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가족 건강검진 지원사업 현장을 가다

채혈만 잘해도 박수… 처음으로 마음 편히 검사받은 하루
'장애가족 건강검진 지원사업' 현장을 가다


“저 용감하죠? 박수 한 번 쳐주세요!”
지난 9월 4일 서울 중랑구 서울의료원 본관 2층 건강증진센터 채혈실. 한쪽 팔에 고무줄을 묶고 주먹을 쥐었다 펴며 채혈을 준비하는 발달장애인 전승완(31) 씨의 말에 주위 사람들의 웃음이 터지고, 곧이어 박수가 나옵니다. 이제 바늘이 들어갈 시간, 옆에 선 의료진이 다소 굳은 듯한 승완 씨의 어깨를 도닥이며 “너무 잘하고 있어요. 그대로 계세요”라고 말을 건넵니다. 무사히 채혈이 끝나자 승완 씨는 다소 긴장이 풀린 듯 “저 진짜 잘했죠?”라며 씩 웃습니다. 푸르메재단이 지앤엠글로벌문화재단 기금을 받아 산하 복지관 3곳(과천시장애인복지관・서울장애인종합복지관・종로장애인복지관), 서울의료원과 함께 진행한 ‘장애가족 건강검진 지원사업’ 현장 모습입니다.


9월 4일 푸르메재단은 산하복지관 3곳, 서울의료원과 함께 ‘장애가족 건강검진 지원사업’을 진행했다.
9월 4일 푸르메재단은 지앤엠글로벌문화재단 기금을 받아 산하복지관 3곳,
서울의료원과 함께 ‘장애가족 건강검진 지원사업’을 진행했다.


사전교육으로 두려움 줄이고, 검진 동선도 바꿔
이날 검진받은 사람은 발달・뇌병변 장애인 16명과 이들의 보호자 11명입니다. 장애인 16명은 복지관 3곳의 이용자 가운데 사전신청을 받아 선발됐습니다. 이날 서울의료원은 본관 2층 건강증진센터A를 통째로 비우고 장애인 수검자들만 받았습니다. 병원이 이렇게 장애인과 그 보호자들만을 위한 검진을 진행한 건 우리나라에서는 처음 있는 일입니다. 9월 24일 진행될 2차 건강검진(장애인 12명・보호자 9명)까지 합하면, 총 48명이 이번 사업을 통해 검진 받습니다.


타인과의 소통이 어렵고 낯선 환경을 두려워하는 장애인들이 건강검진을 잘 받을 수 있도록 각 복지관에서는 검진 일주일 전 사전교육도 진행했습니다. 복용 중인 약을 점검하고 문진표 작성법을 배운 데 이어 실제 검진 시 필요한 숨 참기, 숨 뱉기 등을 연습했지요. ‘초음파실은 어두우니 불편하면 불을 조금 켜달라고 하세요’, ‘초음파 검사할 때는 기계로 배를 꾹 눌러서 조금 아플 수 있어요. 괜찮으니까 조금 참아주세요’처럼 검진항목마다 알아두어야 할 점도 자세히 알려주었습니다. 이런 노력 덕분에 수검자들은 한결 편안한 마음으로 건강검진을 받았습니다. 발달장애인 김홍태(30) 씨는 “피검사는 무서운데 오늘은 잘 받았다”며 “교육받은 게 도움 됐다”고 말했습니다. 또 각 복지관에서 나온 사회복지사 15명이 수검자들을 한 명 한 명 따라다니며 검사를 도왔습니다.


푸르메재단 산하 복지관 3곳에서 온 장애인 16명이 보호자와 함께 건강검진을 받았다. 푸르메재단 산하 복지관 3곳에서 온 장애인 16명이 보호자와 함께 건강검진을 받았다.


이날 서울의료원에서는 이현석 원장을 비롯해 의사 6명, 간호사·임상병리사 30명이 검진에 나섰습니다. 발달・뇌병변 장애인을 잘 도울 수 있는 베테랑 직원으로만 의료진을 꾸렸지요. 장애인 검진에는 더 많은 인력과 시간이 필요합니다. 소통이 어려운 발달장애인은 더욱 그렇습니다. 의료원은 장애인들이 최대한 편안하게 검진을 받을 수 있도록 비장애인 검진과 동선도 달리했습니다. 보통은 채혈이 앞부분에 진행되지만, 채혈 후 곧바로 위내시경을 받을 수 있도록 순서를 뒤로 미루는 식입니다. 심정옥 서울의료원 건강증진센터 차장은 “비장애인도 간혹 건강검진 시 긴장해 돌발행동을 하는데, 발달장애인은 더욱 그럴 가능성이 크다”며 “수면내시경 후 잠에서 깬 수검자가 놀라서 낙상사고가 벌어지는 상황에 가장 주의하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푸르메재단과 복지관, 서울의료원 측은 이날 크고 작은 돌발상황이 있을 것으로 예상했지만, 사전 준비가 잘 되고 현장에서 의료진이 능숙하게 대처한 덕분에 별다른 사고 없이 검진이 진행됐습니다. 물론 사회복지사와 의료진, 보호자의 노력에도 검진을 받지 못한 경우도 있었습니다. 자폐스펙트럼 장애인 오태진(가명・26) 씨는 기본검사와 골밀도 검사, 엑스레이 검사까지는 받았지만, 채혈을 거부했습니다. 2시간에 걸친 보호자와 사회복지사의 설득으로 장소를 옮겨 침상에 누운 채로 채혈에는 성공했지만, 내시경 검사는 끝내 받지 못했습니다. 함께 검진 받은 아버지 오승호(가명・57) 씨는 “애초에 검사를 다 받을 것이라 기대하지 않았다”며 “기본 검사만이라도 받으면 좋겠다는 심정이었는데, 예상보다 더 검사를 잘 받아 감사하다”고 말했습니다.



발달장애인의 낮은 건강검진 수검율, 조기 사망으로 이어져…
검진기관 접근성 개선, 검진 환경 조성 등 제도적 지원 필요
안타깝게도 현재 우리나라 발달장애인 절반은 건강검진을 받지 못합니다. 지난 6월 보건복지부 국립재활원이 발표한 ‘2023 장애인 건강보건통계’에서 2023년 장애인 수검률을 살펴보면 지적장애인 54.8%, 자폐성장애인 52%로, 전체 장애인 수검률 63.5%보다도 10%포인트가량 낮습니다. 낮은 수검율은 발달장애인의 건강 악화로 이어지고, 높은 사망률과도 연관됩니다. 2023년 기준, 장애인 조사망률(인구 10만 명당 사망자 수)은 국민 전체 평균의 5배에 이릅니다. 평균 사망연령도 지적장애인 57.8세, 자폐성장애인 28.1세에 불과해 국민 전체 평균수명(83.5세)과 비교하면 매우 낮은 실정입니다.


휠체어 체중계 계측 모습휠체어 체중계 계측 모습


이러한 상황을 개선하려면 무엇보다 검진 기관 접근성을 높이는 제도적 지원이 필요합니다. 보건복지부 규정에 따르면 장애인 검진을 위해서는 휠체어를 타고 체중 측정이 가능한 ‘휠체어 체중계’, 휠체어에서 검진대로 이동하는 보조 장치인 ‘이동식 전동리프트’ 등 9개 필수장비를 갖춰야 합니다. 하지만 현재 해당 시설을 모두 갖춘 ‘장애인 건강검진 기관’은 전국에 21곳뿐입니다. 서울만 해도 서울의료원과 국립재활원 두 곳에서만 가능합니다. 이현석 서울의료원장은 “장애인 건강검진이 활성화하려면 무엇보다 집 가까운 곳에서 쉽게 검진 받을 수 있는 병원이 늘어나야 한다”며 “민간 병원도 장애인 검진에 적극적으로 나설 수 있도록 제도적 뒷받침이 필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인프라 개선도 중요하지만, 실제로 장애인이 검진 받을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노력도 필요합니다. 특히 발달장애인의 경우는 의료진과 잘 소통하고 낯선 검진 환경에 적응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중요합니다. 푸르메재단이 이번 검진을 앞두고 교육을 통해 검진센터 모습과 검진 과정, 검진항목별 주의사항 등을 상세히 일러준 것 역시 장애인 수검자들의 혼란을 줄이고 적응을 돕기 위해서였지요. 장애가족 건강검진 지원사업을 기획한 푸르메재단 백해림 기업협력팀장은 “이번처럼 검진 동선과 금식 시간을 최소화하고, 의료진이 장애 유형별 특성을 잘 이해하고 장애인과 의사소통하려는 노력이 필수”라고 설명했습니다.


장애인 당사자는 물론 보호자까지 편안한 마음으로 자신의 몸을 돌본 하루. “아빠랑 같이 와서 덜 무섭고 좋았다”는 발달장애인 당사자의 소감과 “처음으로 다른 사람 눈치 보지 않고 마음 편히 검진을 받았다”는 보호자의 이야기가 머릿속에 맴돕니다. 장애인과 그 가족이 조금 더 건강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푸르메재단이 어떤 노력을 해야 할지 깨달은 날이기도 했지요. 푸르메가 우리나라 장애어린이의 재활치료 기회를 넓힌 것처럼, 장애인의 건강권이 더욱 잘 지켜지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글=오선영 부장(마케팅팀)
사진=푸르메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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