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섹션

[동아일보] 제25회 인촌상 수상자 – 仁村賞 영광의 얼굴들

[제25회 인촌상 수상자]仁村賞 영광의 얼굴들…수상소감과 공적

2011-09-06

좋은 세상 만들기 외길… 그 큰 발자취를 기립니다

《 재단법인 인촌기념회와 동아일보사는 6일 제25회 인촌상 수상자를 발표했다. 인촌 김성수 선생의 탄생 120주년이 되는 올해는 교육, 산업기술, 인문사회문학, 자연과학, 공공봉사 등 5개 부문에서 탁월한 업적을 이룬 학교와 인사들이 수상자로 선정됐다. 심사는 부문별로 권위 있는 외부 전문가 4명씩이 참여해 6월 말부터 8월 말까지 두 달 동안 진행됐다. 수상자들의 소감과 공적을 소개한다. 》

■ 교육 부문­­­- 서울여자상업고등학교

“극심한 학벌주의 분위기 속에서도 직업인 양성이라는 교육목표를 꿋꿋이 지켜온 점이 좋은 평가를 받은 것 같습니다.”

여성 직업교육의 산실로 꼽히는 서울여자상업고등학교 한상국 교장(75)은 85년간 ‘국내 최고 상업고’라는 명성을 유지한 비결에 대해 이같이 말했다.

서울여상은 가정형편 탓에 대학에 가지 못한 여성 수재들이 지원하는 명문고였다. 1970년대에는 전교 1∼2등, 1980년대에는 반에서 1∼2등 아니면 지원조차 불가능했다.

1990년대 이후로는 특목고는 물론이고 일반계고에 밀리면서 주춤했지만 2005년 금융 및 국제통상 분야를 특성화하면서 다시 각광받기 시작했다. 최근 은행권을 중심으로 고졸 채용이 확대되고 정부도 학벌주의 철폐에 나서면서 서울여상에 대한 관심은 더욱 높아지고 있다.

서울여상은 산업계의 수요에 기민하게 대응하면서도 전통과 역사를 유지하기 위해 노력해 왔다. 한 교장은 “많은 상고와 공고가 부정적 이미지를 탈피하고자 미디어고 인터넷고 정보고로 간판을 바꿔 달았지만 우리는 한 번도 이름을 바꾸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전문계고가 ‘학벌주의’라는 시류에 휘둘려 본연의 설립 취지를 잃고 진학 중심의 교육과정을 운영할 때도 서울여상은 흔들리지 않고 실무 중심 교육을 강화했다.

전문계고 졸업생의 70%가 대학에 진학하는 상황에서도 서울여상 졸업생의 70%가 취업을 선택하는 이유다. 이런 노력 덕에 서울여상은 100%에 육박하는 취업률로 국내 특성화고 중 부동의 1위를 지켰다. 지난해에는 취업 희망자 175명 중
172명이 대기업 등에 입사했다.

서울여상은 교육부로부터 2006년 금융교육 우수학교, 2009년 우수 특성화전문계고로 선정되는 등 우수학교 표창을 18차례 받았다. 또 산업자원부와 노동부의 지원사업 대상 학교로 15차례 선정됐다.

현재 1000명의 졸업생이 금융권에서 근무하는 중이다. 시중은행 여성 지점장 300명 가운데 108명이 이 학교 출신. 라근주 교감은 “금융계와 산업계에서 서울여상 출신은 능력과 인성을 갖춘 인재로 꼽힌다. 앞으로도 같은 평가를 듣도록 잘 가르치겠다”고 말했다.

이경희 기자 sorimoa@donga.com

▼ 공적 ▼

1926년 ‘경성여자상업학교’라는 이름으로 문을 연 국내 최초의 여성 실업계고등학교. 올해로 개교 85주년을 맞았다. 어려운 가정환경을 딛고 공부하는 인재를 배출한 여성 인재의 산실로, 특히 금융권에서 활약이 두드러진다. 현재 시중은행 여성 지점장 300명 중 108명(36%)이 서울여상 출신이다. 2005년 금융, 국제통상, e비즈니스 3개 분야를 특화했으며 가상은행창구 학습 등 실무 위주의 교육과정을 강화해 특성화고 성공모델로 평가받고 있다. 교육부와 서울시교육청에서 18차례 표창을 받았고 노동부 등에서 사업비를 지원받고 있다.


■ 산업기술 부문­­­- 정범식 씨(호남석유화학 대표이사)

“무척 영광스럽습니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쑥스럽기도 합니다. 석유화학이라는 게 워낙 거대한 사업이라 선후배들이 다 같이 한 일이니까요.”

정범식 호남석유화학 사장(63·사진)은 인촌상 수상의 공을 다른 이들에게 돌리며 “업계에 제일 오래 있었던 내가 대표로 상을 받는 것 같다”고 겸손하게 웃었다.

정 사장이 화학공학을 전공으로 택했던 1960년대 후반에는 석유화학이 지금의 반도체나 나노기술을 능가하는 첨단산업이었다. 그는 “당시 한 신문이 서울 명동을 걷고 있는 한 여성의 사진을 싣고 ‘석유화학이 갑자기 사라지면 (화학섬유로 만든 옷이 사라져) 부끄러운 모습이 될 것’이라며 석유화학의 중요성을 연재하기도 했다”고 회고했다. 정 사장은 “우리 생활 곳곳에서 쓰이는 석유화학은 이론적으로는 단백질 합성을 통한 식량 생산도 가능할 만큼 아직도 중요한 산업이다”라고 강조했다.

40년간 석유화학 한 우물을 판 정 사장은 변변한 기술이 없던 우리나라의 석유화학을 세계적인 수준으로 키우는 데 기여했다. 그는 “1970년대에는 해외에 엄청난 로열티를 주고 공장 운영 기술을 배워야 할 지경이었지만 정부의 중화학공업육성 정책에 힘입어 핵심 기술을 개발하고, 생산시설을 대형화해 우리 기술을 선진국과 대등한 수준으로 끌어올린 것이 보람 있는 일이었다”고 돌아봤다. 정사장이 화학공장설계기술사 자격증을 보유하고, 한국공학한림원 정회원으로 활동할 만큼 이론과 현장에 모두 밝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지난해에는 석유화학 분야 최초로 금탑산업훈장을 받기도 했다.

일이 너무 재미있어서 스트레스가 쌓일 겨를이 없다는 정 사장은 본격적인 글로벌 전략을 세우고 있다. 지난해 말레이시아 타이탄사를 인수한 것을 시작으로 2015년까지 우즈베키스탄에 석유화학단지를 만들고 아프리카 등 신흥시장으로 수출 길을 넓혀 호남석유화학을 2018년 연매출 40조 원, 세계 10위의 석유화학기업으로 키우겠다는 목표다. 그는 “정밀화학과 첨단소재 투자를 늘려 부가가치를 더욱 높이고, 에너지 저장과 같은 신사업에도 공격적으로 나서겠다”고 덧붙였다.

김희균 기자 foryou@donga.com

▼ 공적 ▼

1971년 한국종합화학에 입사해 석유화학 분야에 투신한 이래 불모지나 다름없던 한국의 석유화학 산업을 정상궤도에 올리는 데 기여했다. 고부가가치 석유화학 제품의 국산화 개발을 이끌어 우리나라 석유화학산업이 3대 수출산업으로 자리매김하는 데 큰 공을 세웠다. 서울대 화학공학과를 졸업한 정통 엔지니어이지만 뛰어난 경영 수완을 발휘해 호남석유화학을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시켰다. 2003년 이 회사의 대표이사가 된 이후 대산공장 증설, 말레이시아 타이탄사 인수 등에 성공했고, 고용 창출과 노사문화 선진화에도 앞장섰다.


■ 인문사회문학 부문­­­- 김주영 씨(소설가)
“수상 소식을 듣고 상당히 긴장했습니다. 제가 받기에는 과분한 상이구나 싶었고, 제 자세를 많이 가다듬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3일 서울 중구 장충동 파라다이스문화재단 이사장실에서 만난 소설가 김주영 파라다이스문화재단 이사장(72·사진)은 “인촌기념회 홈페이지에 들어가 역대 수상자들을 살펴보니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말했다.

김 이사장은 황순원, 박두진, 김성한, 박경리, 박재삼, 윤석중, 최일남, 피천득, 김종길 등 역대 수상자 명단을 열거한 뒤 “이분들은 문학의 본령을 추구하고 문학의 위상을 더럽히지 않으려고 일생 동안 애쓰신 분들”이라며 “수상자 면면만 봐도 인촌 선생의 정신과 상의 취지를 알 수 있을 것 같았다”고 말했다.

김 이사장은 서라벌예대를 졸업한 뒤 1972년 ‘휴면기’로 ‘월간문학’을 통해 등단했다. ‘객주’(1981년) ‘천둥소리’(1986년) ‘화척’(1995년) ‘홍어’(1997년) 등의 작품에서 서민들의 삶의 애환과 함께 날카로운 시대 인식을 담아 문학이 갖는 일상적 삶의 진솔함과 가치를 탁월하게 드러냈다는 평을 받았다.

“나이가 들면 열정이 식고, 상상력이 감퇴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이치예요. 젊은 시절에는 방에 엎드려서 하룻밤에 단편 하나를 썼는데 지금은 그렇게 못합니다. 하지만 요즘은 글자 한 자, 문장 한 줄을 다시 생각하는 느림의 미학에 매력을 느끼고 있습니다.”

1989년 심신의 피로를 호소하며 절필했던 김 이사장은 1년여 뒤 동아일보에 ‘야정’을 연재하며 문단에 복귀했다. 그는 “당시 고미석 문학담당 기자(현 동아일보 전문기자)가 끈질기게 설득을 하고 부탁을 해서 복귀를 결심했다. 지나간 일이지만 내 문학의 열정에 다시 불을 댕기는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이 동아일보”라고 말했다.

김 이사장은 “문학이 예술의 중심을 차지하고 있었지만 점차 그 위상을 다른 장르에 넘겨주는 것 같아 아쉽다”면서 “문학의 고고한 정신, 올곧은 정신을 지켜 나가기 위해 계속 노력하겠다”고 다짐했다.

황인찬 기자 hic@donga.com

▼ 공적▼

1972년 등단해 40년 가까이 왕성한 활동을 펼쳐온 한국 문단의 거목. 장대한 스케일의 서사적 장편뿐 아니라 가족과 같은 내밀한 인간관계를 섬세하게 조명하는 데도 탁월해 중후한 서사와 깊은 서정을 모두 아우른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객주’ ‘활빈도’ ‘화척’ ‘야정’ 등 대하역사소설, ‘홍어’ ‘멸치’ ‘빈집’ 등 가족소설을 냈다. 한국소설문학상, 대한민국 문화예술상, 김동리문학상, 은관문화훈장 등을 받았으며 파라다이스문화재단 이사장, 한국문학번역원 이사,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위원 등으로 재직 중이다.

■ 자연과학 부문- 강현배 씨 (인하대 교수)

“인촌상 수상 소식을 듣고 얼떨떨하면서도 고맙다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한편으로는 지금껏 공부만 하던 사람에게 이런 큰 상을 준 것은 우리나라 과학계를 위해 앞으로 큰일을 해달라는 주문이라고 생각하니 부담이 되기도 합니다.”

강현배 인하대 수학과 교수(51·사진)는 ‘역문제(Inverse problem)와 이미징(Imaging)’ 분야에서 세계적인 학자다. ‘역문제와 이미징’은 컴퓨터단층촬영(CT)이나 자기공명영상(MRI) 장치 같은 의료장비 분석·개발과 연관된 분야다. 2008년
강 교수가 미국 유타대 그램 밀턴 교수와 함께 풀어냈던 60년간의 미해결 문제인 ‘포여-세괴 예측’과 ‘에셸비 예측’도 모두 종양 진단의 기본 이론인 ‘편극텐서’라는 수학적 개념과 관련된 문제다. 편극텐서는 물체를 나타내는 모양을 숫자로 바꿔놓은 행렬로, 편극텐서를 알면 물체의 모양을 추정할 수 있다. 강 교수의 연구는 종양의 형태를 더 분명히 파악할 수 있는 이론적 기반을 제공해 줌으로써 의료영상 장비의 오차율을 낮추고, 종양의 조기 진단 확률을 높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강 교수는 수학자들은 연구실 내에 틀어박혀 외부와의 소통이 적다는 일반인들의 편견을 깨는 대표적인 수학자로 연구만큼이나 과학계 외부 활동도 열심이다. 수학계의 꿈이었던 국제수학자대회(ICM) 한국 유치위원으로 활동해 2014년 대회를 서울로 유치하는 데 성공했다. 이후 조직위원회의 집행위원과 학술위원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강 교수는 “1948년
한국수물학회라는 것이 처음 생겨 등록된 수학자가 4명 정도밖에 안 됐던 것을 생각해보면 2014년 ICM 유치에서 볼 수 있듯 우리나라 수학의 수준은 가파르게 성장하고 있다”고 말했다. 강 교수가 최근에 관심을 갖고 연구하는 분야는 의료영상, 광학 등 수학에 기초를 둔 첨단기술이 융합된 분야다.

강 교수는 “수학 연구에 대한 지평이 넓어지고 있는 만큼 깊이 있고 의미 있는 연구로 한국 수학의 위상을 높이겠다”고
말했다.

유용하 동아사이언스 기자 edmondy@donga.com

▼ 공적 ▼

서울대 수학과에서 학부와 석사과정을 졸업한 뒤 미국 매디슨 위스콘신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숭실대 교수, 고려대 교수, 서울대 교수를 거쳐 2008년부터 현재까지 인하대 정석석좌교수로 재직 중이다. 최상위로 평가받는 세계적인 학술지에 100여 편의 논문을 냈고, 미국 수학회와 독일 ‘스프링거’사를 통해 여러 권의 학술서를 내기도 했다. 2000년에는 대한수학회 ‘논문상’, 2006년에는 대한수학회 ‘학술상’, 2010년 ‘한국과학상’을 받았으며, 2008년에는 교육과학기술부 ‘우수연구성과 50선’에 선정됐다.

■ 공공봉사 부문- 김성수 씨(푸르메재단 이사장·‘우리마을’ 촌장)

“신부가 된 것도, 대학총장이 된 것도, 우리마을 촌장이 된 것도 모두 다른 분이 도와준 덕인데…. 사실은 제가 도움을 받고 살았습니다. 혼자 큰 상을 받아도 되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김성수 푸르메재단 이사장이자 우리마을 촌장(81·사진)은 수상소감을 묻자 “부끄럽다”는 말로 대신했다. 되레 장인에게서 물려받은 40년 된 빛바랜 양복이 그의 ‘나눔의 삶’을 대변하고 있었다.

배재중(오늘날의 배재고) 재학 시절 그는 농구와 아이스하키 선수로 활약했다. 건장하던 그가 어느 날 경기 중에 피를 토하며 쓰러졌다. 폐결핵이었다. 변변한 약도 없을 때라 “아이가 죽을 것”이라는 수군거림이 들렸다. 어머니의 지극정성이 그를 살렸다.

10년 만의 완치. 덤으로 얻은 삶이라 생각했다. 봉사로 갚기로 했다. 넉넉한 형편을 죄스러워한 어머니, 걸인을 단 한
번도 내친 적이 없는 어머니…. 나눔의 철학은 어머니에게 배웠다.

늦깎이로 단국대 정치학과에 입학했다. 졸업 후 성공회 보육원에 부임했고, 천직이라 여겼다. 주변에서는 그에게 신부가 어울릴 거라고 했다. 다시 연세대 신학과에 입학했다. 1964년 성공회 신부로 품을 받았다. 1973년 ‘성 베드로 학교’를 설립했다. 지적장애 어린이를 위한 특수 기숙학교였다. 이곳에서 장애인을 위한 삶이 시작됐다.

장애아들이 성장한 후 갈 곳이 없다는 걸 발견했다. 졸업하는 날 아이와 부모들은 울먹였다. 그들이 자립할 수 있는 터전이 필요했다.

1998년 아버지에게서 물려받은 강화도 땅 6600m²(약 2000평)에 콩나물·버섯 재배 공장과 기숙사를 지었다. 지적장애인의 공동체 ‘우리마을’이 탄생한 것이다. 보건복지부가 건립비 20억 원을 지원했다. 지적장애인 50여 명이 오순도순 모여 자립을 준비하고 있다.

그는 성공회대 총장으로 재직하던 2004년 푸르메재단의 이사장직을 맡았다. 강화도와 서울을 오가며 모금 행사를 벌였다. 이듬해 장애인을 위한 ‘푸르메나눔치과’ ‘푸르메한방어린이재활센터’를 건립했고, 요즘에는 장애인 재활병원 건립에 매진하고 있다.

우경임 기자 woohaha@donga.com

▼ 공적▼

47년간 장애인을 위해 헌신해 온 장애인들의 아버지다. 1961년 연세대 신학과를 졸업하고 1964년 성공회 신부로 품을
받았다. 1973년 지적장애 어린이들을 위한 ‘성 베드로’ 특수학교를 세우고 10년간 교장으로 재직했다. 1998년 장애인 자립을 돕기 위해 작업장과 기숙사를 갖춘 생활공동체 ‘우리마을’을 세웠다. 여기서 50여 명의 지적장애인들이 함께 살며 자립을 준비한다. 현재는 푸르메재단 이사장으로 장애인들이 치료비 걱정 없이 재활을 할 수 있도록 병원 건립을 추진 중이다. 이 같은 공로로 1981년 대통령 표창, 2000년 국민훈장 모란장을 받았다.


■ 제25회 인촌상 심사위원


▽교육
△위원장: 이돈희 전 교육부 장관 △위원: 이택휘 한영외고 교장, 김헌규 동국대 명예교수, 권대봉 한국직업능력개발원장

▽산업기술
△위원장: 금동화 전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원장 △위원: 박종용 한국산업기술진흥협회 부회장, 이현순 전 현대자동차 부회장, 이계형 단국대 산학협력 부총장

▽인문사회문학
△위원장:
진덕규 이화여대 학술원장 △위원: 이태진 국사편찬위원장, 이태수 인제대 석좌교수, 홍정선 인하대 인문학부 교수

▽자연과학
△위원장: 백성기 포스텍 총장 △위원: 국양 서울대 물리천문학부 교수, 윤경병 서강대 화학과 교수, 배성한 KAIST 수학과 교수

▽공공봉사
△위원장: 최성재 서울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위원: 양옥경 이화여대 사회복지전문대학원 원장, 전광현 서울신학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박능후 경기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언론출판
△위원장: 정진석 외국어대 명예교수 △위원: 이종석 위암장지연기념회 회장, 이기웅 도서출판 열화당 사장, 양승목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