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섯 살 아이가 처음으로 부른 ‘엄마’

푸르메재단·하나금융나눔재단의 지원으로 달라진 정하의 성장 이야기


“짧은 단어라도 아이가 말할 수 있다는 게 얼마나 좋은지 몰라요. 오늘 병원 오기 전에도 점토로 만든 신발을 제게 보여주면서 ‘신발, 신발’이라고 하더라고요. 그런 변화 하나 하나가 정말 고마워요. 발음도 아직 부정확하고 다른 아이들에겐 별것 아닌 일이겠지만, 저는 그 한마디를 듣기까지 정말 오래 걸렸거든요.”


정하(가명・7)는 생후 12개월이 지나도록 울기만 할 뿐, 말소리를 내지 않았습니다. 생후 15개월이 돼서야 겨우 서고, 한참 뒤에야 한 걸음을 내디뎠지요. 그 무렵 남편과 이혼 절차를 밟으며, 아이와 함께 친정에 몸을 의탁했던 엄마 이유리(40) 씨는 이상을 감지하지 못했습니다. 아이의 발달단계나 육아에 대해 잘 몰랐기 때문입니다. 몇 달 뒤 코로나19 팬데믹이 터지면서 상황은 더 나빠졌습니다. 어린이집에도 보내지 못했고, 혹시나 아이가 잘못될까 봐 외출 한 번 하지 않았습니다. 단둘이 집안에서만 지낸 몇 달의 시간, 아이가 전혀 말을 하지 않았고 유리 씨도 말을 걸지 않았기에 집안은 적막하기만 했지요. 그때도 유리 씨는 ‘말은 때 되면 하겠지’라고만 생각했습니다. 그게 잘못이었다는 걸 나중에야 알았지요.


“아이에게 말을 걸어야 한다는 것도, 함께 놀아줘야 한다는 것도 전혀 몰랐어요. 그냥 ‘잘 먹이고 잘 재우면 알아서 잘 크겠지’라고 생각했습니다.”


엄마 이유리 씨엄마 이유리 씨


그러던 어느 날, 키즈카페에서 놀던 정하가 계단에서 굴러떨어지면서 테이블 모서리에 광대뼈를 부딪쳤습니다. 얼굴에 시퍼렇게 멍이 들었는데도 정하는 ‘아야!’ 소리조차 내지 않았습니다. 무언가 이상함을 느낀 유리 씨는 주위 사람들의 조언을 받아 병원을 찾았습니다. 병원에서 받은 진단은 자폐스펙트럼 장애와 심한 언어 장애. 정하가 세 살 될 무렵이었습니다. 유리 씨는 “이 모든 상황이 내 탓인 것만 같아 마음이 아팠다”고 말합니다.


“병원에서 검사받을 때 ‘아이 교육이나 놀이는 어떻게 했느냐’고 묻기에, ‘아무것도 안 했다’고 답하니 놀라시더라고요. ‘아이는 알아서 크는 것 아닌가요?’ 하고 되물을 정도로, 저는 아무것도 모르는 엄마였어요. 시간을 돌릴 수 있다면, 아이와 둘이 집에만 있던 시간에 밥 먹이고 TV만 틀어줬던 때를 바꾸고 싶어요. 아이에게 자주 말 걸고, 같이 놀면서 교감을 많이 하고 싶어요.”


재활치료 후 기적처럼 말하기 시작한 정하


푸르메재단 넥슨어린이재활병원에서 작업치료를 받는 정하
푸르메재단 넥슨어린이재활병원에서 작업치료를 받는 정하


그때부터 긴 재활치료가 시작됐습니다. 유리 씨는 생계와 양육, 치료까지 혼자 책임져야 했지요. 정수기 필터 교체 등의 일을 하며 생계를 이어왔지만, 건강이 나빠지면서도 그마저도 힘든 상황이 되었습니다. 기초생활수급비와 이따금 들어오는 양육비로 생활하는 상황에서 월 80만 원이 넘는 재활치료는 엄두도 내기 어려웠습니다. 그래도 아이가 나아지길 바라며 한 줄기 희망을 품고 푸르메재단 넥슨어린이재활병원을 찾았습니다. 다행히 병원 사회사업팀의 도움으로 재활치료비 지원을 받으면서 낮병동 및 물리, 작업, 연하, 언어, 스누젤렌, 감각통합, 인지 치료 등을 받았습니다. 현재는 하나금융나눔재단의 지원을 받아 주 1회 작업치료와 주 2회 ABA 치료를 받고 있습니다.


“제가 병원 사회사업팀에 ‘대출을 받아서도 치료해야 할까요’라고 물었을 때, ‘그건 위험하다’며 만류하셨어요. 그리고 지원받을 방법을 같이 찾아주셨죠. 지원이 끊기면 치료도 멈출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지만, 푸르메재단과 하나금융나눔재단의 재활치료비 지원사업에 선정되며 다시 희망이 생겼습니다.”


재활치료를 시작한 후 정하에게 나타난 변화는 유리 씨에게 ‘기적’과 같습니다. 신변을 가릴 줄 알게 되고, 혼자 신발을 신는 것 같은 작은 변화도 그저 고맙기만 합니다. 그중 가장 기쁜 일은 드디어 아이의 말문이 트인 것입니다. “푸르메어린이재활병원에서 꾸준히 치료받으면서 1년 전쯤부터 말하기 시작했어요. ‘엄마’라고 하거나 좋아하는 캐릭터 이름(‘뽀로로’, ‘패티’, ‘루피’ 등)도 부르게 됐지요. 알아듣는 말도 점차 많아지고, 수행(들은 대로 행동하는 것)도 잘 되고요. 예전엔 어디가 아파도 전혀 말을 안 했는데, 지금은 아프거나 다치면 ‘아파, 아파’라고 말해주니까 참 고마워요.”



“치료 후 10분의 상담, 엄마에게 가장 필요한 시간”


재활치료를 하면서 정하는 글자에 강한 흥미를 보였습니다. 영상 자막을 보거나 낱말 퍼즐 놀이를 즐기며 글자에 대한 이해도 빨랐습니다. 유리 씨는 “한글을 가르친 적이 없는데 어느 날 보니 글자를 다 알고 있더라”고 했습니다. 아이의 관심을 알게 된 그는 집에서도 글자 놀이를 자주 하며 흥미를 높여주었습니다.


그 덕분일까요. 지난 3월 특수학교에 입학한 정하는 담임선생님에게 ‘배우고자 하는 열정이 큰 아이’, ‘무엇이든 적극적으로 해보려는 아이’, ‘글을 읽고 쓰는 것에 관심이 많은 아이’라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 말은 오랜 시간 불안 속에서 아이를 키워온 엄마 유리 씨에게 큰 위로가 되었습니다. 그는 “푸르메재단과 하나금융나눔재단의 지원이 없었다면, 치료도 받지 못했을 테고 정하는 영영 말을 못 했을지도 모른다”며 “장애가 있어도 가정에서 아이를 포기하지 않는 이상은 지속적인 치료 지원과 상담이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40분 치료 후에 10분간 엄마가 상담을 받아요. 짧게만 보이는 10분 상담이 제게는 정말 중요한 시간이에요. 치료사 선생님이 집에서도 치료를 이어갈 방법을 알려주시고, 일상에서 아이가 문제행동이나 돌발행동을 할 때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도 알려주시거든요. 사실 장애어린이에게는 먹고 씻고 자는 모든 일상이 재활인데, 엄마가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치료실에만 들여보내면 하루 중 40분만 재활하고 나머지 시간은 버리는 거예요. 그래서 치료 못지않게 상담이 중요합니다. 아이와 가족이 포기하지 않도록 치료비 지원은 계속돼야 한다고 생각해요. 모든 아이에게는 무한한 가능성이 있는데, 치료받지 못하면 발전할 기회도 없어지니까요.”


유리 씨의 바람은 크지 않습니다. 정하가 아픈 곳 없이 건강하게 자라는 것, 더 많은 사람과 소통하며 자기만의 속도로 잘 성장하길 바랍니다. “치료사 선생님과 학교 선생님이 알려주시는 것을 잘 흡수해서 다른 사람들과 어울려 살아갈 수 있는 어른으로 자라면 좋겠습니다.”


치료 후 치료사 선생님과 눈을 맞추며 인사하는 정하치료 후 치료사 선생님과 눈을 맞추며 인사하는 정하


말하지 못하던 정하는 이제는 자기 마음을 말로 표현하게 되었고, 배움을 즐기고 사람들과 눈을 맞추며 세상과 연결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변화는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 ‘기적’이 아닙니다. 매일의 치료, 매일의 응원, 그리고 엄마 유리 씨가 포기하지 않도록 손 내밀어준 푸르메재단과 하나금융나눔재단의 꾸준한 지원이 함께 만든 성장입니다. 정하는 이제 자신의 이야기를 조금씩 세상에 들려주고 있습니다. 정하의 작은 목소리가 큰 울림이 되어 많은 희망의 문을 두드릴 수 있도록 푸르메재단과 하나금융나눔재단이 계속 함께하겠습니다.


글・사진=오선영 부장(마케팅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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