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리고 촉촉하고 따듯한

다큐영화 ‘달팽이의 별’ 엿보기


사진

▲ 손등에 점자를 찍어 말을 전달하는 ‘점화’로 대화하는 영찬과 순호의 손.

이 영화에서는 점화로 대화하는 손이 자주 클로즈업 된다



‘유유히 흘러가는 구름 사이로 제목이 뜹니다. 달팽이의 별’

영화는 가수 김창완 씨의 목소리로 이렇게 시작했다. 제목이 뜨는 모습을 듣고 나니 영화를 귀로 보는 건지 눈으로 듣는 건지 모르겠다. 이후에도 영화는 뭐든지 설명해줬다. 먹먹한 마음을 음악으로, 음악을 자막으로, 자막을 다시 소리로. 낯설게도 친절했다. ‘배리어프리(barrier free)’라더니 영상과 설명과 음악과 자막이 제멋대로 마음의 벽을 훌쩍 넘어온다.


한국영화 최초의 배리어프리, 장애의 벽을 넘다

장애인과 노약자를 포함한 모든 사람이 자연스럽게 사회에 참여하기 위해 경계와 문턱을 없애는 배리어프리(barrier free). 이 영화는 한국 영화 최초로 배리어프리 버전을 동시개봉 했다. 시각장애인을 위한 화면해설과 청각장애인을 위한 음성해설이 함께 제공된다. 화면에서 볼 수 있는 것을 중복해서 설명하지 않는 일반 방송용 내레이션과도, 화면을 객관적으로 설명하는 화면해설과도 조금 달랐다. 보이는 객관적인 사실에 감독의 의도를 더해 온전히 영화의 일부가 됐다. 김창완 씨의 해설은 잔잔히 마음에 와 닿았다.


 


사진▲ 기차 여행 중에 대화를 나누고 있는 모습. 아내 순호는 남편 영찬에게 소리와 창밖의 풍경을 설명해준다


감성이 무방비 상태에 놓이고 나니 두 주인공의 손끝 하나 톡 하고 움직일 때마다 마음이 싸 해진다. 남편 영찬의 두 손등을 감싼 아내 순호의 손끝이 톡 톡 움직이면 모스 부호처럼 언어가 된다.


영화의 주인공이자 실존 인물인 영찬과 순호의 특별한 의사소통 방법이다. 점화(點話)라고 부르는 이 대화방법은 시청각 중복장애를 가진 영찬을 위한 것이다. 순호는 척추장애인이다. 자그마한 체구에 맞는 작은 손이 사랑스럽다. 들을 수도 볼 수도 없는 영찬은 아내인 순호의 손끝이 하는 말을 듣고 본다. 숨결과 온도, 촉감과 작은 떨림까지 소중히 느껴낸다.


 


장애 영화 아닌 그냥 사랑 이야기


사진▲ “비가 오는 것을 느껴보자”며 순호가 영찬의 손을 잡고 베란다 난간에 매달려있는 물방울을 만져보게 하고 있다



손끝으로 하는 이야기와 점자가 유일한 소통의 방식이라는 것은 상상만으로도 충분히 절망적이었다. 하지만 이 영화는 다큐멘터리이자 멜로다. 동정하거나 눈물을 흘리라고 지시하지 않는다. 대신 친구를 만나고 학교에 가고 전구를 갈아 끼우는 소소한 일상과 사랑을 담담하게 담았다. 필요 없는 눈물은 빼고 두 사람의 사랑과 살아가는 방식을 보게 한다. 영찬은 솔방울을 손 위에 가만히 올려놓거나 나무를 감싸 안고 나무의 이야기를 듣거나, 내리는 비를 손끝으로 조심스레 만져본다. 작고 보잘 것 없는 것을 소중히 하는 영찬의 모습에서 진지한 삶의 태도를 배운다.


 


우주에서 가장 빛나는, 달팽이의 별


사진▲ 순호와 영찬이 함께 걷는 모습. 순호는 시청각장애가 있는 남편 영찬을 안내하고, 점화로 주변 상황을 설명해준다.



“태어나서 한 번도 별을 본 적이 없지만 한 번도 별이 있다는 것을 의심한 적 없었다”는 영찬. 눈이 되어주고 귀가 되어주는 아내 순호와 늘 함께다. 보이지 않는 눈과 들리지 않는 귀를 가졌기 때문에 마치 달팽이처럼 촉각에만 의지해 아주 느린 삶을 사는 사람. 외로움을 준비해 다른 사람을 받아들일 줄 아는 사람.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그 사람을 세상 밖으로 이끌어 내는 생명줄 같은 사람. 두 사람의 사랑과 느린 삶의 궤적을 천천히 따라가는 이 영화는 소박해서 더 큰 울림을 관객들에게 전한다.


 


‘관성’과 ‘진실’은 거리가 멀다


지난 19일 있었던 시사회에서는 영화를 연출한 이승준 감독이 배리어프리 버전의 화면과 음성 해설을 직접 작성했다고 밝혔다. “시청각장애인을 위해 화면을 정확하게 묘사해야 했는데, 정해진 시간 안에서 충분히 묘사하기 쉽지 않았다”면서 어떻게 해야 자신의 의도를 잘 이해하고 상상할 수 있을지에 초점을 맞춰 내레이션을 작성했다고 말했다.


이날 참여한 박원순 시장은 “시각과 청각의 관성으로 사물의 진면목을 보지 못하는 우리가 진짜 시청각장애인이 아닌가 생각했다”고 소감을 밝혔다. 양원태 서울시 명예 부시장은 “장애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평범하게 그렸다는 것에 감동을 받았다”며 장애인이 차별과 편견없이 더불어 세상을 살 수 있게 노력해주기를 바란다며 박원순 시장의 노력을 요청했다. 배리어프리 영화를 처음 봤다는 한 청각장애인은 “한글을 모르는 청각장애인을 위해 수화통역 등의 배려를 조금 더 고민해줬으면 좋겠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맵고 짠 이야기가 가득한 영화시장에서 담백하고 맛있는 이 영화가 더 많은 사람의 마음에 큰 울림을 만들어내기를 바란다. 그리고 더 많은 영화가 배리어프리 버전으로 제작되어 장애의 벽을 넘고 모든 사람의 마음의 벽을 넘어주기를 기대해본다.


*글=이예경 기획홍보팀 간사 /

사진=달팽이의 별 공식 블로그(http://blog.naver.com/happy_snai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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