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은 나의 힘 [동아일보 2005-1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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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2005-12-21]

 

“크리스마스트리에 희망을 달아요”
가족 간 따뜻한 사랑의 힘으로 절망을 희망으로 가꿔 가고 있는 백경학 황혜경 씨 부부가 20일 밤 경기 고양시 일산동구 성석동 푸르메마을 자택 마당에서 크리스마스트리를 장식하고 있다. 이 집은 집안에서도 휠체어를 타고 다닐 수 있도록 백 씨가 직접 설계해 지었다. 딸 민주는 사진 촬영을 사양했다. 고양=권주훈 기자

 


"엄마. 내 방울은 여기다 달께." "그래, 민주는 새해 소망으로 뭘 빌지 정했니?"

 

민주(12)네 가족에게 연말 크리스마스 트리 장식은 남다른 의미를 지닌다. 이 트리는 민주네 가족이 독일에 살던 1997년말 당시 아장아장하던 꼬마 민주가 용돈을 모아 20마르크(약 1만2000원)에 사서 아빠(백경학·白庚學·42) 엄마(황혜경·黃惠敬·40)에게 준 첫 선물.

 

하지만 1998년 6월 자동차 여행 도중 엄마 황 씨가 영국 스코틀랜드에서 사고를 당한 뒤 이 트리는 오랫동안 가족들의 외면을 받아야 했다.

 

자동차 여행 도중이었다. 민주는 당시 5살. 민주가 화장실이 급했지만 백 씨는 차 세울 곳이 마땅치 않아 운전을 계속했다. 더 이상 참지 못하겠다는 민주의 말에 백 씨는 오르막 차로 갓길에 비상등을 켜고 차를 세웠다. 황 씨가 차 트렁크에 민주의 옷을 챙기러 갔을 때 한 차가 무서운 속도로 와서 차와 황 씨를 들이 받았다. 운전자는 진통제를 과다 복용하고 정신을 잠시 잃은 영국인이었다.

 

황 씨는 3번에 걸친 절단 수술을 받았다. 골반 바로 아래까지 왼쪽 다리를 잘라내야 했다. 2달이 넘게 의식불명 상태였다. 백 씨가 '관을 준비해야 하나'하는 생각까지 하고 있을 때 황 씨는 깨어났다. 다리 절단 수술을 받은 지 알 리가 없었다.

 

"여보, 나 너무 오래 누워 있었지? 좀 일어나 앉고 싶어."

 

황 씨는 일어나 앉으려다가 중심을 잃었다. 왼쪽 다리가 없어졌다는 사실을 그 때서야 깨달았다. 이틀을 울었다.

 

황 씨는 그 후로도 1년여 간 병원 신세를 졌다. 귀국후에도 사고 후유증으로 기억은 토막이 났고 원하는 발음이 나오지 않았다. 간단한 단어도 어떤 때는 금방 생각이 나지 않았고 접시를 들다가 놓쳐서 깨뜨리기도 했다. 가위질이나 칼질 등 섬세한 손동작을 요하는 일은 하지 못한다.

 

중앙일간지 기자였던 백 씨는 부인과 함께 더 많은 시간을 보내기 위해 기자 생활을 그만뒀다. 그리고 사업을 시작했다. 돈이 필요할 거라고 생각했다. 투자자들을 모아 옥토버훼스트라는 하우스맥주 전문 체인점을 차렸다. 사업은 순탄했다.

 

그러나 가정의 현실은 가혹했다.

 

민주가 다른 일에 집중하느라 엄마가 부르는 소리를 듣지 못하면 황 씨는 감정이 격해지곤 했다. 뜻하는 대로 말을 하지 못해도 마찬가지였다. 민주는 상처를 받았다. 무의식중에 '엄마가 나 때문에 다쳤다'는 생각을 했다.

 

이 때마다 백 씨는 민주를 따로 불러 "엄마는 너 때문에 다친 게 아니란다. 한적한 시골 도로 갓길에 세워 놓은 차를 누가 와서 들이 받을 확률은 엄청 나게 낮단다. 엄마가 가끔 화를 내는 건 네가 이해하렴"하고 달래줬다.

 

황 씨는 의사로부터 '평생 앉아서 생활해야 한다'는 얘기를 들었다. 하지만 여생을 앉아서 지낼 수는 없었다. 걷고 싶었다. 황 씨는 의족을 맞추고 걷는 연습을 시작했다. 넘어지기 일쑤였다. 넘어질 때마다 받는 충격은 육체적인 충격보다도 정신적인 충격이 훨씬 컸다. 우울증에 걸렸다. 말이 어눌하니까 대인기피증까지 겹쳤다.

 

백 씨는 될 수 있으면 저녁 약속을 잡지 않는다. '오후 10시까지는 들어오라'는 아내의 말이 마음에 걸렸다. 집에 와서는 매일 1시간 이상 대화를 나눴다. 오히려 사고 전보다 같이 보내는 시간이 많아졌다.

 

백 씨는 매주 금요일 퇴근하면서 집 근처의 호프집에 맥주 1500cc와 통닭을 시켜서 들고 들어간다. 황 씨가 500cc를 백 씨는 1000cc를 마시며 한 주 동안 섭섭했던 일이나 고마웠던 일에 대해 대화를 나눈다. 이 '금요 맥주 파티'는 이제 일상이 됐다.

 

황 씨는 마음을 추스르고 걷는 연습을 매일 하기 시작했다. 철이 든 민주도 청소와 설거지 잔디 깎기 등을 자기일로 생각하며 엄마를 돕는다.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면 트리를 꺼내 놓았다. 그리고 딸과 함께 트리를 정성껏 장식하며 가족의 소망을 이야기했다. "내년엔 엄마가 운전면허를 따기를…" "내년엔 아빠 똥배가 들어가기를…". 그러는 남편과 딸을 달가워하지 않고 바라만 보던 황 씨도 차츰 조금씩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전에는 같이 몸을 섞고 사는 마누라라는 생각을 많이 했는데 요새는 같은 길을 가는 동지라는 느낌이 많이 듭니다."

 

부인의 재활을 눈물겹게 지켜본 백 씨는 지난해 8월 재활전문병원 설립을 목표로 하는 푸르메 재단(www.purme.org)을 발족하고 상임 이사를 맡았다. 올해 3월 설립 인가가 났다.

 

민주의 생일은 11월 23일이다. 하지만 초등학교에 입학한 이후 민주는 매년 5월에 생일잔치를 한다. 민주는 날씨가 좋은 날을 골라 같은 반 친구들을 집으로 초대하고 마당에서 함께 뛰어논다.

 

백 씨 부부에게 이 날은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민주 친구들에게 민주 엄마가 교통사고로 다리 하나를 잃었다는 걸 공개적으로 보여주는 날이기 때문이다.

 

황 씨는 휠체어에 앉아 민주의 친구들을 맞는다. 이상하게 생각하고 처음에는 황 씨를 피하던 민주의 친구들은 황 씨가 친절하게 대해주면 나중에는 "안 아파요?" "(다리가 잘린 부위를) 만져 봐도 돼요?"라고 물으며 친근감을 표시한다.

 

백 씨 부부가 굳이 민주의 생일잔치를 5월에 하는 이유는 학기 초에 민주 엄마가 장애인이라는 사실을 알려서 민주가 친구들로부터 오해를 받거나 놀림을 당하는 걸 미리 막기 위해서다.

 

황 씨가 학교 급식 당번 때 가지 못하거나 학예회 때 휠체어를 타고 학교에 가면 민주는 의기소침해지곤 했다.

 

"어린이들은 순진해서 잔인할 수 있어요. '너희 엄마는 왜 다리가 하나 없냐'고 물으면 민주는 항상 상처를 받죠. 그걸 그대로 보고만 있을 수는 없었습니다."

 

20일 저녁 남편과 딸과 함께 2006년 소망을 담은 방울을 트리에 달던 황 씨는 "저도 재단을 통해 봉사활동을 하고 싶어요. 걷기 연습을 더 많이 할 거예요"라며 웃었다.

 

'가족은 힘이 세다.' 풍랑이 그치지 않게 마련인 인생살이, 게다가 경제도 어렵고 사회도 어수선하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에도 많은 사람이 가족의 사랑과 서로에 대한 헌신을 돛 삼아 고해(苦海)의 파도를 헤쳐 가고 있다.

 

지난해 8월 고기전문 외식업체 '계경목장'을 차린 송영석(53) 씨는 상호저축은행에서 20년 넘게 근무하다 지난해 퇴직했다. 그가 전혀 해 보지도 않은 일을 하기로 결심한 것은 아내와 자식들이 "도와주겠다"고 입을 모았기 때문. 아내는 틈틈이 공부해 요리사 자격증도 땄고, 대학생인 아들 승준(20) 씨는 휴학까지 하며 매장 일에 발 벗고 나섰다. 승준 씨는 "언제나 그랬듯 아버지를 가장 존경하고 믿는다"며 "온 가족이 함께 하면 좋은 결과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최혜경(崔惠卿) 서울대 소비자인간발달학과 교수는 "자신이 소중한 존재로 인식된다는 느낌 만으로도 사람은 당당하고 자신감을 갖게된다"며 "가족의 사랑을 받는 사람은 문제가 있을 때 부딪쳐서 해결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2년전 자궁내막암에 걸린 이모(32) 씨는 항암치료를 받을 때마다 고통스러워 포기하고 싶은 때가 많았다. 하지만 유학 중이던 남편이 공부를 중단하고 돌아왔고 친정 엄마와 더불어 병상을 떠나지 않았다.

 

이 씨는 "엄마가 나를 간호하면서 확 늙어버리셨다. 그런 엄마와 남편을 보면서 아무리 고통스러워도 살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얼마 전 검사 결과 더 이상 종양이 발견되지 않았다는 소식을 들은 이 씨는 "가족의 사랑이 있어 죽음의 위기를 극복한 것 같다"고 말했다.

 

행복가정재단 김병후(金秉厚·정신과 전문의) 이사장은 "인간이 행복을 느끼는 것은 여러 사람과 공감대를 가질 때, 특히 가장 가까이 있는 사람들과 공감할 때"라면서 "가족의 이해와 사랑은 위기 상황에서 믿기 어려운 만큼 큰 힘을 발휘한다"고 말했다.

 

김선우기자 sublime@donga.com

 

전승훈기자 raph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