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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선 어딜 가야 장애인을 만나나요?

[백경학/ 푸르메재단 상임이사]

몇 년 전 가수 강원래 씨와 함께 우리나라를 방문한 영국의 구족화가 앨리슨 래퍼를 만날 기회가 있었다. ‘살아있는 비너스’로 불리는 래퍼는 두 팔이 아예 없고 발은 물개처럼 짧고 작은 해표지증(海豹肢症)이라는 특별한 장애를 가지고 태어났다. 생후 6주 만에 엄마에게 버려져 장애인시설에서 자라며 다른 아이들에게 ‘괴물’로 놀림받았다고 한다. 결혼했지만 남편의 학대와 폭력에 견디다 못해 9개월 만에 이혼했다. 이때가 겨우 21세였다.

▲ 구족화가 앨리슨 래퍼와 그녀의 그림 <작품명: splash>

세상살이가 얼마나 고단하고 사람들이 얼마나 미웠을까. 하지만 그녀는 꽁꽁 숨어 있던 골방을 나와 그렇게 거부하고 싶었던 자신의 장애를 소재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삶을 옥죄고 있던 의수와 의족마저 벗어던지고 벗은 몸으로 카메라 앞에 섰다. 그때부터 장애인의 몸도 비장애인과 마찬가지로 아름다울 수 있다는 것을 세상에 알리기 시작했다.

영국 정부는 공공미술 프로젝트의 하나로 임신 9개월의 그녀 누드 모습을 동상으로 제작해 런던의 중심가인 트래펄가 광장에 세워 놓았다. 서울 광화문광장에 근엄한 표정으로 서있는 이순신 장군 동상 뒤로 만삭의 장애 여성이 누드 상태로 앉아 있는 동상을 세운다면 반응이 어떨까. 하지만 래퍼는 장애인의 몸이 금기시되어온 사회적 편견을 깬 첫 예술가로 인정받아 2005년 세계여성성취상과 왕실이 수여하는 대영제국 국민훈장을 받았다.

 

▲ 런던 트래펄가 광장에 세워진 앨리슨 래퍼의 동상

英정부 중증장애인 출산까지 돌봐

래퍼를 만나기 전 걱정이 됐다. 처음 만나는 외국인 중증 장애여성을 어떻게 맞아 인사를 나눠야 할지 난감했다. 영국인들은 팔다리 없는 만삭의 장애여성 사진을 보며 아름답다고 말하는데 장애와 관련된 단체에서 일하고 있는 나조차 장애에 적지 않은 편견과 두려움을 가지고 있음을 새삼 깨달았다.

약속 장소에 나가자 그녀가 소매 없는 빨간 원피스를 입고 나타났다. 주저할 틈도 주지 않고 그녀는 환한 미소를 지으며 나를 따뜻하게 껴안았다. 순간 그녀가 참 아름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물었다. “당신은 중증장애인인데 어떻게 이 자리에 설 수 있었습니까?” 그녀는 “특수 휠체어를 타고 모든 것을 남에게 의지해야 하는 나를 돌보고 대학까지 공부시킨 것은 다름 아닌 영국의 사회보장제도입니다. 내가 아이를 낳겠다고 하자 모두 반대했습니다. 하지만 나는 아들 패리스를 출산해 자랑스럽게 키우고 있습니다. 하루하루가 나에게 도전이지만 나는 포기하지 않았습니다”라고 대답했다.

인생의 많은 시간을 고통 속에 보내며 인생의 쓴맛이란 쓴맛은 모두 경험한 그녀가 누구보다 밝은 표정으로 “사는 게 달고 맛있다”고 말하는 게 신기했다. 그때 그녀가 나에게 물었다. “그런데 한국의 장애인들은 어디에 있나요? 한국에 온 지 며칠 지났는데 길에서 만날 수가 없네요?” 나는 대답할 말을 잊었다.

 

▲ (사진 왼쪽) 그림을 그리고 있는 앨리슨 래퍼 / (사진 오른쪽) 2006년 방한한 그녀와 그녀의 아들 패리스

12년 전 청명한 가을날, 우리 가족은 3년 동안의 독일생활을 마치고 귀국에 앞서 뮌헨 도심에 있는 백화점을 찾았다. 친지들에게 줄 작은 선물을 사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웬일인지 그날따라 뮌헨 시청 앞 광장에는 장애인들이 장사진을 이루고 있었다. 무슨 사단이 난 게 분명했다. 목발을 짚은 사람, 전동 휠체어를 탄 사람, 팔이 하나 없는 사람, 심지어 목도 제대로 가누지 못해 온 가족이 총출동한 경우도 있었다. 광장 복판과 백화점 입구에 모여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우리 가족은 서둘러 물건을 샀다.

한국에서처럼 갑자기 시위가 시작돼 장애인과 이를 진압하는 경찰 간 실랑이라도 벌어지게 된다면 낭패가 아닐 수 없었다. 나는 조심스럽게 백화점 직원에게 물었다. “오늘 무슨 시위가 있나요? 장애인들이 총출동을 했네요.” 그 직원은 이상하다는 듯 나를 보며 말했다. “이렇게 화창한 날 집에 있을 장애인이 어디 있겠어요? 해바라기도 할 겸 모두 소풍 나온 거지요.” 나로서는 충격이 아닐 수 없었다.

그들도 자유롭게 외출할 날 오길

3년 넘게 독일에 살았지만 그때까지 내 눈에는 장애인의 모습이 제대로 들어오지 않았다. 한국에서 휠체어를 타고 백화점을 찾는 장애인이 없었으니 독일에서도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그날 불발에 그친 독일 장애인들의 시위(?)를 목격한 이후 붐비는 독일 지하철 안과 대학 식당, 도서관, 그리고 루 살로메와 라이너 마리아 릴케가 늘 찾았다는 뮌헨 슈바빙의 맥줏집에서도 장애인의 모습이 또렷이 보이기 시작했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했다. 추운 겨울이 지나면 새순이 돋고 꽃이 필 것이다. 그 꽃피는 봄이 오면 광화문광장을 찾는 장애인이 많았으면 한다. 교보문고와 덕수궁 미술관에도 휠체어를 탄 채 책을 고르고 그림을 관람하는 장애인들이 넘쳐나길 기대한다. 그래야 우리 사회도 장애인들이 활보할 수 있다는 것을 자랑스럽게 말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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