 같은 중증장애인의 경우, 미국 정부에서 휠체어구입비인 4,000만원을 100% 지원해주었습니다. 제가 활동하는데 꼭 필요하다고 판단을 했기 때문이지요. 한국에서는 정부의 최대 지원비용이 200만원이 채 되지 않아 나머지는 고스란히 장애인 개인이 부담해야 합니다. 몇 천만원이 되는 비용을 부담하면서까지 그 휠체어를 살 수 있는 장애인이 몇 명이나 될까요? 안타까운 현실입니다.”


이에 그는 2010년부터 푸르메재단의 배분위원장으로 활동하며 경제적으로 어려운 장애어린이를 대상으로 맞춤형 보조기구, 치료비 지원 사업 등을 펼쳐나가고 있습니다.


“저와 푸르메재단과의 인연은 2010년부터 시작되었습니다. 보조기기를 지원하는 공적급여가 너무 낮아 안타까워하고 있던 차에 푸르메 측에서 자원봉사격의 배분위원장 자리를 제안하였습니다. 저의 경험과 지식을 십분 활용한다면 꼭 필요한 분들에게 도움을 드릴 수 있을 것 같아 선뜻 받아들였습니다. 저는 지금 푸르메재단 배분위원장으로 자원활동하며 매달 적합한 대상을 선정하고, 그들에게 최선의 지원이 갈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습니다.”


Inspiring a Generation beyond disability


Inspire a Generation... 세대에게 영감을...

지구촌을 들끓게 했던 2012 런던올림픽의 모토입니다. 최고가 되기보다는 최선의 노력을 다해 세상과 세대에게 영감을 주자는 이번 올림픽의 모토는 온갖 역경을 극복하고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꿔나간 김종배 박사의 인생과 참으로 닮아 있습니다. 장애를 넘어 세상과 세대에 감동을 준 김종배 박사는 그래서 대한민국의 국가대표라 불리나 봅니다.


푸르메재단은 지금, 길고 험난한 과정 속에 어린이재활병원 건립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한국에서의 재활병원, 그것도 어린이를 대상으로 하는 재활병원은 적자를 면치 못할 것이라는 많은 분들의 우려 속에서 말입니다. 그러나 실패가 두려워 장애어린이들의 소중한 꿈을 외면하지는 않겠습니다. 함께 꾸는 꿈은 현실이 된다는 굳은 믿음을 가지고, 묵묵히 최선을 다해 기적을 만들어가겠습니다. 이 병원을 거쳐간 장애어린이들은 한국의 국가대표 김종배 박사를 조금은 닮지 않을까 하는 푸르른 희망을 가지고 말입니다.

*글/사진=백해림 후원사업팀 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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