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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을 바꾸면 세상이 보인다

[강재형/MBC 아나운서국 부장]

‘본방 사수’라는 게 있다. 인터넷을 통한 ‘다시 보기’나 기타 방법으로 보지 않고 방송 되는 시간에 나오는 본 방송을 꼭 보자, 이런 뜻이다. 더 나아가 ‘닥본사라는 말도 있다. ‘닥치고 본방 사수’하자는 무리가 만들어 낸 줄임말이다. ‘본방 사수’, ‘닥본사’ 모두 시청률 높이는데 도움이 될 일이니 방송에서 일하는 내게는 고마운 시청자들이다. 그렇다고 모든 프로그램을 본방송으로 볼 수는 없는 일이다.

하루 종일 방송을 보고 들어야 하는 회사에 다니는 나도 ‘다시 보기’를 할 때가 있다. 아나운서들이 하는 방송만 모니터하는 것도 아니다. 보도와 교양 프로그램은 물론 연예 오락물도 꼼꼼히 뜯어보고 듣는다. 지상파 방송의 격에 맞지 않는 대사와 자막 따위의 방송 언어를 다듬기 위해서 필요한 일이다. 예전엔 테이프를 구해 봐야만 가능했던 일이 요즘은 컴퓨터로 언제든 볼 수 있게 되었다. 이렇듯, 정보 통신 기술의 발달은 방송 환경에도 큰 변화를 가져왔다.

MBC에서 방송된 프로그램은 어떤 내용이든 컴퓨터에서 볼 수 있게 된 이후 가끔은 업무와 직접 관련 없는 프로그램을 보기도 한다. ‘주말의 명화’시간에 방송된 영화를 보는 게 그런 경우이다. 지난해 언젠가, 휴일 근무의 무료함을 지우려 그렇게 영화를 보았다. 제목은 기억나지 않는 한국영화였다. 영화가 시작되고 배우들이 대사를 한다. 조금 보다 보니, 영화 구성이 참 독특하다, 싶었다. 장면이 바뀌면 성우가 배경을 설명해주고, 배우가 울거나 웃으면 표정도 설명해 주는 영화. ‘요즘은 이런 영화도 있네’라는 내 생각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시각장애인을 위한 화면해설 방송인 걸 알아차렸기 때문이다.

그렇다. 텔레비전 방송은 비장애인만 보고 듣는 게 아니다.

네모난 텔레비전 수상기 아래 동그란 화면에서 볼 수 있는 수화를 곁들이는 방송은 뉴스에만 있는 게 아니다. 장애인을 주시청층으로 삼는 ‘일부’ 프로그램에도 수화(手話) 방송은 포함된다. ‘일부’가 아닌 ‘모든’ 프로그램에서도 그랬으면 좋겠다. 현재 기술로 가능한 일일 것이다. 청각장애인을 위한 자막 방송처럼 시청자가 자막이나 수화방송을 선택해 볼 수 있게 하면 될테니까 말이다.

회사 들머리에서 연신 손짓하는 이를 본 적이 있다. 손짓을 보아주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뭐하는 걸까 궁금했다. 가던 길 멈추고 가만히 보니 수화를 하는 거였다. 그와 대화하는 이는 전화기 너머 전파가 닿는 어딘가에 있었을 것이다. 문자전송만 가능했던 ‘삐삐’에서 아날로그와 디지털 전화를 거쳐 영상통화에 이르는 휴대전화 서비스는 이제 더 이상 신기한 기술이 아니다.

청각 장애인을 염두에 두고 영상전화를 개발하지는 않았을 거다. 동그란 화면 속 수화방송은 흑백 텔레비전 시대에서도 가능했던 일이었을 거다. 하지만, 정보통신의 발달은 청각장애인에겐 쓸모없던 전화기를 ‘통신 이기(利器)’로 만들었다. 청각장애인을 위한 ‘복지요금제’도 시행 중이다. 청각 장애인을 위한 동그란 화면은 비장애인만이 텔레비전을 본다는 생각을 바꾸었기 때문이다. 둥근 화면에서 수화 통역을 하는 이들, 그리고 청각장애인을 위한 전화기. 수화로 통화하던 이를 만났던 그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입가에 웃음이 피어난다. 장애인을 위한 그 무엇은 생각대로 하면, 생각을 바꾸면 지금보다 훨씬 잘 될 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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