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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정무대] 바퀴 달린 사나이, 박대운

 

KBS 라디오 프로그램 <내일은 푸른 하늘>에서 ‘바퀴 달린 사나이, 박대운과 함께’를 진행하고 있는 박대운 씨를 만났다.

그의 이름 앞에는 ‘바퀴 달린 사나이’라는 닉네임이 붙는다. 그러나 이 닉네임은 그를 소개하는 여러 타이틀 중 하나에 불과하다. 그는 <폭소클럽> 이전에 이미 여러 번 세상을 깜짝 놀라게 했다.

1998년 2002km 유럽 5개국 휠체어 횡단, 1999년 4000km 한-일 국토종단, 1995년 지리산 노고단 휠체어 등정, 1998년 방콕 아시안게임 성화봉송 주자…

이 놀라운 경력들이 정작 그에게는 별로 얘깃거리가 되지 않는 일인 듯하다.어떻게 휠체어로 유럽 횡단을 할 수 있었냐고 물으면 “그것보다 화장실 찾아 돌아다니는 게 더 힘들어요.” 하고 웃고는 그만이다.

장애인으로서 최초로 공중파 TV 프로그램에, 그것도 6개월이나 장수한 고정 코너를 가지고 있었던 ‘인기 개그맨’이었다는 것에 대해서도 그는 마치 남의 이야기인 것처럼 아주 덤덤하게 대답한다.

“하는 동안 계속 힘들었죠. 매주마다 새로운 소재 찾아내고 아이디어 짜내는 게 힘든 일이에요. 남을 웃긴다는 게 그렇죠. 저만 힘들었던 게 아니라 개그맨들 다 힘들어해요.”

장애인이어서 받는 특별한 관심에 집중하기보다는, 개그 코너를 맡은 이상 ‘어떻게 하면 사람들을 자연스럽게 웃길 수 있을까’에 골몰했고, 그러다 보니 코너를 맡은 내내 힘들었던 기억밖에 없다. 오히려 지나고 나서 보니 신기하기도 하고 가끔 뿌듯하게 느껴질 때도 있다고.

“장애인이 뭘 하면 ‘장애인 최초…’ 이런 식으로 일회성의 과도한 관심이 집중되는 것은 좋지 않은 면도 있어요. 어떤 장애인이 뭔가를 했다고 해서 그 사람한테 그게 다가 아니거든요. 그 사람이 평생 뭘 하면서 어떻게 사는가가 중요한 거지, 어디를 횡단하고 무슨 상을 타고 그런 게 핵심이 아니죠. 게다가 그걸 보는 다른 장애인들이 다 그렇게 할 수 있는 게 아니기 때문에 더 힘들게 만들 수가 있어요. ”

 

주어진 길과 가고 싶은 길

 

휠체어로 유럽을 횡단하고 한국과 일본을 종단하고, 도무지 못 할 일이라곤 없어 보이는 그에게도 앞을 가로막는 현실의 벽은 언제나 있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한의대에 진학하려고 열심히 준비했지만, 장애를 이유로 학교가 그를 거부했다. 실의에 빠져 있을 새 없이 다시 입시준비를 해서 미대에 입학했지만 이번에는 미래가 그려지지 않았다.
미대를 졸업한 후에 무엇을 해야 될지 아무리 해도 답이 나오지 않았다. 고민 끝에 그는 가족에게 말도 못 하고 조용히 다시 입시 준비를 했다. 그리고 결국 자신이 원하던 신문방송학과에 입학했다. 

주어진 길 대신 자신이 원하는 길을 선택한 후에는, 그 길을 두려움 없이 가기 위해 유럽 횡단 계획을 세우고 스폰서도 직접 구하러 다녔다.

어차피 부딪치며 살아가야 한다면


“뭔가를 해보기도 전에 미리 두려워하거나 위축되거나 그러지는 않는 편이에요.”

타고난 성품이 그렇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어머니의 영향이 컸다. 하루아침에 교통사고로 두 다리를 절단한 여섯 살짜리 아들에게 어머니는 의연하게 대했다. 휠체어를 타고 어디든 가게 했고, 집에 손님이 오시면 그를 제일 먼저 자랑스럽게 소개하곤 했다.
그의 어린 시절 기억되는 어머니는 장애를 가진 아들 때문에 절망하고 힘들어하는 어머니가 아니라 언제나 당당하고 거리낌없는 모습이었다.

학교에 들어갈 나이가 되자 장애아를 위한 편의시설이라곤 전혀 없는 학교임에도 불구하고 일반 학교 입학을 결정했다. 평생 어차피 비장애인들 틈에 섞여 살아가게 될 테니 처음부터 그렇게 적응해야 한다는 것이 어머니의 생각이었다.
1학년 한 학기 동안만 어머니가 학교에 따라다니고 그 다음부터는 혼자 적응했다. 이번엔 어머니가 아니라 아들의 생각이었다. 생계까지 책임지고 있는 어머니가 자기 때문에 교실 밖 복도에서 계속 기다리고 있어야 하는 것이 어린 생각에도 너무 마음 불편했던 것이다.

그렇게 어머니를 따라오지 못하게 하고 혼자서 휠체어를 타고 학교를 오갔다. 제일 견디기 힘들었던 것은 화장실을 이용할 수 없다는 거였다. 하루종일 화장실을 안 가고 버티거나 정 버틸 수 없으면 집까지 다녀와야 했다.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 졸업할 때까지 줄곧 그래야 했다.

화장실 다음으로 그를 힘들게 한 것은 학교 아이들이었다. 쉬는 시간이면 생전 처음 보는 휠체어와 두 다리가 없는 그를 구경하러 다른 반, 다른 학년 아이들까지 몰려들었다. 놀리기도 하고 심지어 돌을 던지고 도망가는 녀석도 있었다.

“어린 생각에도, 내가 여기서 위축되는 모습을 보이면 이 애들이 점점 더하겠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거꾸로 얘네들이 나를 부러워하게 만드는 수밖엔 없겠다… 그래서 휠체어로 묘기도 보여주고, 마음에 안 드는 녀석은 아예 휠체어를 만지지도 못하게 하고… 그랬더니 나중엔 휠체어 한 번만 타보게 해달라고 먹을 걸 갖고 오는 애들도 있었어요.(웃음)”

지금이야 웃으면서 얘기하지만, 자기 앞에 가로놓인 세상의 벽을 혼자 힘으로 부수고 나가야 했던 어린 마음이 어땠을까… 그러나 그렇게 스스로 이겨내고 헤쳐나가는 방법을 터득했기에 오늘의 그가 있을 수 있었던 것이리라.

“역경이라는 게, 파도타기와 비슷해요. 큰 파도가 나를 향해 밀려올 때, 그 파도는 나를 덮칠 수도 있지만 사실은 내가 가볍게 타고 넘을 수도 있는 거거든요. 도저히 내가 이겨낼 수 없을 것 같은 일들에 부딪칠 때마다 그런 생각을 해요.”

 

또 다른 도전
<폭소클럽> 이후 곧바로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바퀴 달린 사나이, 박대운과 함께’라는 코너를 맡아 지금까지 줄곧 방송인으로 활동하고 있는 그에게 앞으로의 계획을 물었다. 아니나 다를까, 그의 또 다른 도전이 이미 현재진행형이다. 자신의 꿈을 향해 더 높이 비상하기 위한 튼튼한 날개를 준비하고 있었다.

“아무리 해봐야 장애인이 ‘참여’하는 프로그램에 그치잖아요. 장애인 입장에서 할 수 있는 얘기들을 제대로 한번 해보고 싶어요. 장애인이 ‘기획’하고 장애인이 ‘참여’하고 장애인이 정말로 ‘공감’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만들고 싶어요.” 

이루고 싶은 꿈을 말하는 그에게서 즐거움과 설렘이 전해져 온다. 목표 달성이 아니면 죽음을 달라는 식의(^^) 비장함이 아니라, 즐거운 도전 자체가 지켜보는 사람까지도 살맛나게 하는 뭔가가 있다. 
인터뷰를 끝낼 때쯤에 깨달았다. 그의 이메일 아이디가 왜 Cool Fire인지를.

삶의 파도를 시원히 타고 넘는 쿨한 남자, 그러면서도 결코 식지 않은 뜨거운 열정을 지닌 남자, 박대운. 그가 지금까지처럼 즐겁고 유쾌한 도전을 계속하기를 바란다. 지금 꾸는 꿈을 멋지게 이루고, 그 다음엔 또 더 큰 꿈을 향해 나아가는 경쾌한 서핑을 계속하기를, 사랑하는 가족과 친구들과, 그를 응원하는 많은 사람들과 더불어 계속해서 행복하기를 바란다.

인터뷰를 마치고 그와 헤어져 돌아오는 길에 몸이 10Kg은 가벼워진 듯하다. 머리와 가슴을 무겁게 짓누르고 있던 ‘미리 걱정’, ‘위축감’, ‘욕심’… 이런 무게들이 잠깐이나마 빠져나가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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