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고버섯 따기 참 쉽죠?

발달장애 청년들 일터로 거듭난 여주 스마트팜


 


경기도 여주에 위치한 표고버섯 스마트팜 외관.
경기도 여주에 위치한 표고버섯 스마트팜 외관.

경기도 여주 세 동의 비닐온실. 한 발 들어서자 표고버섯의 진한향이 숨결에 섞여 들어온다. 온실 안은 다소 더운 바깥 날씨와 달리 바람 한 점 없이 쾌적한 기온이 유지되고 있다. 이곳에 배지를 둘러싼 비닐을 뚫을 듯 팽팽하게 채우고 있는 버섯들을 향해 부지런히 손을 놀리는 사람이 여럿이다.


그 중 몇몇은 이미 버섯으로 가득한 플라스틱 박스를 들고 나르며 구슬땀을 흘린다. 때론 옆사람의 작업을 유심히 관찰하며 한 목소리 보태기도 한다. 얼굴 표정만큼 다들 열심이다.


전통적인 버섯농법(위)과 첨단 스마트팜 시설.
전통적인 버섯농법(위)과 첨단 스마트팜 시설.

온실 전체를 빽빽하게 뒤덮은 표고버섯을 수확하기 위해 열을 올리는 이들은 푸르메재단 직원들과 산하에 있는 종로장애인복지관의 장애청년들이다. 이들이 경기도 여주의 농장에 와서 일을 하는 데에는 특별한 이유가 있다.


어느 날 푸르메재단으로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여주에 있는 땅을 푸르메재단이 건립하겠다는 희망의 스마트팜을 위해 사용해달라는 내용이었다. 장애청년들의 일자리를 위해 조성한 농장이라 스마트팜 설비까지 갖춰져 있지만 운영경험 부족으로 거의 중단 상태에 이르렀다는 말을 조심스레 덧붙였다.


푸르메재단으로서는 머리로만 구상했던 발달장애 청년들을 위한 스마트팜을 미리 경험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푸르메재단 직원들이 '우영농원'을 처음 방문한 건 추석 직전이었다.


버섯농장에서 흔히 보는 거대한 통나무 대신 공장에서나 볼 법한 기계설비와 어른 손바닥보다 조금 큰 배지들이 빼곡하게 자리하고 있었다. 스위치만으로 물과 온도를 조절하고, 허리 높이에서 모든 작업을 할 수 있게 조성됐다. 노동력은 줄고 생산성이 높다는 스마트팜의 강점이 그대로 반영돼 있었다.


버섯을 따는 종로장애인복지관의 장애인 직원.
버섯을 따는 종로장애인복지관의 장애인 직원.

그날 방문한 '우영농원'은 버섯을 생산하지 못한 배지들이 수분을 머금지 못해 단단하게 굳어 있었다. 하지만 두번째 방문한 농원의 온실 안은 온통 표고버섯 투성이였다. 다 따고 뒤돌아서면 빽빽하게 올라오고, 또 따고 뒤돌아서면 손쓸 겨를 없이 버섯갓을 세웠다. 그야말로 왕성한 생명력을 뽐냈다.


종로장애인복지관에 다니는 장애인 직원들이 스마트팜 체험 겸 지원군으로 여주를 찾기 시작한 게 바로 그 무렵이다.


동료에게 버섯 따는 비법을 전수하는 장애인 직원.
동료에게 버섯 따는 비법을 전수하는 장애인 직원.

처음에는 잘 떨어지지 않는 버섯과 씨름을 하던 친구들이 몇 번 하더니 요령을 터득한다. 옆에 있는 동료에게 잘 딸 수 있는 비법까지 전수한다. 2시간이 넘어가자 배지 옆으로 불량하게 나와 있어 쉽게 떼기 힘든 버섯들만 남았다.


손이 닿지 않아 배지와 분리하기가 어려워지자 점점 몸을 비틀며 지루해하는 이들이 나왔다. 지체장애 아들의 조력자로 함께 방문한 어머니 권옥미 씨(59 · 정해영 엄마)가 먼저 눈치를 채고 버섯이 가득 찬 박스를 옮기라고 지시한다. 일터를 잠시나마 벗어나게 된 것에 신난 친구를 붙들고 소감을 물었다.


"학교 다니면서 과학 공부를 더 열심히 할 걸 그랬어요. 버섯에 대해서 잘 모르니 좀 어려운 것 같아요. 다음에는 버섯 공부를 더 하고 오려고요."


누구라도 따기 힘든 위치의 버섯이겠건만 공부가 부족한 탓으로 돌리는 그 심성이 예쁘다. 한시도 눈을 떼지 않고 버섯을 따는 데에만 집중하는 청년들도 있다. 어느새 나란히 줄을 선 버섯 배지들이 민둥산마냥 매끈해졌다. 그제야 다들 허리를 펴고 손을 닦으러 나간다.


아들과 함께 일하는 권옥미 씨.
아들과 함께 일하는 권옥미 씨.

그 사이 어머니는 마지막까지 정리를 마친다. 자식의 부족한 부분을 대신 채우겠다는 듯 그렇게 끝까지 자리를 뜨지 못한다. "토마토 같은 건 쉽게 따겠는데 종목 특성상 버섯은 힘과 기술이 좀 필요하네요."


발달장애 아들과 함께 첫 스마트팜 체험을 마친 권 씨는 감탄과 아쉬움을 동시에 내비쳤다.


"깨끗한 자연에서 일할 수 있다는 점이 참 좋은 것 같아요. 좋은 공기 마시면서 이리저리 움직이면서 일을 하니까 아이들도 재미있어 하더라고요. 약간 아쉬운 점이 있다면 버섯이 거무죽죽한 색을 띄고 있어 아이들이 처음에는 거부감을 좀 느꼈어요. 토마토나 딸기와 같은 작물을 재배하면 색도 예쁘고 따기도 쉬워서 훨씬 재미있게 일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장애청년들이 수확한 표고버섯.
장애청년들이 수확한 표고버섯.

권 씨는 이에 덧붙여 주말농장처럼 입장료 받고 작물을 따서 가져갈 수 있도록 시스템을 만들고, 생산된 작물을 잼이나 음료 등으로 2차 가공해 수익을 증대하는 방안도 제안했다. 운영안에 이미 포함한 내용이라는 말을 듣더니 안도한 표정이다.


"사실 상태가 좋은 3급 아이들은 보호작업장 등 갈 곳은 많아요. 돈을 너무 적게 주기 때문에 경제적 자립이 불가능하다는 문제가 있긴 하지만요. 더 큰 문제는 1,2급의 경계에 있는 아이들이에요. 20년 가까이 교육을 시켜놨는데 결국 갈 데가 없어 주간보호센터로 보낼 수밖에 없어요. 퇴행은 시간문제죠."


발달장애 자녀를 키우는 수많은 부모들이 걱정하던 아이들, 발달장애인 중 가장 많은 수를 차지하는 경계권 아이들의 거취에 대한 이야기가 또 한 번 흘러나왔다. 장애의 특성을 이해하고 받아주기보다 비장애인의 범위에서 벗어나지 않은 장애청년들에게만 일자리의 기회가 주어지는 것을 복지라고 이야기할 수 있는지 장애 부모들은 매순간 의문을 품고 있었다.


작업을 마친 버섯을 운반하는 모습.
작업을 마친 버섯을 운반하는 모습.

"경계권 아이들도 충분히 일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어요. 다만 비장애인과 다르기에 별도의 시스템이 필요할 것 같아요."


비장애인도 힘겨워하는 8시간 풀타임 근무는 발달장애인에게는 무리한 일이다. 그렇다고 반타임 근무만 하고 퇴근하면 부모의 시간이 보장되지 않는다. 자녀가 퇴근하는 순간 부모의 돌봄이 시작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장애자녀 엄마들은 희망의 스마트팜이 일터와 보호시설의 역할을 동시에 할 수 있어야 한다고 입모아 이야기한다. 권 씨 역시 같은 의견이다.


"이렇게 하면 어떨까요? 시간대별로 두 그룹을 나눠 1차 타임 아이들이 일할 동안 2차 타임 아이들에게는 수영 같은 체육이나 그리기 등의 미술활동을 하게끔 해주는 거예요. 그리고 2차 타임까지 마치면 같은 시간에 퇴근을 하는 것이지요. 이런 커리큘럼이 마련되어야 장애 아이도 부모도 행복할 수 있어요."


장애자녀가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길을 찾는데 평생을 고민해온 어머니 답게 그의 생각은 깊고 넓었다. 그리고 확고했다.


스위치를 작동해 버섯에 물을 주고 있다.
스위치를 작동해 버섯에 물을 주고 있다.

인터뷰가 끝날 무렵 스위치를 작동하자 말끔해진 버섯배지 위로 물이 흩뿌려진다. 뿌연 물안개 속 장애청년과 그 부모의 염원을 담은 무지개가 살포시 얼굴을 내민다.


*글·사진= 지화정 간사 (커뮤니케이션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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