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리빨리는 싫지만 한국사람 인정 많아요.

취중 인터뷰, 정형신발장인(Schuhmeister) 에발트 쉐퍼(Ewald Schaefer) 



10월의 축제 같이 맑고 시원한 맥주를 마실 수 있는 옥토버훼스트 종로점에서 에발트 쉐퍼(Ewald Schaefer, 51세)씨를 만났다. 쉐퍼 씨는 정형신발 전문 메이커인 워킹온더클라우드(www.wotc.co.kr)의 강남 매장에서 일하고 있는 33년 경력의 독일인 정형신발장인(Schuhmeister)이다. 흔히 독일인하면 정확하고 딱딱하며 철저하다는 이미지가 떠오르는데 쉐퍼씨의 얼굴엔 친근한 웃음이 가득하다. 독일인답지 않게(?) 친절하고 사교적인 성격의 소유자 에발트 쉐퍼씨를 만나 본다.


우선 어떻게 한국으로 오게 되었는지 물어 보았다.

“저는 어려서부터 아시아의 문화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가업을 이어받아 정형신발장인이 되었고 고향에서 만족하며 일하고 있었지만 늘 아시아에 와 보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1995년에 기회가 닿아 일본에 와서 8개월간 일하기도 했지요(일본 도쿄 Schritt사에서 정형신발 장인으로 근무). 이후에도 계속 아시아 문화에 관심이 있었는데 작년에 바르텔사(독일 제일의 정형신발 제작 회사)에서 한국에서 일할 신발장인을 뽑는다는 공고를 보고 지원을 했지요.”


정형신발 장인이 될 생각은 언제부터 하셨는지요?


“제 고향은 헤센주 프랑크푸르트의 동남쪽에 위치한 슈타이나우-마르요스라는 시골동네입니다. 그곳에서 우리 가족이 대를 이어 신발 장인을 해 오고 있지요. 할아버지께서는 정형신발 장인이셨어요. 아버지는 그냥 보통 신발장인이셨구요. 참고로 말씀 드리면 독일은 오랜 장인 전통에 더해 세계대전을 2번이나 겪었기 때문에 각종 신발제작업이 발달했습니다. 슈마이스터라 불리우는 신발장인의 종류도 여러 가지여서 비장애인을 위한 신발장인, 당뇨병 환자를 위한 신발장인, 뇌병변 환자를 위한 신발장인 등이 있죠. 저는 어렸을 때부터 할아버지 아버지께서 신발 만드시는 모습을 보면서 자랐습니다. 이분들의 영향을 받아 자연스럽게 가업을 잇게 된 것 같습니다.”


정형신발과 맞춤인솔을 들고 있는 모습

정형신발 장인이 되는 것이 쉽지 않지요?


“물론이지요. 3년제 직업전문학교를 졸업하고 보통 10년이 넘도록 수련 과정을 후 엄격한 시험을 통과해야만 슈마이스터로 활동할 수 있게 됩니다. 슈 마이스터는 각종 첨단 장비를 능숙하게 다룰 수 있어야 할 뿐만 아니라 오랜 노하우의 수작업 기술도 가져야 하기 때문에 수련 기간이 이렇게 오래 걸리는 것이지요. 저도 1975년에 직업전문학교를 졸업한 뒤 1991년에 장인자격취득시험에 합격하기까지 오랜 수련 기간을 거쳤습니다.”


특별한 연고 없이 한국에 들어와 논현동에서 혈혈단신으로 살고 있다는 쉐퍼씨. 한국에서의 개인적인 생활이 궁금해서 물어보고 싶었다.


한국에서 생활하시는 것이 어떻습니까?

“아무래도 혼자 하는 객지 생활이니 집에서처럼 편안하지는 않지요. 가족도 보고 싶고 특히 독일에 있는 여자친구가 많이 보고 싶습니다. 인터넷을 뒤져보니 독일인 커뮤니티가 있기는 한데 보통 주말에 모이기 때문에 평일에 쉬고 주말에 일을 하는 저로서는 참석하기가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쉬는 날엔 동료 직원들과 함께 옥토버훼스트에 와서 맥주를 마시기도 하고 경복궁 같은 문화재나 올림픽 공원 같은 건축물을 찾습니다. 서울은 전통과 현대를 동시에 느낄 수 있는 재미있는 도시입니다.”


맞춤인솔을 제작하고 있는 모습

한국 생활에서 가장 불편한 점은 무엇인가요?


“한국 사람들의 ‘빨리 빨리’입니다. 독일에서는 어떤 일을 하든지 차근차근 정해진 절차를 밟아서 진행합니다. 늘 일이 잘못되지 않는지 점검하고 문제가 있을 때는 한 발짝 떨어져서 근본적인 해결책을 생각하죠. 그런데 한국에서는 정해진 절차나 형식을 건너뛰는 일이 많은 것 같습니다. 뭐든지 ‘빨리 빨리’죠. 문화적인 차이라고 이해하지만 그래도 참 힘듭니다.”


  그렇다면 한국에서 좋은 점은 무엇입니까?


“한국 사람들은 전부터 알고 있던 것처럼 인정이 많고 외국 사람들에 대해서 배려하는 마음이나 개방적인 태도를 가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어느 정도 친해진 것 같아서 조금 더 개인적인 질문을 던지려고 했으나 통역을 해 주시는 분이 나를 말린다. 독일인들은 일과 관련이 없는 개인적인 질문은 사생활 침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매우 싫어하고 답변을 해 주지도 않는다고 한다. 한국 사람들이 정이 많아서 좋다고 말하는 이 사람. 시종일관 기분 좋게 웃는 모습이 왠지 독일 사람답지 않다고도 느꼈는데 역시 독일 사람이긴 한가 보다.


<워킹온더클라우드 장애인 정형신발 지원사업을 담당하고 있는 송정호씨가 쉐퍼씨와 건배를 하고 있다>

워킹온더클라우드에 소속된 쉐퍼씨는 2008년 3월부터 푸르메재단과 인연을 맺고 매월 보행이 불편한 장애인들 5명에게 정형신발과 맞춤인솔을 제작해 주고 있다. 마지막으로 신발제작과정에서 만난 장애인들에 대해서는 어떻게 느끼고 있을지 궁금했다.


푸르메재단을 통해 신발을 맞추러 간 장애인분들에 대해서 어떻게 느끼셨나요? 그분들은 쉐퍼씨께서 친절하게 맞이해 주셔서 좋았다고 말씀들 하십니다.



“무척 감사하네요. 그분들에 대한 느낌은 우선, 너무 반가웠습니다. 제가 열심히 일을 할 수 있도록 기회를 제공해 주셨으니까요. 통역이 중간에 있기는 하지만 장애인분들과 눈을 마주치며 의사소통 할 수 있어서 좋습니다. 매장을 찾아 주신 장애인 분들 모두 친절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해 주시고 신발제작에 충분히 협조해 주고 계시거든요. 비록 말은 잘 통하지 않았지만 눈빛과 음성, 그리고 느낌으로 그분들의 마음을 읽을 수 있습니다. 저에게 친절하게 대해 주신 그분들에게 감사를 드립니다.”




역시 고향의 맛이 좋다며 밀맥아로 만든 바이스비어(WEISSBIER)를 연신 들이키는 쉐퍼씨는 올해 9월이면 재계약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


장애 환자들에게 친절하고 따뜻한 태도로 질높은 서비스를 제공하는 쉐퍼씨가 올 겨울에도 한국에서 일하는 모습을 무척 보고 싶다.


글/사진 이재원 푸르메재단 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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