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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업에서 피어나는 자립의 꿈

푸르메스마트팜 건립을 위한 일본 농복연계 및 6차 산업 연수

 

푸르메스마트팜 건립을 추진하는 푸르메재단 일꾼들이 지난 2018년 네덜란드 선진농업 탐방에 이어 올해는 일본을 찾았습니다. 농업에서 장애인 복지의 새로운 활로를 모색하는 이른바 농복(農福)연계의 선도적 기관들에 주목했기 때문입니다. 일본은 1차 산업에 2차 가공업과 3차 서비스업을 더한 6차 산업의 개념을 맨 처음 제시한 나라이기도 합니다.

푸르메스마트팜 건립을 위해 일본 농업 현장을 찾은 연수단
푸르메스마트팜 건립을 위해 일본 농업 현장을 찾은 연수단

푸르메스마트팜은 장애청년들이 쾌적한 환경에서 생명을 키우는 행복한 농장, 잘 키운 작물을 고부가 상품으로 만들어 높은 수익을 창출하는 안정적 일터를 지향합니다. 이제 본격적인 사업 전개를 코앞에 둔 푸르메 일꾼들에게 우리보다 몇 걸음 앞선 일본의 농업 현장들이 실질적으로 좋은 참고가 되었습니다. 이번 일정은 나고야와 오사카 등 관서지방을 중심으로 진행됐습니다. 방문기관별로 자세한 정보와 시사점을 차례로 전하겠습니다. 연수단이 찾은 현장은 다음과 같습니다.

1. [농복연계] 교마루엔 농원
2. [농복연계] 무몬 복지회
3. [6차산업] 모쿠모쿠 농장
4. [첨단농업] 오사카부립대 식물공장
5. [트렌드] 오사카 농업박람회

첫 순서로 이번 연수단에 참여해 일정 전반을 조망한 장춘순 우영농원 이사의 소감문을 2회에 걸쳐서 소개합니다. 장춘순 이사는 발달장애인 아들의 미래를 위해 경기도 여주에서 가꾸어온 농장 터 3,600여 평을 푸르메스마트팜 건립 부지로 내놓은 기부자입니다. 발달장애와 농업을 한 묶음으로 고민해온 전문가로서 연수기간 내내 생생하고도 적확한 조언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앞으로 소개해드릴 연수 리포트가 이 땅의 장애인을 위해 더 나은 일터를 꿈꾸는 모두에게 의미 있는 정보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장춘순 이사의 일본연수기 1탄>

강하고 선한 사람들

새벽 출발이다.

선생님은 ‘촌’에 사는 아이들은 수학여행 새벽 출발 시간을 맞출 수 없으니 ‘시내’에 사는 친구들 집에서 하루 자고 새벽까지 학교 운동장으로 모이라고 하셨다.

1957년생인 내가 초등학교 5학년 때 춘천에서 인천으로 수학여행을 가려는 참이다. 많이 친했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어쨌든 선생님이 배정해주신 친구 집에서 하룻밤을 지내는 동안 평생 잊지 못할 경험을 했다.

학교에서 ‘풍금’이라는 것을 본 이후 ‘피아노’의 실물을 처음 보았다. 그 아이의 아버지가 외국에서 사왔다는 머리통이 작은 금발의 아주 정교한 인형도 보았다. 손이 떨릴 정도로 놀라운 것은 그 조그만 발에 신길 수 있는 신발이 있고, 그것이 발에 꼭 맞는다는 것이다.

우리 엄마가 솜을 넣어 만든 헝겊인형의 일자 발은 발도 아니었다. 인형 좀 그린다는 나의 종이인형이 더 이상 자랑거리도 아니었다. 훨씬 나중에야 알았지만 그것은 바비인형이었다. 수학여행보다도 그날 밤 그 작은 발에 신겨본 인형의 신발이 오랫동안 지워지지 않는 충격이었다.

당시 나는 전기도 들어오지 않는 촌에 살았던 터라 시내에서 전깃불을 켜고 사는 것 이상으로 또 다른 엄청난 세상이 있다는 것이 신기했다.

전깃불 하나로 시내와 촌이 구분됐던 시기에 그 바비인형의 신발은 큰 충격이었다.
전깃불 하나로 시내와 촌이 구분됐던 시기에 그 바비인형의 신발은 큰 충격이었다.

비행기 안이 추웠다. 배낭에서 겉옷을 하나 꺼내 입을까 생각을 하다가 말기로 한다. 푸르메재단과 만난 지 10여 개월 만에 그들과 함께 일본으로 견학을 가는 중이다. ‘장애청년들의 일자리, 푸르메스마트팜 건립’을 위해 가는 견학이다.

나는 딸과 아들이 있는데 아들은 31살이고 지적장애가 있다. 그래서 직업이 아님에도 이번 연수에 참여하게 됐다. 유럽이나 미국 등 선진국의 장애시설을 살펴보는 것은 이제 익숙하다. 아들이 장애가 있다는 것을 알고 난 후 아니, 더 정확히 말하자면 아들의 장애는 현실이고, 그것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인정한 이후 각국의 장애시설을 미친 듯이 돌아다녔다. 아들이 장애를 가지고 살기에는 한국의 현실이 너무 퍽퍽했다. 그래서 이민이라도 가볼까 했다. 물론 한국말도 채 습득이 안 되는 아이에게 또 다른 언어의 벽과 인종의 벽을 만들어 줄 수가 없어 포기했지만 말이다. 어쨌든 그때마다 초등학교 5학년 때 처음 본 바비인형 신발과 같은 경험을 했다.

20여 년 전, 우리나라 장애청년들이 보호작업장에서 가내수공업과 같은 일을 하면서 양은 식판에 단무지 두어 조각을 받아먹고 멜라닌 컵을 썼다. 누구 옷인지도 모르고 쌓아놓은 것 중에 하나 골라 입은 트레이닝복은 크거나 작았다. 머리는 아우슈비츠 수용소 유태인처럼 다 밀린 채 큰방 하나에서 여럿이 한꺼번에 모여 잠을 잤다. 그런데 놀랍게도 선진국의 장애청년들은 흰 식탁보에 유리물 잔이 세팅된 곳에서 밥을 먹었다. 자원봉사자들은 그들의 청바지를 다리미로 다려 입혔다. 자신의 사진이 붙어있고, 직접 선택한 벽지를 바른 개별 방에서 살고 있었다.

남편과 내가 자식의 장애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몰랐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우리가 우물쭈물하다가 저 아이만 남겨 놓고 죽는다면 아이는 어디인지도 모르는 곳에서 머리를 빡빡 밀린 채 방바닥에서 쭈그리고 잠을 자게 될 것이다. 자기가 좋아하는 청바지도 입을 수 없고 아이패드도 사용할 수 없다. 비데가 없으면 팬티가 얼마나 더러워질까? 그것을 잘 빨아 입을 수는 있을까?

아이를 키우면서 한 번도 쉬운 적은 없었다. 의사는 장애진단을 내리면서 조기교육을 시키라고 하는데 특수교육을 하는 유치원이 절대적으로 부족한지라 자리를 얻기 위해서 헤맸고, 초등학교 교장 선생님은 장애아동을 따로 케어 할 수가 없으니 데리고 나가라고 했다. 음악치료, 놀이치료, 언어치료, 운동치료 등 ‘치료’ 라는 이름이 붙은 것은 왜 다 그리 비싼지… 버거웠다.

그래도 치료에 매달릴 때는 희망이 있어 행복했다. 특수학교를 졸업하고 나니 갈 곳이 없었다. 복지관은 이미 포화 상태고 어렵게 들어간다 해도 2~3년이 지나면 그 자리를 내어주어야 한다.

아들을 위해 만든 여주 우영농원. 출처=우영농원 홈페이지
아들을 위해 만든 여주 우영농원. 출처=우영농원 홈페이지

어떻게든 우리가 죽기 전에 그 아이가 살 길을 마련해야 했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농업’이다. 눈을 감았다 뜨면 직업 하나가 없어지는 시대지만 그래도 사람은 먹어야 사니 농업이라면 지속 가능할 것 같았다. 나이가 먹어도 해고될 염려 없이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농사일이 어디 그렇게 만만한가? 뜨거운 태양 아래서 힘들게 일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짠했고, 농한기인 겨울에는 무엇을 하면서 지내야 하는지 걱정이 되었다. 그러다가 2008년 식물공장을 처음 접했다. 아들의 장래를 위해 충분히 매력적이었다. 다행히 아버님께서 남겨주신 여주의 땅에 2010년 태양광에 의존하는 스마트팜을 지었다.

나는 우리 부부를 보며 인류가 어떻게 다른 동물들보다 번성하고 오래 살아남았는지를 깨달았다. 농업을 시작한 후 나는 더 이상 카트를 끌고 고고하게 장을 보던 고객님이 아니었다. 남편은 서른 언저리로 보이는 자식 같은 마트 관계자에게 90도로 절을 하고 다녔다. 우리가 생산한 농산물을 팔기 위해 시식을 권하면서 평생 처음 “사모님 드셔보세요”를 외쳤다. 그들이 뿌리치는 팔에 노여워할 권리도 없었다.

엄마의 말이 생각났다. 원래 부모란 자식을 위해 짚더미를 메고 불구덩이 속으로 들어가는 사람들이라고.

장애부모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들은 뱃속에 자존심을 넣고 살면 안 된다. 언제든 우리 아이를 부탁할 때는 뱃속에 아무것도 들어있지 않은 것처럼 허리를 굽힌다. 장애 부모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들은 고상하거나 품위라는 사치를 품고 살아서는 안 된다. 언제든 아이가 위험하다는 생각이 들면 발톱을 세우고 상스럽고 거칠어져야 한다.

우리 부부가 서로 합의를 보거나 그렇게 노력하자고 약속한 것은 아니었다. 우리 자식을 지켜야 한다는 생각에 저절로 그렇게 움직인 것이다. 장애자식을 품은 대부분의 부모들이 그럴 것이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우리 아이들이 살아남을 수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자연도태가 예상되는 자식임에도 남은 인생 모두를 걸고 지키겠다며 매달리는 부성과 모성이 인류의 역사를 수없이 연장해온 것은 아닐까.

나고야 공항은 바람이 많이 불었다. 우리의 4박 5일 일정은 비교적 바쁠 것 같다. 푸르메재단 백경학 이사님을 비롯해 젊은 직원들과 서울농원 장원장님, 기자 한분이 합류했다.

그분들은 이미 네덜란드 고도의 발전된 농업도 견학하고 꽤 오랫동안 장애청년들의 스마트팜에 관하여 연구를 한 터라 더 전문적이고 객관적인 시각으로 심도 있게 볼 것이다. 내가 확인하고 싶은 것은 그곳에 과연 엄청난 충격을 가져올 바비인형의 신발이 있는가 하는 것이다. 이토록 오랜 세월이 지났고, 고작 1시간 반 떨어진 나라에서 그 신발을 발견하게 된다면 너무 슬프지 않겠는가? 우리 아이들이 버려진 것 같고 너무 불쌍하지 않겠는가? 그것이 없어야 우리가 무슨 도전이라도 해볼 엄두가 나지 않겠는가?

첫 번째 방문 – 쿄마루엔 농장

장애인 고용율도 높고 장애인을 위한 유니버설 시스템을 갖춘 곳이란다. 400년의 세월동안 13대를 이어 가업으로 농사를 짓던 쿄마루엔 농장은 농사를 지을 수 있는 환경이 나빠지고, 농사일을 하겠다는 젊은이가 줄어가는 현실적인 문제로 장애인 근로인을 받아들였다. 그리고 그들의 생산성을 높이기 위한 방법으로 맞춤형 기계를 고안해내고 그러한 과정을 견학프로그램으로 만들어 부수적 이익을 창출하고 있다. 매우 영리한 비즈니스 모델이 아닐 수 없다.

쿄마루엔 농장에서 수경 재배를 하는 청경채
쿄마루엔 농장에서 수경 재배를 하는 청경채

한 가지 더 주목할 만한 것은 그곳 안주인의 모습이다. 추측컨대 400년 역사가 가지고 있는 히스토리도, 장애인이라도 능률을 올릴 수 있는 농사 기계도, 농협에 전량 납품되고 있는 농산물도 그 안주인의 통제와 바지런함을 넘어선 억척스러움으로 유지가 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녀의 모든 세포가 농장을 향해 열려 있는 것 같았고, 온몸으로 다음과 같이 이야기하는 듯 보였다. ‘내가 이 농장의 주인이고 나는 이 농장에 모든 것을 걸었다고.’

경험에 의하면 농장에는 반드시 그런 사람이 필요하다. 첨단기술을 이용해 자동제어시스템을 적용했어도 농업의 성공은 결국 사람의 정성에 좌우되기 때문이다.

두 번째 방문- 무몬복지회

이곳은 자연농법을 지향하고 장애인의 생산성보다는 더불어 사는 공동체 의식이 강한 곳이다. 유럽 대부분의 케어팜 모델과 비슷하기도 하지만 필수 선행 조건은 정부나 지자체의 경제적 지원이 있어야만 가능하다는 것, 다시 말하면 살살해도 먹고살 수 있어야 한다. 이곳 장애 근로인들의 한 달 평균 임금은 14만 원 정도란다. 돈을 버는 목적보다 집에 있지 않고 갈 곳이 있다는 것에 의미를 둔 직장인 것 같다. 예쁜 찻집도 있고, 표고버섯을 재배할 수 있는 밀폐형 하우스도 있고, 넓은 토지도 있다. 미니버스를 이용해 장애 근로인들을 밭으로 실어 나른다.

무몬복지회 시설 간판과 한글로 정성들여 쓴 칠판 입간판
무몬복지회 시설 간판과 한글로 정성들여 쓴 칠판 입간판

우리가 도착했을 때 출입구의 칠판 입간판에는 ‘어서 오십시오 푸르메재단님’이라는 한글이 정성스럽게 그려져(?)있었다. 매우 친절하게도 농장에서 생산되는 과자도 내주고 차도 대접해 주었다. 개인적인 의견으로는 입구의 칠판 입간판이 이들의 경쟁력이 아닌가 싶었다. 진심을 다하는 그 마음이 참 감동적이었다. 자연농법 전문가들의 도움을 받아 농업 생산성을 높이고, 운동선수들, 도요타 자동차 직원들, 지역 학생들의 자원봉사를 통해 필요한 인력을 메꾼다. 노령화로 쓸모없이 놀고 있는 땅을 빌려 농사를 지으며 지역 주민들에게 호감을 얻었고 그로 인해 자발적인 도움도 이끌어내고 있다. 그 뜻이 선하고 의지가 있다면 자원을 얻을 수 있는 방법은 참으로 다양하지 않겠는가?

장애인 탈시설에 관한 제안

밭에서 일하고 있는 무몬복지회 장애 근로인들
밭에서 일하고 있는 무몬복지회 장애 근로인들

한국에서 장애인을 위한 학교, 보호 작업장 등 대부분의 시설은 다수의 장애인과 소수의 비장애인으로 구성된다. 필연적으로 소수가 지시하고 다수가 수행하는 구조다. 그들이 일하거나 배우는 장소에는 당연하게도 ‘장애인OOO’ 이라는 간판을 걸게 된다.

위에서 본 두 기관의 장애인 비율을 살펴보자.

쿄마루엔 농장의 고용 현황
쿄마루엔 농장의 고용 현황

교마루엔 농장은 100명의 근로인 중 장애 근로인이 25명, 비장애 근로인이 75명이다.
무몬복지회는 장애 근로인이 120명, 비장애 근로인이 120명(정규직 40명, 비정규직 80명)이다.

이즈음 해서 우리는 ‘장애인 탈시설’의 범위에 대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물론 장애 정도가 경미하여 사회 적응도가 높으면 당연히 사회로 나가야겠지만 그들이 나올 형편이 안 된다면 우리가 들어가는 것은 어떨까? 무슨 차이가 있나 의아하겠지만 배려의 측면에서는 완전히 다른 얘기다. 다수의 색에 소수의 색이 섞이면 존재감도 없이 묻힐 수밖에 없다. 하지만 미리 만들고 싶은 색을 정하고 들어간다면 농도의 정도는 조절할 수 있지 않을까? 소수의 장애인에게 존재감을 주고 다수의 비장애인으로 생산성을 높일 수 있다면 까짓, ‘장애인을 위한’ 같은 간판쯤은 떼버려도 좋지 않겠는가? 우리가 꿈꾸는 스마트팜에서 그 정도의 수익을 올릴 수만 있다면 참 멋진 광경이 펼쳐질 것만 같다.

*글= 장춘순 이사 (우영농원), 정태영 기획실장
*사진= 장춘순 이사 (우영농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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