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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는 아름답다

황철호 기부자(대한항공 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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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종석에 앉아 이륙을 준비하는 황철호 기부자

얼마 전 진주 사천 공항에 비행갔을 때 일입니다. 착륙 직전에 활주로 위 약 15미터 상공에서 우리 비행기 오른쪽으로 날아가는 두 마리의 새를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다행히 새와 아슬아슬하게 비껴가서 저는 안도하며 “저 녀석들 운 좋네. 십 년은 감수 했을 거야!”하며 저 역시 운 좋게 착륙했습니다. 시속 250킬로미터의 저속이라 비행기와 새가 부딪히면 새는 죽어도 승객은 비교적 안전합니다.

하지만 새가 엔진 속으로 들어가면 조종 계통과 브레이크 그리고 엔진이 정지해 큰 문제를 일으킬 수 있습니다. 비행기가 보통 고도 3000미터 이상에서 시속 800~1000킬로미터의 속도로 날아가다가 새와 부딪히면 비행기가 추락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 조종사들에게는 새가 무서운 존재입니다.

특히 바닷가에 있는 사천 공항은 새의 이동이 많기 때문에 일출과 일몰시 조종사들에게는 위험지역의 하나입니다. 철새들의 이동 기간에는 더욱더 주의해야 합니다. 가끔 군인들이 활주로 주위에서 폭약을 사용해 새를 쫓는 모습을 심심찮게 볼 수가 있습니다. 활주로 끝에서 우회전하여 승객들이 내리는 장소인 램프까지는 10여분의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정시에 도착하기 위해서 높은 속력으로 달리게 됩니다. 그러다 활주로를 가로 지르는 한 무리의 새들을 만나게 되면 낭패가 아닐 수 없습니다. 당연히 길을 비켜 주리라 생각해서 속도를 줄이지 않게 됩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가만히 보니 활주로 위에 엄마 꿩과 (사람으로 치면 청소년 정도쯤 되는)새끼 무리 10여 마리가 우왕좌왕하고 있었습니다. 길을 비켜줄 생각이 없는 것 같아서 저도 모르게 경적을 울리려고 손을 조종간으로 가져갔습니다. “빨리 비키라고요!” 그런데 아뿔사, 지금은 자동차를 모는 것이 아니라 비행기를 조종하고 있다는 알아차렸습니다. 땅 위를 달린다고 자동차 운전중이라고 착각한 것이지요.(비행기는 경적이 없습니다.)

정신을 가다듬은 뒤 랜딩 라이트를 껐더니 이내 꿩 무리는 활주로 옆 수풀 사이로 사라졌습니다. 아마도 밝은 빛 때문에 놀라서 어쩔 줄 몰라 그랬나봅니다. 문득 뉴질랜드 여행 중 우리 차 앞을 가로 지르는 오리 가족들의 나들이가 생각납니다. 우리 차뿐만 아니라 모든 차들이 이들 가족이 무사히 길을 건널 수 있도록 멈춰서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오늘은 도리어 나들이 나온 꿩 가족이 무사히 돌아가서 고맙게 느껴집니다.

사진▲ 조종을 맡은 비행기 앞에서 동료와 함께 한 황철호 기부자

서둘러서 램프에 도착해서 승객들이 모드 내리자 이번에는 정비사 한 분이 뛰어올라와서 혹시 엔진에 이상을 발견하지 못했냐고 묻습니다. 무슨 말인지 의아해 했지요. “활주로에 황조롱이 두마리가 상처 하나 없이 죽어있어요!” 되짚어보니 조금 전 착륙하면서 잘 피했다고 생각했던 그 친구들인 것 같습니다. 운이 좋았다고 생각했는데, 아마도 큰 소리를 내는 거대한 비행기에 놀라 심장마비를 일으킨 모양입니다.

특히 새들에게 비행기 엔진은 커다랗고 무서운 짐승의 눈으로 보인다고 합니다. 충돌 방지를 위해 랜딩 라이트를 밝게 키고 지나갔으니, 놀랄만도 했겠지요. 날아다니는 새도 무섭지만, 활주로에 떨어져 있는 새도 착륙하는 비행기에게는 큰 위험이랍니다.

비행기를 벗어나서 만나게 되는 새들은 참으로 아름답습니다. 하지만, 이날은 새 때문에 놀라고, 새 때문에 당황하고, 새 때문에 여러 가지 묘한 감정을 느꼈습니다. 황조롱이가 없어져서 꿩 가족은 당분간 마음 편하겠다, 그러면 꿩들이 많아져서 새를 쫓아야 하는 공항의 군인들은 더 힘들어지겠지… 짖궂은(?) 상상이 꼬리를 뭅니다.

사람 편하자고 만든 비행기가 자연의 원래 주인인 새들의 생명을 본의 아니게 위협하는 것 같아 씁쓸하기도 합니다. 물론 기장인 저는 조종간을 잡는 순간 승객의 안전을 위해 감정이 메마른 사람으로 변할 수 밖에 없습니다.

푸르메재단 (예비)기부자 여러분, 새해에는 ‘속도’보다는 일상의 작고 사소한 일들로부터 많은 것을 느끼고, 즐기고, 사색도 하는 기회가 많아지시기 바랍니다. 지구촌을 함께 살아가는 수많은 어려운 이웃들의 사정도 마음으로 느꼈으면 좋겠습니다. 갈 길을 재촉하는 바쁜 발걸음 사이에도 아름다운 풀꽃이 자라납니다. 앞만 바라보는 우리 시선 밖에 날개를 펼치는 새들의 아름다움도 느끼시는 임진년 새 해가 되시기를 빌어봅니다.

* 황철호 기장은 2005년 푸르메재단이 설립된 이후 푸르메재단의 열렬한 후원자로 각종 행사에 자원봉사자로 참여하면서 대한항공 운항승무원 봉사팀인「은빛날개」를 통해 재활치료가 필요한 어린이들의 치료비를 후원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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