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선씨 강연


지난해 8월 미국 보스턴대학으로 유학을 떠난 푸르메재단 홍보대사 이지선씨가 화상 수술을 받기위해 1년만에 잠깐 귀국했습니다. 8월 19일 종로 옥토버훼스트에서 밝고 건강한 모습으로 강연을 했습니다.

이지선씨는 2000년 음주운전 차량에 의한 교통사고 화재로 몸의 55%가 화상당하는 불행을 당했지만, 이후 재활치료를 통해 이를 극복하고 제2의 삶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인생의 쓴 맛’을 보았지만 누구보다 ‘인생을 맛있게’ 살아가고 있는 사람입니다.



아래는 강연내용입니다.


2004년 공부해야겠다고 생각하고 미국에서 1년동안 어학연수를 했습니다.

국내에서 GRE시험을 본 뒤 성적표와 입학신청서를 보냈더니 2005년 9월 입학허가가 떨어져서 미국 유학생활을 시작했습니다. 첫 강의에 들어가 보니까 교수가 6명인데 반해 학생은 3명에 불과해 정말 물 반 고기반의 분위기에서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언어도 부족하고 강의 시간에 너무 걱정이 되서 자기소개도 떠듬떠듬했습니다.

대학원 수업을 들으며 상담을 통한 인턴과정을 해야하기 때문에 머리에 쥐가 날 정도였습니다.

질문하고 답해야 하는데 너무 긴장이 돼서 말을 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보스턴으로 유학갈 때는 보스터 시내도 너무 고풍스럽고 멋있는 광경만 보였는데 공부를 하면서,

더 이상 여행객이나 어학연수생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교수님이 나를 ‘한국에서 책을 두 권이나 썼고 유명하다’고 칭찬해주셨는데,

나는 “학문적인 책도 아니고 별것 아니다”라고 말하자 그 뒤 교수님이 관심을 보이지 않아서 너무 슬퍼 울었습니다.

이번에 가면 책도 많이 자랑하고 인턴십도 잘 할 것입니다. 내가 공부하는 재활상담은 미국에서는 국가뿐 아니라 주정부, 민간에서도 많이 운영하고 있습니다. 내가 실습 하는 곳도 매사추세츠 주정부가 운영하는 곳으로 장애인들이 많이 와서

어떤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지 상담하고 있습니다.



장애인들에게 학비와 교통비, 직장까지도 서비스해주고 지원하는 곳입니다.

실습이 바로 직장 내 사회생활이기 때문에 자주 혼나고 있고 내 스스로 사랑스럽지도 않고 행복하지도 않았습니다.

여기처럼 반겨주는 사람도 없고 능력이나 업무 면에서도 떨어졌기 때문입니다. 유학생활을 너무 몰랐다는 생각이 듭니다. 재활상담을 전공하면서 연극영화를 복수전공하고 있는데 그것은 바로 알아듣는 척 연기를 해야 하는 것 입니다.

잘 알아듣지 못하지만 시험도 잘 치르고 성적도 좋게 나와 다행입니다. 열심히 하면 인정받을 수 있는 사회인 것 같습니다. 언어가 또 하나의 장애가 되었지만 상도 받고 울기도 많이 울었습니다. 슬프기도 했지만 울고 나면 두려움이 없어지더군요. 유학중에 재미있었던 일은 시카고 화이트 삭스(White Sox)의 이만수 코치와 만난 것이었습니다.



내 홈페이지에 들어와 격려도 해주고 시카고와 보스턴 경기가 있을 때 연락을 해서 만나게 됐습니다.

그런데 시카고 화이트 삭스와 보스턴 레드 삭스(Red Sox)의 경기를 보는 행운을 가졌습니다. 우리로 치면 플레이오프 같이 중요한 경기였습니다. 보스턴 사람들은 야구라면 모두 미치고 보스턴이 미국 내에서도 야구에 열광하는 도시입니다.

이만수 코치가 선물한 입장권은 바로 포수 뒤 자리에서 경기장을 한눈에 바라볼 수 있는 자리였는데,

99%가 보스턴의 레드 삭스를 응원하고 있었습니다.

6회 노아웃 만루, 투 스트라이크 쓰리 볼에서 시카고 화이트 삭스의 투수가 공을 던져야 하는 긴박한 상황이었습니다.


경기장내 모든 관중은 "Let's go Res Sox"를 외치자 투수가 너무 불쌍해서 내가 눈물이 날 것 같았습니다.

공을 던져 승부를 내야 하는 상황에서 투수는 평정심을 잃지 않고 스트라이크를 던져서 삼진아웃을 시켰습니다.

그 것을 보면서 나도 평정심을 잃지 않아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유학생으로 내가 얼마나 약하고 보잘 것이 없는 지 바닥까지 낮아진 것 같습니다. 인생 공부가 중요하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동안 고생하며 살았는데 나만을 위해 편하게 살아갈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하지만 병원에서 느낀 것은 더불어 사는 것의 중요성이었고 사고로 죽을 뻔 하다 살아난 뒤 나는 덤으로 사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생명을 다해 도움을 줘야 하고 나를 위해 잘 먹고 잘 사는 공부는 하지 않겠습니다.

공부를 한 뒤 누군가를 위해 사용할 것입니다.



다음은 일문일답.



  • 유학중 행복했던 기억은.

     친구들과 사귀면서 같이 격려하고 기도했던 일이 기억납니다.

    나는 칭찬을 받으면 힘이 나는 스타일이다. 교수님 칭찬을 받았던 일이 행복합니다.



  • 애인이 있습니까.

    ▼ 불행히 중학교는 공학이었지만 여자 9반, 남자 6반이었습니다. 여중이나 마찬가지지요.

    이후 여고와 여대를 다녔고 유학을 온 뒤에도 여학생은 2명에 불과했습니다.

    남자 복이 없지요. 그곳 교회도 완전히 여탕입니다.

  • 미국에서 장애인 정책이 다른 점이 있다면.

    ▼ 장애인 법률이 있고 어디서건 차별을 금지하는 제도를 갖고 있습니다. 장애가 있거나 과거에 있었거나 앞으로 장애를 가질 것이라고 생각되어지는 사람에 대해서는 직장 내 차별을 금지하고 있습니다. 장애인을 과거에는 the disabled라고 불렀는데 이제는 Individual disaster로 불리웁니다. 장애인하면 모든 것에서 장애를 갖고 있는 것처럼 생각하는 것에서 인식이 바뀌고 있습니다.

  • 홈페이지에 소식이 안 올라와서 궁금합니다. 졸업후 계획은.

    ▼ 현재 신도 나지 않고 행복하지도 않습니다. 자유롭지도 않은 것 같습니다. 일단 미국에서 재활과 관련된 일을 하고 싶고 필요하다면 박사과정도 공부하고 싶습니다. 최근 한 분이 박사를 하면 시집가기 힘들다고 해서 고민입니다.

    내게 맡겨진 사명이 구체적으로는 모르지만 한국에 와서 배운 것을 실천하면서 살고 싶습니다.

  • 지난번 홈페이지에 마음의 감기가 걸렸다고 표현했는데 다 나았습니까.

    ▼ 많이 나았습니다.

  • 다음책은 언제 나옵니까.

    ▼ 모르겠습니다. 때가 되면 나올 것입니다. 계획하고 쓰고 싶지 않습니다.

  • 외국인 친구는 많이 사귀었습니까.

    ▼ 2명이 있는데 1명과는 어울리지 않게 됐습니다. 필리핀 친구였는데 시험 때 녹음한 테이프도 빌려주고 잘해줬는데 시험 성적이 자신과 같게 나오자 태도가 변해 안도와주더군요. 한국에서는 재미있게 말할 수 있어서 좋았는데 미국에서는 말을 못해 말을 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미국으로 다시 돌아가면 재미있게 생활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이날 강연은 푸르메재단 후원회원과 이지선씨를 사랑하는 분 50여명이 모여서 지선씨의 강연을 경청했습니다.

먼저 푸르메재단 대표이신 강지원 변호사님께서 인사말씀을 해주셨고,

강연이 끝난 뒤에는 장애인자립센터 <프랜드케어> 박정자 대표의,구연우(중3), 동훈(중2) 형제 <헝거리 댄스>, 미국 동요<숲속의 봄>,<나비야>, <진주조개잡이> 등을 하모니카로 연주해 큰 박수를 받았습니다.


 



8월초 대만에서 열린 국제하모니카대회에 참가한 동훈이와 연우는 개인부분 22등과 29등을 차지했고,

듀엣에서는 17등을 했습니다.

실력을 갈고 닦아서 내년에는 10등 안에서 들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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