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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발의 성자, 최춘선 할아버지

오명철 (동아일보 논설위원)

지난 연말 교회에 다니는 대학 후배가 안부와 함께자신이 다니는 교회에서 ‘팔복(八福)’이라는 다큐멘터리와 그 프로를 만든 PD의 간증을 감동 깊게 들었다는 소식을 전해왔습니다. ‘팔복(八福)’은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 로 시작하는 마태복음 5장 3절의 말씀이라고 합니다.

기자적 호기심에 곧바로 인터넷을 통해 그가 다니는 서울 용산구 삼일교회 홈 페이지에 접속해 34분짜리 동영상을 순식간에 봤습니다. 감동을 억제할 수 없었습니다. 몇 번 이나 영상을 되돌려 보며 ‘맨발의 성자’ 최춘선 할아버지의 말씀을 빠짐없이 받아 적었습니다.

생시에 한 번도 뵌 적은 없지만 최춘선 할아버지는 제가 지난 해 만난 수많은 사람들 중에서 가장 감동을 준 분 입니다. 할아버지는 2001년 9월 82세를 일기로 이미 하늘나라로 가셨습니다. 다큐멘터리를 만든 프리랜서 PD 김우현씨가 할아버지를 처음 주목한 것은 1995년 여름. 이후 김 PD는 2001년 7월까지 6년에 걸쳐 할아버지를 추적합니다. 그가 다큐멘터리를 완성한 것은 그로부터 다시 2년이 지난 2003년 여름이었습니다. ‘나는 나무에게 물었다. 하나님에 대해 말해주겠니. 그러나 나무는 꽃을 피웠다’는 의미심장한 자막으로 다큐멘터리는 시작됩니다.

“통일이 오기 전엔 신 안신어”, 하나의 조국을 사랑한 할아버지
부끄러운 분단 조국, 독립유공자 연금도 거부

할아버지는 지하철역과 전동차 안에서 이상한 행색과 알 수 없는 언사로 기독교 복음(福音)을 전하는 분입니다. 우리가 흔히 광신도나 정신 나간 사람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는 그런 분이지요.

한 겨울에도 맨 발로 거리를 오가며 “아멘” “할렐루야”를 외치는 할아버지에게 연민을 정을 갖기 시작한 김 PD는 먼발치에서 지켜보거나 슬그머니 다가가 말을 건네기 시작했습니다. 몇 해 뒤 김 PD는 할아버지가 행인들에게 ‘이순신! Why Two Korea’, ‘민영환! Why Two Korea’, ‘미스코리아 유관순! Why Two Korea’, ‘미스터코리아 안중근! Why Two Korea’라고 외치고 다니는 이유를 비로소 알게 됩니다.

이순신, 민영환, 안중근, 유관순 같은 분들이 진정한 한국인이며 그런 정신을 가진 이들만 있다면 왜 두 개의 분단 된 한국이 있겠느냐는 말씀이었던 것입니다. 김 PD는 또 할아버지가 30년 이상 혹한에도 맨발로 다니는 것은 조국의 분단 현실에 아픔을 공유하기 위한 행동이란 것도 비로소 알게 됩니다. 할아버지는 “통일이 오기 전엔 절대로 신 안 신어”라고 외칩니다.

“미운 사람이 없는 사람은 세상의 일등 권세, 세상 왕들의 억 만 배 권세”라고 말씀하시는 최춘선 할아버지.

김구 선생과 함께 독립운동,
유산은 가난한 이들에게 나눠 주시고
소외된 이들을 위해 자원봉사

얼마 뒤 서울 용산구 한남동 할아버지 댁을 무작정 찾아간 김 PD는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됩니다. 할아버지가 움막 같은 허름한 집이 아니라 번듯한 주택에 살고 계셨고, 5남매를 다 교육가로 키우신 훌륭한 가장이셨습니다. 또 할머니를 거리낌 없이 ‘천사’라고 부르시며 “위대한 사람인데 우리 같은 바보와 살고 있다”고 자랑하시는 애처가셨습니다.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털어 놓는 두 분의 일생은 그야말로 놀람과 감동의 연속이었습니다. 어마어마한 부잣집 아들이었던 할아버지는 일본 와세다대 유학 중 하나님의 부름을 받았고, 유산으로 받은 그 많던 땅을 거의 다 가난한 이들과 실향민에게 나눠주셨다고 합니다. 할아버지는 “내 돈이 아니라 하나님 돈이니까”라고 대수롭지 않게 말씀하셨습니다. 광복군으로 백범 김구 선생을 도와 드리고, 귀국도 같이 하신 분이라고 하니 독립운동가이시기도 합니다. 할아버지는 은혜에 가득 찬 모습으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영혼이 맑은 아이들 눈엔 천사가 보이는 것일까? 어른들이 비웃고 무시하던 사이 그렇게 아이들은 천사 할아버지와 벌써 화답하고 있었다.

“어머니 기도의 응답으로, 하나님의 축복으로, 세상에 부러운 사람이 없고, 무서운 사람이 없고, 보기 싫은 사람이 없고, 얼마나 감사한지요. 부러운 사람이 없는 사람은 법률 없이 1등 부자예요. 미운 사람이 없는 사람은 세상의 1등 권세예요. 세상 왕(王)들의 억 만 배 권세예요.”

김 PD는 2001년 7월 이후로 할아버지를 만나지 못했다고 합니다. 두 달 후 할아버지가 세상을 떠나 그토록 사모하던 주님 품으로 가셨기 때문이지요. 자손들은 분단 현실이 부끄럽다며 일체의 보상을 사양했던 할아버지를 국립 대전현충원 제2애국지사묘역에 모셨습니다. 우리 모두는 할아버지가 ‘맨발의 성자’인 줄을 눈치채지 못하고 그 분을 무시하며 지나쳤던 것이 아닐까요?

영상과 마음으로서만 전할 수 있는 감동의 이야기


분단의 상처가 엄동설한 중 맨발의 발시림보다 더 아프셨던 것일까? 아니면 통일 조국의 희망이 그 추운 발시림을 녹일만큼 뜨거우셨던 것일까? 김우현 PD가 6년에 걸쳐 기록한 34분의 짧은 동영상은 ‘웃음’에서 ‘눈물’로 이어지고, ‘의아함’에서 ‘전율’로 반전되고, ‘영상’에서 ‘마음’으로 울려 퍼지는 감동의 반전 드라마로 다가왔습니다. 연로하고 왜소하신 몸 속에 담으신 겨레 사랑의 크기, 그리고 인자하신 표정과 담대하신 목소리에서 스며나오는 신앙의 깊이 앞에 말 문이 막힐 지경이기 때문입니다.

구한말과 일제강점 그리고 분단으로 이어지는 비통의 역사가 남긴 상처를 지하철과 길거리에서 바로잡고 싶으셨던 것일까? 그렇게 30년 넘도록 하느님의 사랑으로 치유하시려 했던 것일까? 지하철에서도 특히 학생과 젊은이들을 대하시는 모습은 교육자의 모습으로 보이고, 기독교인에게는 십자가 예수의 모습으로, 불교인에게는 대자대비 부처의 모습으로, 지켜보는 이의 마음에 따라 할아버지는 수많은 모습으로 비칩니다. 출간된 책자 (「맨발천사 최춘선 –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김우현 지음/규장)에서 작가도 언급한 것처럼 그렇게 품고 계셨던 그 큰 마음에 비해 너무나 초라해 보이는 할아버지의 모습이 가슴 시리게 다가옵니다.

버드나무(www.birdtree.net)와 팔복 공식 홈페이지에서 만날 수 있는 할아버지의 동영상도 감동적일 뿐만 아니라, 그 감동에 대한 네티즌들의 고백도 감동스럽습니다. 손수 만드신 할아버지의 수많은 전도 포스터들 중 ‘나는 너고 너는 나다’라는 진정한 나눔과 통일의 메세지가 생명과 부활의 메아리로 되살아나고 있기 때문입니다.

푸르메재단 기획실장 김홍식

아래에 동영상을 보실 수 있는 링크를 붙입니다.

최춘선 할아버지 동영상 보기:

* 버드나무 사이트 → 제1부, 제2부, 제3부, 제4부
* 팔복 공식 홈페이지 → http://www.godpeople.com/?GO=palbok_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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