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아산병원 재활의학과 유종윤교수

촉망 받는 젊은 의사가 출근하던 중 빗길에 차가 미끄러지면서 목 아래가 전부 마비되는 중상을 입었다.사고는 한 순간에 한 사람의 인생을 180도로 뒤바꾸어 놓았다. 재활의학을 전공한 의사가 재활치료를 받아야 하는 환자가 된 것이다. 이쯤 되면 사람들은 가혹한 운명 앞에 무력감을 느끼기도 할 테다.그러나 그는 포기하지 않고 자신의 상황을 전공으로 승화시켰다. 사고가 도리어 몸으로 직접 체험한 실감나는 체험학습이 된 것이다.



 


서울 아산병원 재활의학과 유종윤 교수는 1995년 재활의학과 전임의 시절 자동차 사고로 하반신 마비를 얻게 되었다. 증세가 워낙 심해서 담당 레지던트가 X-레이를 보여주려고도 하지 않았다고 한다. 절망에 빠져 있던 그에게 재활의 의지를 심어준 이는 당시 이 병원 재활의학과 과장이었던 하상배 교수(작고)이다. 4.19때 의대생 시위를 이끌기도 했던 하교수는 유교수의 재활치료 뿐 아니라 그에게 전공분야 공부를 계속하도록 독려해 오늘의 그가 있게했다.


“이전부터 호랑이 선생님으로 유명하셨던 분이에요. 제가 끊임없이 재활치료에 전념하고 다시 전공을 이어갈 수 있도록 끌어주신 고마우신 분이죠.”의사로 복귀한 뒤에도 여전히 손놀림이 어둔해 처음 몇 달 동안 진료 챠트 조차 쓸 수 없었다. 식사도 누군가 도움 없이는 먹을 수 없었던 그때 그는 자신을 교보재 삼아 재활치료실습을 이어 나갔다. “의사들이 보통 재활치료방법들을 배워도 눈으로 보고 이해하고 마는 수준에 그칠 수 있는데 저는 직접 제 몸으로 실습해 볼 수 있었죠. 이론으로만 보던 것들을 직접 적용해 보니 효과적인 학습이 가능했고 또 제 몸의 재활에도 많은 도움이 됐어요. 지금도 날씨가 흐리면 몸이 안 좋은데 환자들의 몸 상태를 느낄 수 있어서 환자들과 정서적으로 쉽게 공감할 수 있어요.


왜 하필 전공으로 재활의학과를 선택했을까? 전공과 사고의 인과성 추측 때문에 마음이 어렵지는 않았을까? “의사의 사명에 대해서 고민하면서 의사의 책임은 환자의 사회복귀까지여야 한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국민소득이 2만 달러가 넘어서면 재활의학이 발달한다는 사실도 전공을 선택하게 된 계기 중 하나였구요. 사고에 대해서는 환자를 늘 대해와서 그런지 사람은 누구나 장애인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 항상 있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다른 사람들 보다는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았던가 싶어요.”



의사의 책임은 환자의 사회복귀까지여야 한다. 가슴을 울리는 말이다.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려면 그저 상황을 모면시켜 주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진정한 치료와 도움은 그가 이전과 같은 삶을 회복할 수 있도록 해 주는 것이다. 유교수는 팔을 잃은 사람에게 남은 한 팔로 삶을 계속 이어갈 수 있도록 까지 돌보는 것. 원상회복이 어려우면 차선의 삶을 유지할 수 있도록 돌보는 것이 의사의 책임이라고 강조한다.



재활에 성공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재활의지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환자스스로가 사회복귀에 대한 욕구를 가져야 해요. 장애인들이 사회에 복귀할 수 있는 직업들도 많아져야 하구요. 장애인 스스로가 재활의 원동력으로 삼을 수 있는 목표가 있어야 재활에 성공할 수 있어요. 그리고 역시나 중요한 것은 주변 사람들의 용기와 사랑이죠.



사고 당시 1년 계약직 신분 이였던 유교수는 수술 후 1개월 만에 퇴원해서 바로 업무를 봐야 만했다. 업무수행능력을 보여주지 못하면 재계약을 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장애인들이 자기 능력에 따라 어떤 식으로든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주어야 하는 것은 비장애인들의 몫이다. 장애 이후의 삶에 대한 대안이 확실하다면 사람들도 더 이상 장애를 인생의 끝으로 여기지 않고 또 다른 삶의 방식으로 받아들일 수 있지 않을까?



전문용어로 사고로 인해 얻은 상처를 장해(障害)라고 합니다. 장애(障碍)는 장해 때문에 얻게 되는 불편한 요소들을 말하죠. 팔을 잃었다면 장해를 입은 것이고 그것 때문에 활동에 불편을 얻었다면 이를 장애라고 합니다. 핸디캡(handycap)은 이런 장해와 이로 인한 장애 때문에 받게 되는 불이익을 지칭하죠. 직업을 구하기 힘들다거나 보행이 용이치 않은 것들은 핸디캡에 속하는 것이죠. 장해와 장애가 치료하고 극복 해가야 할 개인의 문제 즉 본인의 의지에 달린 것이라면 핸디캡은 사회의 문제이다. 제도의 개선과 사회구성원들의 관심으로 얼마든지 줄여갈 수 있는 부분인 것이다.



재활치료에는 물리치료, 언어치료, 작업치료 등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새로 재활환자가 들어오면 각 분야의 의사들뿐만 아니라 사회복지팀까지 함께 모여 환자의 재활 이후 원활한 사회복귀를 위해 가옥구조의 개선까지 고민하고 관리하죠. 결국 재활의학과가 환자의 진단부터 퇴원 이후의 생활까지 전 과정을 관장할 수 있어야 효과적인 치료가 이루어졌다고 볼 수 있습니다.


사고 당시 1살이던 아들이 지금은 초등학교 6학년이 되었다. 아들을 제대로 한번 엎어보지 못한 것이 가장 아쉽다는 유종윤 교수. 아들과 함께 목욕탕에 가 보는 게 꿈이라는 그의 바램이 새해에는 꼭 이루어지면 좋겠다.


(글.푸르메재단 - 최병훈 전 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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