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나의 딸들에게



글| 이건순


3시간의 수술 준비가 끝나고, 수술실로 들어가 또다시 30분이 지날즈음 아기를 낳았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유난히 의사들이 많았다.















"이 집, 아들 쌍둥이래."

"위에도 아들이래."

"아들 셋 키우기 힘들 텐데‥‥‥."

의사 선생님들이 주고받는 대화를 들으며 잠 속으로 빠져들었는데, 마취에서 깨어나니 식구들 얼굴이 모두 심상치 않았다. 더욱이 남편의 얼굴은 너무나 침통해 보였다.



그런 남편에게 아기의 성별을 물으니 그냥 '아들'이라고 하면서 나갔다 오더니 이번에는 '딸이래'라는 어처구니없는 대답을 했다. 남편이 아들을 바랐나 하며 그저 서운하기만 했는데, 사실 남편은 그때 정신이 없어서 아들인지 딸인지도 몰랐다고 한다.



나는 그저 수술 후의 피곤함으로 다시 잠 속으로 빠져들었고 깨어났을 때는 이미 다음날 아침이었다. 가스가 나오고 미역국을 먹고 나서 아기들에게 모유를 먹이기 위해 열심히 마사지를 했다.


그런 나를 지켜보는 가족들의 침울한 얼굴을 전혀 눈치 채지 못한 채 아기가 인큐베이터 안에 있어서 보여줄 수 없다는 말만 믿고 있었다.


며칠이 지나 내일이면 퇴원이니 아기를 꼭 봐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간호를 해주던 언니가 이상한 말을 했다. 두 달 전에 미국에서 태어난 머리가 붙은 샴쌍둥이 이야기를 하면서 만약 그런 아기를 낳았으면 어쩌겠냐고 묻는 것이다. 재수없는 소리한다,며 내가 왜 그런 애를 낳으냐고 화를 냈지만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당장 아기를 보여달라며 떼를 쓰니 언니가 급히 남편에게 연락을 했고, 쏜살같이 달려온다. 남편은 눈물을 펑펑 흘리는 나에게 '미안해, 나랑 결혼해서 이런 아이 낳은 것 같애'라고 말했다.


갑자기 아무것도 들리지 않고, 보이지도 않으며, 느껴지지도 않았다. 머릿속이 하얘지며 몸이 순식간에 사라져버린 듯 정말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다. 그래도 남편은 '한번 봐. 예쁜 아기야'라며 위로했지만 나는 '아니, 나 안봐. 난 안 키워'라며 악을 썼다.

















지금으로부터 13년 전, 무지하고 사랑 없었던 내가 내뱉은 이 말이 너무 후회스럽다. 내딸들에게 미안하고, 또 미안하고, 또 미안하다. 그나마 유정이에게는 그 말에 대한 사죄라도 하듯 열심히 잘 해주려 노력할 수 있지만, 미안하다는 말조차 해줄 수 없는 하늘 나라로 떠난 딸 유리를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다.


남편의 설득도 있었지만 나중에 후회할 일은 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으로 신생아실로 들어셨다. 신생아실 뒤편에 있던 아이들의 붙어 있는 배를 보며 하늘이 무너지는 것만 같은 절망감에 휩싸였다.


내가 낳은 아이들이 저 아이들이라니, 괴물을 낳은 건 아니지 이 현실을 부정하고 싶었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막막하고 무섭기도 했다. 순간적으로 정말 많은 생각들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머릿속이 복잡한 생각으로 가득 찰 때 어떤 소아과 선생님이 우리 아이들이 예쁘다며 이쪽저쪽 볼에 뽀뽀를 해주었다. 그러면서 내게도 안아보라고 했지만 난 뒷걸음질치고 말았다.


지금 유정이가 아무리 힘들게 해도 그 때의 미안함 때문에 속죄하는 맘으로, 또 갚을 길 없이 하늘나라로 떠나버린 유리를 생각해서라도 유정이에게 최선을 다해야했다.


그런데 엄마인 나도 안고 싶은 마음이 없는데, 징그럽기만 한데 저 소아과 의사에게는 아이들이 정말 예쁘게 보이는 걸까? 의심도 생겼지만 한편으로 선생님이 무척 존경스러웠다. 정신이 아득한 채로 서 있는데 남편이 '분리 수술하면 살 수 있대'라고 말했다. 희망이 있다고, 잘 키울 수 있다고 한다. 난 그저 하염없이 눈물만 쏟아냈다.


지금까지 알 수 없었던 일들이 한꺼번에 풀리는 듯했다. 남편의 멍청한 표정, 한꺼번에 몰려온 시댁 식구들, 쌀쌀맞게 변해버린 담당의사. 임신 7개월이나 되어서야 쌍둥이임을 알았던 담당의가 그래도 순산 할 수 있다며 친절하게 대했었는데, 아이를 낳은 후부터는 회진도 오지 않는다. 선생님도 너무너무 괴로운지 눈도 마주치지 않는다.


결국 아이들을 병원에 둔 채 혼자서 퇴원을 했다. 23개월 된 큰아들이 '엄마'하며 달려온다.



<다음 호에 계속>





장애인과 함께하는 잡지 열린지평 가을호에 실린 글입니다.

(사진 열린지평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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