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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흘만 볼 수 없다면

김성곤
서울대학교 영문과 교수 
(서울대 언어교육원장)

“나는 사람들이 성년기의 초기에 갑자기 사흘동안 눈이 멀고 귀가 들리지 않는다면 큰 축복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것은 헬런 켈러가 자신의 유명한 글 <사흘만 볼 수 있다면 (Three Days to see)>에서 한 말이다. 사물을 볼 수 없었던 헬런 켈러는 자신의 친구들과 친척들이 주위 풍경에 너무나 무관심하다는 사실에 늘 놀라곤 했다. 한번은 한 시간이나 숲 속을 산책하고 돌아온 친구에게 켈러가 숲에서 무엇을 보았느냐고 물었다. “별 것 없었어”라고 그 친구가 대답했다. 그 대답에 헬렌 켈러는 크게 실망하고 놀랐다. “한 시간 동안이나 숲 속을 걸어 다녔으면서도 어떻게 아무것도 보지 않을 수 있단 말인가?”

단지 만져보는 것만으로도 헬렌 컬러는 사물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었다. 예컨대 손가락 사이로 잡히는 나뭇잎의 섬세한 대칭, 미풍에 부드럽게 흔들리는 나뭇가지, 또는 나무 껍질의 신비스러운 윤곽에 비치는 따뜻한 햇볕 같은 것들은 언제나 켈러를 감동시켰다. 다만 상상할 수밖에 없는 그 모든 것들이 보고 싶어 켈러의 마음은 늘 애가 탔다. 사실 전혀 볼 수 없다면 어떻게 진정으로 나무를 알 수 있겠는가? “단지 만져보는 것만으로도 그렇게 큰 즐거움을 느낄 수 있다면, 실제로 보는 것은 얼마나 더 아름다울 것인가?”라고 헬런 켈러는 생각하곤 했다. 그래서 헬런 켈러는 만일 사흘 동안만 눈을 뜰 수 있다면 가장 보고 싶을 것이 무엇인가 생각했다.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첫째날, 나는 매우 분주할 것입니다. 사랑하는 사람들을 다 불러모아 놓고 그 동안 목소리로만 듣던 그들의 아름다운 모습을 바라보겠습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나에게 인간 생활의 심오한 이치를 발견케 해준 책을 눈으로 읽고 싶습니다. 오후에는 시원한 숲 속을 거닐면서 자연세계의 아름다움을 보겠습니다. 그리고 황홀한 색깔의 저녁노을을 보겠습니다. 역시 그날밤은 너무 감격스러워 잠을 이룰 수 없겠지요.

둘째날, 나는 새벽에 일어나 밤이 낮으로 바뀌는 감격적인 순간을 보고싶습니다. 그 다음 들를 곳은 미술관입니다. 그동안 나는 손으로 만져서 예술품을 감상해 왔습니다. 역시 촉감으로 느꼈던 것을 보고 싶습니다.

내가 볼 수만 있다면 얼마나 행복하게 감상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고는 극장이나 영화관에서 시간을 보내겠습니다. 촉감으로만 알던 나에게 눈으로 직접 볼 수 있다면 그 스릴이 얼마나 클까요?

셋째날, 나는 다시 한번 해뜨는 광경을 바라보겠습니다. 그리고 거리에 나가서 사람들이 오가는 모습을 보겠습니다. 빈민가, 공장, 아이들이 뛰노는 놀이터에도 가보겠습니다. 외국인이 사는 지역도 방문하겠습니다. 그것으로 외국여행을 대신할 수 있겠지요”

그러면서 헬렌 켈러는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내일이면 장님이 될 것처럼 당신의 눈을 사용하십시오.

내일이면 귀머거리가 될 것처럼 말소리와 새소리, 오케스트라의 힘찬 선율을 들어보십시오. 하지만 모든 감각 중에 볼 수 있다는 것은 가장 큰 축복이라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헬런 켈러는 자연과 인류문명의 아름다움을 보고 싶어했다. 그러나 막상 모든 것을 보게 되면, 이 세상에는 차라리 보지 않는 편이 더 나은 것들도 많다는 슬픈 사실을 깨닫게 될 것이다. 보고 듣게 될 때, 현실의 얼마나 많은 부분들이 사악하고 추악한지 알게 될 것이고, 세상에 대해 환멸을 느끼게 될 것이다. 생각해 보라. 전쟁터에 널려 있는 시신들, 광적인 테러리스트들이 저지른 처참한 광경들, 잔인한 병사들에게 부모를 잃은 어린 아이들의 슬픈 표정들! 용서할 줄 모르는 이 비참한 세상에서 눈이 멀었다는 사실은 어쩌면 재난이 아니라 축복일 수도 있다.

반대로 만일 내가 사흘 동안만 눈이 멀고 귀가 들리지 않는다면 나는 물론 보고 듣는 것에 대해 더욱 감사하는 법을 배우게 될 것이다. 갑자기 찾아온 어둠과 침묵은 보고 듣는 것의 즐거움을, 그리고 내가 그동안 얼마나 많은 것들을 놓치고 살았는지를 깨닫도록 해줄 것이다.

그러나 그 사흘이 다 지나가기 전에 어둠과 침묵은 내게 또 다른 사실도 가르쳐 주게 될 것이다. 즉 나는 예이츠의 시 ‘이니스프리의 호반(湖畔)’에서처럼, 고요와 정적의 고마움도 느끼게 될 것이다.

일어나서 지금 가자, 이니스프리로 가자
거기 진흙과 나뭇가지로 작은 움막 짓고
아홉 줄 콩 심고 꿀벌통 놓고
벌들이 웅웅대는 그곳에서 홀로 살리라.

거기엔 다소간 평화가 있으리
평화는 천천히 내려앉는 것이기에,
아침 베일로부터 귀뚜라미 우는 곳으로
서서히 내려앉는 것이기에,
거기엔 한밤중도 어렴풋이 빛나고,
정오는 자줏빛으로 불타오르며
저녁엔 온통 홍방울새 날개 소리.

일어나서 지금 가자, 이니스프리로 가자
도시의 차도나 잿빛 아스팔트 위에 서 있을 때에도
낮이나 밤이나 나는 듣는다,
호수물 나지막이 철썩이는 소리를.

만약 헬런 켈러가 지금도 살아 있다면, 나는 요즘 같은 세상에 보지 못하고 듣지 못하는 것이 꼭 그렇게 나쁜 것만은 아닐 수도 있다고 말해주고 싶다. 적어도 날마다 어둡고 암울한 현실세계 속에서 살아나가야만 하는 현대인들에게는 말이다.


 

헬런 켈러

 앨라배마주(州)의 터스컴비아 출생. ‘삼중고(三重苦)의 성녀’라고 불린다. 19개월 되던 때 열병을 앓은 후, 장님 ·귀머거리 ·벙어리가 되었다. 7세 때부터 가정교사 A.M.설리번에게 교육을 받고, 1900년에 하버드대학교 래드클리프 칼리지에 입학해, 세계최초의 대학교육을 받은 맹농아자로서 1904년 우등생으로 졸업하였다. 이 당시 마크 트웨인은 그녀에게 “삼중고를 안고 마음의 힘, 정신의 힘으로 오늘의 영예를 차지하고도 아직 여유가 있다”는 찬사를 보냈다. 그녀의 노력과 정신력은 전세계 장애자들에게 희망을 주었고, 다양한 활동으로 ‘빛의 천사’로도 불렸다.

1906년 매사추세츠주 맹인구제과 위원에 임명되었고, 1924년부터는 미국 맹인협회에도 관계하였다. 미국 전역 및 해외로 돌아다니며 신의 사랑 ·섭리와 노력을 역설해 맹농아자의 교육, 사회복지시설의 개선을 위한 기금을 모아 맹농아자복지사업에 크게 공헌하였다. 1937년 한국을 방문한 바 있다. 저서에 《나의 생애 The Story of My Life》(1902) 《암흑 속에서 벗어나 Out of the Dark》(1913) 《나의 종교 My Religion》(1927) 《신앙의 권유 Let Us Have Faith》(1940)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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