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홍길 대장과 장애청소년이 함께 하는 백두산 트래킹(1부)


민족의 영산, 백두산! 그 곳을 장애청소년 8명이 자원봉사자들과 짝을 이뤄 올랐습니다. 외환은행 직원들이 주축이 된 자원봉사자들은 24시간 장애청소년들과 함께 하면서 즐겁고 아름다운 여행이 될 수 있도록 애써주었습니다. 이들이 보여준 헌신적인 모습은 숭고한 인간애 그 자체였습니다.

이 아름다운 ‘커플’들의 선두에 선 사람은 다름 아닌 엄홍길 대장. 한국이 낳은 세계 최고의 산악인이 장애청소년들과 함께 하는 것만으로도 흥분되는 일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이번 여행에 동참해주신 분들의 면면을 봐도 얼마나 알차게 행사가 진행됐을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시인 정호승 님께서는 여행 내내 자상한 마음으로 장애청소년들의 말벗이 돼주셨고, 백두산 정상에서는 벅찬 감동 속에서 시를 낭독해주시기도 했습니다.

의수화가 석창우 화백께서는 참가자 한 사람 한 사람을 백두산의 산세로 형상화한 그림을 ‘일필휘지’ 즉석에서 그려내는 놀라움을 선사하셨습니다. 연세대 사학과 하일식 교수님께서는 광개토대왕비 등 중국 집안 일대 흩어져 있는 알토란 같은 고구려 유적들을 간결하면서도 깊이 있는 해설로 안내해 이번 여행을 훨씬 더 풍성하게 만들어주셨습니다.

9월 4일부터 7일까지 3박4일에 걸친 백두산 트래킹 행사는 푸르메재단이 주최하고 외환은행 나눔재단이 후원했습니다. 감동과 흥분으로 가득했던 우리들의 즐거운 여행기를 두 차례에 걸쳐 소개합니다.


9월 4일 아침 인천공항 집결, 우린 이제 백두산으로 간다!


자, 이제 출발입니다. 비행기 이륙시간은 8시 30분. 푸르메재단이 참가자들에게 통보한 집결시간은 6시 30분. 참석자 30명은 이 시간에 맞추기 위해 새벽부터 서둘렀습니다. 눈꺼풀은 무겁고 배웅 나온 가족들과 헤어지는 것도 아쉽지만, 여정을 시작한다는 들뜬 마음으로 다른 참가자들과 반갑게 인사를 나눕니다. 형광색 잠바와 등산모자만 봐도 우리 팀인 것을 한 눈에 알 수 있습니다.


비행기를 처음 타보는 친구들도 적지 않았습니다. 물론 공항에도 처음 와본 것이지요. 얼마나 신이 났을까요? 처음 만난 자원봉사자들과도 금세 친해질 수 있었습니다. 따스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은 서로 쉽게 알아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비행기가 내린 곳은 중국 심양. 요녕성의 성도로서 인구 800만의 대도시입니다. 백두산을 가는 데 왜 중국 땅을 거쳐야 하는지 마음이 답답해옵니다. 머지않아 우리 땅을 걸어서 백두산에 갈 수 있는 날이 올 것이라고 믿습니다. 안타까운 마음과 설레는 마음이 겹치는 가운데 1시간 반 정도 걸려서 심양 공항에 도착합니다. 날씨는 화창했고, 기온은 우리나라와 비슷했습니다. 시간은 한국보다 1시간 늦습니다.



첫 일정은 중국에서 고구려 유물이 가장 많이 보관돼있는 것으로 알려진 요녕성 박물관입니다. 원통형 건물로 3층 규모인 이 박물관은 유물 정리가 잘 돼있었고, 시설도 훌륭했습니다. 장애청소년과 자원봉사자들은 벌써부터 서먹함을 털어버리고 다정하게 손을 잡고 즐겁게 관람했습니다. 하지만 아쉽게도 사진촬영이 금지돼있습니다. 플래시를 터뜨리거나 삼각대를 세우고 촬영하는 것만 금지돼있는 일반적인 관람문화와는 달리 엄격하게 운영되고 있었습니다.


막상 관람을 마치고 나니 모조품만 전시해 놓고서 사진도 못 찍게 하는 이유를 알기 힘들었습니다.

5일 아침 백두산 향한 ‘베이스 캠프’ 통화로 달리다



박물관을 나서니 어느덧 점심시간입니다. 새벽잠을 설친 우리 일행의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날 법도 했지요. 점심을 먹으러 간 곳은 심양에서 동포들이 가장 많이 살고 있다는 서탑가입니다. 옆집 아저씨 같은 엄홍길 대장님! 우리 청소년들도 벌써부터 스스럼없이 이야기를 나눕니다.


백두산 등반 등 이번 여행의 큰 줄기 이외에 개인적으로 기억에 남는 것들을 꼽는다면 세 가지 정도 될 것 같습니다. 아래 사진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점심을 먹고 느긋하게 버스에 오른 참가자들. 이때만 해도 여느 관광객과 다르지 않은 유쾌한 표정입니다. 하지만, 백두산 오르기보다 몇 배 더 힘들었던 것이 바로 버스타기임을 곧 알게 됩니다. 백두산을 찾아가는 길은 진정 고난의 행군이었습니다.



그 다음이 바로 중국의 독특한 화장실 문화입니다. 자세히 설명하지는 않겠습니다. 다만 중국 사람들은 왜 화장실에 칸막이가 있어야 하는지 그 필요성을 못 느끼는 것 같았습니다. 이상하다고 할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그저 우리와 좀 다를 뿐이지요. 하지만 적응하기 쉽지 않았습니다. 마지막은 알차고도 즐거운 여행이 되도록 애쓴 행사진행 담당 임 모 간사가 아니었을까 개인적으로 생각해봅니다. 몸과 마음을 다 바쳐 분위기를 이끌고 있는 모습을 하일식 교수님께서 카메라에 담고 계시네요.



자, 드디어 통화에 도착했습니다. 버스로 4시간 걸렸습니다. 점심 먹고 출발해서 해질녘에 도착했습니다. 참가자들 아마 이때 ‘버스이동에 도전’해야 한다는 사실을 슬슬 직감하기 시작했을 것입니다. 맛있게 먹었던 점심은 다 어디로 갔는지 허기진 배를 움켜잡고 식당으로 직행! 간단한 자기소개의 시간에 이어 MBC 김정근 아나운서의 진행으로 엄홍길 대장의 강연이 시작됐습니다.


세계 최초로 8000미터급 16좌 등반이라는 대기록의 사나이. 바로 그가 우리 눈앞에서 희망을 이야기합니다. 동료를 잃은 슬픔, 잇단 등반실패로 인한 좌절, 그러나 지칠 줄 모르는 도전 끝에 이룩한 기록들. 엄홍길 대장의 격정적인 강연과 히말라야 현지 등반상황을 기록한 영상자료는 2시간 가까운 시간 동안 참가자들의 눈과 귀를 뗄 수 없도록 만들었습니다.


백두산 등반의 전초기지격인 통화시에 도착하기까지 한국에서부터 꼬박 하루가 걸린 셈입니다. 장애청소년들을 24시간 돌보아야 할 의무가 있는 자원봉사자들은 엄홍길 대장의 강연이 끝나자 이내 짝을 이뤄 각자의 방으로 향했습니다. 고된 일정이었지만, 다들 싱숭생숭한 마음이었던지 밤늦도록 불이 켜진 방들이 많았습니다.


백두산에서 버스로 3시간 반 정도의 거리에 있는 통화시. 이번 백두산 등반 프로젝트의 베이스 캠프 격인 이 도시는 철강산업이 발달해 있는 곳으로 비교적 생활수준이 높다고 합니다.


이제 호텔 문을 박차고 백두산을 향해 출발합니다. 꿈에도 그리던 우리 민족의 산, 백두산으로 달려갑니다. 가장 큰 걱정은 날씨입니다. 백두산이 우리에게 천지의 아름다운 자태를 보여줄까. 아침 하늘의 쾌청함이 백두산 꼭대기까지 이어질까. 걱정이 꼬리에 꼬리를 뭅니다.



어제 쌓인 피로에 또다시 새벽부터 길을 나서다보니 졸음이 쏟아집니다. 어느덧 정이 들었는지 마치 부자지간인 것 같은 느낌을 주는 장면들도 눈에 띕니다. 휴게실에서 칸막이가 있는 ‘고급 화장실’을 마주쳤습니다. 현지 가이드의 배려 덕분인 것 같습니다. 다시 길을 나서면서 버스 여행의 백미인 장기자랑이 벌어집니다. 빼어난 말솜씨를 자랑하는 김규범 학생이 진행을 맡아 뜨거운 반응을 얻었습니다. 배형진 씨도 애창곡인 조용필의 ‘허공’을 멋들어지게 불러주었습니다.



마침내 백두산 입구에 도착했습니다. 점심시간을 포함해서 무려 6시간 넘게 걸렸습니다. 그런데 현판에 새겨진 산 이름은 장백산이군요. 여기가 중국 땅임이 새삼 아쉬워지는 순간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기운 빠진 표정을 지을 필요는 없습니다. 장백산 문패 너머로 천지가 우리를 부르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기 때문입니다. 천지를 보기 위해 셔틀버스로 갈아탔습니다. 우거진 숲 사이로 나 있는 한적한 길을 달려갑니다. 한 30분쯤 지났을까.


저 멀리 버스 창문 밖으로 백두산의 모습이 드러나자 너나 할 것 없이 탄성을 지릅니다. 무엇이라고 말하기 힘든 장엄하고 신비스러운 분위기가 엿보입니다. 꼭대기 날씨를 짐작해보기도 합니다. 천지를 볼 수 있을 것 같다는 가이드의 말에 가슴이 뛰기 시작합니다.



마침내 백두산의 분화구 아래 내렸습니다. 바람이 세게 불어 제법 쌀쌀합니다. 천만다행으로 쾌청한 가을하늘이 펼쳐져 있습니다. 야호! 1236개 계단만 오르면 천지를 볼 수 있다는 생각에 온 몸이 뜨거워집니다. 마음이 급해집니다. 이때 엄홍길 대장이 나서서 대오를 추스릅니다. 이럴 때 일수록 차분한 마음으로 산을 올라야 사고가 일어나지 않는다는 말씀으로 집중력을 높여 주십니다.



계단을 밟아 올라가기 시작합니다. 한참이 지났습니다. 숨이 차오릅니다. 하지만 아직 멀었습니다. 어느 만큼 와서 뒤를 돌아보니 저 아래 광활한 백두산 자락이 펼쳐져 있습니다. 그리고 저 위로 시리도록 파란 하늘 아래 꿈에도 그리던 천지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것입니다. 한 걸음 한 걸음 서로서로 손을 잡고 산을 오릅니다.


엄홍길 대장과 소연이가 선두에 섰습니다. 내려오는 한국 관광객들이 천지가 한 눈에 보인다며 힘을 내라고 응원해줍니다. 조금만 더 가면 천지가 우리 눈앞에 펼쳐질 것입니다. 설레는 마음을 주체할 길이 없어 발걸음이 빨라집니다. 팍팍해진 다리, 시큰거리는 무릎도 대수롭지 않습니다. 모두가 한 마음이 돼서 서로 힘을 북돋워줍니다. 그리고 마침내…….



이번 백두산 등반대의 선한 마음씨를 하늘이 알아준 것 같았습니다. 구름이 드리운 장중한 하늘 아래 말로 형언하기 힘들만큼 짙푸른 천지의 물빛. 저 멀리 천지 건너편 비탈까지 선명하게 보여주는 맑고 깨끗한 대기. 감격에 겨운 우리 모두의 가슴은 터져버릴 것만 같았습니다. 장애와 비장애, 나이와 성별의 차이를 단숨에 뛰어넘을 수 있도록 만들어준 엄청난 힘을 천지는 우리에게 보여주었습니다.


포기하지 않고 이곳까지 온 우리 청소년들과 이들을 받아들여준 천지가 어우러진 모습에 눈시울이 붉어졌습니다. 시인 정호승 선생님은 오늘을 위해 미리 써온 시를 낭독해주셨습니다. 감동은 두 배가 되었습니다. 이 순간의 감격은 정호승 선생님의 시로 대신할 밖에 다른 도리가 없을 것 같습니다.



백 두 산


정호승


백두산은 울고 있었다. 밤이 깊어갈수록 잠을 못 이루고 두만강을 따라 몇 번씩 몸을 뒤채다가

온몸에 흰 눈을 뒤집어쓴 채 백두산은 남으로 가고 있었다.


봄이 오기를 기다리며 우리의 사랑이 언젠가 다시 이루어질 것을 믿으며 두만강을 건너 묘향산을 지나

백두산은 한라산을 만나러 가고 있었다.


하늘을 찌를 듯이 서 있던 미인송들도 어깨의 눈을 털고 백두산을 따라가고 멀리 흰 비단폭을 펼친 듯

흐르던 백두폭포도 말없이 백두산을 따라가고 있었다.


백두산 사슴떼들도 자작나무도 장백패랭이꽃도 바위종달새도 백두산을 따라가고 백두산이 한번씩 발을 쿵쿵

내디딜 때마다 천지의 푸른 물이 출렁거렸다.


그러나 그날 새벽 먼동이 틀 무렵, 백두산은 휴전선 앞에서 울고 있었다. 하늘 끝도 갈라진 휴전선을

뛰어넘다가 무릎을 꺾고 쓰러지고 말았다. 천지의 물은 그대로 쏟아져 평양과 서울을 휩쓸고 지나갔다.


*글,사진=정태영 푸르메재단 팀장

(이야기는 2회에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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