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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가 아닌 마음으로 듣는’ 수진이 이야기

독일 뮌헨에서 띄운 편지 한 장

‘귀가 아닌 마음으로 듣는’수진이 이야기

오늘은 딸아이 수진이의 유치원 졸업식. 첫 아이인 수민이는 일반 유치원을 별 어려움 없이 다닌데 비해 수진이는 유난히도 힘든 유치원 생활을 겪었기에 졸업식을 앞두고 만감이 교차한다.

독일은 만 3살이 되면 아이를 유치원에 보낸다. 수진이도 이 곳 아이들과 마찬가지로 한국나이로 4살이 되던 해 일반 유치원에 입학했다. 말이 없는 아이, 말이 서투른 아이. 난 수진이가 그냥 늦되는 줄 알았다.
그리고 조용한 성격이려니 했다. 그러나 그게 아니었다. 유치원에 입학한지 불과 몇 개월 후 우연히 데리고 간 병원에서 수진이는 ‘난청’ 장애 판정을 받았다.막막했다. 난 ‘장애’는 전혀 다른 세상의 사람들만의 이야기로만 생각했다.
그저 그들을 측은지심으로 바라보며 안타까워했었다. 그런데 내 딸아이가 들을 수 없는 장애아라니! 어떻게 해야 하는지 정보도, 경험도 하나 없는 난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혼란스러웠다.
우선, 일반유치원을 그만두고 청각장애학교 부속 유치원으로 옮겼다.
그때가 2007년 겨울이었다.
아이가 유치원 버스를 타는 시간은 새벽 6시 30분. 일반 유치원이었다면 집 부근에 가까이 있어 새벽달이 중천에 차갑게 떠 있는 이른 시간에 아이를 보내지 않았을 텐데……. 지난 3년 동안 가장 힘들었던 일들 중 한 가지는 바로 꼭두새벽에 아이를 깨워야 하는 것이었다. 시간을 조금이라도 늦출 수는 없는지 유치원에 부탁을 드렸지만 유치원은 수진이 개인만을 위해 일정을 조정할 수 없는 노릇이었다. 결국 내가 엄마로서 수진이에게 해줄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은 주어진 상황에 아이를 적응 시키는 것이었다.

오늘 유치원 졸업해요!


유치원 졸업식을 하는 오늘도 ‘수진이를 제 시간에 통원버스를 태워서 유치원에 보내라’는 쪽지를 선생님이 적어 보냈다. 아이를 깨워서 옷을 입히며 선생님 말씀을 전했더니 엄마와 같이 가겠다고 떼를 쓴다. 너 먼저 따로 가야 한다고 듣지 못하는 수진이에게 손짓, 발짓으로 설명을 하건만, 졸업식을 왜 자기가 먼저 가야 하는지 이해를 못한다. 토라져서 울먹이는 녀석을 겨우 달래 억지로 버스에 태워 보내면서 유치원을 다녔던 지난 2년 동안 늘 그랬듯이 마음이 애잔하다.

수진이와 나는 새벽별보기 운동을 시작했다. 보통 독일의 아이들은 저녁 8시면 잠자리에 들어 일찍 일어나는 것이 일상화 되어 달리 이상할 것도 특별할 것도 없을 테지만 ‘올빼미’에다 ‘잠의 달인’인 수진이와 나는 새벽에 일어나는 것이 고문을 당하는 심정이었다. 무거운 눈꺼풀을 간신히 뜨고 수진이를 깨우면 아이는 잠을 더 자겠다고, 혹은 유치원에 가기 싫다고 울며 떼를 썼다. 그런 아이를 어르고 달래서 겨우 배차 시간에 맞추어 버스에 태워 보내고 나면 나는 탈진해 아침부터 우울한 기분으로 하루를 시작하곤 했다. 그렇게 보낸 지 3년. 이제 수진이와 나는 새벽 6시가 되면 저절로 눈이 떠진다.
그래도 오늘은 부모님들과 할아버지, 할머니, 친인척까지 다 모인 졸업식이라 그런지 아이들은 제법 침착하게 그동안 배운 노래와 율동, 낱말 맞추기, 음악에 맞춰 훌라후프 돌리기 등 다양한 공연을 보여주었다. 다른 아이들에 비해 키가 유난히 작은 수진이는 맨 앞에 서서 춤을 추는데 신기하게도 음악에 맞춰 멋지게 회전도 했다. 아이들의 공연이 끝나고 난 뒤, 참석한 어른들과 유치원 선생님들은 와인 잔을 높여 건배를 외치며 아이들의 졸업을 축하했다. 특히 우리 반 부모들과 선생님은 그동안 무사히 잘 지내온 시간이 너무나 감사해 잔을 몇 번이고 부딪치며 서로를 축하했다.

‘조기 진단-집중 치료’로 자유롭게 의사소통


올해 유치원 졸업생은 총 인원의 절반인 14명이다. 유치원에는 4개 반이 있는데, 그 중 2개 반이 졸업을 하는 것이다. 이 아이들 중에는 4명이 수진이와 같이 들을 수도, 말을 할 수도 없는 청각-언어 중복 장애를 가지고 있다. 그래서 수화로만 의사소통을 한다. 다른 10명의 아이들은 장애 정도가 일반 아이들과의 차이가 거의 없다. 장애 진단을 받은 직후 재활치료를 잘 받아 지금은 자유롭게 의사소통이 가능하게 된 것이다. 장애의 정도와 상관없이 아이들은 어찌나 활발하게 노는지 서로 장난 하느라고 우당탕 연이어 의자를 넘어트리고 뛰어 다니고 하는데, 보고 있으면 정신이 하나도 없다.

우리 반은 다른 반과 달리 아이들 7명과 부모들이 하나로 똘똘 뭉쳐 지냈다. 7명의 아이들 중 청일점인 남자 아이는 6명의 여자 친구들이 있어서 너무 행복하다며 얼마나 살뜰하게 여자 친구들을 챙기는지……. 사는 곳이 서로 멀어 유치원 외에 다른 곳에서는 얼굴 보기가 힘든데, 그 남자아이는 친구의 생일 파티에 초대하면 결코 빠지는 법이 없었다. 가정이라는 최소 집단을 떠나 최초의 사회생활이라고 할 수 있는 유치원에서 수진이는 운 좋게 좋은 친구들을 만나 셈이다. 이 친구들과 같은 초등학교에 입학하니 내 마음이 든든하다.

우연히 알게 된 수진이의 청각장애. 그것도 말도 잘 안통하고 친인척도 없는 먼 이국인 독일에서 아이의 장애 진단은 나를 더욱 힘들게 했다. 하지만, 그런 나에게 힘이 되었던 것은 독일 사회에 장애인에 대한 교육 및 재활 정책이었다. 청각장애학교부속유치원은 의료, 재활치료, 환경 등 모든 면에서 수진이에게 최상의 서비스를 제공했다. 독일의 일반 유치원은 보통 한 반에 25명의 아이들이 선생님 두 분의 지도를 받는다. 청각장애 유치원은 일반유치원과 같이 선생님은 두 분이지만 아이의 수는 1/3로 6~7명이 배정된다.
또한 교육에 있어서는 아이들의 장애 정도는 모두 다르지만, 모든 아이들에게 구화, 수화, 독화를 가르친다. 사실 난청을 조기 발견해 일찍부터 재활치료를 받은 아이는 수화나 독화가 필요 없다. 하지만 그 아이들 역시 수화, 구화를 배운다. 왜냐면, 인지 발달을 위한 이해력과 의사소통을 향상시키기 위해서는 먼저 수화를 배우면서 듣기 훈련을 충분히 한 후 점차 말이 느는 과정의 단계별 교육을 해야 하는 것이다. 가끔 청각장애아동들은 어눌한 발음과 다른 소리를 내기도 하는데 이곳에서 교육받은 아이들은 거의 정확한 발음과 자연스러운 소리를 낸다.

복지 선진국 독일의 세심한 장애인 배려
수진이가 유치원에 등교하자마자 선생님이 수진이의 보청기와 인공 와우 어음처리기를 점검한다. 소리가 정상적으로 나는지, 기기 문제는 없는지, 혹 배터리가 닳아서 교체가 필요한 것은 아닌지 확인해 주는 것이다. 또한, 매주 한 번씩 어린이 전문 청각사가 유치원에 방문해서 전문적인 기기 관리 및 수리를 무료로 해준다. 뿐만 아니라, 청각장애학교 내에 청각조기재활센터가 있어서 정기적으로 아이들의 청력 테스트, 인지 발달 테스트, 언어 테스트를 실시해 부모에게 아이의 상태를 자세히 알려준다.

보청기 등의 보조기기를 전혀 사용할 수 없는 아이들은 수화 외에 독화를 필수적으로 마스터해야한다. 일전에 영국에서 전농인이 공중전화 부스에서 전화하는 범인의 입모양만 보고 사건을 유추해내서 큰 범죄를 막아냈다는 뉴스도 있었다. 그것이 독화법이다.
장애 발견이 늦어 만 3세 이전까지 들은 소리가 너무 적었던 수진이. 그래서 수진이는 언어재활이 다른 아이들보다 더욱 힘들다. 수진이와 비슷한 청력을 가졌지만 아이가 조기발견 했던 아이는 재활치료를 일찍부터 받아 지금은 언어장애 거의 없이 의사소통을 하는 모습을 보면 나의 마음이 참 많이 아프다. 요즘에 수진이는 한창 종이에 삐뚤빼뚤 알파벳을 그리고, 벽에 붙여 놓은 한글 낱말판도 부지런히 그대로 베껴 쓴다. 그냥 수진이는 다른 아이들보다 조금 천천히 갈 뿐이다. 단지 그 뿐인 것이다. 수진이가 맑은 눈망울에 환한 웃음을 머금은 채 이 글을 쓰고 있는 나를 쳐다본다. 너무나 사랑스런 딸이다.

더 큰 세상으로 희망 품고 달린다!


처음에는 청각장애유치원에 아이를 보내놓고 일반 유치원에서 옮긴 게 잘한 것인지 걱정되었다. 수진의 청각장애를 늦게 발견해 언어장애가 왔지만, 그래도 엄마의 심정은 ‘아이가 말을 할 수 있겠지’ 라는 막연한 기대감이 있었다. 그런데 청각장애유치원에서는 입학한 아이에게 말이 아닌 수화를 가르치는 것이었다. 혹시 아이가 수화에 의존해 언어장애가 더 심해지는 것은 아닌가 하는 걱정이 앞섰다. 그러나 수화, 구화, 독화를 차례로 배우며 소리 인지력, 언어력도 자연스럽게 생기는 수진이를 보며 내 마음이 조급했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글: 김유진(수진이 어머니)

“수진아! 이제 초등학생이 되네! 앞으로 우리 수진이에게 어떤 일이 있을까? 엄마는 사실 겁도 나지만, 기대도 된단다. 우리 모녀 씩씩하게 잘 헤쳐 나가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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