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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미경 기쁨터 후원회 회장

 

일산은 살기 좋은 도시다. 경진학교라는 정서장애아를 위한 특수학교가 1997년 건립될 당시 동네에서 데모를 한 번도 하지 않았다고 하니
수준이 꽤 높은 도시이다. 당시 일반 학교를 다니던 한준이는 경진학교에 들어오기 위해서 일산으로 이사를 왔다. 그리고 한준이의 어머니는 비슷한
아이를 둔 다른 어머니들과 함께 기도모임을 시작했다. 그 기도모임이 기쁨터가 되었다.

김미경 회장님은 그녀의 블로그에서 장애아이를 갖게 되는 경험을 “Emily Perl Kingsley(1987)의 Welcome to
Holland” 얘기를 인용하여 설명한다. 그 얘기의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아기가 나오길 기다리는 마음은 이탈리아 여행을 준비하는 것과 같다. 콜로세움, 미켈란젤로 등의 키워드로 멋진 계획을 세운다. 그러나 비행기를 타고 착륙을 하는데 스튜어디스가 “잘 오셨습니다. 네덜란드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라고 말한다.

이탈리아에 가고 싶어서 수 많은 노력을 했다. 하지만 비행 일정은 변경됐고 네덜란드에 내려 여기 머물 수밖에 없다. 중요한 건 질병과 굶주림, 죽음으로 가득 찬 끔찍하고 더러운 곳으로 끌려온 게 아니라는 사실, 그저 이탈리아와 다른 어느 곳일 뿐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제 가서 새로운 여행안내 책자를 사고, 전혀 다른 언어를 공부해야 한다. 그리고 여태껏 단 한 번도 만나본 적이 없는 전혀 새로운 부류의 인간들과 사귀어야 한다. 여기는 전혀 ‘다른’ 장소일 뿐이다. 이탈리아보다 삶의 속도가 느리고, 덜 화려하다. 하지만 잠깐 멈춰서서 숨을 들이마시고 사방을 둘러보자. 네덜란드에는 세상 어디에도 없는 풍차가 있다는 생각이 들 것이다. 사방에는 튤립이 피어 있다. 게다가 렘브란트가 있지 않은가!

하지만 알고 지내는 이들은 모두 이탈리아를 다녀와서는 얼마나 즐거운 시간을 보냈는지 이야기하느라 침이 마를 지경이다. 어쩌면 죽는 날까지 그럴 지도 모른다. ‘맞아, 정말 가고 싶었던 건 거기였어. 이탈리아로 갈 계획이었지.’

마음 아픈 기억은 절대, 절대, 절대, 절대로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꿈이 산산조각 날 때 느끼는 상실감은 무엇에도 비할 수 없을 만큼 통렬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탈리아에 가지 못했다는 사실에만 매달려 슬퍼하다보면 네덜란드만이 줄 수 있는 특별하고 대단히 사랑스러운 것들을 하나도 즐길 수 없다.

그녀의 블로그(http://blog.naver.com/junerain)에는 기쁨과 격려가 넘치고 있다. 삶의 깊은 곳에서 끌어올린 솔직하고 담백한 글이 있다. 꽃에 관심있는 사람들, 퀼트가 취미인 사람들이 우연히 들렀다가 장애아이를 둔 어머니의 삶을 보게 된다. 공감하고 가슴이 시큰해져 온다.

기쁨터 얘기를 다시 하자면 기쁨터는 1998년에 발달장애아 엄마들의 기도모임에서 출발하여 이듬해 고양시 성석동에 장소를 마련한 게 시작이다.

놀라운 것은 아직 국내에 통합교육이라는 단어가 일반화되기 이전인 그 시절에 장애, 비장애 아이들을 함께 보호하고 가르쳤다는 것이다.

함께 교육받는 비장애 아이들은 가난하거나 한부모 가정, 외국인 부모가정 등 불우한 환경의 아이들이 대부분이다. 이 아이들이 이제는 자원봉사자나 선생님들보다 더 장애 아이들을 챙긴다.

장애아이들은 또 비장애 아이들의 친구와 위로가 되어 준다. 이를 두고 기쁨터의 선생님은 ‘서로 치유하는 과정’이라고 명명하셨다.

운영은 사회복지사 4분 선생님이 하신다. 재원은 거의 장애아들의 어머님으로 구성된 기쁨터 후원회에서 마련한다.

다른 시설의 경우 재원을 마련하는 어머님들이 시설 운영에 너무 많이 개입해서 실패한 케이스가 많다고 하는데 기쁨터 후원회 어머님들은 재원마련에만 전념하시고 운영은 전문가들인 선생님들께 맡긴다.

기쁨터 뒤쪽으로는 도예공방이 있다. 치료의 일종이다. 자폐나 발달장애를 가진 아이들은 물이나 흙을 직접 가지고 놀거나 작업하는 것을 매우 좋아한다고 한다. 장애가 심한 아이들은 그냥 흙놀이만 하고 덜한 아이들은 저렇게 제법 예쁜 작품들을 만들어 낸다.


기쁨터 지역아동센터 센터장인 권현수 선생님은 도예치료가 장애아의 상태를 많이 좋게 만들어 준다고 하셨다. 특히 자해하는 친구들은 도예를 통해서 증상이 완화되었다고 말씀하셨다. 장애 아이들이 열이 많은데 차가운 흙을 만지고 물을 가깝게 하면서 열이 내리고 찰흙의 미끈미끈한 감촉이 감정을 누그러뜨린다는 것이다.

일하면서 가장 보람찼던 것은 처음 센터에 왔을 때 손에 잡히는 대로 집어 던지고 위협적이었던 아이가 2년정도 지내면서 스스럼없이 먼저 스킨쉽을 하는 등 변화해가는 모습을 보는 것이라고 하셨다.

도예공방에서 이렇게 만들어진 작품들이 가는 곳이 있다.

아트센터 조이(http://www.artjoy.co.kr/)다. 김미경 회장님이 상주하시는 곳으로 어머님들이 만드신 퀼트작품,
그림작품, 공예작품과 아이들이 만든 공예작품, 아이들이 그린 그림 등이 전시되고 판매된다. 쇼핑몰도 있다. 루시아 쇼핑몰(http://www.joyplace.co.kr)이다.
예쁜 접시나 가방들이 판매된다.


가정집을 개조해서 만든 갤러리로서 지하는 장애 아이들을 위한 미술치료의 공간으로 쓰이고 있다.

아이들은 잡지를 가위로 오리는데 한창이었다.

각자 작업에 빠져서 몰두하느라 선생님들의 목소리는 커져가고 왁자지껄 재밌는 치료시간이었다.

발달장애아이의 문제는 어릴 적에는 지역아동센터나 주간보호센터 등 갈 곳이 있고 사회의 관심도 있는데 성인이 되면 갈 곳도 없고 사회의 관심도 없어진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들은 성인이 되어도 크게 달라질 것이 없기 때문에 집에 틀어박히게 된다. 게다가 혼자서 생활을 꾸려갈 수 없기 때문에 보호자도 같이 집에서 나가가 힘들게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이 같이 일할 수 있는 작업장도 필요하고 어느 정도 서로가 가깝게 살 수 있는 집들도 필요하다. 기쁨터에서 확대된 ‘기쁨마을’을 만들고 싶은 게 그녀의 꿈이다. 그동안 해온 것들도 믿기지 않을 만큼 많았는데 앞으로 더 많은 것들을 해야 한다는데 가슴이 답답해진다.

발달장애, 정신지체는 장애문제에서도 사각지대라고 표현할 수 있다. 물론 장애문제 자체가 사각지대이겠지만 발달장애, 정신지체의 경우에는 지능의 부족으로 자신의 주장, 항변을 할 수 없다는 데 큰 문제가 있다.

말아톤이나 허브 등의 영화가 흥행하면서 예전에는 발달장애, 정신지체아이들을 보면 눈살을 찌푸리던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고 신기하게 바라보기도 한다. 하지만 문제는 그러한 장애를 이겨내고 극복한 케이스에 대해서만 관심을 가지고 박수치고 비장애인 자신을 되돌아보는 계기로 삼고 만다는데 있다. 대부분의 장애아들은 극복하지 못하고 힘들게 살아갈 수밖에 없다. 그러한 아이들도 인간답게 살 수 있도록 최소한의 사회안전망을 구축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그래도 능력이 뛰어난 장애아이들이 조명을 받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아트센터 조이에서도 뛰어난 어린이 화가가 한 명 나왔다. 뛰어난 능력을 가진 자폐아이들 중 하나로 ‘그것이 알고싶다’에도 소개되고 롯데월드 갤러리에서 작품전도 치룬 범진이라는 아이다.

작품세계가 매우 독특하다.

http://www.artjoy.co.kr/bbs/zboard.php?id=bumjin_gallery에 가면 그림
사진이 많다.

저번에 용감한 시민 ‘양병수 씨’께서 말씀하셨듯이 이 아이들은 천사병에 걸려있는지도 모르겠다. 병이라고 명명하는 것도 어폐가 있는 것 같아서 그냥 천사들이라고만 해도 될 것 같다. 범진이뿐만 아니라 트랙터, 포크레인을 너무 좋아해서 차로 한 시간 정도 가야하는 거리를 무작정 포크레인 따라 걸어갔다는 정현이, 뽀샤시 웃는 하서영공주 등 함께 있는 동안 기분이 무척 좋았다.

당일 아침에 독일, 오스트리아의 작업장에 대한 영상을 보았다. 오스트리아 성인 발달장애인 작업장의 경우가 기억에 남았다. 운영비, 장애인들의 생계비를 정부에서 다 지원하고 작업을 통해 얻은 수익은 용돈으로 지급되는 것이다.

웃고 즐기면서 일하던 그 모습들이 생각나면서 기쁨터 아이들이 너무 걱정되었다. 장애 때문에 아이들은 노화가 더 빠르다. 부모님들도 나이가 들어가면서 경제적으로 힘들어 질 텐데 사회에서 이들을 보호하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 그나저나 지금 성인인 발달장애인, 정신지체장애인은 다들 어디에 있는 걸까?

기쁨터는 일산 지역에서 큰 역할을 해왔고 회장님의 바람대로 표상이 되어왔다. 앞으로도 아이들이 기쁨 속에 잘 자라났으면 좋겠다. 특히 성인이 되었다는 회장님 아들 한준이와 친구들이 일을 통해서 자아를 실현하고 사회에서 보호받을 수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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