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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뽀까 알루뽀, 새해 행운을 빕니다!

[백경학/푸르메재단 상임이사]

인 뽀까 알 루뽀(In bocca al lupo). 이태리어로 ‘늑대의 입속’, 의역하면 ‘늑대의 입속에서 꼭 살아 돌아오라’는 뜻입니다. 우리말로 풀이하면 ‘행운을 빈다’라는 의미입니다. 그냥 ‘행운을 빈다’라고 하면 되지, 듣기에도 섬뜩하게 늑대의 입속에서 살아나오라니? 이태리인은 행운이란 쉽게 만날 수 없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네가 나서서 행운을 직접 만들라’고 주문합니다.

– 케임브리지 대학 거리
딸애가 그렇게 여행을 갈망하게 된 영국과의 인연은 초등학교 5학년 때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책을 좋아하던 딸애가 어느 날 학교 도서관에서 《서머힐》이라는 책을 빌려왔습니다. 틀에 박힌 제도 교육에 반대해 대안교육을 실천하고 있는 영국 학교 ‘서머힐’을 소개한 것이었습니다.지난해 제 행운은 고등학생이 된 딸아이와의 영국 여행으로 시작되었습니다. 금융 위기로  경제가 어렵고, 가뜩이나 겨울 날씨가 사납기로 유명한 영국으로 웬 여행?  하지만 딸아이가 3년을 손꼽아 기다렸던 여행이었습니다. 평소 짠돌이로 유명한 딸아이가 얼마나 영국에 가고 싶었으면 자기 여행비용을 선뜻 내놓기까지 했을까요. 저는 못이기는 척, 딸과 진솔한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하고 런던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습니다.

딸아이는 서머힐과 대안교육에 관한 책을 몇 권 더 읽었나봅니다.  어느 날 우리 부부에게 서머힐로 유학을 가겠다고 폭탄선언을 했습니다. “제발 보내달라”는 요청이 아니라 “갈 수 있도록 조치하라”는 지시였습니다. 마치 선전포고처럼 들렸습니다.

영국 사립학교의 비용이 대체 얼만가요? 아이를 영국에 유학 보낼 능력도 없지만 설령 있다손 치더라도 가치관과 정체성이 형성되지 않은 어린애를 외국에 혼자 보낸다는 것을 상상할 수 없었습니다. 그건 우리 부부에겐 부모와 자식 간의 인연을 끊는 것이었고, 어린 아이를 ‘옛다, 잡수!’ 하고 영국에 갖다 바치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부모의 도리가 아이가 아직 어릴 때 곁에서 도와주고 지켜주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함께 살아야 가족이듯 말입니다. 저의 편견이겠지만 아무리 좋은 교육을 받고, 사회적으로 성공한다 해도 어린 시절 가족과 떨어져 혼자 살았다면 그건 불행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 평화시위 모습
다행히 딸애는 합격했습니다. 이우학교에 다니며 딸아이는 많이 행복해했습니다. 일요일도 학교에 나가고 방학이 없었으면 좋겠다고 말할 정도였으니까요. 주입식 교육과 기능적인 반복 학습이 아니라 학문의 원리를 배우는 것이 좋다고 자랑했습니다. 매일 새벽 학생들을 위해 잡초를 뽑고 친구처럼 대해주시는 교장선생님과 운동장에 텐트를 치고 밤새워 얘기할 수 있는 담임선생님을 존경한다고 말했습니다. 봄가을 2박 3일 농촌 봉사활동을 떠나고 철학, 환경, 생태를 공부하는 것이 행복하다고 말했습니다. 축제를 준비하기 위해 밤새 뚝딱거리며 무대를 만들고 연극 대본을 써서 연습하는 모습이 보기 좋았습니다.잔뜩 영국병에 걸린 딸에게 물었습니다. “왜 서머힐이니?” 대답은 단순했습니다. 지금처럼 일방적 주입식 교육과 수직적인 사제 관계가 아니라 선생님과 학생이 친구처럼 지내고 자유로운 대화가 오가는 수업을 받고 싶다는 것이었습니다. 난감했지만 저는 최대한 목소리를 가다듬고, “한국인의 99.9퍼센트가 교복 입고, 비슷한 학창시절을 보내는데 너도 평범하게 한국에 있는 일반 학교에 가야한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자식 이기는 부모가 있습니까. 우리 부부가 밤낮을 어르고 달랬지만 한번 ‘feel’이 꽂힌 아이는 돌부처 마냥 움직일 줄 몰랐습니다. 밀고 당김 끝에 서머힐과 비슷한 분당에 있는 대안학교인 이우중학교에 지원하기로 타협을 보았습니다. 조건은 중학교 과정만 다니고 고등학교는 집근처에 일반 학교에 진학한다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저와 딸애는 틈틈이 갈등을 빚었습니다. 저는 자유스런 학창시절도 중요하지만 앞으로 인생을 살아가는 데는 대학 진학이 중요하고, 그로 인해 삶의 많은 부분을 결정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적은 일정한 수준을 유지해야 하고 그것을 위해 최선을 다하라고 강조했습니다. 딸애는 친구와 특별활동, 행복지수가 더 중요하다고 주장했습니다.

집에 놀러온 딸아이의 친구가 돌아간 뒤 제가 물었습니다. “성실한 아이냐? 공부는? 부모님은 뭐 하시냐? 형제는 몇이냐?” 딸애는 “아빠! 친구가 요즘 어떤 음악을 듣고, 어떤 색깔을 좋아하고, 고민이 무엇인지 아빠는 왜 그런 것을 묻지 않아요?”하고 대답했습니다. 제 질문과 관심이 너무 일방적이고, 결과주의와 대학에 가치를 둔 기성세대의 생각을 대변하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 아빠에겐 성실하고 열심히 사는 아이가 내 딸의 친구인가가 더 중요해! 내가 왜 그 애가 무슨 음악을 듣는지 관심을 가져야 하지?” 하고 반문하면, 딸아이는 “왜냐하면 내가 좋아하는 친구이기 때문에 아빠는 그런 걸 물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적지 않게 난감한 일이었습니다.

저는 딸애와 일상생활 속에서 크고 작은 전투와 휴전을 거듭했습니다. 평행선을 달리던 우리 부녀가 소원해진 관계를 털고 관계를 새롭게 복원하기 위해서라도 무언가 계기가 필요했습니다. 그 계기가 된 것이 바로 둘만의 영국 여행이었습니다.

일부러 런던 교외에 조용한 호텔을 잡았습니다. 서로 다르다고 주장하지만 성격과 성향, 외모가 닮은 우리 백씨 부녀는 다음날 아침부터 출근이라도 하듯 아침저녁으로 지하철을 이용해 런던 시내로 출격했습니다. 아이가 보고 싶어하는 대영박물관과 내셔널갤러리를 비롯해 초상화미술관, 빅토리아&앨버트박물관, 자연사박물관, 과학박물관 등 런던에 있는 박물관이란 박물관, 미술관이란 미술관을 모조리 섭렵했습니다.

– 대영도서관 입구
영국 사람의 평화에 대한 열망과 양식을 확인할 수 있는 기회도 가졌습니다. 대형 시계 빅벤이 있는 영국 국회의사당 앞에서 가자지구를 침략해 무고한 사람들을 학살한 이스라엘의 만행을 알리고 미국과 영국의 이라크 침공에 항의하는 시민단체들이 천막농성을 벌이고 있었습니다. 아이는 농성을 벌이고 있는 사람들에게 연대감을 느꼈는지 비장한 표정을 짓기도 했습니다.박물관에서는 전세계에서 약탈한 유물을 보고 주로 찬탄과 분노가 뒤섞인 감정이었다면 감탄을 연발하게 하는 기분 좋은 곳도 있었습니다. 글로만 접했던 소설 《올리버 트위스트》의 저자 찰스 디킨스와 비평가 토머스 칼라일, 《댈러웨이 부인》을 쓴 버지니아 울프, 영화 《천일의 앤》의 주인공인 앤 볼린의 실제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던 초상화박물관이었습니다. 하루 온종일 박물관과 미술관을 순례하고 호텔방에 들어서면 관절염을 앓는 할머니처럼 우리 부녀는 밤새 신음소리를 냈습니다.

무엇보다 이번 여행이 아이에게 가져다준 충격은 출근 시간 런던 지하철의 독서 열기였습니다. 우리나라 지하철에서 승객 대부분이 무슨 금덩이처럼 휴대폰을 죄다 쥐고 있는 모습만 봤으니 그럴 만도 하지요. 서울 지하철에서는 한 주가 시작되는 월요일 아침부터 꾸벅꾸벅 졸거나 정서 불안 환자처럼 신경질적으로 휴대폰 자판을 두드리는 모습에 익숙했으니까요.

– 런던 지하철 독서열기

사람들이 늘 피로감을 느끼는 사회, 마음속에 평온함이 사라지고 무언가에 너무 집착하는 사회에 사는 것은 슬픈 일입니다. 나와 다른 사람, 사회적인 약자를 배려하고 마음속의 평화를 가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런던 지하철에서 만난 사람들이 너나없이 책 읽는 모습을 보면서 영국이 몇 백 년간 약탈하고 수집한 거대한 유물보다 독서 열기가 더 부러웠습니다. 책 읽는 모습에 반한 아이는 대영도서관과 런던 시내에 있는 대형서점으로 내 손을 이끌었습니다.
저는 미국발 금융 위기의 원인과 아빠가 꿈꾸는 계획을 설명했고 딸아이는 이번 여행에서 받은 감동과 앞으로 뭘 공부하고 싶은지 담담하게 얘기했습니다. 나와 딸아이는 시차와 발바닥의 통증으로 새벽에 깨어나면 서로 등을 맞대고 책을 읽었습니다. ‘해외여행 와서 이렇게 열심히 독서하는 부녀는 없을 것’이라며 서로를 놀리면서 말입니다.대학 캠퍼스만큼 큰 대영도서관의 규모와 이용객 수에 놀라기도 하고, 청교도혁명을 이끈 올리버 크롬웰이 지냈다는 케임브리지 대학내 작은 기숙사에서 하룻밤을 묵으며 우리 부녀는 조금씩 서로의 다른 점을 이해하고 받아들이기 시작했습니다.

며칠 지나자 그동안의 앙금은 사라지고 우린 연인처럼 자연스럽게 손을 잡고 런던 시내를 활보했습니다. 일주일간의 영국 여행이 끝나갈 무렵 저는 그동안 내가 딸아이에 대해 얼마나 무지했는가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아이가 뚜렷한 주관과 삶에 대한 열정을 가지고 저에게 인정받으려하는지 알 수 있었습니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고 했지만 막상 저는 아이에게 완벽을 요구했던 엄격한 아버지였습니다. 스스로를 진보주의자라고 자부해왔지만 아이에게 비친 저는 고집 세고, 결과를 중시하는 보수파였습니다. 이번 여행으로 아이는 저에 대한 편견을 조금 떨쳐버린 것 같았습니다.

아이에게 가지고 있었던 편견이 상당 부분 사라지자, 아이 또한 나에게 가졌던 서운함을 조금씩 씻어냈습니다. 우리 부녀는 신뢰감을 회복하게 된 것입니다. 런던의 골목길을 돌아다니며 다시 오지 못할 소중한 시간들을 보냈습니다. 꿈같은 시간은 쏜살같이 흐르는 법입니다. 한국으로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 또다시 단둘이 여행을 하자고 약속했습니다.

이제 다시 일상으로 돌아와 저와 딸아이는 다시 크고 작은 전투와 휴전을 계속하겠지만, 여행이 우리 부녀 간에 막힌 벽을 허물고 작은 대화의 통로를 만들 수 있는 기회가 됐습니다.  인 뽀까 알 루뽀. 여러분, 부디 올해도 늑대의 입속에서 살아 나오시길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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