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이 원하는 예술활동을 평생 마음껏 이어가는 곳

<장애인 복지, 캐나다에서 길을 찾다>
장애인이 ‘보통의 삶’을 누릴 수 있는 사회, 어떻게 가능할까. 올해 창립 20주년을 맞은 푸르메재단 조사단이 그 실마리를 찾아 장애인 복지 선진국 캐나다로 떠났다. 장애인의 노후를 위해 국가가 함께 저축하는 세계 유일의 장애인 적금(RDSP) 제도, 돌봄 제공자와 집을 공유하며 새로운 가족을 형성하는 홈쉐어 제도, 발달장애인을 위한 사회통합형 임대주택 ‘코러스 아파트’ 등 캐나다의 복지 현장을 살펴보고, 진정한 장애인 복지 선진국을 향한 이정표를 제시한다.




<6편>
장애인이 원하는 예술활동을 평생 마음껏 이어가는 곳
캐나다 비쿠냐 아트 스튜디오


캐나다 브리티시콜럼비아주(州) 메이플리지시(市)에 자리한 비쿠냐 아트 스튜디오(Vicuña Art Studio). 스튜디오 안에 들어서자 색색의 화구와 다양한 기법으로 그려진 그림, 도예작품들이 시야를 가득 메운다. 그 사이에서 청년부터 중장년까지 다양한 나이대의 사람들이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각자의 작품에 몰두하고 있었다. 스튜디오 벽에 걸린 ‘When you enter the studio, you enter the freedom of art’라는 글귀가 너무나도 잘 어울리는 풍경이었다.


비쿠냐 아트 스튜디오 모습비쿠냐 아트 스튜디오 모습


예술이 생계의 수단을 넘어, 한 인간의 삶을 풍요롭게 하고, 사회와 깊이 연결되는 매개가 될 수 있다면 어떨까? 캐나다 ‘비쿠냐 아트 스튜디오’는 바로 그 질문에 대한 해답을 보여주는 곳이었다. 푸르메재단 조사단은 이곳을 통해 성과의 압박에서 벗어나, 창작의 과정 자체를 존중하고 한 사람의 성장과 자기표현에 온전히 집중하는 지원이 어떤 힘을 지니는지 직접 확인할 수 있었다.


포용과 존중에서 피어나는 예술


비쿠냐 아트 스튜디오는 발달장애를 가진 예술가들에게 재능을 펼칠 환경을 제공하는 비영리기관이다. 창의적인 작품 활동을 할 수 있는 공간은 물론 발달장애인 예술가들이 자신의 기술을 개발할 수 있도록 전문적인 미술교육을 실시하며, 캔버스, 페인트, 붓, 점토 등의 미술용품도 아낌없이 지원한다. 이곳의 특징은 장애인 예술가가 일자리를 얻는 것만을 목표로 삼지 않는다는 것. 예술을 통해 자신감을 키우고, 의사소통 능력을 높이며, 자존감을 북돋우는 통합적 성장 과정을 소중히 여긴다. 여기서 예술은 단순한 취미나 기술이 아니라, 각자의 다름을 인정하고 그로써 사회를 풍요롭게 만드는 포용의 언어다.


푸르메재단 조사단에게 비쿠나 아트 스튜디오를 설명하는 마리아 달리 씨푸르메재단 조사단에게 비쿠나 아트 스튜디오를 설명하는 마리아 달리 씨


이 스튜디오는 2008년 그래픽 디자이너였던 마리아 달리(Maria Daley) 씨가 장애인의 재능과 창작활동에 관심을 가지면서 시작되었다. 현재는 지역사회의 장애인 지원 기관인 ‘릿지 메도우 커뮤니티 생활 협회(Ridge Meadows Association for Community Living・RMACL)’가 운영하는 7개 주간 프로그램 중 하나로, 60여 명의 장애인 예술가와 함께하고 있다. 스튜디오 설립자인 달리 씨는 “재능은 소수에게만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끝없는 노력과 관찰, 반복을 통해 얻어지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이러한 달리 씨의 생각은 모든 참여자의 잠재력을 신뢰하고, 각자가 자신만의 속도로 성장할 수 있도록 묵묵히 지지하는 토대가 되었다.


비쿠냐 스튜디오의 포용적 지원은 구체적인 사례에서도 드러난다. 스튜디오에 오기를 주저하던 린제이 앤더슨(Lindsay Andersen・1979~2024) 씨를 세심하게 관찰하던 직원은 그가 손 떨림을 부끄러워한다는 점을 알아차렸다. 직원은 앤더슨 씨에게 “우린 모두 언젠가는 몸 어딘가를 떨게 된다”며 “우리 함께 손을 떨어보는 건 어때요?”라고 제안했다. 약점을 고치려 들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며 함께하겠다는 직원의 말은 앤더슨 씨의 두려움을 녹였다. 그리고 앤더슨 씨의 손 떨림은 세상에 하나뿐인 독특한 화풍으로 승화했다.


Lindsay Andersen, ‘Namaste’, Acrylic on CanvasLindsay Andersen, ‘Namaste’, Acrylic on Canvas


비쿠냐 아트 스튜디오의 디렉터인 단하 리(Dhanha Lee) 씨는 “이곳에서는 강사가 일방적으로 무엇을 가르치지 않는다”며 “작가가 무엇을 원하는지 먼저 묻고 함께 탐구하는 동반자 역할을 한다”고 설명했다. 타인의 작품을 모방하고 싶어 하는 이에게는 다양한 자료를 보여주되, 자기만의 스타일을 찾을 때까지 기다려준다. 이러한 포용적 태도는 장애인 예술가들이 두려움 없이 자기 자신을 드러내고, 세상과 소통할 수 있는 용기를 준다.


평생의 연대, 사회와의 연결


비쿠냐 아트 스튜디오는 나이나 기간에 구애받지 않고, 평생 예술 활동을 이어갈 수 있는 기반을 제공한다. 장애인을 위한 대부분의 지원 서비스가 특정 연령대나 기간에 집중되는 것과 달리, 이곳은 누구나 자신의 속도와 방식으로 창작을 이어갈 수 있다. 예술가들은 시간에 구애 받지 않고 자신만의 세계를 깊이 탐구하며, 그 과정에서 진정한 자기표현의 기쁨을 맛본다.



비쿠냐 아트 스튜디오의 장애인 예술가가 작업 중인 자신의 작품을 보여주고 있다.


또한 이곳은 ‘고용’이 주목적은 아니지만, 장애인 예술가의 경제적 자립을 지원하기 위한 노력도 계속하고 있다. 연 3회 전시회를 통해 작품을 판매하는데, 판매 수익의 60%는 작가에게 돌아간다. 나머지 40%는 재료비 등 스튜디오 운영비로 쓰인다. 이는 예술가들에게 성취감과 동기를 부여하는 중요한 요소다. 푸르메재단 조사단이 방문했을 때도 스튜디오 내 전시공간에 100여 점의 작품이 전시돼 있었다.


스튜디오의 활동은 울타리 안에 머물지 않는다. 일례로 지역 내 카페인 ‘Once Upon a Tea Leaf’와 협력해 작가들의 그림으로 크리스마스 선물 세트 포장 디자인을 진행했는데, 이 상품은 빠르게 품절될 정도로 큰 호응을 얻었다. 작가들의 그림이 지역 유명 카페의 상품이 되어 사람들의 일상으로 들어가면서 발달장애인의 삶과 예술이 지역사회와 따뜻하게 연결됐다.


지역 내 카페인 ‘Once Upon a Tea Leaf’와 협업한 차 선물 세트
지역 내 카페인 ‘Once Upon a Tea Leaf’와 협업한 차 선물 세트


비쿠냐 아트 스튜디오 방문을 통해 푸르메재단 조사단은 ‘고용’과 ‘자립’이라는 성과 중심의 목표에서 벗어나, 한 인간의 ‘자기표현’과 ‘성장’ 그 자체에 집중하는 지원이 얼마나 큰 힘을 갖는지 느낄 수 있었다. 이곳은 단순히 그림 그리는 기술을 가르치는 곳이 아니라, 예술을 매개로 서로의 다름을 존중하고, 삶의 기쁨을 나누며, 평생에 걸쳐 함께 성장하는 ‘포용의 공동체’였다.


한국의 장애인 주간활동서비스도 정해진 활동을 순환하는 구조에서 벗어나, 개인이 원하는 특정 분야의 활동을 평생에 걸쳐 추구할 수 있는 ‘포용적 활동’ 서비스로 거듭나야 한다. 그래야 더 많은 장애인이 ‘다름’을 인정받으며 각자의 창의성을 개발해 나갈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된다.


포용은 단순한 관용이나 배려를 넘어, 각자의 다름을 사회의 자산으로 삼는 태도다. 비쿠냐 아트 스튜디오는 예술을 통해 그 포용의 가치를 실현했고, 우리 사회에도 그 실천이 확산되길 바란다. 예술이 평생의 친구가 되고, 사회가 포용의 캔버스가 되는 그날까지.


글=최현주 푸르메재단 경영기획실장
사진=푸르메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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