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 위한 보조기구부터 취업까지 원스톱 지원

<장애인 복지, 캐나다에서 길을 찾다>
장애인이 ‘보통의 삶’을 누릴 수 있는 사회, 어떻게 가능할까. 올해 창립 20주년을 맞은 푸르메재단 조사단이 그 실마리를 찾아 장애인 복지 선진국 캐나다로 떠났다. 장애인의 노후를 위해 국가가 함께 저축하는 세계 유일의 장애인 적금(RDSP) 제도, 돌봄 제공자와 집을 공유하며 새로운 가족을 형성하는 홈쉐어 제도, 발달장애인을 위한 사회통합형 임대주택 ‘코러스 아파트’ 등 캐나다의 복지 현장을 살펴보고, 진정한 장애인 복지 선진국을 향한 이정표를 제시한다.




<7편>
장애인 위한 보조기구부터 취업까지 원스톱 지원
장애인과 비장애인, 사회 연결하는 ‘닐 스퀘어 소사이어티’


“새 보청기를 받은 지 한 달 만에 청력이 크게 좋아졌어요. 환자, 의사, 간호사, 그리고 주변 직원들과의 대화를 알아들을 수 있게 되었고, 매번 다른 사람에게 다시 말해달라고 부탁할 필요도 없어졌어요. 덕분에 활력이 넘치고 하루가 훨씬 더 즐거워졌어요.”


캐나다의 한 의료기관에서 일하는 브렌다(Brenda) 씨는 난청 때문에 오랫동안 업무에 어려움을 겪었다. 그러던 중 닐 스퀘어 소사이어티(Neil Squire Society・이하 ‘닐 스퀘어’)를 통해 새 보청기를 지원받으면서 업무 능력이 크게 향상됐다. 닐 스퀘어는 WorkBC(고용을 지원하는 캐나다 정부 기관)와 함께 취업한 장애인에게 보조 기술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지난해 1,784명의 취업 장애인과 (장애인을 채용한) 1,017명의 고용주에게 보조기구와 기술 서비스, 임금 보조금를 지원했다.


닐 스퀘어의 보조공학자가 장애인을 위한 IT 보조기구(특수 키보드와 마우스 등)를 설명하고 있다.
닐 스퀘어의 보조공학자가 장애인을 위한 IT 보조기구(특수 키보드와 마우스 등)를 설명하고 있다.


보조기구 통해 장애인의 완전한 사회 참여 지원


한번 생각해 보라. 문을 열고 싶은데 내 손으로 문고리를 돌릴 수 없다면? 글씨를 쓰고 싶어도 연필을 잡을 수 없다면? 인터넷으로 원하는 정보를 찾고 싶은데 키보드를 칠 수 없다면? 장애인에게 보조기구는 일상생활을 돕는 필수 도구다. 흔히 보는 휠체어나 보청기, 지팡이 같은 보행 보조기구부터 입술・안구 마우스처럼 IT기기 활용을 돕는 보조기구까지 종류도 매우 다양하다. 보조기구는 단순히 생활의 불편을 해소하는 것만이 아니라 사회 인프라에 대한 장애인의 ‘접근성’을 높이는 중요한 도구다.


캐나다 브리티시콜롬비아주(州) 버나비시(市)에 있는 닐 스퀘어 본사. 이곳은 보조 기술(Assistive Technology) 개발을 통해 장애인이 일상생활에서 겪는 불편을 없애고 장애인의 완전한 사회 참여를 지원하고자 1984년 만들어진 비영리단체다. 4개 권역(Western, Prairie, Central, Atlantic)에 17곳의 사무실을 운영하며, 직원 100여 명이 캐나다 전역의 장애인을 지원한다.


닐 스퀘어의 출발은 푸르메재단과도 닮았다. 푸르메재단은 백경학 상임대표 가족이 영국에서 교통사고를 당하고 부인 황혜경 씨가 한쪽 다리를 잃은 일을 계기로 설립되었다. 닐 스퀘어는 1980년 대학생이자 농구선수였던 닐 스퀘어(Neil Squire)라는 스무 살 청년이 불의의 사고로 사지마비가 되면서 시작되었다. 세상과 소통할 길을 잃은 그를 위해 발명가인 친척 빌 카메론(Bill Cameron)이 호흡하는 입김으로 모스 부호를 입력해 글을 쓸 수 있는 ‘sip-and-puff’ 장치를 만들었다. 이것이 닐 스퀘어의 시작이며, 지금까지 유지해 온 정체성이다.


푸르메재단 조사단이 방문했을 때도 닐 스퀘어는 특수 마우스 등의 보조기구에 대해 가장 먼저 설명했다. 커뮤니케이션 디렉터 수잔 빈스(Suzanne Wiens) 씨는 “보조 기술과 인체공학, 전문 의료 팀의 협업으로 장애인 개개인의 요구에 맞는 가장 효과적인 보조기구와 서비스를 제공한다”며 “장애인이 직장이나 가정, 학교 등 다양한 환경에 적응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고 설명했다. 지난 한 해 닐 스퀘어가 장애인은 총 1만2,000여 명에 달한다.


입술마우스를 활용한 컴퓨터 사용 모습입술마우스를 활용한 컴퓨터 사용 모습


닐 스퀘어는 장애인이 컴퓨터를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다방면으로 지원한다. 개인 또는 기업으로부터 기부받은 중고 컴퓨터를 수리・개조하여 장애인에게 지원하거나 교육한다. 이는 취업을 희망하는 장애인에게 매우 중요한 지원이다. 또 이동이 불편한 장애인을 배려해 가상교실을 통한 무료 튜터링도 제공한다. 이를 신청한 장애인은 일주일에 최대 2시간씩 집에서 컴퓨터, 태블릿, 스마트폰 사용법은 물론 장애인을 위해 개발된 화면 판독기(JAWS), 화면 확대(ZoomText), 받아쓰기(Dragon)와 같은 보조 기술 프로그램 활용법을 배울 수 있다. 닐 스퀘어 측은 “1:1 튜터는 전문 지식을 갖춘 자원봉사자가 맡는 경우가 많아 장애인과 비장애인을 연결하는 고리가 되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장애인 취업 직접 지원, 고용주에게는 임금 보조금도 지급


닐 스퀘어는 단순한 보조기구 지원을 넘어 장애인의 취업 및 고용을 직접 지원한다. 대표적으로 CEO(Creative employment options)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면접을 포함한 구직 과정 전체를 돕는다. 고용주와도 협력해 (장애인 고용에 관한) 교육이나 워크숍을 진행하고, 정부 지원을 받아 임금 보조금도 지급한다. 장애인 고용 시 수습 3개월(최대 6개월)간 임금 100%를 지원한다. 닐 스퀘어와 구직자, 고용주의 3자 협력이 활발히 이루어지고, WorkBC와 같은 정부 기관이 비용을 뒷받침하기에 가능한 구조다. ‘민관협력’의 대표적인 모델이라 할 수 있다. 닐 스퀘어 측은 “지난해 460명이 CEO 프로그램에 참여해 155명이 취업(혹은 창업) 성과를 거뒀고, 128명의 고용주가 임금 보조 혜택을 받았다”고 설명했다.


장애 청소년을 위한 취업 프로그램(Empower 3D)도 함께 운영한다. 취업을 위한 사전 훈련을 제공하는데, 훈련 내용이 전자기기와 목재 등을 다루는 데 집중돼 있다. 1그룹당 4명씩, 10개 그룹이 14주간 교육을 받는다. 취업 후에도 12주간 추가 교육을 제공한다. 앞서 방문했던 캐나다의 장애인 관련 기관들에서 주로 호텔이나 병원, 식당 등 서비스 직종의 취업을 지원했던 것과 다르게 더 전문적이고 양질의 기술을 갖출 수 있게 한다는 점에서 차별화됐다.


시민 참여형 사업 통해 장애인과 비장애인 연결


저스틴 페진 씨가 푸르메재단 조사단에게 메이커스 메이킹 체인지 플랫폼을 보여주고 있다.
저스틴 페진 씨가 푸르메재단 조사단에게 메이커스 메이킹 체인지 플랫폼을 보여주고 있다.


닐 스퀘어에서 가장 흥미로운 사업은 시민 참여 기반의 오픈 소스 플랫폼 ‘메이커스 메이킹 체인지(Makers Making Change)’였다. 닐 스퀘어가 개설한 플랫폼에 필요한 보조기구를 올리면, 이를 제작할 수 있는 기술과 재능을 가진 메이커(자원봉사자)들이 직접 만들어 주는 사업이다. 다른 사람들이 자유롭게 보조기구를 만들어 사용할 수 있도록 설계도도 공개한다. 장애 어린이들이 편하게 가지고 놀 수 있도록 시중의 장난감을 개조하는 일도 한다. 이 프로그램을 총괄하는 저스틴 페진(Justin Pezzin) 씨는 “오픈소스를 통해 시민의 활발한 참여를 유도한다”며 “지난해에는 1만455명의 자원봉사자가 5,827개의 보조기구를 제작해 장애인에게 전달했다”고 설명했다.


저스틴 페진 씨가 푸르메재단 조사단에게 메이커스 메이킹 체인지 플랫폼을 보여주고 있다.
메이커스 메이킹 체인지를 통해 제작된 보조기구. 연필을 쥘 수 없는 장애인의 요청으로 제작됐다.


기술이 발달하면서 최근 더욱 편리하고 효율적인 보조기구들이 개발되고 있다. 우리나라 역시 우수한 품질의 보조기구를 제작하거나 도입하여 보급하는 데 많은 노력을 기울인다. 닐 스퀘어를 돌아보면서 우리와 이들의 차이점은 ‘연결’에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단순한 보조기구 지원을 넘어 장애인과 세상을 어떻게 연결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 장애인 지원 서비스가 점차 개별화하는 지금, 개개인의 필요에 맞춘 독창적인 보조기구를 어떻게 지원할 것인가도 함께 고민해야 한다. 푸르메재단은 서울시의 2개 보조기기센터(서울시서북보조기기센터, 서울시동남보조기기센터)를 위탁 운영하고 있기에 새로운 시도를 위한 동력을 모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특히 시민 참여를 적극적으로 유도하는 ‘메이커스 메이킹 체인지’는 국내에도 쉽게 적용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실제로 국립재활원에서 이와 유사한 시도(‘보조기기 열린플랫폼’ 사업)를 한 적이 있다.


장애인이 더 존중받고 자유롭게 활동하는 포용적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 무엇이 가장 중요할까. 필요한 것은 많겠지만, 우선적으로 장애인에게 공정한 ‘기회’와 ‘접근성’을 보장해야 한다. 보조기구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효과적인 보조기구의 개발과 지원을 고민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글=도동균 푸르메재단 기업협력팀 과장
사진=푸르메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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