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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개인 기부 급증하는데… 20세기 규제로 막고 있다

개인 기부 급증하는데… ’20세기 규제’로 막고 있다

2016-05-20

[’40년 규제’ 묶인 공익법인] [2부-7·끝] 전문가들의 진단

– “공익 법인을 감시 대상으로만 봐”
설립 단계부터 운영에 이르기까지 지나치게 까다로운 사전 규제 고집

일반 국민도 현황 훤히 볼 수 있어 뜻맞는 재단끼리 합병, 길 열어줘야

한국에선 장학금 지급이나 빈곤층 지원 같은 공익(公益)사업 목적으로 개인 재산을 기부해 공익법인을 세우려 해도 까다로운 규제 때문에 낭패를 겪는 경우가 많다.

조선일보는 지난달 4일부터 ’40년 규제 묶인 공익법인’ 기획 시리즈를 통해 ▲주식 기부 5% 룰 ▲기본 재산(원금) 사용 금지 ▲농지(農地) 기부 제한 ▲까다로운 법인 설립 허가주의 등 공익법인의 활동을 옥죄는 ‘대못 규제’들을 지적했다. 공익법인에 특정 회사 주식을 5% 넘게 기부하면 세금을 물리는 규정 때문에 재산 200억원을 모교(母校)인 아주대에 기부했다가 215억원의 ‘세금 폭탄’을 맞은 황필상(69) 전 수원교차로 대표의 사연도 이번 시리즈에 소개됐다. 마지막 순서로 이 규제들을 어떻게 풀 것인지에 대한 좌담을 마련했다. 지난 11일 조선일보 본사에서 2시간가량 진행된 이번 좌담회에는 소순무 법무법인 율촌 변호사(공익법인 온율 이사장), 박태규 연세대 경제학부 명예교수, 이청수 관정이종환교육재단 상임고문, 백경학 푸르메재단 상임이사, 박두준 한국가이드스타 사무총장이 참석했다.

―공익법인에 대한 규제 대부분이 1960~1970년대에 만들어졌다.

소순무 그간 한국에서는 대기업 집단이 오너 일가의 지배권을 유지하거나 절세 목적으로 공익법인을 이용한 측면이 있다. 이런 불법·탈법 행위를 막기 위한 상속·증여세법 규정은 이미 재벌들이 상당한 혜택을 누리고 난 다음에야 만들어졌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식으로 만들어진 규제 때문에 대기업과 관련 없는 애꿎은 개인 기부자들이 피해를 보고 있다.

박태규 각종 규제는 기본적으로 공익법인에 대한 ‘불신(不信)’ 때문에 만들어진 것이다. 1980년대 이후 주식 기부를 제한하는 상증세법이 강화된 것도 그 당시 대기업과 총수 일가가 계열 공익법인에 주식을 몰아줘 기업 지배력을 강화하는 수단으로 악용했기 때문이다. 당시 시대 상황에선 필요한 규제였다. 미국의 록펠러나 카네기 재단도 설립 초기엔 세금 회피 수단이라는 비난을 많이 받았다. 하지만 지금은 미국인 가운데 어느 누구도 이 재단들을 설립자 가문의 사유(私有)로 보지 않는다. 사후 관리를 할 수 있는 시스템이 마련됐기 때문이다. 반면 한국은 사후 감독은 거의 하지 않고, 설립 단계부터 운영에 이르기까지 지나치게 까다로운 사전 규제만 고집하고 있다.

―지금은 공익법인 활동을 감시할 안전장치가 충분히 마련됐다고 보나?

이청수 공익법인 규제는 대부분 1990년대 금융실명제나 부동산실명제가 시행되기 전에 만들어졌다. 당시엔 차명이나 가명을 이용한 불법·편법 거래를 막을 수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각종 실명제 법 이외에도 재산 5억원 이상인 재단은 1년에 한 번씩 재무제표 같은 사업 내용을 국세청에 공시하도록 하는 감시 장치가 생겼다. 일반 국민도 인터넷 클릭 한 번이면 공익법인 현황을 훤히 들여다볼 수 있다.

백경학 요즘 한국 사회에선 기부·나눔·봉사가 사회적 화두다. 진심으로 사회 환원을 위해 공익법인을 설립하는 분들이 많다. 하지만 공익법인에 대한 규제는 줄어들지 않고 오히려 늘어난다. 한국 공무원들은 겉으론 규제를 완화한다고 해놓고, 실제론 규제를 더 많이 만들어왔다. 공익법인을 ‘감시 대상’으로 보는 정부의 시각부터 고쳐야 한다.

박두준 우리나라 연간 기부액이 2011년에 11조원을 넘었다. 기업의 기부는 그대로인데, 개인 기부가 지난 20여년간 5배로 늘었다. 돈 있는 개인들의 기부를 촉진하려면 공익법인의 설립 문턱을 낮추고 활동을 촉진하는 식으로 규제를 풀어야 한다.

―200억원의 개인 재산을 재단에 기부했다가 215억원의 세금을 물게 된 황필상 전 수원교차로 대표는 “내 삶은 기부 때문에 망가졌다”고 했다.

소순무 그분 입장에서 보면 정말 “이게 국민을 위해 존재하는 국가(國家)가 맞냐”는 말이 저절로 나올 것이다. 1심은 황씨 손을 들어주었지만, 2심은 국세청에 승소 판결을 내렸다. 대법원은 4년 7개월 동안 재판 일정을 잡지 못할 정도로 이번 판결에 대해 부담을 느끼고 있다. 중요한 것은 이번 사건의 본질이 범죄가 아니라 ‘기부’라는 것이다. 상식이 통하지 않는다면, 우리나라 사법 시스템에 문제가 있는 것이다.

박두준 법도 문제지만, 이를 집행하는 정부도 문제다. 황씨가 수백억원의 주식을 기부하는데 주무 관청이 세금에 대해 어떤 조언도 하지 않다가, 뒤늦게 “세금 걷겠다”고 나서는 우스꽝스러운 일이 벌어진 것이다.

―획일적인 규제 때문에 고생하는 영세 공익법인들을 위해 어떤 대안을 마련할 수 있나.

박태규 기본 재산을 꽁꽁 묶어 놓을 게 아니라 원하는 사업에 쓸 수 있도록 확실하게 보장해야 한다. 원금을 헐어 쓸 수 있는 법안이 국회를 통과한다고 해도 담당 공무원이 허가를 해주지 않으면 말짱 도루묵이기 때문이다.

소순무 기본 재산이 적어 활동 자체가 힘든 재단은 뜻이 맞는 재단끼리 합병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줘야 한다. 지금은 공익법인들끼리 서로 합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정부뿐 아니라 공익법인들도 자체적으로 고쳐야 할 점은 없나.

박두준 사회복지법인은 보건복지부, 장학재단은 교육부식으로 주무 관청이 칸막이식으로 나뉜 상태에서 범정부 차원의 공익법인 개선 대책이 나오는 것을 기대하긴 어렵다. 공익법인들 스스로 모여서 협의체를 만들고 개선 방안에 대한 아이디어를 내서 정부와 협의해야 한다. 지금은 공익법인들이 자기 조직 운영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어서 큰 그림을 보지 못하는 상황이다.

박태규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가 발생했을 때 미국의 여러 유대계 재단이 위험한 금융상품에 투자했다가 큰 손실을 본 적이 있다. 이 같은 실패 사례를 보며 우리나라 공익법인들도 스스로 반성하고 개선할 부분을 찾는 게 필요하다.

백경학 결국 절박한 사람들이 먼저 우물을 팔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 공익법인들은 자기 목소리를 내본 경험도 거의 없고, 공익법인 제도 자체에 대한 전문성도 부족한 상태다. 공익법을 연구하는 전문가 집단과 공익법인들이 협업(協業)하는 것이 필요하다. 스스로 대안을 만들어 언론을 통해 여론을 조성하고, 국회를 상대로 입법을 요구해야 한다.

 

정리=윤형준 기자  사진=성형주 기자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6/05/20/2016052000261.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